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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다시금 일상생활로 돌아갈 순간입니다!
피정이 들어올 때, 제 하루 마지막 일과는 보일러실에 들러 난방 상황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나긴 하루를 마치고 수도원으로 올라오면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세상에! 별이란 별들이 총집합해있습니다.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며 인생무상함을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크고 위대하심 앞에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아무리 난다 긴다, 잘난체하지만, 티끌이요 먼지인 것을...동방 박사 세 사람도 밤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박사들은 탄생하실 구세주의 별을 목격한 후, 즉시 그 멀고도 오랜 여행길을 시작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세 명의 이름은 멜키오르, 가스파르, 발타사르입니다.
당시 동방이라는 지역은 페르시아나 아라비아로 추정됩니다. 그들의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과거 박사란 칭호는 가방끈이 긴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넓게 적용되었는데, 아마도 별자리 연구를 통해 미래의 일을 예언하던 천문학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박사들의 시선은 온통 주님의 별을 향했습니다. 낮에는 휴식을, 밤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기약 없는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유다 지방에 이르러서는 구세주의 별빛이 사라지는 난감한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박사들은 예루살렘 성읍으로 들어와서 공개적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본인 말고 또 다른 임금이 유다 땅에 태어났다는 말에 헤로데 임금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겠지요. 겉으로는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경쟁자를 신속히 해치울 계략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박사들은 진리의 빛이자 생명의 빛이신 메시아를 뵙고 경배드리기 위해 오랜 나날의 수고와 갖은 위험을 감수했던 참된 순례자였습니다. 탄생하신 예수님을 경배하고 난 후 박사들이 봉헌한 선물도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진정한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는 유향과 구세주의 희생을 상징하는 몰약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박사들이 바친 봉헌의 결과로 되돌려받은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토록 뵙고 싶어 했던 아기 예수님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뵈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풀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경배했습니다. 멀리서부터 가져온 선물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제 성탄의 기쁨을 우리 마음 깊이 간직하고, 또다시 골고타 언덕이란 신앙의 정점을 향해,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란 우리 인생의 최종의미를 향해 먼 길을 떠날 순간입니다. 언제까지나 구유 앞에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다시금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 공현은 우리에게 또 다른 떠남을 요구합니다.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앙증맞은 작은 두 손을 벌리고 우리의 선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세주 하느님께 드릴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지닌 것 가운데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황금)을 바칩시다. 매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외치며 내 의지를 접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유향)합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매일 직면하고 견뎌내야 하는 고통(몰약)을 기쁘게 견뎌냅시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현대의 현명한 동방박사들>
복음: 마태오 2,1-12
오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찾던 사람들일까요? 일단 ‘행복’을 찾았던 이들임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결정은 행복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던 때는 언제일까요? 친구들이 생겼을 때일 것입니다. 혼자 가는 길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가면 좋은 친구들이 생깁니다. 내 주위에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좋은 목적지로 가는 것입니다.
워런 버핏은 인생에서 성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많은 재산이 성공이 아닙니다. 돈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 때 그게 성공입니다. 사랑받는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가 잘 형성되고 있다면 아기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서 폰 트랩 대령은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장군이고 아이가 일곱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죽어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습니다. 폰 트랩 대령은 아이들에게 제복을 입히고 호루라기로 명령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지만, 아버지는 한 명의 군인 상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행복이 없습니다.
이때 가정교사로 마리아가 들어옵니다. 마리아는 고아로 자랐습니다. 마리아는 수련 수녀입니다. 워낙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서 수녀원에서 쫓겨나 폰 트랩 대령의 자녀들을 돌보는 일로 파견을 받은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칩니다. 이것은 폰 트랩 대령의 가정에서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로워지면 감당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폰 트랩 대령은 마리아를 쫓아냅니다. 그리고 귀부인 한 명과 재혼하려 합니다. 그러자 가족은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마리아는 수녀원에 다시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한 번 느낀 자유와 행복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노래로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수녀원에 가 마리아를 찾습니다. 마리아는 다시 대령의 집에 돌아옵니다. 대령은 마리아가 없는 집에서는 행복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대령은 말합니다.
“당신이 이 집에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자녀들과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귀부인과 헤어지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마리아는 엄격한 군인인 폰 트랩을 자상한 남편이요 아내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장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집과 재산을 포기하고 마리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스트리아를 탈출합니다.
폰 트랩과 아이들은 참 행복을 찾는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저도 대학생 때 주일학교 교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아이들은 아기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면서 많은 시간을 희생해야 했지만, 아이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만나는 교사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성당의 모든 공동체는 이러한 동방박사들이 가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게 하지 않는 대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돈과 교만과 육욕을 봉헌하게 하는 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 영화 ‘친구’도 있습니다. 시골 친구들이 어떤 아이들은 조직 폭력배가 되고 어떤 아이는 공부를 잘해 유학도 다녀옵니다. 조금이라도 착해지려는 친구는 착한 친구와 사귀고,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 친구는 친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영화입니다.
사람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세속-육신-마귀입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해야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있다고 친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감동의 운동회’를 생각해보십시오. 아이들은 키가 작아서 달리기를 못 하는 친구들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서 꼴찌를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황금은 재산이고 유향은 기도이고 몰약은 육체의 절제입니다.
