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의 백악관 충돌 이후 긴박한 양국 관계 변화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는 사이, 우크라이나 최전선은 급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가 쿠르스크주(州) 일부 지역을 점령한 우크라이나군을 가마솥(포위망)안으로 집어넣기 위해 동남(東南), 서남(西南)쪽으로 진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방어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동향을 파악하고 공격 목표를 설정하는데 필요한 핵심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지 못해 대응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적 주요 정보의 80%를 차지하는 미국의 정찰및 감시 정보의 우크라이나군 공유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게다가 우크라이나 당국이 미국의 군사 지원없이도 '홀로' 전쟁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쿠르스크 주둔 일부 정예부대를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로 빼 무리하게 반격에 나서는 바람에 쿠르스크 방어망이 더 헐거워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같은 보여주기식 작전은 2023년 여름의 반격작전과 마찬가지로 헛심을 쓰고, 전력만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로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민감한 정보 공유를 중단한 사이, 적진을 교란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러시아는 최근 며칠간 때를 놓치지 않고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 시설을 겨냥한 대규모 공습을 단행하면서, 동시에 쿠르스크 탈환 작전을 본격화했다.
러시아군의 공격/사진출처:블록노트.ru
◇쿠르스크 점령 우크라군, 포위망에 갇힐 위기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7일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전황(Ситуация на фронте) 코너에서 "러시아군이 쿠르스크주의 우크라이나군 점령지 대부분을 국경으로부터 사실상 차단한 지도를 현지 군사전문 매체 딥 스테이트(Deep State)가 올렸다"며 "쿠르스크 점령지로 오가는 우크라이나군의 공급로가 차단될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최근 며칠간 우크라이나군 점령지의 핵심 도시인 수드자(Суджа)의 남쪽을 공략하면서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수미주(州)로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딥 스테이트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이미 쿠르스크 점령지와 인접한 수미주의 노벤코예 등을 점령했다. 러시아군의 이같은 공세는 우크라이나군의 점령지를 일단 우크라이나 수미주에서 군사적으로 분리해 고립시킨 뒤 동서남북으로 수드자를 압박해 들어가는 '가마솥' 만들기의 초기 단계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 북쪽으로 수드자를 포함해 쿠르스크 점령지로 이어지는 거의 모든 도로는 러시아군에 의해 차단됐거나, 러시아군의 사정권 내에 들어갔으며 이로 인해 쿠르스크 주둔 우크라이나군의 군수 물자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군의 최우선 장악 목표는 수드자와 수미를 잇는 고속도로다.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블로거)들은 "러시아군이 정찰과 타격 등 모든 분야에서 유리한 상태이며, FPV 드론(1인칭 시점 드론, 개인이 조작 가능한 드론/편집자)을 이용해 쿠르스크 지역으로 들어오거나 나가는 모든 물체를 공격한다"며 "우크라이나군은 종종 장기적으로 나쁜 결과로 발전하는 문제를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크라이나 군인인 아르템 카리아킨은 "러시아가 최고 정예의 드론 부대 일부를 쿠르스크 전선에 배치했으며,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군의 물류와 기동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탄약과 식량 공급은 물론이고, 부상자 대피도 위험해졌고, 부대 이동도 차량 수송이 불가능해 걸어가야 했다"고 밝혔다.
◇우크라군, 쿠르스크 철수냐 방어냐 갈림길에
서방 언론은 쿠르스크 전황을 우크라이나 측에 더욱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미 인터넷 매체 폴리티코는 7일 "우크라이나군이 포위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철수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현지 군사 분석가인 얀 마트베예프의 분석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군 지휘관들이 쿠르스크 방어를 계속할 것인지, 후퇴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곧 직면할 것"이라며 "잘못된 선택을 하는 순간, 러시아군에게 포위당하고 병력을 많이 잃어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트베예프는 최근 SNS를 통해 "지난 며칠간 쿠르스크 전투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 통신도 "지난해 여름 쿠르스크를 기습 점령한 우크라이나군인 수천 명이 러시아 군대에 거의 포위당할 처지에 빠졌다"며 "향후 평화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우크라이나 측에게는 심각한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군이 쿠르스크 전선에서 우위를 완전히 굳힌 것은 부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방어 전략 변경에 따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그동안 전투 준비가 잘 된 정예부대를 쿠르스크에 주둔시켰는데, 일부 부대를 최근 돈바스 지역의 최대 격전지 포크로프스크로 옮겼다는 것이다. 일부 드론 부대도 함께 옮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측이 최근 포크로프스크 탈환작전에 나서면서 이들 부대의 재배치가 불가피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크라이나군이 포크로프스크(표식) 탈환작전에 나섰다고 한다. 포크로프스크 아래로 러시아군이 점령한 셀리보도, 쿠라호보, 우글레다르 가 보인다. 오른쪽 굵은 글씨가 도네츠크주 주도인 도네츠크시/출처:얀덱스 지도
문제는 포크로프스크 반격 작전의 성격이다. 정상적인 군사 전략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백악관 충돌이후 불안해하는 국내외 언론및 전문가들에게 미국의 지원이 없더라도 영토 탈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리한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특히 날씨가 풀리면서 조만간 닥쳐올 '라스푸티차'(땅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현상/편집자)를 앞두고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전선에서 시도하는 막판 반격 작전인데, 그 점은 러시아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에서, 러시아는 쿠르스크에서 각각 '영토 탈환'을 노린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일단 포크로프스크 방향으로 반격을 시작해 우스페노프카 등 몇개의 마을을 공략한 것으로 알려졌다. 궁극적으로는 포크로프스크 남서쪽에 배치된 러시아 선봉 부대의 격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맞설 러시아 예비 군전력의 전진 이동도 포착됐다.
