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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 이제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그것은 지나지 않아 망각이 될 것이며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훨씬 많아져 손 안에 쥔 모래알 같이 쓸려 내려갈 것이다. 그렇지만 이즈음에서 기억을 꼽아보며 순위를 매기는 작업도 제법 의미있지 않을까. 내가 천착하는 미스터리 소설에 관해서라면.
올 한해도 최근 20년과 다를 바 없이 한국추리미스터리스릴러의 약진보다는 영미권의 강세가 기세를 잃지 않았고, 그에 비해 일본 추리소설의 약진이 근래 5년 간 가장 두드러진 한 해가 아니었나 사료된다.
됐고!(아, 황정음 흉내내 본 건데. 신드롬 같던 그녀의 인기도 이제 사그라져 간다.)
<지극히 개인적인 2010년 추리미스터리스릴러 베스트 10편>을 꼽아봤다.
지난 2009년 12월부터 올해 12월까지 나온 작품들로. 모든 작품을 대상에 놓았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읽어본 작품들 중에서만 꼽았다는 사실. 안 읽고 읽은 척 하는 것보다 그게 진실한 것 아닌가 싶으니까. 그러니까 올해 읽은 300편 정도의 작품 내에서만 작성되었고, 그런 연유로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기를.
10편을 정한 뒤에는 순위를 매기지 않았다. 그냥 한글 자음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아주시길.
1. 밀실살인게임.-우타노 쇼고.
밀실살인게임
사악한 소설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정점에 있었고.
개인적으로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와 비등한 소설이었기에 어느 것을 꼽을지도 망설여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밀실 3부작보다 이런 사악하며 새로운 우타노 쇼고의 작가적 기발함에 조금 더 점수를 얹었다. 그의 작품은 이제 버릴 것이 없는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 님 좀 짱인듯!
2. 블랑 망토 거리의 비밀.-장 프랑수아 파로.
블랑 망토 거리의 비밀
이 소설에 대한 선택은 조금 모험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프랑스 추리소설에 대한 갈증을 단번에 풀어준 작품이었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전의 위태로운 프랑스 분위기의 묘사는 무언가 줄을 타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특히나 팩션에서 요구되는 빈틈없는 역사적 사실의 서술에는 큰 점수를 받을만 한 작품이다. 반면 지나치게 사건의 얽개가 약하고 금세 머릿속에서 사건을 분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본격을 지향한 과장스러운 결말은 오히려 점수를 까먹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매력적인 형사 르 플록이 탄생되었으니까.
3. 사망추정시각.-사쿠 다쓰키.
사망 추정 시각
2에 이어 역시 모험적인 선택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충분히 재미있었던 작품이다. 실제 변호사인 사쿠 다쓰키는 그가 생각하는 형사소송에 관한 생각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멋지게 풀어냈다.
간단히 생각해 보라. 살인 용의자로 검거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유무죄를 떠나 검거되는 순간, 살인자로 취급하지 않던가.
사쿠 다쓰키의 다른 소설이 출간된다면 내게 "무조건 구입"이라는 기분좋은 필요조건을 만들어주었다.
4. 셜록키언을 위한 주석달린 셜록 홈즈2.- 코난 도일 외.
셜록 홈즈. 2
- 저자
- 아서 코난 도일 원작 지음
- 출판사
- 북폴리오 | 2009-12-10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셜록 홈즈 이야기 32편에 1,000개가 넘는 주석을 달았다! ...
솔직하게 말하자면 편파적인 선정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작품도 아니며, 셜록 홈즈 안 읽어 본 미스터리 독자가 어디 있던가. 아니 미스터리 독자가 아니더라도 셜록 홈즈를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그런데 그것에 주석을 달았다. 곧바로 이야기가 달라진다.
읽는 내내 감탄이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다. 이 생각뿐이었다. 비록 편파적이라 할지라도.
