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 지리산 종주를 끝내고 왔는데,‘우리詩’8월호가 와 있다. ‘권두 시론’은 이대의의 ‘문예지와 문학상에 색깔이 없다’, ‘이달의『우리詩』’는 김석규 ‘파도’, 유자효 ‘주머니 속의 여자’ , 조정권 ‘무향리 마을’, 이승하 ‘이 세상 모든 태어나지 않은 태아를 위하여’, 김두환 ‘먹을알 비록 적지만 ’, 김영호 ‘눈 호수산’, 서규정 ‘저 바람 한번 만져 보려고’, 송문헌 ‘자병산아 머리 잘린 자병산아’, 신현락 ‘은유의 다리’, 임동윤 ‘맨발나무’, 박부민 ‘생선의 중앙’, 황원교 ‘봉숭아 꽃씨를 받으며’, 김지헌 ‘고양이 엄마’, 고성만 ‘내 손금에 내리는 비’, 김종태 ‘드라이아이스’, 이병금‘눈물광합성’, 한소운 ‘나무마을’, 남유정 ‘그늘’등외 각 1편씩을 실었다.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는 성민희의 ‘겨울보리, 그 건강한 생명력’, 이동훈 ‘내 마음의 인사동’, 연재되고 있던‘알기 쉬운 詩창작 교실’은 18회이자 최종회인 임보의 ‘당신도 좋은 詩를 쓸 수 있다’, ‘신작 소시집’은 박해림의 ‘한해살이 외 5편’, 신작소시집 해설은 전기철의 ‘울퉁불퉁한 시간 속의 자아’가 나왔다.
‘2000년대 등단시인 신작 특집’은 박원혜 이영식 김길애 김선호 권순자 권현수 한수재 고명자 김경성 최윤경 이성웅 전건호 이재부 임윤 최혜리 하명환 이수미 이현채 임미리 임형신 조길성 조유리 황연진 김선미 이현서 한보경 한성희 김설진의 시 각각 2편씩을, ‘우리詩문학상 신인상 상반기 당선작’은 박승출의 ‘잔혹한 일상’외 4편, 한문수의 ‘폭탄’외 4편이 뽑혔고, 이어 우리詩문학상 신인상 심사평을 실었다 ‘우리詩가 선정한 좋은 詩 읽기(연재 40회)’ 나병춘이 추천한 ‘오탁번·이생진·박남준·공광규·문태준·손택수의 시가, ’한시 읽기‘는 진경환의 ’거꾸로 엮어 짓는 멋‘을, .영미시 산책’은 백정국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를, 우리詩 월평은 김현정의 ‘연민의 시선, 따뜻한 세상으로 가는 길’로 김순일·이은봉·나태주·유순예·박지우·오세영‘의 시를 평했다. 그 중 5편을 뽑아 연꽃과 같이 올린다.
♧ 별을 보며 -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버렵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었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활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 눈 호수산 - 김영호 나무들의 손을 잡고 땀 흘려 오른 산 정상 밑에 수정처럼 맑은 호수 설화 같은 조선의 누님 모습 나의 몸을 뜨겁게 포옹하고 입을 맞추어 주었네. 고향의 누님 호수 나의 옷을 다 벗기고 그녀의 물로 파랗게 물을 들이고 그녀 가슴에서 수초를 뜯어 내 가슴에 심어주었네. 고국의 어머니 호수 내 영혼의 옷을 벗겨 당신의 젖을 물리고 당신의 처녀물꽃을 내 이마위에 씌워주셨네.
젊은 때의 첫 애인 호수 내 우울의 옷을 벗기고 그녀의 첫 피꽃 같은 산꽃을 입혀주고 흰 구름침대위에 함께 누워 주었네. 우주의 누님 호수 그 속에서 내가 신생아로 다시 태어나 하늘을 찬미하는 새들의 날개위에 업혔네. 내가 우주의 몸 안에서 아이가 되고 우주가 내 몸 안에서 아이가 되어 함께 노래를 했네. 나의 멜랑콜리가 산을 넘어 도망쳤네.
