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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4. 어제밤에는 외마디 고함을 내질렀다. 내 성깔을 이기지 못해서.
'왜 그래요? 내가 더 놀랬어요?'
하면서 아내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지청구를 했다.
'그게 당신 자식이어요? 아녀요. 갸 애비가 한 일이어요. 왜 당신이 그래요?'
첫 손자의 이름을 내가 족보항렬자 가운데 쓰기 쉬운 해(海)를 넣어서 산해山海라고 지었는데도 큰아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물수변이 든 한 자인 문汶 순淳 준浚 해海 호浩 홍鴻를 적어 주었다. 마음에 안 들면 물수변이 든 한자어를 더 고르라고 말했다. 보름이 더 지나서야 준으로 골랐단다. 영어로 표기하기도 쉽고, 입말로도 부드럽고 겸손한 듯한 발음이기에 내가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십 일이 지난 어제밤에 아내가 핸드폰으로 보여 준 한문은? 내가 적어 준 한문이 아니고 다른 한자다. 준浚이 준濬으로 변했다. '깊다(deep)'는 뜻을 지닌 준浚에는 여러 가지 뜻이 들어 있지만 '빼앗다'는 뜻도 있기에 기피했단다. 또다른 한자인 준濬도 '깊다'는 뜻이 있기에 이 글자로 출생신고를 했단다.
큰아들이 핸드폰으로 준浚을 검색했더니만 여러 가지 풀이가 있단다. '치다, 깊다(deep), 엎드려 안다, 크다, 기다리다, 재물을 빼앗다'라는 뜻풀이 가운데에 '치다'라의 뜻이 문제였나 보다.
나하고 상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내가 다르게 해석해 주었을 터인데...
'치다'는 물 속에 있는 이물질을 걷어내고 넓게, 깊게, 깔끔하게 치운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인가를 건드리며 다치게 한다는 속뜻도 숨어 있다. 양음이 함께 있는 것처럼. 치우다의 뜻을 지닌 단어로는 준설(浚渫)이 있다. 이처럼 방해되는 물건을 치우고, 깊게 파내면? 다치고 빼앗는다는 속뜻은 없니? 그게 왜 나쁜 뜻으로만 해석되니? 이 말을 들려주었을 게다.
한자풀이에 별로 깊이 생각 못하는 젊은애들이 한자 뜻풀이를 적당히 해서 핸드폰에 입력했을 게다. 한자공부를 안 한 내 큰아들은 뜻풀이를 얼핏 보고는 '남의 것을 빼앗는다'는 그 뜻 하나만을 크게 확대한 뒤에는 이 한자를 고르지 않았다는 변명이다.
'우리나라 경주 최부자 마지막 12대 부자의 이름이 준濬자이며, 우리나라 동의보감 책을 쓴 선조왕 때의 허준도 준濬자여.'
'왜 그래요? 손자는 당신 자식이 아니잖아요? 애비가 제 새끼 이름을 좋은 뜻으로 짓는다는 데 왜 할아버지가 나서서 그래요?'
또다른 성씨네의 준자 이름을 인터넷으로 몇 개 검색해서 아내한테 보여주었는데도 아내가 자꾸만 쫑알댔다. 내 입에서 야~ 하는 외마디 고함소리가 다시 터졌다. 내가 화를 낸 것은 단순하다. 왜그리 어려운 한자, 획수가 무려 17개인 한자어 준濬를 택했느냐는 뜻이다. 큰아들은 1980년대에 태어났기에 한문세대가 아니다. 하물며 21세기에 태어난 손자세대는 한문을 거의 쓰지 않을 게다. 그렇다면 쉬운 한문을 놔두고 왜 굳이 어려운 한자를 골라서 이름을 지었느냐는 내 항의였다.
준浚, 준濬은 모두 '치다, 깊다(deep)'의 뜻을 지녔고 한글 발음도 똑같다. 단지 한자획이 열 개에서 열일곱 개로 늘어난다는 차이다. 앞으로 누가 이 어려운 한자를 배우고 익히며, 또 글자로 쓰겠느냐는 내 뜻이다.
나는 간밤에 옥편을 펼치고, 인터넷로 검색해도 준濬 한자어를 그대로 베낄 수가 없었다. 획수가 엄청나게 많으니 컴퓨터 화면으로는 글자 형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겨우 획수를 헤아리면서 한자를 베끼면서 한 시간 넘게 한자 익히기 공부를 했다. 1949년 1월에 태어난 나도 모르는 한자어라니... 밥상머리에서도 책 본다며 지청구 숱하게 먹는 내가 모르는 한자어라니...
