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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복과 함께한 수천 촛불… ‘13분 추모식’ 뒤 흩어진 한국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프롤로그: 살아있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
美, 제복과 함께한 수천 촛불… ‘13분 추모식’ 뒤 흩어진 한국
美순직경찰 추모행사 참석한 유족… 낯익은 남편 동료가 엿새 에스코트
韓추모식 유족 곁엔 낯선 사람들만
순직 경찰관을 기리기 위해 촛불을 들어올린 추모제 참가자들.
산화(散花).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침.
소방관 경찰관 군인 등 제복 공무원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을 던졌을 때 우리는 ‘산화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산화한 이들을 ‘영웅’으로 추앙한다.
떠나간 영웅을 기리고 남겨진 가족을 보듬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
순직 경찰관의 아내 알마 재닛 모야.
순직 소방관의 아내 박현숙.
이들의 시선을 따라 미국과 한국의 서로 다른 추모의 모습을 관찰했다.
워싱턴 추모의 벽 앞에서 남편의 이름을 찾는 알마 재닛 모야.
검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알마 재닛 모야가 손에 쥔 종이와 눈앞의 벽을 번갈아 봤다. “여보, 어디 있어? 얼른 나와야지.”
바람이 가볍게 불었다. 벽에 새겨진 이름들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일렁였다.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훑어 내려가던 알마의 눈이 한곳에 멈췄다. 가장 아랫줄에 새겨진 ‘헥터 모야’. 원피스 자락을 가다듬으며 쪼그려 앉은 그녀가 남편의 이름을 쓰다듬었다.
미국 순직 경찰 추모 행사 ‘폴리스위크’ 나흘째인 5월 15일. 많은 사람이 워싱턴 한가운데 추모의 벽(Memorial Wall)에서 가족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 남겨진 사람들의 곁
미 뉴저지주 뉴어크시 경찰관 헥터는 지난해 1월 알마 곁을 떠났다.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질 때였다. 지역을 순찰하며 많은 시민을 만나던 남편은 바이러스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두 딸과 아내를 두고 눈을 감았다. 56세가 되던 해였다.
지난해 순직한 알마의 남편 헥터 모야.
추모의 벽 앞에서 유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남편의 이름을 한참 어루만지던 알마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 속 남편은 제복을 입은 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살 아래 남편은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여보, 여전히 너무 귀엽네.”
사진첩을 뒤적거리던 알마의 손가락이 한 사진에서 멈췄다. 헥터와 함께 사진에 담겨 있는 한 동료의 얼굴. 추모의 벽에서 그녀와 함께 헥터를 찾던 경찰관, 로버트 무어였다. 사진첩을 넘길 때마다 로버트와 헥터가 함께한 사진이 몇 장씩 이어졌다.
“로버트, 당신은 늘 헥터와 함께 있었네요.”
그녀가 웃으며 로버트에게 말을 건넸다. 곁에 선 로버트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알마는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이 무척 닮았다고 알마는 생각했다.
“남편과 친했던 동료랑 있으니 마음이 조금 놓여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폴리스위크에 올 용기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순직 경찰관의 동료들이 고인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 앞에서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하고 있다.
몸을 일으킨 알마가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곡선으로 이어진 회색 추모벽에는 순직 경찰관 2만3000여 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이름 위아래로는 언젠가 찍었을 가족사진과 손편지들이 코팅돼 붙어 있었다. 로버트는 그녀와 걸음을 맞추며 곁을 지켰다.
사흘 전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도착한 알마는 마중 나온 이를 보고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낯선 공항에 낯익은 얼굴. 알마 가족과 종종 저녁을 함께했던 남편의 동료 로버트였다. 남편을 잃고 워싱턴에 오게 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었다.
경찰관들이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서 유가족들을 에스코트하고 있다.
로버트는 순직 경찰 추모 행사 동안 알마를 에스코트하는 임무를 받았다. 뉴어크시 경찰은 헥터와 절친했던 동료 로버트가 6일 동안 알마 옆을 지켜주도록 했다.
