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복음을 전한 할머니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자신의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오늘 아침 문득 교회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먼 길을 오가는 저희들에게도 참으로 기쁜 소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또 성도의 귀한 교제 속에 주님에 대한 찬양이 넘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본문 주해)
21절 :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만으로 기뻐하였는데 그 뒤에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와서는 믿음으로만 부족하고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흔들린 것이다. 이방인이기에 할례도 다시 행하여야 하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게 들린 것이다.
그들은 복음을 들었지만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였다.
그러나 바울은 앞의 3장 10절에서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는 저주 아래 들어가는 것임을 신명기의 말씀(27:26)을 인용하여 이미 말하였다.
22~23절 :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여종에게서 난 자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다고 한다. 여종과 자유 하는 여자, 육체와 약속을 대비하고 있는데 이것이 두 언약이라는 말이다.
두 언약이란, 하나는 인간의 행위로 만들어 낸 이스마엘이고, 다른 한 언약은 인간의 능력이 다 포기되고 나서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으로 태어나는 이삭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육체’라고 하고 이삭을 ‘약속’이라고 한다. 육체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약속이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시는 것을 약속이라고 한다.
24~26절 : 두 언약을 설명하기 위해 하갈과 사라를 가지고 비유한다.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다.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라고 한다. 바울이 말하는 이때는 아직 예루살렘 성전이 건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예루살렘을 부정한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곳이 다 종이라는 옛 언약인 것이다.
오직 새 언약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한다.
위에 있다는 말은 위로부터 나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서 죄 아래 태어난 것이요, 이는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이다.
이런 자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 바로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이다. 사람의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약속의 자녀라는 말이다.
이 말씀을 지금 하갈과 사라를 비교하면서 종과 자유인을 말하면서 종은 율법 아래 있는 자이고, 자유자는 은혜 아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늘에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약속의 자녀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은혜로 말미암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27~28절 : 27절은 이사야 54:1절의 말씀의 인용이다.
이사야 본문은 파괴된 예루살렘의 회복을 말한다. 예루살렘이 파괴가 되었으니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과 같은데 이제 회복하여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약속의 자녀는 없는 데서 있게 되는 방식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율법적인 행위가 아니라,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바로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인 것이다.
29~31절 : 그러나 아브라함 때에 육체를 따라난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난 이삭을 괴롭혔다.(창21:9)
이스마엘이 이삭을 박해한 것은, 지금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것으로 재현된다. 바울은 과거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을 박해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지금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고 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 역시 복음의 진리를 고수하면 율법과 할례를 요구하는 육체로 난 자들의 박해를 받는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박해하는(놀리는) 이스라엘을 여종 하갈과 함께 쫓아냈다.
본문에서 ‘쫓아내야 할 자들’은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이며, 곧 율법 준수를 내세우며 옛 언약을 추종하는 유대인들이다.
이스마엘이 내어쫓기는 것은 종이 낳은 아들이 유업을 이어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여종의 자녀는 유업을 얻지 못하지만,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는 유업을 이어 받는다.
이 유업이란 상속자가 된다는 말이다.
무엇을 상속받는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떤 육체적이 노력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가 없고 오직 약속으로만 주어진다. 인간의 행위를 고집하는 자는 결국 쫓겨난다.
(나의 묵상)
한 사람의 믿음이 어떠한가는 그가 여러 가지 종교적 규정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주일을 잘 지키고, 새벽기도를 잘 나가고, 헌금 생활을 성실히 하고, 교회에서 주어진 사역에 열심히 행하는 것 등등.....이것 외에 무엇으로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할 수 있을까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바로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할례를 비롯한 모든 율법 조항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바울은 이런 조항을 지킴으로 의롭다 인정받으려 하는 자들은 다 ‘종의 자녀, 이스마엘, 결국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라고 지금 말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을 행함’으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를 강조하는 것이다.
자신의 수고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자유한 여인의 자녀요, 이삭이요, 약속의 상속자이며,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복음의 진리를 버리고 율법 아래, 저주 아래로 돌아가겠는가 하는 말이다.
과거 30여 년을 몇몇 가지 교회 전통과 종교적 규정을 지킴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내 신앙에 별 문제가 없다고 여겼던 시절이 참 편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종의 자녀’로 사는 것이 얼마나 내 몸과 마음에 익숙하게 배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것들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또 나 자신도 역시 그러한 것을 나타내 보임으로 인정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님을 느낀다.
그저 규정을 지키는 것에 그치고 맘 편하게 살던 시절은 끝이 났다.
매일, 매순간 성령님의 간섭과 주장에 부딪치게 되니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사실 이 피곤이 느껴진다는 것은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는 증거요, 동시에 아직 어린아이 같은 믿음, 십자가에 연합되지 못한 믿음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제 확실한 약속의 자녀로서 내가 받을 유업인 하나님 나라인 것을 알고 또 이 땅에서부터 그 아들의 나라를 누리며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땅을 사는 동안 육체의 소욕이 없을 수 없으니 피곤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 피곤은 짜증이 아니라,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애통함과 곤고함이다.
그러나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달려간다. 그러면 주님의 보혈로 그 곤고함조차 다 덮어주시니, 결국은 기쁨이요, 감사인 것이다.
바울 사도를 통해 내가 확실한 약속의 자녀인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시니 감사가 넘친다.
흘겨보는 눈을 가지고 주시하는 율법의 사람들에게 이 생명의 삶을 전해야 하고, 또 갈라디아 교인처럼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어린 자들을 권면해야 한다.
그러므로 매일 주님과 교제함으로 영생을 누리고 주님을 힘있게 의지함으로 진리 위에 단단히 서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제가 약속의 자녀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힘을 빼고 주님만 의지합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되도록 꼭 붙들어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