벌써 동사무소에서 신고했으면 행정처리가 되었을 터. 개명하려면? 그게 가능할까? 정정하려면 무슨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천상 족보책을 복사하고 어쩌구저쩌구를 변명하면서 개명신청은 할 수 있겠다. 그 절차가 얼마나 지루할 것일까? 개명이 허가된다는 보장도 없고...
'당신 큰아들 이름도 당신이 고쳐서 호적신고했다고 했잖아요?'
하면서 아내는 나한테 연거푸 쫑알댔다. 남편이 화가 나는데도,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아내는 더 악을 써대는 습관이 길들여졌나? 성질 급해서 욱하는 기질이 있는 내가 꾹 참아야 했다. 아내한테 화풀이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며, 다른 문제이기에.
사실이다. 큰아들의 이름 한 자를 내가 고쳐서 호적신고했다. 내 아버지가 폐암으로 임종말기에 힘들어 하면서도 붓글씨 대가이며 한학자인 종친한테 부탁해서 지은 이름인데도 내가 살짝 비틀었다. 한글 발음은 똑같은 글자이되 뜻풀이가 조금 엇다른 글자를 골랐다. 곧을 貞을 바를 正으로 고쳤다. 곧을 貞자는 '씻다, 깨끗하다'는 뜻을 지녔으며, 여자 이름에 많이 나타나기에 내가 싫어했다. 사내아인데... 그래서 '바르다'는 뜻을 지닌 正를 골랐다. 마지막 이름글자는 솥을 뜻하는 현鉉이다. 솥을 깨끗하게 닦는다는 뜻보다는 솥을 바르게 세워놓는다는 뜻을 택한 나였다. 솥을 반듯하게 제자리에 놓는 게 먼저가 아니던가? 또한 현鉉은 삼정승(三政丞)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뜻한다. 나는 솥을 바르게 설치하자는 뜻으로 재해석했는데. 왜 아내는 나를 비난하지? 단지 시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남편인 내가 고쳐서 호적에 올렸다는 그 이유로? 아비가 고쳤듯이 아들도 못 고칠 것 없다는 대등논리였을까?
손자. 내가 낳지도 않았고 또 키우지도 않는다. 며느리가 낳은 애의 이름을 제 아비가 짓는다는 데야 할아비인 내가 무어라고 강요하지 못하지만 나로서는 속이 부글거렸다. 왜 그 어려운 한자를 골랐느냐는 이유다.
나는 자식들의 이름을 쉽게 발음이 나는 이름으로 지었다. 큰딸은 지아知我, 둘째딸은 지나知娜 , 큰아들은 정현正鉉, 막내아들은 대한大韓이다. 지아와 대한은 내가 스물두어 살 때 미리 지어둔 이름이다. 큰딸은 외국 나들이를 이따금 하는데 지아(Jia)라는 이름을 쉽게 쓸 수 있으며, 남들이 쉽게 기억하는 이름이라며 퍽이나 자랑스러워 했다.
자식 이름을 일찍부터 지어 둔 나와는 달리 큰아들은 애를 낳은 뒤에서야 이름을 허둥지둥 짓는지를 모르겠다. 큰아들의 성격이 외가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느려터지고 굼뜨고, 적당히 하는 성격이 있을까.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남한테 호감을 받는데 견주어 성질 급하고 매사를 깐깐하게 따지고 파고드는 나하고는 뜻이 전혀 안 맞는다.
사실말이지 나는 한문을 잘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해도 한문 쓰기를 애써 기피했다. 아름답고, 쉽고, 바른 말을 우리말과 우리글로 나타내는 것을 훨씬 더 좋아했다.
한자어의 생성원리를 조금만 생각해 보자. 우선은 상형문자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를 만들었다. 산은 山으로, 천은 川으로. 그런데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외의 글자는 상상으로 조립해서 만들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마음, 생각, 충성, 효도, 영혼, 죽음, 깨닫다, 알다 등 추상적인 개념과 냄새, 맛, 촉감, 색깔 등의 느낌을 인위적인 글자꼴로 만들려면? 뜻풀이를 억지로 조작해서 만들고는 이를 남한테 익히도록 했다는 뜻이다.
한문에 대한 아무런 감각도 없는 큰아들이 핸드폰으로 검색했을 터. 네이버에서 검색하고는 섣불리 판단해서 고른 한자어란다.
'요즘 젊은 것들이 한문을 제대로 아냐? 적당히 얼렁뚱땅해서 핸드폰에 한자 뜻풀이 한 것을 너도 개념없이 해석했다는 게냐? 꿈보다 해몽이 더 필요해. 모든 것에는 정반합(正反合)이 흘러.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상대적으로 반반씩이야. 오로지 한쪽으로만 치우친 것은 없어. 햇볕이 나면 곧 비도 내리고 눈도 내려. 오로지 햇볕만 나면 이 세상이 남아 남겠니? 햇볕이라고 무진장 끝까지 좋은 거냐구? 아녀. 날씨도 흐리고 추워야 하는 거여. 일정한 비율로. 세상이치도 마찬가지여.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반반씩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해석을 잘 해야지, 꿈보다 해몽이라구.
