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 새해 중앙 시조백일장 첫 장원으로 당선된 이응준(18·사진)군은 이제 고3이 되는 학생이다. 이군은 유조선 충돌사고로 기름 진창이 된 태안 앞바다에서 타르같이 짙은 아픔을 길어올렸다. 장원작 ‘그 겨울, 태안에서’에는 그의 추억이 담겨있다 했다. “어릴 때부터 가족끼리 태안 학암포로 자주 나들이하러 다녔어요. 매년 여름이면 갯벌에서 게도 잡고 조개도 캐고 하루종일 놀았죠. 볼 때마다 항상 다르게 보이는 바다는 참 신비로운 공간이었어요.”
그는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에 흩뿌려진 슬픔을 읽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젊은 세대에게 시조는 비교적 격조한 문학 장르임이 분명한데 10대인 이군이 시조에 입문한 계기가 궁금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현대시를 계속 써왔어요. 시조를 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요. 국어시간에 본격적으로 시조를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시조는 함축된 단어를 덩어리째 써서 읽는 사람이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어요. 그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시조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은 꼭 쓴다”는 그에게 학교 수업 들으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야자(야간 자율학습) 끝나고 집에 가서 새벽 내내 쓰죠.” 놀거리, 할 거리가 한창 많을 그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조숙한 대답이 돌아왔다.
애초에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이군이 적게 잡아 30대 후반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농익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서야 오해 아닌 오해가 풀렸다. 그는 장원당선을 “새해 선물”이라 표현했다.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것은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뜻이겠죠. 수능 준비로 바쁘고 힘든 한해가 되겠지만 연말 장원에도 꼭 도전해보겠습니다.”
이에스더 기자
심사위원평 현장감 넘치는 시어들 … 작품 돋보이게 만들어
차상에는 현영화 씨의 ‘대중탕에서’를 올린다. 이 작품에는 벗은 등을 맡긴 늙은 아버지의 작아진 모습을 은근히 바라보는 효심어린 아들의 젖은 눈시울이 있다. 등을 “물 마른 계곡 하나”로 묘사한 점이나 ‘늙은께 유달리 때만 껴야’라고 한 아버지의 수사가 아름답다.
차하에는 이른 봄의 정경을 동심으로 포착한 정효근씨의 ‘봄날’을 올린다. 마른 풀잎이나 닭장의 하얀 솜털을 물어 나르는 참새의 경쾌한 몸놀림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차상과 함께, 차하에 오른 이 작품도 종장 뒷구에서 한 마디가 부족하여 손을 보았다. 종장의 율격구조를 잘 타고 넘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시를 옆 사람이 읽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묘사가 적절한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관념어를 지나치게 쓰면 시가 잘 읽히지 않는다. 유현주·백윤석·이갑노·허주영·김원명 씨 등의 작품을 아쉽게 내려놓았다. 정진하시길 바란다.
첫댓글 그겨울, 태안에서/ 대중탕에서/봄날/ 현장감 넘치는 시평과 시밭에 머물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