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4일 묵상 본문 : 갈라디아서 3장 19절 - 29절 - 땅의 것에 매여 절망하는 삶이 아닌 복음에 매여 영생과 기쁨을 누리는 삶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은혜 가운데 하루를 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를 향해 마음을 열게 하시고 주의 보좌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먼저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 앞에 설 때 마음에 평안을 품게 되고 온전함으로 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사는 모습이 되도록 친히 이끌어 주옵소서.
세상 가운데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려면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물러서지 않고 주와 함께 승리를 얻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사랑으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후에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람의 죄 때문에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설명하다. 그래서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통해 속죄하는 일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주어졌으며 약속하신 자손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제한적으로 기능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한 중보자는 모세를 의미하는데 율법은 사람인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한시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복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영원한 것임을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20 그 중보자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중보자의 특징은 양자 중 어느 한편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중보자는 하나님과 하나 되심을 제시함으로써 모세와 그리스도의 현격한 차이를 제시하고 있다.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바울은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을 거스르게 하는 것은 아님을 선언하면서 율법을 통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면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도 율법으로 가능했을 것임을 말한다.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성경은 문맥상 율법을 의미하고 있으며 율법은 사람을 죄의 속박에 완전히 가두는 일을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며 이는 복음이 주어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율법에 매여 살 수밖에 없었으며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 갇혀 사는 것과 같음을 보여준다.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 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율법이 귀족 계급에 속하는 소년들의 생활과 품행을 지도하는 초등교사와 같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귀족의 소년들이 성장하면 그들의 역할이 끝나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됨으로써 율법의 역할은 모두 마무리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 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복음을 의미하며 복음을 통해서는 율법에 매여 살지 않아도 됨을 보여주고 있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위해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새로운 인격 관계에 들어가고 그리스도의 옷, 즉 그리스도의 본성에 참여한 자가 되었음을 제시한다. 바울은 이것을 에베소 성도들에게는 새사람을 입는 것으로 설명한다.(엡4:23,24)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바울은 모든 성도들은 신분, 성별, 종족에 상관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임을 선포한다.
이는 성도들의 유일한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의미한다.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성도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면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 즉 진정한 영적 후손이 된 것임을 의미하며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축복에 참여할 자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이는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통해 주어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바울은 율법의 기능은 인간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것임을 설명한다.
그래서 율법으로 사는 자들은 철저히 죄에 매여 사는 자임을 인식하게 되고 인간의 한계와 절망적인 상황을 바라보게 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와 절망 가운데에서 소망을 발견하는 것은 오직 복음을 통해서 가능하며 이 복음을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성취하여 선포하셨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도는 율법을 통해 스스로의 절망과 한계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상황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절망과 한계를 벗어나야 함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율법으로 살아가면서도 절망과 한계를 발견하는 일은 많지 않다.
오히려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그를 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다스리려는 태도가 만연하여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그들이 율법조차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며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세상의 사람들과 동일한 가치와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어제는 부교역자 시절에 함께 사역했던 전도사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1시간 반 동안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폭포수와 같이 쏟아내셨다.
들었던 모든 내용은 교회 안에 거짓말과 파당을 짓는 것과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과 모함, 그리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었으며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성도의 정체성을 상실한 모습을 바라보며 절망을 느끼게 된 것이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요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속으로는 하나님의 복음에서 멀어져 자기 욕심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절망에서 소망을 품고 살고자 하는 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며 쉽게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더욱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비단 한 교회에 머물지 않고 많은 교회에서 이와 같은 모습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다.
율법으로 살면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에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기대할 수 있지만 현재의 모습은 율법으로 살지도 않는 이방인과 같은 모습임을 보기 때문이다.
갈 길을 잃어버린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교회가 가진 것, 누리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성도는 더욱 죄악 가운데 살아가며 심판으로 향해 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지체요 공동체임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지식으로 알아지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었을 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각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연합될 때 그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하나임을 인식하게 되며 한 공동체요 지체로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복음의 진리를 디모데에게 전달하며 복음전달자의 사명을 제시한다.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8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9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10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딤전1:6~11)
교회의 분열과 아픔을 바라보며 결국 그 중심에는 복음이 선포되지 못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인생임을 발견하지 못하는 어두움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복음을 선포해야 할 자들이 사람의 교훈을 전달하면서 결국 복음이 아닌 것에 마음을 두게 만들었기에 나타난 결과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다시 주의 말씀 앞에 인생의 어리석음과 무지함, 그리고 복음의 능력과 복음을 통해 성도가 가지는 소망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어리석은 자이지만 복음을 알고 복음을 선포하게 하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북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신다.
오늘도 그 복음을 따라 생명의 길을 가고 비록 좁고 협착한 길, 쉽게 가지 못하는 길이지만 그 길에서 주님과 함께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자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인생의 연약함과 무지함, 그리고 절망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땅의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이 결국 인생의 절망과 분열과 아픔임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절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직 복음을 통해 생명을 누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율법으로도 살지 않고 자기가 율법이 되어 이방인과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더욱 심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어리석은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온전히 주를 바라보는 인생이 되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복음에 소망을 두는 자 되게 하옵소서.
소중하고 귀한 공동체를 주셔서 감사하며 복음으로 연합된 교회가 되게 하시고 율법을 뛰어 넘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생명의 은혜를 나누는 교회로 서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