▲ 반기문 대권론 이슈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임기가 끝나는 2016년 12월이후의 행보가 주목된다. (UN 반기문 홈페이지 사진) © | |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은 차기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것인가? ‘반기문 대세론’이 또 피어난다. 정치권이 제 몫을 못한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엊그제 한
여론조사 기관의 대선 후보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했다. 내로라하는 여야 후보와 큰 격차를 보였다. 반기문 총장이 정치권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번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반기문 총장이 39%의 지지율로 압도적 1위에 올랐다. 그 뒤로 박원순 서울시장(13.5%), 문재인 의원(9.3%), 김무성 대표 (4.9%), 안철수 의원(4.2%) 등의 순위이다. 타 후보들과의 격차는 미스게임 수준으로 크다. 또한 주로 여권 후보자들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점은 반 총장이 여권보수층의 지지를 흡수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기문 대세론은 2002년 정몽준 신드롬과 2012년 안철수 신드롬을 혼합한 양상이다. 2002년 정몽준은 한일 월드컵을 유치하며, 세계 스포츠 외교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글로벌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반면 2012년의 안철수 신드롬은 탈(脫)여의도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 덕분이었다. 반 총장은 이들 모두를 동력으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여야 계파보스들 ‘반기문, 오스트리아 발트하임 대통령의 길을 걷게 되나’ 촉각반기문 총장은 임기가 2016년 12월까지라는 점에서 2017년 대선을 임박한 시점까지 검증을 당하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강점이 있다. 그는 언론이 집요하게 물어보더라도 “유엔 사무총장 역할에 충실할 것이며, 대선 출마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라는 정도만 이야기해놓으면 된다. 안철수 의원 역시 이런 수준의 답변을 하다, 대선 직전 대권도전을 선언하는 방법을 택했다. 2016년말까지 한국 정치는 압도적인 반기문 대세론을 전제로 돌아갈 판이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반기문 대권론 이슈가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의 우윤근 원내대표 등 여야 중진급들이 최근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띄우면서 반기문 대세론과 맞물려 가고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엔사무총장 발트하임이 퇴임 후 곧바로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반 총장도 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냈다.
박원순 서울시장에서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까지, 2016년 말까지 어느 누구도 반기문 총장의 높은 지지율에 맞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때문에 여야의 계파보스들은 바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제로 개헌, 반기문 총장을 상징적인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국회와 내각을 장악해 계파간 나눠먹기를 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수 있다. 1987년 이후 한국의 대선에서는 대부분 압도적인 대세론자가 있었다. 92년에는 김영삼, 97년에는 김대중, 2002년에는 이회창 대세론을 노무현이 역전시켰다. 그 후, 2007년에는 이명박, 2012년에는 박근혜가 일찌감치 30% 이상의 지지를 이어가며 대세론을 몰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에 비하면 현재의 대권주자들은 10%대 지지율을 넘지 못하며, 어느 누구도 대세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의 계파보스들이 이원집정제의 판을 짜나갈 때, 이를 대세론의 힘으로 막아낼 유력 대선주자가 없다.
반 총장의 이력도 여야 계파보스들의 이해관계에 맞아떨어진다. 정통 관료로서 보수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면서도, 노무현 정권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 유엔사무총장을 지낸 참여정부 인사이기도 하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 당선은 노무현 대통령 등 친노(親盧)세력들이 자신들의 치적으로 내세울 만큼 참여정부가 깊이 개입하고 지원했다. 이 때문에 친노세력들은 설사 반 총장이 대권에 나서더라도, 섣불리 새누리당 후보로 나오지는 못할 것으로 장담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건 전 총리처럼 중도 포기할 수도, 아니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기문 총장이 실제 대권을 잡아가기 위해선 넘어야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반 총장의 현재 나이는 70세. 19대 대선이 있는 2017년이면 73세다. 그래서 대선 출마 여부를 건강과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모르고 하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는 차관, 장관 시절 10층 계단을 오르내렸다.
뉴욕 유엔본부 계단을 지금도 오르내린다고 한다. 그의 상품성은 단연 으뜸이다. 첫 외교대통령, 직선제 이후 비영남·비호남·충청 대통령 등 상품가치로 따지면 최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는 탓에 고건 전 총리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고건 전 총리 역시 정통 관료로서 보수층의 지지를 받은 참여정부 인사였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박근혜와 함께 빅3로서 지지를 이어오다 결국 대권도전을 포기했다. 참여정부 사람이라 해도 친노세력과는 화학적 결합을 할 수 없었고, 보수 측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등의 대권주자의 기반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기문 총장이 여야를 선택하지 못한다면,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으나, 이 역시 안철수 등의 커다란 실패사례가 있다.
문제는 반기문 대세론이 지속됐을 때, 국민들로부터 외면받는 여의도 정치판의 지각변동이다. 이미 2016년의 총선, 그 이전의 개헌논란 등 시한폭탄들이 곳곳에 잠재돼 있다. 반기문 대세론은 오히려 여의도 정치를 폭파시키는 뇌관 역할을 하며, 그 폭발 이후에 짜여질 새판에서도 대세론이 이어갈지는 예측불허이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겉은 부드럽고 내면은 강한 반기문 총장
반기문 총장의 불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그가 외무부 장관 시절(2004∼2006)에 밤잠을 설쳐가며 배운 결과이다. 물론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위해서였다. 유럽권의 지지를 받지 않고선 총장 당선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93개국의 회원국을 가진 유엔은 아직까지 유럽의 입김이 드센 국제기구이다.
