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로베르토 베니니 (귀도 오르피체 역),
니콜레타 브라시 (도라 역),
조르조 칸타리니 (조슈아 오르피체 역),
줄거리
1930년대 말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삼촌이 계신 로마로 오던 중 운명의 여인 도라로(니콜레타 브라스키)를 만난다. 로마에 도착한 귀도는 삼촌의 호텔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또 다시 도라를 만난다. 도라는 귀도와의 여러 번의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귀도에게 끌린다. 도라는 공무원인 루돌프와 약혼한 상태였으나 결혼을 서두르는 루돌프를 버려둔 채 귀도와 결혼한다.
몇 년 후 그들에게 죠수아라는 귀여운 아들이 태어났고, 귀도는 바라던 대로 서점을 운영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죠슈아의 생일 파티를 위해 도라가 그녀의 어머니와 집에 돌아왔을때 집은 엉망인 채로 귀도와 죠슈아는 보이지 않는다.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 따라 귀도와 죠슈아 삼촌은 모두 수용소로 끌려갔다. 사랑하는 가족이 끌려가는 모습을 본 도라는 유태인이 아니지만 가족을 따라 수용소로 따라간다. 억압받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어린 아들 죠슈아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귀도는 '1000점을 얻으면 탱크를 상으로 받는다'는 거짓말로 죠슈아를 몰래 숨겨두고 보호한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귀도는 어린 죠슈아를 위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수용소 생활을 한다.
마침내 독일이 패하고 독일군이 그곳을 떠나기 전 유태인을 말살하려하는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1,000점을 제일 먼저 따는 사람이 1등상으로 진짜 탱크를 받게 되는거야..죠슈아..이제 1,000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마지막 숨바꼭질 게임에서 들키지만 않으면 우리가 1등이야. 절대 들키면 안돼.. 쉿! "
그리곤 잡혀가면서도 마치 게임중인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합니다.
죽음의 그늘이 목덜미를 잡아채고, 아빠는 질질끌려가면서도 아들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그렇게 최선을 다합니다.
나도 어려울 때마다,
불평이 목에까지 차서 하늘에도 사람에게도 투덜거리면서
늘 이 장면을 떠올립니다.
좀 더 여유있게, 따뜻하게 좀 감수를 하고 살다가 가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형편없고 상처를주는 사람이 될까? 하면서...
처음엔 괜찮아! 이러다가도 쉽게 상황이 바뀌지 않고 슬슬 지쳐가면 영락없이
불평과 짜증을 냅니다.
잔뜩 비관적인 말을 늘어 놓으면서 아픈 사람이나 병원 탓을 합니다.
'당신도 조금만 더 견디면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되어 툭툭털고 일어나는거야!
이제 거의 끝에 왔어, 원래 극적인 반전은 다 마지막이 힘든거잖아! "
뭐 이런 말도 좀 하면서 끝까지 갔으면 좋겠는데...
끝까지 가면 무엇이 있을까요?
'끝'이 있습니다.
모든 것들의 끝이 무엇일까요?
정답은 '죽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죽음으로 절차를 건너야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로 존재합니다.
끝까지 가서 죽음을 건너
더 이상 변치 않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전 미분보다 통찰을 좋아합니다.
사는게 때론 많이 힘들어
어느 때는 내일도 생각하는게 벅찼던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난 오늘 밖에 없다! 내일은 내일의 것!이라고 주문을 외우며 버텼지요.
그런데 다시 오늘 하루도 길어서,
24시간이 48시간 같고, 장자의 꿈 같이 일생같아서
하루도 길다! 두 시간씩만 생각하자! 그러고도 지내보았지요.
'.....'
그러나 고통보다 더한 불안의 심리는 그것도 길다 하니
미분으로는 답이 안나옵디다.
그럼 이제 산 것과 죽은 것의 경계를 치우고 보자!
몸으로 가는 여행과 몸 없이 가는 세계가 다 합해서 하나인데
이까짖 무겁기만 한 껍데기 벗는 날부터는 바람처럼 훨훨 날아다니자!
그날부터는 여행이 더 신나겠구나!
그렇게 피하는 날에서 기다리는 날로 바뀌었습니다.
미분보다 통찰은 확실히 몸보다 정신의 편입니다.
서양보다 동양의 편이고,
현미경보다는 산꼭대기 동굴과 너른 하늘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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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때는 바보가 되어도 고통을 못느끼는 사람이 더 행복한게 아닐까? 하고
진짜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 바보 맞지요? ^^;
서울을 가끔 가는 고속도로 위 ..작은 내차를 타고 가면서 많은 차를 봅니다
화물차 컨테이너를 얹고 힘들게 가는차 눈부신 외제차 서민들의 전세얻을수있는 돈보다 더 비싼차...
출발선상에서 목적지
우리가 태어나 목적지는 역시 누구에게나 공평한 죽음
다만 가는 중 누군 외제차 누군 트럭 누군 자전거 ..그런거지 하며 혼자 생각든적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더 ...그러다 보면 옷벗어내듯 육신을 버리고 가벼울 날이 닥아오겠지요?
그래요. 저도 동의합니다.
세상은 공평해서 올때는 천차만별, 제각각 다르게 태어나기도 하지만
죽음은 공평하고 죽음 이후는 더욱 공평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희망으로님은 그 힘겨운 삶속에서 잃는것도 많겠지만 삶을 바라보고 깊은 고통을 통한 성찰 속에서 남다른 특별한 은총을 받은 분이라는 것을...공평하신 그분은 희망으로님의 글을 통해서 당신 자녀들에게 삶의 한면을 통감케 하시는 것을....이렇게 말하면 죄송하기도 하고.. 님은 다른 말을 하시겠지만 제 느낌이 그렇하다는 것이니,개이치 마십시요.참으로 깊이있는 글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랍니다.저도 그 영화를 보면서 그 부자가 겪는 상황보다는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사랑에 눈물흘렸습니다.때때로 우리들도 자식 앞에서 그 아버지같은 몸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좋은.글 잘 읽고 감사합니다.
비치 세실리아 선배님!
뭐 이렇게 좋으신 격려를 해주십니까.
그냥 징징거리지 말고 참다보면 좋은일도 올거다! 그러고 마시지~~
그래도 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든 제게 참을수 있는 동기와 명분을 주시려 늘 자상하게 대해주셔서!
이 영화는 실화인가요? 불가능한 이야기같아서요. 실화가 아니라면, 너무 무리한 이야기를 만든 것 같아서, 보기가 불편하던데요....실화라 하더라도 너무 현실과 동 떨어진 이야기같기도 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믿기도, 따르기는 더욱 힘든 이야기지만
세상엔 정말 이보다 더한 눈물겨운 가족사랑도 많이 있습니다.
산것과죽은것의경계란`죽음에직면해본사람만이말할수있는것이겠지요그리고그경계에서희망을보셨다면그것이은총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