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행복한 교회는..
글쓴이/봉민근
어려서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2남 2녀가 방 한 칸에 이불 하나를 펴고 한쪽으로 3명씩 잠을 자야 하는 가난한 가정이었다. 저녁이 되면 호롱불 밑에서 어머니는 늘상 가족들의 옷을 꿰매는 일을 하시고 온 가족은 내복을 벗어서 이와 벼룩을 잡는 일을 하였다. 가난해도 너무나 가난했던 보릿고개 시절이었다. 아침은 꽁보리밥에 한두 가지 반찬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한 그릇 남겨두신 밥을 물을 많이 부어 끓여서 우리 가족 여섯 그릇의 누룽지 밥을 만들어 먹었다. 점심도 거르신 어머니가 저녁에 밥맛이 없다고 잡수시지를 않는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저녁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으신 것이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책 가방이 없어서 보자기에 책을 싸가지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지만 늘 즐겁게 생활했다.
요즈음은 먹을 것이 넘쳐서 시골에서 부모님이 보내주는 쌀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내다 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배가 불러서 칼로리를 계산하며 먹는 시대이지만 내가 어릴 적 그 시절 보다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적다. 교회에 의자가 있는 교회를 찾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 더 편하던 시절 교회마다 열심이 대단하여 철야 기도 안 하면 일주일을 잘못 산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교회 의자가 너무나 좋아 앉으면 졸음이 올 지경이다.
편한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요즈음 웬만한 물건은 싫증이 나면 버리고 새로이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버린 것을 주어다가 생활에 요긴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버린 옷만 주어다 수선하여 먹고사는 사람도 있다. 내가 어릴 적에 바지를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떨어져 기운 자국이 원래 천보다 더 많은 그야말로 입고 각설이 타령을 해도 좋은 모양새를 하고 다녀도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이가 없었다.
농사일을 할 때면 이웃을 불러다 같이 나누어 먹고 가을엔 떡을 만들어 온 동네에 돌리고 나면 남는 게 없지만 곧 다른 이웃도 떡을 만들어 가져오면 다시 떡 한시루가 될 정도였다. 오늘날 부자로 호화 호식하는 자들이 그 옛날 부자와 나사로에 나오는 부자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잘 살면서도 이웃과 나누려 하지 않는다.
자기밖에 모르는 현대의 신 부자와 나사로가 오늘날 교회에도 그리스도인 중에도 넘쳐난다. 가난한 것을 돌아 보는 것이 주님의 뜻일진대 부자 교회는 매주 간식 먹고 남아돌지만 가난한 교회는 가난해도 너무나 가난하다. 빈부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그러나 부자 교회들은 가난한 나사로 교회를 돌아 보지 않는다,
주님의 뜻을 말하면서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교회가 현대 교회들이다. 대기업을 방불케 하는 대 교회들은 작은 미자립교회가 열심히 전도해 놓으면 성도들을 흡수하고도 자신들이 열심히 해서 복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은 주님과 같이 큰 교회에서 쫓겨나 거처할 곳을 잃어 120만의 가나안 신자들이 이 땅에서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지만 그것 때문에 눈물 흘리는 교회는 없다.
성도들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 줄 교회 어디 없는가? 오직 맘몬 주의에 물들고 교회를 기업 성장하듯 생각하는 바벨탑과 같은 교회에서 탈출할 출구는 없는 것일까? 큰 교회, 돈 많은 부자 교회 다녀도 행복을 느끼지 못함은 무엇일까? 내가 어렸을 때에 굶어도 행복했던 것처럼 포근한 교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