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한가롭게 누웠으니 별세상 사람일세
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옛 생각도 하며
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2 ,눈
하나님이 죽었나 임금님이 죽었나
나무들과 푸른 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내일 만약 태양이 조문을 온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3,늙은이가 읊다
오복 가운데 수 가 으뜸이라고 누가말했던가,
오래 사는 것도 욕이라고 한 요임금 말이 귀신같네.
옛 친구들은 모두 다 황천으로 가고,
젊은이들은 낯설어 세상과 멀어졌네.
근력이 다 떨어져 앓는 소리만 나오고,
위장이 허해져 맛있는 것만 생각나네.
애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 줄도 모르고,
내가 그냥 논다고 아이를 자주 맡기네.
4#
스무나무 아래 앉은 설운 나그네에게
망할놈의 마을에선 쉰 밥을 주더라
인간에 이런 일이 어찌 있는가
내집에 돌아가 설운 밥을 먹으니만 못하다
김병연:1807(순조7년)-(1863철종14년).경기도 양주시 출생(추정)조선후기의 풍자시인. 방랑시인(흔히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짐).본관(안동).자는 성심.호는 이명.지상.난고.속칭 김삿갓.김입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의난(순조11년)에 가단한 죄목으로 역적으로 낙인.(기산군수는 반란군과 싸우다 전사)당시 선천부사 김익순은 스스로 자기 몸을 묽어 항복 했으며 본인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반란군 우두머리 목을 삿으나 그 돈을 지출하지 않아 들통나는 바람에 처형을 당하고 그 집안은 멸족의 위기를 당했지만 안동 김씨 세도 탓에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
당시20세 되었을 때까지 김익순(조부)의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김익순이 적장 앞에 무릎 꿇은 대가로 역적으로 몰린 사실을 아들들이 알지 못하도록 숨겨온 어머니 때문이었다.
결국 김병연은 영월 백일장 때 시제에 김익순에 대한 내용이
나오자 그를 싸잡아 비판하는 답글을 쓰게된것(과거장원급제)나중에 어머니의 해명으로 자신의 조부를 욕되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됨.
결국 이로 인한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 하다가 이것을 계기로 그는 삿갓을 쓰고 방랑의길로 접어들게되었다
#1863년 전남 화순군 동북면에서 57세로 객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