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난들은 참고 견디면 지나가기도 한다. 있잖아 "결국엔 지나가고 만다"는 말. ( 이말은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혹 힘이 빠지는 말이 될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일이 반듯이 있다. 지금 내가 그렇다. 내 입속은 총체적인 난관을 격고 있다. 어제는 어금니를 때우고 스켈링을 했다. 요금 교산하는 분이 말하길 계속 미루기만 하지말고 건강이 허락할때 다 정리하고 틀리를 해야할 결정을 하라는 말을 했다. 거기까지에 이른것이다. 왼쪽 웃이는 손도 대지 못했다. 명절 끝나고 보잖다.명절중에는 혹 출혈이라도 있으면 응급실엘 갈수도 있는데, 요즈음 상황은 응급실에 가고싶다고 갈수 있는것도 아니라는 말도 했다. 낙담에 낙담을 더하는 말이었다. 나는 나름 뽑을 것을 뽑고 끼울것은 끼우고 명절을 맞으면 좋지 않을가 싶어서 서둘러 간것인데,,,나름 치과엘 다녔고, 양치질도 했는데, 왼쪽은 옷니가 오른쪽은 아랫니가 엉망이다. 물론 반대편도 멀쩡한 것은 아니다. 잇빨이 온통 흔들린다는 진단을 받은지가 20년도 넘지 않을까 싶다. 몸 전체중에 돈을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는게 잇빨이기도 하다. 먹는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더구나 늙어서는 먹는 즐거움이 어딘가. 그런데 잇빨이 불편하다는 것은 썩 좋은일이 아니다. 짜증이 났다. 전부 싹 뽑아버려? 문제는 내 희망수명이 지났다는 것과 100세 시대라는 격차다. 하루를 살더라도 편하게 살아야지 행복하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이 불편에서 벗어나 자유롭다면 비용을 지불할 결단이 있어야 겠는데, 누가 틀니가 행복 시작이라고 했어? 그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니 말고는 어느것도 생각만끔 편한것은 아니라고 알고있다. 와, 그럼 어떻하지? 결국 나는 내 남은 수명이 얼마쯤인지 알수없다는 이유와 희망수명이 지났다는 생각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며 살지 않을까. 이러다가 우울증 오는것 아니야 싶다. 2시간 동안엔 물도 먹지 말라는 말에 점심을 굶게 되었다. 나는 굶은게 힘들다. 배가 곺으면 잠을 잘수도 없다. 다행히 점심이어서 견딜만 했다. 머리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들끓고 있다. 이대로는 괜찮지가 않다. 이런 작은 일도 선뜻 결정못하는데 선택이라고?
간밤에도 꿈이 많았다. 아름다운 빛갈의 천으로 옷을 짓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는데 쉬는 시간이라도 된듯 빈자리가 있어서 남의 자리에 앉아 제봉틀을 돌려 보았다. 그러다가 실이 뭉처서 끊어졌다. 순간 당황했지만 감독하는 분이 잔소리를 하지는 않았고 다행히 수습도 되었다. 사실 내게 주어진 천들보다 훨씬 부드럽고 고급지고 아름다워서 꿈속에서도 부려웠을까 만저보고 싶었던 것이다. 또 있었다. 어딘지 모르겠는데, 줄을 많이들 섰다. 번호가 있는듯 했는데, 나는 내 번호를 확실히 모르는듯 했고, 누군가의 친절로 맨 뒷쪽에, 아니 세로운 줄을 만들어서 서게되었다. 뭔지, 왜인지는 몰라도 늦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늦어진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헨드폰으로 전화를 하려는데 통화를 할수가 없었다. 화면이 이상한 것도 같았고, 번호를 기억 못하는 것도 같았고, 난감한 상황에서 꿈은 빗겨갔다. 꿈은 꿈이다. 그럼에도 깨어나서 홀가분 할때가 있는가 하면 뭔가 찜찜해 질때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 꿈에서라도 좀 느긋하거나 진중해지면 좋겠는데 그도 아닌것을 보면 사람이 철들기란 어려운 것인가 보다.
한낮의 햇볕은 뜨거웠다. 큰아이 생활복을 찾아서 학교 주변을 돌아보았다. 혹 문구점에서 구매할수도 있다는 언질을 들어서다. 그런데, 이해할수가 없는게, 학교 주변에 문구점이 없었다. 당연히 문구점이 있음직한 장소에는 편의점이 있었고, 커피숍이 있었고, 학습소가 있었다. 문구점은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세상을 살고있다. 또 많은게 미장원이고 교회고 커피 무인점포였다. 이게 우리 현실모습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게 아닐까? 결국엔 하나님이 답이라는 말이 맞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