한자 생성 이치도 모르는데도 쉬운 한자로 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어려운 한자를 택했으니... 지금은 21세기야. 그 쓸데없는 남의 나라 문자는 내팽개쳐도 된다구. 중국 한자어 숫자는 지금 7만 자를 넘어 곧 8만 자로 육박해. 그거 일평생 공부해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한자를 써. 어떻게? 2,000개로 축약해서 약자인 간자체로 써. 하나의 한글발음에는 중국글자가 무려 40~50개도 넘어. 이거 눈으로는 확인 가능해도 귀로는 불가능해. 심하게 말하면 그림문자라고. 우리는 하나로 발음하지만 중국인들은 수십 개로 발음 해. 더군다나 한국사람인 내 귀로는 구별이 불가능해'라고 내가 닥달해야 이미 끝난 일이다.
나를 위로해야겠다. 유식한 체, 잘난 체를 하는 한자 뜻풀이보다는 ''잔잔하면서 깊은' 뜻을 지닌 한자어로 손자 이름을 지으려고 했던 나로서는 반쯤은 성공한 셈이라고. 물이 깊다는 뜻은? 얊은 물은 촉쌀대며 소리를 크게 낸다. 그러나 정말로 깊은 물은 아무런 소리도 느낌도 내지 않는다. 그저 도도히 흐른다. 그 많은 것들을 다 포용하면서. 심해(深海)의 바닷물은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또 모든 것(모든 이물질)을 다 포용한다.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물수변을 택했는데...
내가 왜 준浚자를 은근히 바랄까? 족보항렬에 오른 글자 가운데 하나이며, 내가 존경하는 경주 최부자의 이름이 들어 있다. 300년간이나 지탱한 부잣집. 경주 교동의 12대째 부자인 최씨네는 정치와 권세가와는 무관하게 살면서 가산을 크게 키우지도 줄지도 않게끔 조화롭게 지키면서 그 돈으로 근방 가난한 이웃을 도왔으며, 또 그 가산을 줄여가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댔으며, 지금의 영남대학 전신을 세웠다. 마지막 부자이던 분의 이름이 준浚이다.
준자 이름을 가진 분이 또 있다. 조선 선조왕 때 동의보감을 지어 한의학을 집대성한 분의 이름도 준浚이다. 허준. 허준의 준浚은 뜻풀이처럼 남한테 덕을 베푸는 이름인데... 그만큼 깊은 뜻이 들어 있는데...
나는 한문의 깊이는 모른다. 준浚, 준濬의 뜻이 얼핏 보기에는 같다. '치우다, 깊다(deep)'는 뜻인데 한문 글짜 모양은 다르다. 글짜 모양이 다르면 뜻도 조금은 다를까? 도대체 얼마나 큰 중국 자전을 펼쳐서 그 차이를 확인해야만 되는지? 어떤 차이가 있는데?
아들이 제 자식 이름을 지었다는데 할아비인 내가 뒤늦게서야 뭐라고 잔소리할 수도 없고. 이미 호적계에 제출했으면 행정처리되었을 터인데 이것을 새로 고치려면 무척이나 소속이 번거러울 터. 직장 다니는 자식이 짬을 내어 신청할까?
어려운 한자어를 덜 쓰는 중국인데도 한문에 병 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한문을 고수한다. 우리말이 예로부터 한자로 쓴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말이 있으면 우리말로 쓰자. 그리고 한자를 쓰더라도 쉬운 한자어로 골라 쓰자. 어떤 한자는 한글로는 한 소리인데도 한자의 글의 모양은 무려 40~50개도 된다는 글자도 있단다. 무슨 재주로 그 차이를 하나씩 다 알며, 뜻에 따라서 어떤 자를 골라서 쓸 것인데를 생각하면 머리가 돌아버릴 게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써야 하는 나로서는 미리서부터 고개를 흔든다.
국제화시대에 맞게끔 한글로만 기억해야겠다. 나도 외래언어인 것처럼 '준아' 하고 부르는 것보다는 '쮸니야'하고 장난스럽게 불러야겠다. 영어로는 Jun, Joon으로 골라서 써야하는 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외국생활에 필요하면 그 아이가 골라서 쓸 게다.