우크라이나군 병사(호출부호·ID 무치노이)는 "강력한 반격이 시작됐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며 "방어보다는 공격이 어렵다"고 인정했다. 또 전투는 계속되고 있지만, 러시아군의 첫번째 방어선을 돌파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딥 스테이트도 전황 지도에 우크라이나군이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기록했다.
◇미국의 대우크라 정보 제공 중단이 부른 후폭풍
러시아는 미국의 대(對)우크라 군사 정보 제공 중단을 틈 타 라스푸티차 도래 전에 쿠르스크 주둔 우크라이나군을 포위 공격해 항복을 받아낼 심산이다. 쿠르스크 주둔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으로부터 러시아군에 대한 타격 목표 정보를 제대로 받지 못해 다연장로켓발사시스템인 하이마스(HIMARS) 운용마저 원할하지 못한 상태여서, 러시아로서는 공격하기에는 최고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워싱턴 포스트(WP)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의 군사 지원 중단 발표 이전부터 하이마스 공격 목표에 대한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의 한 군인은 WP에 "하이마스를 운영하는 우크라이나군 부대 중 적어도 하나는 최전선에서 60㎞ 이상 떨어진 러시아군 공격을 위한 좌표를 지난달(2월)에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를 하이마스 시스템에 장착해 러시아군 점령지및 본토를 공격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주 동안 공격 좌표가 더 이상 수신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트럼프 새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평화 협상을 압박하기 위해 일단 에이태큼스 공격 좌표의 제공부터 끊은 게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돈바스 북쪽 하르코프(하르키우) 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이 쿠퍈스크 북부 지역 오스콜강(江)을 건넌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군은 하르코프시를 공략하기 위해 곳곳에서 오스콜강 도하를 시도해 일부 지역에서는 성공한 상태다.
6일 밤 러시아군이 공습을 단행한 우크라이나 지역/사진출처:텔레그램
러시아군은 또 우크라이나군의 방공 정보가 부족한 틈을 놓치지 않고 연일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
러시아군은 6일 밤(~7일 새벽) 하르코프와 테르노필, 이바노프란키프스크, 폴타바,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오데사 지역의 에너지 기반 시설을 향해 칼리브르, 이스칸데르, Kh(X)101 순항 미사일 등 미사일 60여기와 드론 200대를 발사했다. 우크라이나 전력공사(DTEK)와 나프토가스의 가스 생산 및 처리 시설이 타격 목표였다.
우크라이나군은 미사일 67기 중 34기를, 드론 194대 중 100대를 격추했다고 7일 주장했다. 격추율 50%안팎으로 이전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다. 우크라이나 언론은 그 이유로 러시아의 새로운 공습 전략을 들었다. 이전에는 러시아군이 15~20초 간격으로 드론을 발사해 미사일·드론 공습이 비록 수 시간에 걸쳐 진행됐지만, 우크라이나 방공군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많은 목표물을 격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이제 공격 방식을 바꿔 15~20분간 여러 목표물을 향해 동시에 드론을 떼거리로 날려보낸다고 한다. 떼로 몰려오는 드론의 격추는 훨씬 더 어렵고 더욱 많은 방공 장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사일도 함께 날아오니 우크라이나 방공부대로서는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평가다.
러시아군의 공습 준비와 미사일 및 드론 발사에 관한 위성 정찰 데이터 등 미국의 주요 정보가 끊어진 상태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방공 능력은 더욱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군의 공식 발표에 따르더라도 6일 밤 최소한 미사일 23기와 드론 8대가 목표물을 정확히 때렸다"며 "실제로는 타격 성공률이 훨씬 더 높을 수 있으며, 이는 심각한 시설 파괴를 뜻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밤 공격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강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곧바로 모스크바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메시지를 자신의 SNS인 트루드 소셜에 올렸다. 우크라이나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전장에서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파괴하고 있다"며 "휴전과 최종 평화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러시아에 대해 강력한 금융 제재 등 경제 제재와 관세 부과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향해 "너무 늦기 전에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고 촉구했다. 결국 '기승전-협상' 독려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