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제2수용소인 정문에서 계속하여 철로 따라 걸어가면 갑자기 열차노선이 뚝 끊긴 철로가 끝나는 지점 우측 부분, 제2수용소 가스실 부근에 세워져 있는 희생자 국제 추모비(1241,1242,1239,)가 있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매년 1월 27일 이곳에서 추모행사를 갖는다.
- 독일어 비문(1244) 내용은 '이 장소는 인류에게 향한 영원한 절망과 경고의 절규일 것이다. 이곳에서 나치는 150만의 남자, 여자, 아이들을 학살했다. 그들의 다수는 유럽 각지 출신의 유대인 이었다‘ 이라고 합니다.
붉은 벽돌로 둥굴게 만든 대형 물탱크를 지나 약100m 안쪽으로 들어가면 당시노동자로 분류된 사람(약 25%) 집합장소인 건물과 그 실내에는 그 당시의 큰 수용실과 수용자들이 입고 왔던 옷 , 신발, 당시 수용자들이 소지하였던 수많은 가족 인물사진 등 유물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일 할 때 사용했던 세탁기(1263)도 있었고, 또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생체실험실도 있었다.
↑당시노동자로 분류된사람(약 25%) 집합장소인 위치 및 건물과 그 실내↓
↓수용자들이 입고 왔던 옷,신발 소지하였던 수많은 가족 인물사진 등과 그들이 일 할 때 사용했던 세탁기↓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당시 생체실험실↑
1947년,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건물과 장소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국립 박물관으로 만들어 진 후, 아우슈비츠는 1979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런 비극의 현장이 세계의 문화유산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슬픈 일이지만 유산으로서의 가치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해마다 수십만 명이 다녀가는, 이곳을 찾는 한국인만 해도 매년 만 명에 이른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관람하며 곳곳에서 마주친 많은 관람객의 얼굴과 눈빛들은 당연한 것이지만 대부분 말을 잃은 굳은 모습이었다.
여행지로 이곳을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가급적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그리고 이런 슬픈 세계문화유산이 지구 땅 어디에도 다시 생겨서는 안 된다는 그 마음을 우리 모두가 늘 간직하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우울한 기분으로 11:10분에 관람을 모두 마치고 주차장으로 되 돌아와 전용버스를 타고 약 15분 주행하여 인근 소도시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고 체리꽃과 그 향기로 기분 전환 후 12:15분에 다음 여행지인 체코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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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와 체코로 연결된 왕복 4차선과 6차선고속도로 약 2시간 못 미치게 시원스럽게 달리다보니 어느덧 알 수 없는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곳,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선을 넘어 노란 유채꽃이 이제 막 피어나는 들녘이 펼쳐진 체코 땅으로 14:00에 들어섰다.
오늘의 목적지인 체코의 수도 ‘프라하’까지는 버스로 아직 약 5시간은 더 가야한단다. 달리는 고속도로 양옆의 들녘에는 보이는 것이 대부분 넓은 초지이거나 유채 밭이고 구릉지나 밭둑 또는 마을 어귀에는 하얀 체리나무의 꽃이 시원스럽고 아름답게 보인다.
또한 이번 동유럽을 버스로 여행하면서 도로변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약초인 ‘겨우살이’(*약효:강장,진통,안태/安胎 등의 효능이 있고 혈압을 낮추어 준다. 적용질환은 신경통, 관절통, 풍습으로 인한 통증, 고혈압, 태동/胎動이 불안한 상태, 월경이 멈추지 않은 증세 등임)로 참나무, 밤나무, 오리나무 등의 키 큰 나무의 가지에 덩어리로 붙어 기생하여 사는 사철 푸른 잎을 가지는 마치 까치둥지처럼 둥글게 자라는 키 작은 식물이다.
체코에 입국 후 약 2시간을 전용관광버스로 달려 오다보니 중소도시인 듯 고층아파트지구가 보이고 그 앞 과수원에는 종이봉지를 씌운 어린 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 우리 농촌을 보는 듯하다.
↑폴란드 땅에서, ↓체코의 땅으로 들어서다.