세속-육신-마귀를 일시에 포기하게 할 수 있는 대상을 사랑할 때만 그 동료들과 함께 진정한 친구가 됩니다. 자기를 포기해야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이들이 동방의 현자들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2,1-12: “별”, 삼 왕에게 경배받은 아기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오늘의 전례는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확인하고 그분이 만민의 주님이심을 공적으로 선포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과 교회의 보편성을 장엄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찬란한 빛이다. 이 빛은 어둠을 이기고 앞길을 밝히는 희망의 표지이다. 복음에서 동방박사들의 동방이란 동쪽 즉 다마스쿠스 쪽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성서를 열심히 읽으며, 시대의 징표를 잘 살폈던 히브리인들을 말한다. 별은 사람의 아들 징표로서 영광의 십자가의 모습이다(마태 24,30). 박사들이 찾아온 아기는 수천 년 기다려온 분이며, 오셔야 할 분으로 성서에 예언된 분이시다. 박사들은 동에서 본 별이 다시 나타났을 때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으며, 그 별이 아기가 있는 곳에 이르러 멈추어 빛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이 아기는 왕이며 성서적으로 구세주이신 분이시다.
복음에 나오는 박사들의 의미는 깊다. 그들의 고국이 어디든 간에 그리고 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찾아 모여드는 이방인들의 세계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구원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하러 오시는 그 백성은 온 인류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을 맺는 선교 사명의 내용이 이미 동방박사들의 이야기 속에 예고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28,19).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시다. 항상 이 선물을 받으면서 그분을 알아봐야 하기에 항상 새로운 신비이다. 공현이 우리의 삶 속에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주님께서는 당신을 내어주실 때 당신을 아는 방법과 수단도 주신다는 것이다. 박사들에게는 별을, 헤로데에게는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4절) 성경의 증거를 주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앙의 빛은 겸손하고 준비된 마음에 의해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다. 헤로데나 대사제들에게는 성경의 증거도 그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기에는 부족하였다.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 왕들에게는 불확실한 증표도 도움이 되었다. 은총의 작용에 따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찾던 왕을 베들레헴의 보잘것없는 한 아기에게서 발견하였고 경배드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11절).
이 등장인물들의 여러 가지 태도는 예수께서 앞으로 당하게 될 운명을 어렴풋이 그려주고 있다. 메시아의 탄생 소식에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3절), 헤로데는 이미 그를 죽일 생각을 품는다(7-8절). 그러나 박사들은 별을 따라 온갖 일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고생 끝에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그 별을 다시 발견하고 “더없이 기뻐하였다.”(10절).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죽음을 맞게 되는 그 사건이 암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주님 공현축일의 의미가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드러나느냐, 즉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느냐 아니면 헤로데의 경우처럼 감추어져 있느냐,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제거해 버리려고 하는 삶인가 하는 것의 신비가 될 것이다.
구세주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시대의 징표를 깨어 기다리던 삼 왕들은 구세주를 만났다. 삼 왕은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이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모두가 당신의 모상이며 당신과 같은 모습이 되기를, 그분을 닮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바오로 사도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구원으로 초대를 받았다는 것(에페 1,4-5),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인류 전체가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것이 그분의 원하심이다. 그래서 모두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서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복음 선포는 매우 중요한 우리의 사명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증거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 구원자로서 그리스도를 지금, 여기서부터, 나를 통해서, 나 자신을 통해서 드러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사명이다. 우리만이 아닌 모두가 구원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 구원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그 안에서 모두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모두 영광의 주님을 드러내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러한 삶은 생명의 십자가에서 나타난다. 오늘 이방인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신 주님은 아기가 아니다. 십자가를 통한 영광의 주님, 구세주로 오신다. 이 신비가 나의 십자가를 통해 드러나서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도 하여야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한 형제자매임을 느끼도록 하여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교회를 위하여서 한다고 생각하고 말이나 몸가짐이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한다고 실천해 나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월요일 새벽 미사가 끝나면 미사에 온 아이들과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처음에는 미사에 오는 아이들이 복사 외에 없었지만, 이제는 꽤 많은 아이가 새벽의 어둠을 뚫고 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라면 먹는 즐거움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탁구를 하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목청껏 부르기도 합니다. 또 몇몇은 숨바꼭질을 하며 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친구들과 많이 놀았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더 자고 싶어도 억지로 일어나 성당에 갔습니다. 솔직히 미사 자체는 재미없었지만, 친구들과 노는 것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이제야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었음을 깨닫습니다. 즉, 당시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제게 주어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런 기회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렇게 50대를 사는 제가 어렸을 때 놀던 놀이의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영원할 것 같은 그 순간도 또 기회가 무한하다는 생각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지금 삶이 영원하리라 생각하면서 순간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그렇게 살다가는 이 모든 것이 후회로 남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 뜻에 맞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날인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먼 곳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들의 여행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별에 의지해서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가는 여정은 힘들기도 하지만 정말로 위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백성의 수석 사제들, 율법학자들은 어떠했습니까? 동방 박사들을 통해 메시아 탄생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곳이 유다 베들레헴인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경배하러 가지 않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편하고 쉬운 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 유향, 몰약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봉헌합니다. 그러나 헤로데 임금과 종교 지도자들은 아무것도 봉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얻을 것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주님께 무엇을 봉헌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행복한 지금이 아닌, 후회만 가득한 지금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인생을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호라티우스).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길을 떠난다는 것은
편안하고 안주하는 삶을 포기하겠다는 뜻입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겠다는 뜻입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로 채우겠다는 뜻입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역경과 시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겨내겠다는 뜻입니다.
포기-내려놓음-비움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자기 순환입니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가슴 아픈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지만
결국에는 떠나야 비로소
포기-내려놓음-비움을 터득하고 배울 수 있습니다.
저도 떠나고 싶습니다.
나를 벗어나 참 세상을 살고 싶습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60,1-6
예루살렘아,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3,2.3ㄴ.5-6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3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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