예전의 일이다. 잠실 수중보 한강변에 나가서 강물을 들여다 보았다. 강뚝에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면 표면에 흐르는 물은 숱하게 방정맞게 흔들리며 흐르지만 강바닥 밑의 강물은 엄청난 질량으로, 밑바닥으로 도도하게 흐른다고 여겼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강물 위에는 많은 부유물이 거센 바람에 따라서 거꾸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아래 본류는 흔들림없이 하류로, 강화도 쪽으로, 서해로 빠져나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본류(本流)이다. 오랫동안 강물을 지켜보면 결국에는 그 부유물이 하류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깊다(deep)의 뜻을 지닌 한자어를 택했다. 준浚이 흔들림없이 제 갈 길로 가되, 부자로 사는 뜻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이름대로 사람이 살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이름을 지을 때에는 많은 것을 생각할 게다. 나처럼.
어느 카페에서 보았다. 임우기. 뜻이 참으로 좋단다. 그런데 남들은 이무기로 부른다고. 이무기는 뱀, 맹독사. 이무기로 부르면, 어렷을 적에는 무척이나 상처를 입었을 게다.
인터넷에서 '이상한 이름'들을 검색해서 몇 개만 골랐다. 이백원, 오천원, 오만원, 남자야, 여자년, 현상범, 장애자, 장애인 등.
법원에 개명신청한 이름도 있다. 갈보지, 이창녀, 여인숙라는 이름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몰라도 특히 갈보지의 이름은 웃긴다. 한자 뜻이 얼마나 좋은지는 몰라도. 그런데 이것을 한글로 써서 우리말로 들으면? 정말로 상스러운 욕이나 장난스러운 이름으로 둔갑한다. 한자를 안다는 사람이 짓는 이름이 고작 이런 수준이니.
출생신고가 이미 끝난 일이기에 나는 꿈보다 해몽에 더 치중해야겠다. 세상이치는 반반이라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있다고. 인생 긴 항로는 좌로우로, 기우뚱 기우뚱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 수단과 방법은 다르더라도 목표는 하나라고.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라는 결론을 미리부터 내리면서 나를 다독거린다.
첫손자는 늘 웃을 것이라고. 깊은 물처럼 여유롭고 넉넉해서, 남을 포용하고 베풀면서, 삶을 즐길 것이라고.
내 자식의 외모는 멀쩡하게 생겼는데 하는 짓하고는 다르다. 적당히 사는 성격이다. 그에 비해서 외모가 못생겼고 성깔마저 깐깐한 나하고는 전혀 다르다. 며칠간이나 돌보았던, 생후 17개월이 된 손녀. 어젯밤에 큰아들이 와서 제 딸을 데리고 갔다. 해산하여 석삼 주를 보낸 며느리가 어느 정도 몸을 추스렸을까? 장모가 대구에서 다시 올라왔다며 큰아들이 데리고 갔다.
오늘은 쉴 수 있기에 이 글을 썼다.
2016. 1. 15. 금요일.
글 크기를 키워달라는 분이 있기에 10에서 11포인트로 키웠더니만 모양새가 이상하다.
첫댓글 할아버지의 손자사랑이 이 글에 담겨있네요....^^
젊은세대와 우리세대는 가치관이 다르니 이해해야겠지요..
할아버지가 지은 "준"이 더 좋은 것 같은데...ㅎ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아드님도 아마 많은 생각을 했을거예요...
님의 댓글이 화가 난 저를 달래줍니다.
저도 글자 자구에 얽매는 사람은 아니지요. 이따금 옹고집도 피우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가변할 줄도 알지요.
고지식하게 정해진 틀에만 고착된 아내의 성격을 애들이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발음은 똑 같고, 뜻 풀이도 거의 엇비슷하고, 단지 한자 획수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만 불만이고요.
첫손자가 무탈하게 커서 남한테 도움을 많이 주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부자가 되고, 그 부를 남과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 자기 혼자서 이룩한 것은 아닐 겁니다. 사회에 다시 환원하는 마음을 지녔으면 합니다. 깊은 강물처럼, 깊은 바닷물처럼..
댓글 정말로 고맙습니다.
글감이 좋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준이란 이름을 선택했으면 그냥 눈감아 주지, 뭘 한자까지 선택하려 그러시나...?
할아버지 노릇 단단히 하고 싶으신가? ㅎㅎ
서른 넘은 아들도 어린애 같은 게 애비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아들도 손주에게는 하늘같은 아버지일세.
나는 한자 뜻이나 획수까지 너무 따지는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네 그냥 부르기 좋고 밝고 씩씩한 이름이면 좋겠네
내 군동기 중에...육찬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ㅎ 훈련받을 때 모든 동기가 금방 외웠었네 ㅎ 그런데 30년 쯤 지난 뒤에 알고보니 육준석으로 이름을 개명했더군, 아마도 뜻 보다는 발음 때문이었겠지?
반면에 엄온희라는 동기가 있는데 그냥 들으면 어머니로 들리지 ㅎ 잘 살고있네 ㅎ
육찬괴기, 어머니...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