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 있는 친구가 새벽같이 전화를 했다.
"대통령 말씀은 골프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대답 대신 퉁을 좋다.
"왜 나한테 물어? 자네가 더 잘 알지."
딴은 미안했다.
대통령 말씀이 좀 모호했으니까.
그제 장관들과 차를 마시며 나온 얘기다.
문체부 장관이 "정부가 골프를 못 하게 하는 것처럼 돼 있다."고 하자
대통령은 "그게 아닌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걸로 골프 금지령이 풀렸다고 신문이 났지만 친구는 긴가민가했던 모양이다.
1960년대 북에서 무장공비가 내려왔다.
군 장성이 대간첩 작전 지역 골프장에 나갔다가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89년 YS는 JP와 골프를 하다 기자들 앞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날 골프로 '3당 합당'은 이끌어냈지만 93년 대통령이 된 뒤 공직자 골프를 막았다.
청와대 음식도 서민풍 칼국수로 했다.
한때 그는 "골프는 너무 재미있는 게 단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임 중에는골프 때문에 공무원 여럿이 물러났다.
대개 대통령은 자기가 골프를 하든 안 하든 초기에 골프 금지로 군기를 잡다 중반부터 슬그머니 풀어줬다.
공무원은 엎드린 척하면서 '몰래 골프'를 즐겼다.
'싱글 핸디캐퍼'를 뜻하는 '이신걸', 를 본뜬 '박효림'같은 가명을 썼다.
햇빛 가리개로 얼굴도 숨겼다.
감찰반이 암행어사처럼 나타나 클럽 주차장부터 뒤졌다.
공무원은 사촌 차를 빌리거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를 바꿔 탔다.
'007골프'라고들 했다.
골프장 만들면 제초제와 비료 때문에 땅이 썩는다고 아우성이었다.
좁은 땅에 무슨 골프장이 황금알 낳는 거위라도 되는 양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이제는 손님이 들지 않아 비명을 지른다.
그린피를 절반 가까이 깎아주는 곳도 많다.
작년엔 20% 넘게 매출이 내려 간 클럽이 숱하다.
봄.가을 황금 시즌에도 할인 경쟁이 뜨겁다.
수도권에 5만원짜리 그린피까지 나왔다.
대통령은 어떻게든 경제에 숨통을 틔우려고 골프 활성화를 말했을 것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공직자 금품 수수를 폭넓게 제한하는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구태여 공직자들 골프를 묶고 풀 일도 없게 된다.
젊은이들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골프를 기피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지금처럼 그린피가 계속 하락하면 나중에는 골프에 무슨 세금이 이리 많이 붙는가
하며 골퍼들이 집단 반발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골프가 스포츠 아닌 '해금령' 깉은 것으로 화제가 되는 날은 언제 끝날까.
김광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