경찰 바이크 60대 에스코트… 함께 모여 영웅 기억하는 美
2022년 5월 워싱턴, ‘내셔널 폴리스 위크’
폴리스 위크 행사를 주관하는 순직 경찰관 지원 단체 ‘COPS(Concerns of Police Survivors)’는 각 지역 경찰서와 협조해 유가족을 에스코트할 경찰관을 정한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관계다. 유가족들이 같이 다닐 경찰관을 직접 고를 수도 있다.
알마는 자신의 캐리어를 대신 끌어주는 로버트를 따라 유가족 전용 게이트로 향했다. 공항 밖에는 대형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모두 올라타고 버스가 출발하자 앞뒤로 60여 대의 경찰 바이크가 호위하기 시작했다. 빨간빛과 파란빛에 둘러싸인 유가족 버스가 지나가자 길거리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었다. 목적지는 워싱턴 외곽의 힐턴 호텔. 알마를 포함한 순직 경찰관의 가족들이 폴리스위크 기간 묵을 장소였다.
순직 경찰 유가족들이 탄 버스를 호위하는 경찰 바이크.
○ 6년 만에 처음 참석한 추모식
박현숙은 전화를 받고 망설였다. 태백소방서에서 연락이 온 건 추모식 열흘 전. 현숙은 6년 전 남편이 떠난 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되는 순직 소방관 추모식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평일 낮에 열리는 추모식. 멀기도 했지만 어린 딸을 데리고 참석할 엄두가 안 났다.
추모식은 현충일을 사흘 앞둔 금요일 오전 11시였다. 올해는 유가족 오찬간담회도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도 추모식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현숙은 시어머니에게 딸아이를 맡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강원 원주에서 현충원까진 2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행사 30분 전 소방관 묘역에 도착하자 정복을 입은 소방관 20여 명이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소방서별로 유가족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3, 4명씩이 행사에 참석했다. 현숙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현숙은 홀로 남편 묘비 앞에 섰다.
남편 허승민 소방위 묘비 앞에 선 박현숙.
‘지방소방위 허승민.’
현충원에 올 때까진 괜찮았다. 묘비에 새겨진 남편의 이름을 보자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가방에서 조용히 물티슈를 꺼내 묘비 겉면을 닦았다. 먼지와 꽃가루가 새까맣게 묻어 나왔다. 새 물티슈를 꺼내 닦은 곳을 또 닦았다.
정복을 입은 소방관 4명이 다가와 현숙과 눈을 마주쳤다. 태백소방서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2명씩 현숙의 왼쪽과 오른쪽에 섰다. 낯선 공기와 침묵이 이들을 감쌌다. 한 직원이 먼저 입을 뗐다.
“제수씨, 이쪽으로 더 가까이….”
“여기, 잠깐 와서 사진 좀 찍어줘.”
상급자가 지시하자 직원 한 명이 왼쪽 대각선에 섰다. 그가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고 몇 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묘비 앞에 선 현숙과 직원들이 한 프레임에 들어왔다.
“일동 차렷, 묵념.”
찰칵, 찰칵, 찰칵. 현숙과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자 촬영음이 계속 이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현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현충원에 올 때마다 소방관 묘역에 묘비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참, 어떻게 드릴 말씀이….”
소방서 직원들과 남편 허승민 소방위의 묘비 앞에 선 박현숙.
그때 묘역 뒤편에서 마이크를 든 강원소방본부 직원이 안내 방송을 시작했다.
“이제 곧 순직 소방관 추모식을 진행할 예정이니 각 소방서 직원들은 분향단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현숙과 나란히 서 있던 직원들이 한 명씩 흩어져 분향단 앞으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현숙이 승민의 묘비를 응시하다 천천히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 떠나간 이의 이름을 부르다
유가족이 경찰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촛불 추모제가 열리는 내셔널몰로 들어오고 있다.
석양에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유가족들이 경찰 추모 주간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들고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내셔널몰 안으로 들어왔다. 알마는 로버트와 팔짱을 끼고 입장했다. 제복 차림의 경찰들은 팔을 내밀고 길을 안내했다.