셜록 홈즈는 독자에게도, 작가에게도 로망이지 않던가. 그 로망에 한 걸음 다가서게 하는 작품이었다. 작품정보에서도 실 저자의 이름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데 주석을 단 사람은 변호사이자 셜록 홈즈 권위자인 레슬리 S. 슬링거이다.
5. 언더 더 돔.- 스티븐 킹.
언더 더 돔. 1
이 글에 평점을 넣지 않은 이유는 아직 1권밖에 읽지 못해서이다. 그런데 왜 선정을 했느냐고? 그만큼 대가의 필치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작품들보다 흡입력이 강하며 미국 자체를 축소시켜 놓은 듯한 돔 안에서의 고립된 사람들의 모습에 경악하게 된다.
말이 필요없다. 이런 소설은 그냥 읽어보면 된다.
6. 장르라고 부르면 대답함.-로렌스 블록 외.
장르라고 부르면 대답함
가장 의외의 선정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 / 로렌스 블록 *란크마르의 불운한 만남 / 프리츠 라이버 *노래하는 성채 / 마이클 무어콕 *최후의 신조 / 해리 터틀도브 *선택하지 않은 길 / 에릭G.이버슨>
위 해리 터틀보드는 에릭 이버슨의 다른 필명이다. 이상 네 작가의 다섯 작품이 실린 단편집이다. 스릴러, SF, (팩션과 성격이 다른) 대체역사소설 등 각 분야 대표작가들의 단편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도는 별 다섯 개를 충분히 넘길 수 있다.
흥분되고 또 흥분되는 단편집이다.
7.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미쓰다 신조.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도조 겐야 시리즈로, 일본추리소설의 한 지점을 당당히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교적 최근작이면서도 요코미조 세이시를 떠올리게 하고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과 전후 일본 추리잡지까지 포괄하는 등 심층적인 작가의 역량이 결말까지 이어지는 작품이다. 좀 더 덧붙이자면, 액자식 서술과 메타픽션적인 결말의 변주, 호러와 괴담까지 포용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 역시 작가의 역량이리라. 물론 서평에서 썼듯 비교적 재밌다, 라는 별 셋 이후의 반응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꼽는 미스터리 10안에 넣어도 부족하지 않은 작품이다.
8. 철서의 우리.-교코쿠 나츠히코.
철서의 우리(상)
교코쿠 나츠히고 식 서술의 완성을 처음으로 맛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기존 시리즈<우부메의 여름, 광골의 꿈, 망량의 상자>가 다분히 재미있다, 를 떠나 작가적 서술의 지루함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면 이 작품은 그것을 과감히 떨치고 읽어낼 수 있게 만든 작품이다. 캐릭터에 동화되어 한참을 웃기도 하고 일본 불교의 역사와 진실, 괴담의 미스터리적 서술에 잔뜩 긴장하게도 된다. 물론 실제 쥐가 나타나는 봉합 부분에서는 뭥미, 하게도 되지만.
450페이지에 이르는 작품이 상, 중, 하 세 권임에도 교코쿠 나츠히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전설과 괴담, 추리의 절묘한 조화에 탄식을 터뜨리게 된다.
9. 탄착점.-스티븐 헌터.
탄착점
스나이퍼와 음모론, 가장 미국적인 그러면서 세계 경영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식스릴러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냉전이 사라진 지금, 오히려 CIA는 적으로 묘사되고, 시골에서 세상을 등진 채 살고 있는 주인공이 슈퍼맨으로 등장하는 전형성이 아쉽기는 하지만.
영화 더블타겟의 원작이다. 소설을 읽고나면 십중팔구 더블타겟을 챙겨보게 될 것이다.
스티븐 헌터 식 마초이즘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악에게 때리고 부수며 한치 동정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하드보일드 식 비장미까지.
재밌다. 그러나 이 작품이 93년에 출간되었음에도 지금까지 출간되지 않았던 사실도 잊으면 안 될 듯. 책값 역시.
10. 허수아비.-마이클 코넬리.
허수아비
심지어 미국 스릴러의 종결자로 불리기도 하는 마이클 코넬리의 신작이다.