♧ 내 손금에 내리는 비 - 고성만 아홉 살 적 이사 간다고 탱자 울타리 아래 앉아 소중히 모았던 구슬과 딱지를 건네주던 친구 은사시나무 숲속 첫 입술의 감촉 전해주고 떠난 애인 지금은 어디 살고 있는지 산비알 묵정밭 일구어 토장 넣어 끓인 쑥국 좁쌀 싸라기 늘그르미 쑨 죽에 참기름 동동 띄워 돗나물 곰밤부리 나물 무쳐 허위허위 먹고 싶어 어떤 날엔 덩굴장미 휘늘어진 도시의 가로를 지나다가 뿌옇게 송화 가루 몰려오는 고갯길 바라보면
종일 뻐꾸기 울어 전생에 나는 떠돌이였는지 몰라 깨진 유리처럼 사방으로 뻗어간 금을 따라 감잎 필 때 못자리 밤꽃 필 때 모내기 접시꽃 핀다고 장마진다고 개구리 소리 자글자글 몰려오는 밤 주먹을 쥐어본다 자욱, 안개비 내린다
♧ 달의 궤적 - 김경성 지붕을 뚫고 뛰어든 달 조각 뒹구는 선사시대 움집이 있었던 자리에 집 한 채 지었다 그리운 마음 새지 않게 지붕의 숨구멍 촘촘하다 제 몸을 굴리거나 부딪쳐서 한꺼번에 피었다가 숭어리 째 지고 마는 파도처럼 가슴 안쪽 통증이 인다 풀꽃 피어 있는 탑의 하대석 틈새, 달에 눌린 자국 깊다 오래된 탑이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은 탑의 가장 높은 찰주 끝에 달빛이 걸렸거나 우리가 읽을 수 없는 시간의 그림자를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도 나처럼 달을 품고 산다, 달의 모서리에 다친 적 있다 무언가 내려앉았던 자리는 언제나 깊다 움집에 묻어두었던 빗살무늬토기 밥물 넘쳐난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길은 이미 지워졌다 모서리 진 달 조각 깎아내며 달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 잔혹한 일상 - 박승출 전생에 나는 길 위를 떠도는 자가 아니었을까. 모서리 반듯하게 정돈 된 삶보다 정처 없이 흐트러진 일상에 더 마음이 가니 아마 나는 전생에 길 위에서 죽은 얼굴 환한 귀신이 아니었을까. 단 한 번도 똑 같은 길 위를 걸어가 본 적이 없는 바람에 날리는 바람처럼 가벼운 무게를 갖고 태어난 영혼이 아니었을까. 길 위에 서면 더없이 평온하게 밀려오는 탁 트인 숨결, 태양을 삼키며 등지며 붉은 노을을 향해 영원을 걷는 사막 의 캐러밴은 아니었을까. 죽어 은하수 너머 아예 먼먼 밤하늘로 날아가 박혀 우주를 돌며 자유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자들의 쉼 없는 이정표가 된 푸른 별자리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어제 갔던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이제 시큰둥한 가로수들은 나를 보고 도 더는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돌아서 가도 거리의 모퉁이들은 더 이 상 비밀스런 궁금증을 품지 않고, 늘어나는 내 몸무게를 쉽게 감지하는 보도블록들의 딱딱한 오와 열이 현기증을 일으킨다. 누군가가 땅바닥에 떨어뜨린 책이 바람에 같은 페이지를 미친 듯이 계속 펄럭이고 있는 거 리, 느끼는 시선도 없이 상가 유리창 안에서는 어제의 드라마가 홀로 재방영된다. 왕성한 식욕으로 길을 먹고 길을 뱉어내는 사거리는 언제 나 체증으로 막혀 있고, 오늘도 어제처럼 허락 없이는 건널 수 없는 횡 단보도, 나는 포로처럼 서서 단지 두 마디의 말로만 깜빡이는 푸르고 붉은 신호등의 무뚝뚝한 점멸을 무작정 기다린다. 어제 갔던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나와 똑같이 생긴 이상한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무덤덤한 이상한 표정으로 말도 없이 나와 눈빛을 주고받는 숨 막히게 잠잠한 이 일상을 훌러덩 말아 먹고 싶다 후생에서 내 전생은 이제 비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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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