붉은 장미를 들고 촛불 추모제에 참여한 유가족들.
어느새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단상 위에 파란 옷을 입은 여성이 올랐다. COPS의 회장이었다.
“제 아들은 근무 중 총격을 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이야기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캄캄한 밤하늘은 제 안의 어둠 같았고, 밝은 촛불은 아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각자의 아픔이 담긴 촛불이 함께 모여 어두운 밤을 밝혔죠.”
연설이 끝날 때쯤 한 직원이 회장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연단 위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왼손을 들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아 보세요.”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눈치만 볼 뿐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인 거 알아요. 괜찮아요. 당신한테 필요한 일이에요.”
희미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쭈뼛쭈뼛하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알마도 살며시 손을 내밀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았다.
초에 불을 밝히고 있는 경찰 유가족 지원 단체 COPS 회장(오른쪽).
“앨라배마주입니다. 제이슨 린 바이스, 리처드 웬들 험프리….”
지난해 순직한 경찰관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뉴저지주에서 22년간 경찰로 근무했던 알마 남편의 이름은 한참 뒤에나 나올 듯했다. 그래도 그녀는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귀 기울여 들었다. 30분쯤 지났을 무렵. 짧은 종이 울리더니 뉴저지주 차례임을 알렸다. 알마와 주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뉴저지주입니다. 에드워드 C 재먼드론, 매슈 D 러주카스, 헥터 모야.”
알마가 그토록 기다리던 이름이 내셔널몰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팸플릿에 적힌 명단을 짚어 내려가던 주변 사람들도 헥터의 이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619명의 경찰관 이름이 모두 호명됐다. 65분이 걸렸다. 부슬비는 잦아들었다. 그때 단상에서부터 촛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앞에서 뒤로, 옆에서 옆으로, 사람을 타고 촛불이 이어졌다. 이렇게 이어진 노란 불빛이 어둠에 휩싸였던 내셔널몰을 밝혔다. 수천 개의 촛불이 떠오르자 사회자가 단상에 올라 마지막으로 외쳤다.
“오늘 밤 우리가 함께 부른 이들의 이름과 이야기, 기억은 언제나 밝게 타오를 겁니다.”
다른 이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 흘리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을 끌어안고 다독이는 사람. 조용히 손을 맞잡은 사람. 알마는 더는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깊은 위로와 공감. 알마는 이 감정을 평생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고인의 이름이 불리자 눈물 흘리는 유가족들.
“사진 좀 찍어줘… 일동 묵념”, 또다시 홀로 남겨지는 한국
2022년 6월 3일 대전현충원, 강원소방본부 추모식
○ 놓쳐버린 영웅의 이름
“추모 행사는 국민의례, 소방인에 대한 묵념, 헌화 및 분향, 참배 등의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현숙을 포함한 순직 소방관 가족 9명은 안내 방송에 따라 현충원 소방관 묘역 분향단 앞에 모였다. 강한 햇볕에 현숙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손등으로 땀을 닦아낸 현숙이 옆을 바라봤다. 같은 강원 지역에서 순직 사고를 경험해 추모 행사에서 종종 만나 낯이 익은 사람들. 5년 전 강릉 석란정 화재 당시 순직한 이영욱 소방경의 아내 이연숙, 이호현 소방교의 아버지 이광수였다.
유가족들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하얀 국화를 올리고, 향을 피웠다.
“2016년 5월 태백 강풍 현장 긴급 구조 활동 중 순직하신 고 허승민 대원의 유가족께서 헌화하시고 분향하시겠습니다.”
분향단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박현숙.마지막 차례였던 현숙의 순서가 끝났다. 사회자는 다음 식순을 안내하려 했다. 그때 소방본부 직원이 사회자에게 다가가 급히 속삭였다.
“한 분을 빼고 넘어가셨어요.”
대기 장소엔 광수가 홀로 서 있었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헌화와 분향을 마친 상태에서 광수는 이름이 불리기만 기다렸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사회자가 광수와 순직한 그의 아들을 호명했다.
광수가 분향단에 흰 국화 한 송이를 놓았다.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광수는 먼 허공을 바라봤다.
