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신문 4월 16일 지면에서 두 분의 사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한분은 유의배(루이스 마리아 우리베) 신부님이고, 다른 한분은 지정환(세스테벤스 디디에) 신부님입니다. 한국 이름이지만 두 분 모두 외국에서 오셨습니다. 유의배 신부님은 1980년에 왔으니 43년째 한국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산청의 성심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성심원은 ‘한센인’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신부님은 한센인들의 겉모습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43년이 넘도록 그분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한센인들이 사망하면 염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지정환 신부님을 ‘임실 치즈의 아버지’로 기억합니다. 더 소중한 그분의 삶의 향기는 사람에 대한 애덕과 장애인 가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무지개 가족(1984)’, 학업에 대한 열정이 있는 장애인 대학생들과 가족을 위한 ‘무지개 장학재단(2007)’ 설립은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신 사제로서의 사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한국에 오셔서 60여 년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형제적인 사랑을 나누신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달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의 사도들도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렀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할 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로 공동체는 신자가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설교로 이스라엘을 넘어서 교회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에서 복음을 선포하였지만 사도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교회는 이스라엘을 넘어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유의배 신부님과 지정환 신부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할 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공생활 하셨지만 유의배 신부님은 43년이 넘게 한센인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정환 신부님은 60 동안 사랑을 베풀고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에서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신부님들은 멀리 한국까지 와서 사목하였습니다.
오늘의 독서는 말의 힘에 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시기와 질투에 가득차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비난의 말을 하였습니다.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말입니다. 인격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악의 세력으로부터 나오는 말입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한 말로 하느님의 구원은 모든 민족들에게 퍼져나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입니다. 기쁨을 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들을 시기하고 배척하였던 것처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바벨탑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물질주의이고, 자본주의이고, 이기주의입니다. 모든 것을 경쟁과 이윤으로 판단하려는 신자유주의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졌던 것처럼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결국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필립보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신앙인들도, 성직자들도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참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곤 합니다. 몸은 세례를 받아서 신앙인이 되었지만 마음은 세상의 것들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생명을 살리는 말입니다. 권위와 힘이 있는 말입니다. 오늘 나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은 어떤 말인지 생각합니다. 욕망을 채우려는 말이었는지, 시기와 질투를 나타내는 말이었는지, 비난과 험담으로 공동체를 파괴하는 말이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나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생명을 살리고, 신뢰를 주고, 평화를 주고, 참된 진리를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예수님을 뛰어넘는 말과 행동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