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위선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보혈의 은혜만이 저를 살리시고 회복케 하심을 믿습니다.
성령님, 말씀을 조명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본문 주해)
19~20절 : “그러면 율법은 무엇 때문에 있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약속된 그 후손이 오실 때까지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려고 덧붙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중재자의 손을 거쳐 제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약속은 중재자를 내세우지 않고 하느님 한 분의 생각으로 하신 것입니다.”(공동번역)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인간이 죄 아래 갇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율법은 약속된 후손(그리스도)이 오실 때까지 주어졌다.
유대교는 토라(율법)를 영원한 것으로 간주하나, 바울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율법은 마침이 되었다고 주장한다.(롬10:4)
‘천사를 통하여’란 시내산에서 나타난 우주적 현상들을 후대에서는 천사들이 일으킨 것으로 해석한다. (구약에서는 율법이 주어질 때 천사들의 등장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중보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재자인 모세를 가리킨다.
이런 율법에 비해 ‘약속’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직접 주셨기 때문에 중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세의 율법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즉 은혜로만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 언약과 새 언약(약속의 자손이 오시기까지) 사이에 율법이 들어있는 것이다.
21~22절 : “그렇다면 율법은 하느님의 약속과 반대되는 것이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사람에게 주어진 율법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온 세상이 죄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이 그 믿음으로 약속된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공동번역)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신 분입이다.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인 언약을 하신 하나님이 율법을 통하여 상호언약을 체결하신 것은 왜 인간이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만으로 구원을 받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에 가두고 죄 아래 두신다. 이렇게 온 세상이 죄 아래에 갇힌 것은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이다.
이제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그를 믿는 사람들만 약속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11:32)
23~25절 : “믿음의 시대가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의 감시를 받았으며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후견인 구실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에는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때가 이미 왔으니 우리에게는 이제 후견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공동번역)
‘믿음이 오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믿음의 계시로 율법의 시대는 끝나고 믿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도 ‘믿음’은 있었다. 그것은 약속으로서 아브라함과 구약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예외적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과 그 아들의 영(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이제 믿음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가능성이 되었다.
그러므로 에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에 갇혀 있었고, 온 세상은 죄 아래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율법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개인교사(몽학선생, 후견인))이 되어 그들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믿음이 오고 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율법 아래 있었든지 양심의 법으로 살았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율법이라는 몽학선생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26~27절 :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공동번역)
믿음이 온 후로는 몽학선생의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물세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는 것은 성령이 임하여야 한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이 정말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알게 되며 동시에 예수님이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는 것을 믿게 된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마음으로 믿게 되고 입으로 시인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는 말이다.
28절 :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공동번역)
믿음이 온 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는 일체의 차별이 없다.
복음은 모든 인간관계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29절 :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따라서 약속에 의한 상속자들입니다.”(공동번역)
그리스도의 것이 된 자는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다 무너져 내려야 한다. 그 텅 빈 자리,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하나님의 약속인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지는 것이다.
(나의 묵상)
나는 주님의 은혜로 남편을 따라 교회에 발을 디뎠다.
세월이 흘렀지만 진리는 모른 채, 열심이 특심인 종교인으로 잘(?) 자라갔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도 비교하면서, 경쟁으로 받아들였고, 거룩한 구별됨이 아니라, 타인에 비해 더 인정받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구별이 되려고, 나 자신도 모르게 애를 쓰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또 그렇게 애를 쓰는 것이 주님 앞에 당연한 태도라고 생각했기에 나처럼 하지 않고 미적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자들을 마음으로 판단했었다.
복음을 알게 되고 말씀 안에 거하게 되니 하나님의 은혜는 내 노력으로 무엇을 해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연합될 때 누려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주님과 연합된다는 것은 나 자신이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물세례를 받을 때도 이것을 알지 못했으니, 그저 교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별 다른 느낌도 받지 못했다.
내게는 이렇게 심드렁한 일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음을 30년이 더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본문과 같은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의 계획을 묵상하며 즐거워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브라함을 불러 (율법 없이)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을 주셨다.
그리고 모세로 하여금 율법 선포하게 하셔서 행위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죄악 된 인간 본성을 보여주신다.
그리고는 드디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한 치의 소망도 없는 죄인들이 그분을 믿을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요, 더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작전이신 것이다.
멸망할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시려는 작전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 작전은 이미 창세전에 계획하신 것이다.
그 작전 속에 미미한 나같은 자에게도 생명을 주심으로 죄의 흑암 속에서 탈출시켜 주셨다.
말씀을 알면 알수록 주님의 은혜를 더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복음의 말씀을 통해 이 작전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매일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점점 더 알아가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주님의 은혜를 내 노력과 경쟁적인 행위로 받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과거 율법의 행위로 했던 ‘주일성수, 헌금 생활, 새벽기도, 사역’ 등을 지금도 여전히 행한다.
그 이유는 겉으로는 같은 모양일지라도, 속으로는 너무도 달라진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것으로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내게 생명을 주시고, 주님과 교제하게 하신 그 은혜에 감격하여 하는 것이니, 너무도 자유할 뿐 아니라, 기쁨으로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고 지체들과 교제할 수 있음이 너무너무 감사하다.
헌금을 할 때마다 물질을 주셔서 먹고 입고 살게 하신 주님께 너무도 감사하다.
얽매인 새벽 기도가 아니라, 구별된 시간으로 집중 기도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하다.
교회 안팎의 많은 사역과 활동은 주님 손에 들린 도구로서 나를 일깨워주시니 감사가 넘친다.
하나님의 창세전 계획, 그 작전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작전에 동참한 자, 쓰임 받는 자가 되었으니 더욱 감사하고 기쁠 뿐이다.
좌충우돌하는 나의 초등교사가 되어 준 율법에 감사하고, 그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 안에 있게 하시니 더욱 감사하다.
(묵상 기도)
주님,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죄를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연합된 자가 되어 아버지의 그 기쁨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가 넘칩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주님의 작전을 온 힘을 다해 환호합니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