↑들녘에는 유채꽃이 그득하고...↓
↑↑↑초지에는 초원이 그득하고...↓↓↓
↑↑들녘에는 채리꽃이 그득하고...↓↓
↑체코 어느 마을의 나무에 달린 '겨우살이'가 주렁 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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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 변두리 어느마을에서..(561)↑//↓헝가리 부다페스트 도나우강 인근마을에서..(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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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어귀 작은 배과수원엔 배꽃이 하얗고~, 대형 배과수원에는 난장이 배나무가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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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우리 일행은 약 3시간 즉,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떠나 약 7시간 전용관광버스를 타고 달려 온 결과 체코의 수도이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프라하’ 시내로 들어서게 되었다.
.......<잠깐! 여기서 체코 국가 개략사를 살펴보면----,>...........................................................
<체코>
체코의 국토는 7만 8,864㎢, 인구는 약 1,065만 명(*출처: CIA The World Factbook 2014.07.), 수도는 ‘바르샤바’이다.
5세기 무렵 이 땅에 슬라브인이 정착하면서 시작된다. 830년경 모라비아 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된 모라비아 왕국은 지금의 체코ㆍ슬로바키아ㆍ폴란드 동부를 포함하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하지만 906년 아시아계 기마민족인 마자르족의 침략으로 슬로바키아를 뺏기고 만다.
이후 10세기 초부터 400여년의 걸쳐 보헤미아의 프쉐미슬루가의 통치가 시작된다. 프쉐미슬루가는 독일의 오토 대제의 지원을 받아 마자르족을몰아내고 프라하를 중심으로 다시 독자적인 보헤미아 왕국을 세운다.
하지만 1307년 바츨라프 3세의 서거로 보헤미아 왕조는 단절되고 독일계 룩샘부르크 왕조의 지배가 시작된다. 2346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뽑힌 카를 4세는 체코를 눈부시게 발전시켜 유럽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한다. 이 무렵 종교개혁을 주장한 얀 후스가 활동하기도 했다.
15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오스만투르크의 침략을 계기로 1918년까지 300여년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는 암흑기가 시작된다. 다행히 제1차 세계대전 때 합스부르크 왕가가 붕괴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도 독립의 햇살이 비친다. 그러나 불과 20여년이 지난 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다시 독일의 통치를 받다가 구소련에 의해 독립을 되찾으면서 1946년 사회주의 국가가 된다. 이후 사회주의체제를 거부하고 자유주의 체제를 갈망하는 시민운동이 거세계 일어난다. 1968년 1월부터 시작된 ‘프라하의 봄’, 1988년 구소련의 개혁열풍, 1989년의 베를린 장벽붕괴 등을 계기로 1990년 6월 민주정부인 체코슬로바키아연방공화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국민투표를 통해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2개 나라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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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 백탑의 도시, 북쪽의 로마, 유럽의 음악학원 등 프라하를 뜻하는 색색의 별명은 이곳이 유럽 문화의 중심지이자 유럽인의 사랑을 듬뿍 받던 아름다운 도시임을 짐작하게 한다. 더군다나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답게 중세의 기풍이 이곳저곳에 서려 있어 영화, 광고 촬영지로 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프라하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갖가지 양식의 건물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때문에 1989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해마다 1억 명의 관광객이 프라하를 찾고 있단다. 이런 면에서 세계 6대 관광도시의 하나로 뽑히는 프라하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그 이면에는 비극의 역사를 품고 있다. 15세기에 종교전쟁인 후스전쟁, 30년 전쟁, 제1ㆍ2차 세계대전, 1968년 프라하의 봄, 구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대의 침입, 그리고 1989년 체코ㆍ슬로바키아로 국가가 양분된 벨벳혁명의 이르기 까지 온갖 고난과 수난을 겪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시내풍경을 우선, 천문 탑 인근에 있다는 식당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창밖을 통하여 윈도우 쇼핑을 바쁘게 이리저리 하다 보니 .....
빌딩숲속의 어느 지하 식당 앞에 도착, 하차하여 저녁 식후에 계획된 시내 관광을 위하여 안으로 들어가서 속전속결 현지식으로 약 30분 만에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나와 PM 8:10분에 날씨는 비를 머금은 듯 먹구름이 짙어지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가운데 프라하 관광길에 나섰다.↓↓
※여행기 <---(12)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