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미가좋아(클리앙)
2023-09-30 19:01:22 수정일 : 2023-09-30 19:12:46
유교 성리학에 기반이 있는 제사...
그런데 원래 유교 성리학도 원래 제사상을 화려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황도 화려하게하는결 경계했고 이이는 제사음식은 집 재산 규모에 맞게 계졀 별로 몇가지 올리면된다 했습니다
그게 현재 왜? 이리 복잡하게 되고 규칙이 떠도느냐..
언제부터인지 제례의 규칙이 복잡한게 명문 있는 집안이고 예를 복잡하고 까다롭게 차려 명망있는 집안으로 과시하기 시작했다 하네요...
제사상이 가가례로 집집마다 나름의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 남에 제사에 감놔라 배놔라 한다" 라는 말도 생겼다합니다
조율이시 같은것도 원래 있던게 아니라 일제시대 생기고 군사정권때 가정의례준칙이 생기며 각지역 각가문에서 하던게 중첩되며 오히려 허례허식이 강화 되었다하네요
현재 제사에 근본적인 의미는 화려하게 차리는게 아니라 후손들이 오랜만에 모여 서로 얼굴보고 친목을 다지는게
그 근본적인 의미라 생각합니다... 저도 나중에 자손들이 제사상 차린다면 바나나에 피자 올려도 좋고
너무 격식 차리지는 않았으면합니다... 차려줄지도 모르겠지만요...
이제 시대가 사촌도 먼친척이 되어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하네요...
여러분댁의 제사상은 어떠신지요?
댓글 중---
다이여트
다른집 제사상은 근본있고 간지있어 보인다고 타박하던 친척이 생각나네요.... 어린 생각에도 제사법이 십계명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이 만든건데 법칙이 어딨나 싶었습니다. 참견하던 친척들 하나둘 가고 이제는 그냥 제 맘대로 지냅니다... ㅡ..ㅡ 제사음식으로 한달간 반찬하던 때가 그립지 않습니다. ㅋ
BlueX
그 부잣집은 그렇게 음식 많이해서 사람들 나눠주는거 아니었나요?아날로그맨
남의 집안 일에 왜 감놔라 배놔라 하는지 모르겠어요.
위 집안들은 예전에 저렇게 했는지 몰라도 남의 집안 일에는 신경 꺼야 하지 않나 싶네요.
어차피 점점 간소해지고 머지 않아 없어질텐데 말이죠.
스윙체어
자꾸 어디서 들었는지 조율이시가 조선시대 없었다는 말들 하는데, 그 말의 유래가 가문마다 그려놓은 진설도에서 유래한 겁니다. 집안 마다 이렇게 차려라 라고 하는 예시 그림이죠. 남인 집안은 보통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진설했고 이게 조선시대 후기에 정리 되면서 조율이시라는 이름이 붙었고, 서인은 홍동백서로 진설했습니다. 제사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게 필요한거지, 전통을 아예 근거도 없는 것으로 무시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고구미가좋아
@스윙체어님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말은 엄밀히 보면 정확치 않을수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원래했던건 아니란말로 이해해주시면될것같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가문이에서 했던것으로 보입니다 문헌에 기록되기시작한건 1919년으로 알려져습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에서도 하지말라 권유하고 있네요
문헌에 1919년에 나왔고 1969년 가정의례준칙이 만들어지고 이후 1975년경부터 조율이시가 나오고 그때부터 많이 알려진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쓴것이라 보면될것같네요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지난 5일 추석 차례상 음식을 9가지로 줄인 표준안을 발표하면서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 (명절에) 전을 부치느라 고생하는 일은 이제 그만둬도 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차례상 과일도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등과 상관 없이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1980년 9월 16일 <경향신문> 기사(정성스럽게 낭비없게... 겨레의 명절 추석맞이 상차리기)에서도 당시 김경진 숙명여대 교수는 "음식을 진설하는 방법에 대해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니 하여 붉은 것은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 하는 식의 격식이 거론되는데 이는 노론과 소론 등 당파와 가문에 따라 모두 다른데다 가정의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 당쟁을 끌어들인 때문에 쓸데없이 까다로워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