반 총장의 외국어 실력이 이만큼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충주고 3학년 때
미국적십자사와 적십자연맹 주최 ‘영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해 4명을 뽑는 미국 방문단에 선발됐다. 당시 충주 시내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그가 외교부 차관과 장관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치밀한 준비 끝에 이뤄진 결과이다. 총장 당선 직후 미국 <USA투데이>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시골 소년이 미국을 방문해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만난 것이 외교관의 인생을 걷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그의 성품을 드러낸 유명한 일화 한 대목. 2005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반 장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반 장관, 유엔 사무총장 후보되셨는데 축하드립니다. 됐고요. 근데 반 장관, 그거 국가원수급이라지요.” 미소를 머금은 반 장관은 화답했다. “아닙니다. 사무총장 그거 총리급입니다. 총리급….” 겸손이 묻어나는 말이다.
반기문 총장은 1944년 충북 음성에서 반명환(潘明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직계선조 반석평(1472~1540. 형조판서)과 함께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다. 부친이 창고사업 부도로 정미소 인부로 일을 했고, 농산물검사소장을 지냈다. 그리해서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충주로 이사했고 태백산업공사(제재소) 사무장으로 일하면서도 과거 농산물 검사소장 직분의 이름으로‘반소장’으로 불리어졌다. 부친은 두뇌가 명석해 기억력이 좋았고, 바둑 또한 잘 두었다. 반 총장의 인자한 성품은 부모님을 닮았으며, 모친도‘여성군자’로 소문이 자자했다.
반 총장은 인복(人福)도 많은 편이다. 충주고에 다닐 때 한국 최초 화학공장의 모체(母體)인 충주비료공장이 건설되면서 미국건설회사(벡탤)와 시운전회사의 간부직원 부인들이 충주고 원어민강사에게 영어를 배웠고, 3학년 때 적십자사 비스타(VISTA: 미국방문)프로그램의 한국대표로 뽑혀 미국을 방문,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할 때 맞은 편에서 찍은 사진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찍혀있었다. 미국에서 홈스테이하면서 교육을 받을 때는 훌륭한 여성을 만나 미국문화를 열심히 배웠다. 시간이 흘러 외교통상부장관이 되어 홈스테이에서 만난 그 여성이 계신 양로원을 찾았을 때“나는 그때 네가 훌륭한 사람 될 줄 알았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녀는 떡잎을 미리 알아 본 것이다. 그 이후 반 총장 부부는 그녀의 생일 때마다 방문한다고 했다.
반 총장은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외교관을 장래희망으로 삼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2등으로 합격, 연수원을 1등으로 수료했다. 그는 일등으로 주어진 인센티브로 워싱턴이나 뉴욕의 발령을 마다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곳인 인도로 가게 된다. 훗날 고향 친구들에게 인도로 간 경위를“위험지역에 대한 특별수당과 생활비를 절약해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놨다. 그때 인도 대사 노신영의 밑에서 열심히 소임을 다해 두터운 신임을 얻어 노(盧)대사가 주미대사, 유엔대사, 외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 국무총리를 역임할 때까지 그림자처럼 그를 따랐다. 그의 외무부 차관 시절 외무경험이 없는 국회의원 한승수가 주미대사로 갈 때 반기문의 능력을 알아봐 “나를 도와주시오”하여 다시 차관급으로 공무원이 되어 세계 각지에서 역량을 쌓았다. 그는 90년대 북한 핵 위기와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 등 굵직한 현안을 처리했고,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장관을 거처 2006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가 모인 유엔의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는 영광보다는 한계 속에서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로드맵을 완성시켜 나가는 직책이다. 그는 2011년 사무총장 재선 때에 유엔의 한계를 지적하는 언론과 강력한 카리스마 부족을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부딪혀 무척 고전하리라 예상 했지만 아이티, 미안마, 파키스탄의 자연재해 참사, 칠레 광산붕괴 등의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모든 안건과 자료를 숙지하는 철두철미한 준비성, 부하 직원에게 전권을 주되 정치적 책임은 본인이 지겠다는 솔선수범으로 보란 듯이 연임을 확정했다.
반 총장은 스스로 “나는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일 수 있지만, 강한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때 다른 국가 지도자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동시휴전 선언을 이끌어 내기위해 분주할 무렵, 그는‘동시 휴전’이 아닌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휴전을 성사시킨 바 있다. 이후 팔레스타인이 휴전선언을 하기까지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뛰어난 업적 속에 반기문 총장은 세계 각지의 군사문제와 환경을 이끄는 역사상 가장 능동적인 유엔사무총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기문과의 대화>라는 책을 쓴 톰플레이트(타임, LA 타임스 논설위원.편집장)는 반기문 총장에 대해 이렇게 썼다.“우리에게는 사무총장이 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유엔 꼭대기에서 일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일꾼이 있다. 왠지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는가?”이러한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퇴임 후에 국내에서도 반기문 대세론이 먹혀들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精吾 문윤홍·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명언들>[친절] 인생 최대의 지혜는 친절이다.
[포용] 나를 비판하는 사람을 친구로 만들어라.
[배려] 베푸는 것이 얻는 것이다.
[유머]유머감각은 큰 자산이다.
[설득]대화로 승리하는 법을 배워라.
[인간관계] 금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맥이다.
[리더] 세계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리더십을 배워라.
[최선] 1등이 되어라. 2등은 패배다.
[직업] 직업은 일찍 정하라.
[멀티 플레이어] 세계는 멀티 플레어를 원한다.
[실력] 실력이 있어야 행운도 따라온다.
[자기개혁] 자신부터 변화하라.
[도전] 잠들어 있는 도전DNA를 깨워라.
[겸손] 자기를 낮추는 지혜를 배워라.
[소신] 당신의 생각이 옳다면 생각을 굽히지 말라.
[긍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라.
[절제] 헛된 이름을 쫓지말라.
[공부]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부지런함] 근면한 사람에게 정지팻말을 세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