소방관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는 이광수.
“이제부터 유가족과 참석하신 직원들께서 자율적으로 묘역을 참배하시면 되겠습니다.”
소방본부의 추모식이 모두 끝났다. 13분이 걸렸다. 한자리에 모였던 순직 소방관 가족들도 묘비 앞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현숙은 다시 남편의 묘비 앞에 섰다. 그녀의 곁으로 조금 전에 만났던 직원들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날씨가 맑다는 얘기가 오고 간 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현숙이 먼저 입을 뗐다.
“옛날에 사고 났을 때는… 남은 가족들만 힘든 줄 알았거든요. 이제는 아, 같이 일하셨던 분들도 참 힘드셨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현숙의 이야기를 들은 직원 중 한 명이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가족분들이 제일 힘드시죠. 저희야 직장이고, 직업이고 하니까….”
이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끊겼다. 현숙은 장갑을 낀 손을 만지작거렸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은 전화기를 들고 멀찍이 걸어갔다. 하얀 면장갑을 낀 현숙은 묘비 앞 투명 아크릴 상자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곧이어 소방서별로 모여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추모식에 참석한 관용차의 주유비 처리 절차 등을 안내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순직 소방관 유가족 이광수(왼쪽부터), 박현숙, 이연숙, 이인.
현숙은 연숙, 광수 등 다른 가족들과 묘역 한쪽에 있었다. 그 앞으로 복지 업무를 담당한다는 소방본부 직원이 다가왔다. 직원은 현숙에게 말을 건네려다가 묘역을 힐끗 쳐다봤다. 현숙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뭔가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태백소방서 허….”
직원이 잠시 말을 더듬자 현숙이 나지막이 남편의 이름을 알려줬다.
“허승민요.”
“아, 네네. 허승민 소방위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순직 소방관이 한두 명도 아닌데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겠나. 직원은 “언제든 불편한 것이 있으면 소방본부 측으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현숙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 웃을 수 없는 가정의 달
대전 현충원 순직 소방관 추모식에 참석한 박현숙.
소방본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현숙은 근처 쌈밥집으로 이동했다. 직원들이 앉는 테이블이 있었고, 안면이 있는 유가족들끼리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뒤 다른 단체 손님들이 몰려들자 식당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어색한 분위기도 소음에 묻혀졌다.
조용히 밥술을 뜨던 현숙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들도 옷매무시를 급히 정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날씨도 더운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직원들이 조용히 허리를 굽혔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인사였다고, 현숙은 생각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자 현숙과 연숙은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현숙이 먼저 말을 뗐다.
“소방본부에서 오찬간담회라고 하길래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좀 나눌 줄 알았는데요.”
“아니, 내 말이. 이렇게 따로 앉아서 밥만 먹는 자리였으면 가지도 않았을 거야.”
연숙이 수긍했다.
“모여서 같이 한다는 게…”
“과자랑 물 나눠 준다는 거였어.”
말을 주고받던 현숙과 연숙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입에서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눈을 감은 채 떠나간 소방관 남편을 떠올리고 있는 박현숙.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현숙과 연숙은 이날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 현숙은 고개를 돌려 카페 밖 풍경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이었다. 남편의 사고가 난 5월 4일. 그가 현숙과 딸의 곁을 영영 떠난 5월 12일. 그리고 6월 6일 현충일까지. 날이 화창해지는 이맘때가 되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은 그늘도 짙어졌다. 어린이날이면 아빠 엄마와 함께 놀러 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고, 어버이날에는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카네이션이 신경 쓰였다. 매년 찾아오는 5월과 6월은 그녀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이렇게 또 가정의 달이 지나갔다.
원주에서 대전현충원까지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 남편이 잠든 현충원 묘역에 머문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현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 지민구 기자
▽기사 취재 :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
▽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
▽사진 취재 : 홍진환 기자
▽편집 : 이승건 기자
▽그래픽 : 김충민 기자
▽사이트 개발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
▽사이트 디자인 : 김소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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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구 기자, 김예윤 기자, 이소정 기자, 이기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