<시인>의 잔향 때문일까. 아니라면 해리 보슈 때문일까. 너무 많은 그림자를 가지고 왔다. 충분히 재미있고 잘 쓴 소설임에도 그 그림자를 헤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잭 매커보이와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 레이철 월링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어느 네티즌의 서평에서 읽은 것처럼 도대체 미국 네바다 사막에는 얼마나 많은 시체가 묻혔을까, 괜히 떠올려보게 한다.
<시인> 3부작의 완결편으로 불린다. 정말 뛰어난 크라임스릴러지만 시인보다는 못하다.
10작품을 골라내며 얼마나 많은 일본작품을 떨어뜨려야 하는지 아쉬웠다. 반면, 전통적 득세자였던 영미권 스릴러가 생각 외로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오리하라 이치의 <침묵의 교실>이나 <원죄자>를 떨어뜨려야 했던 데 반해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헝거게임>의 후속작인 <캣칭파이어>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반면 너무나 실망스러웠던 작품도 적지 않았다. 출판사에 해를 끼치는 것 같아 그 명단은 생략한다. 또 모르지, 어느분께서 2010년 최악의 추리미스터리스릴러를 꼽아달라고 할지. 그럼 좀 생각은 해보게 될 것 같다.
2011년에도 많은 작품들이 출간되고 또 이슈를 만들 것이다. 솔직히 거기에 숟가락 하나 얹고 싶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선정이다 보니 반발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고, 더 재미있는 작품도 있었는데 하실 분들도 있겠죠.
2011년, 추리미스터리스릴러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해묵고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복 대박 받으시라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첫댓글 올려 주신 책들을 다 읽어봐야할것 같은...^^
아... 이번 주말부터 한동안 발길을 하지 않았던 도서관으로 다시 고고씽 해야겠군요^^
어느순간부터 도서관 다니는것이 귀찮아 책을 읽는 것을 게을리 하였는데,
이 책들을 읽으려면 또 중독자처럼 휴가를 내고 도서관에 몇일씩 박혀서 읽어야겠네요^^
하이고, 이거. 신년 초부터 제가 엄청난 부담을 드린 것 같은데요. 이거 어쩐다?
으잌...올리신거중 한개도 읽은게 없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셜로키언을 위한...요건 서점에서 슬쩍봤는데 정말 방대하고 대단하더라구요...
아마 셜록키언은 천백페이지가 넘었던 거 같아요. 엄청나죠. 게다가 단편이 32편이나 들었으니까요.
저도 바로 도서관 갑니다. 도서관에 책은 많은데 막상 뭘 읽어야할지... 현재 손 놓고 있었는데 목표가 생긴듯 ....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해에 300권 이상.. 대단하십니다. 전 30권이나 제대로 읽었는지 반성 해봅니다.^^
저야 놀고 먹는 처지라 책을 읽은 거죠. 앗!
그냥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 작년에 세권 봤습니다.
재미삼아 꼽은 거니까요. 그저 즐기시면 될 듯. 저 중 세 권 읽으셨음 다른 책까지 합치면 굉장할 듯 한데요.
아니 저중에도 없고... 수험서에다가... 전기라고 써있기도 하고...
허수아비, 사망추정시각, 밀실살인게임 빙고! 많이 읽으셨네요. ^^ 덕분에 필이 팍팍!
어떤 필이 팍팍인지? 글 쓰시겠다는 필? 그거죠?
훔...읽은 책이 없군요...<탄착점>만 읽었군요. 요즘에는 자료로 읽을 책이 너무 많은 탓도 있고, 게으른 탓, 미드에 버닝하는 탓, 뭐 이런저런 이유가 복합된 듯 합니다. 올해는 좀 열심히 읽을 수 있을라나......요 ^^;;;
하~ 이룬. 댁은 독서의 본좌 아니시오? 책도 쌓아놓고 읽으시는 본좌께서리. 엄사룬...
아직 추리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저에겐 정말 유용한 정보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