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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남시욱 이사장논고>
"문 대통령의 북한비핵화 정책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북한 비핵화는 모든 남북 현안에 우선해야 할 것이며 대한민국은 유엔 제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측이 남측의 호의에 감동해 핵을 포기하리라고 보는 안이한 인식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의 멘토인 김대중과 노무현의 잘못된 북한정세 판단을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자, 남시욱 이사장의 끝맺은말
우리말에는 일찍이 알아야 面長이라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바꾸어 말하자면 집안에 밥이 끓는지 죽이 끓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뜻이 되겠지요.
지금 나라가 남북관계에 있어서 그많은 施行錯誤를 겪으면서,迂餘曲折끝에 지금은 어디로 가고있는가를 赤裸裸, 深度있게 分析敍述하신 남시욱 이사장님<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전 문화일보사장 ,현동아일보부설 화정재단 이사장>의 시원한 해답을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이제 우리가 취해야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숙제가 여기 에 있습니다.이제 우리가 스스로 옳은 방향은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呂>
[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 (1)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2)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3) 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4)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이슈&포커스 제목[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1) 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남시욱(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이사장) 한국을 노골적으로 모욕하는 북한 정부 문재인·김정은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4월 27일)과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6월 12일) 성사로 곧 서광이 비칠 것 같았던 북핵문제가 두 달째 표류하고 있다. 불길한 조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7월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무장관의 3차 북한방문 때였다.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합의한 한반도비핵화 원칙의 실천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그는 북한 측에 비핵화시간표의 제시를 요구했다가 협의다운 협의도 제대로 해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했다. 김정은은 그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북한정부는 거기다가 폼페이오를 떠나보내면서 외무성 담화 형식으로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불과 20여일 만에 안면을 싹 바꾼 것이다. 북한 측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욕설을 퍼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지난 7월 20일 장문의 평론기사를 통해 문재인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비판하면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갑자기 재판관이나 된 듯이 북미 공동성명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누구가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감히 입을 놀려댄 것"이라면서 그의 말을 '쓸데없는 훈시질'이라고 비난했다. 이것은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7월13일 행한 ‘싱가포르 렉처’(강연)에서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북측이 노골적으로 남측을 모욕한 최근의 예는 8월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외교장관환영만찬회장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이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에게 다가가 남북외상회담을 제안했다가 그로부터 "응할 입장이 아니다"고 거절당한 사실이다. 우리 정부가 상당히 장기간 치밀하게 준비한 남북외상회담은 이렇게 간단하게 무산된 것이다. 강 장관 자신은 비록 정식 회담은 못 가졌지만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으나 국민들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다. 태풍의 눈이 된 종전선언 문제 2018년 8월 3일 오후(현지시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 외교장관환영 만찬장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강경화 외교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그러나 별도회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진 외교부. 당초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던 북핵문제가 이렇게 빨리 꼬인 것은 바로 종전선언문제 때문이다. 지난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발표된 판문점선언 제3조 3항은 남과 북이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3개월여가 지난 8월 6일 현재, 남북의 두 정상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제1보로 합의했던 종전선언 문제가 한 발작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이 비핵화 진전 없이는 종전선언이 불가하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미국이 종전선언을 출발점으로 해서 북의 안전보장에 나서지 않는 한 본격적인 비핵화조치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난처해 진 것은 문재인 정부다. 트럼프의 반대로 종전선언 실현이 늦어지자 북측은 난데없이 문재인 정부를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오는 바람에 그의 ‘한반도운전석’론이 완전히 무색해졌다. 북한정권은 지난 7월 23일에도 대외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종전선언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중요한 합의사항 가운데 하나"라면서 남측 정부가 판문점선언을 이행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윽박질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년 2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당시 물에 빠지다 시피 한 김정은을 건져냈음에도 이제는 북측이 오히려 내 보따리를 내 놓으라는 형국이 되었다. 여기다가 중국 역시 북한을 거들고 나서면서 자국도 종전선언에 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불과 6개월 만에 남북의 위상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북핵문제는 또 다시 장기화의 수렁에 빠지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보유가 사실상 기정사실화할 우려가 있다. 중국 측이 벌써부터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완화를 거론하고 나선 것도 심상치 않다. 여기다가 북한산 석탄을 실은 제3국의 화물선이 한국을 여러 차례 들락거리면서 석탄을 한국에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문재인정부는 미국의 불신을 사고 있는 판이다. 문재인과 김정은의 판문점선언은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히 당사자가 될 미국 측과 사전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만약 미국 측이 사전합의를 해 놓고 이제 와서 태도를 바꾸었다면 그런대로 문제가 있지만 이번에 미국의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밝힌 바에 의하면 김정은은 문 대통령에게 1년 이내에 비핵화를 완료할 것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그처럼 들뜬 이유도 이제야 짐작이 간다. 그래 놓고 북측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지난 7월 초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요 국무장관이 비핵화 일정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한데 대해 욕설로써 대한 것은 말이 안되는 행동이다. 여하간 문재인정부는 종전선언문제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미북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시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재의 방향은 북한 측이 비핵화조치에 성의를 보여 비핵화일정 제시, 핵시설신고, 검증수용 의사를 표명하고, 이에 대해 미국 측은 북한에 대한 단계별 보상방안 및 체제보장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 이를 서로 맞바꾸는 대등한 패키지 교환방식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위해 8월 중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가능하면 9월 유엔정기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채택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는 현단계로서는 북미 간의 이견이 타협 가능한 수준이라고 보고 '종전선언'이라는 명칭에 경계심을 가진 미국의 여론주도층을 고려해 종전선언에 ‘비핵화’를 병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역시 북한이 진짜로 핵을 포기할 의사가 확고한가, 다시 말하면 김정은의 진정성 여부가 관건이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매체에 고정칼럼을 쓰기 시작한 태영호 전 북한 주영대사관 공사는 김정은이 판문점선언에 서명하기 1주일 전인 4월 20일 당중앙 전원회의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평화수호의 보검, 후손들도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근본담보’라고 강조했다고 그의 칼럼에서 전했다. 또한 7월 초에는 북한 당국이 당 핵심 간부들을 모아놓고 “핵무기는 선대 수령들이 남겨준 고귀한 유산이며, 우리에게 핵이 없으면 죽음”이라고 강조하는 내부강연을 진행했다고 한다. 태 공사는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의 7월 초순 3차 방북 때 트럼프와 김정은이 합의한 비핵화 실무그룹 구성을 거부하고 종전선언 선전전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즉, 북한정권은 그들이 개발한 핵무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에서 주한미군 철수의 선행 조치인 주한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올해 안에 달성하려는데 속셈이 있다는 것이다. 2017년 연말의 긴박한 한반도 상황 2017년 연말은 한반도에 결정적인 시기였다. 지내 놓고 보니 김정은에게는 운명적인 시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 해 11월 29일은 북핵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날이다. 김정은은 이날 새벽 평안남도 평성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화성-15형은 사거리가 1만3천km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와 뉴욕을 포함하는 미국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그 때가지 북한이 개발한 미사일 가운데 최장거리의 미사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화성-15형 ICBM의 발사성공은 당시 까지 유엔 안보리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벌이고 있던 모든 핵개발저지를 위한 예방외교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안보리와 서방국가들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실력 행사 뿐이다. 화가 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처리는 자기가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유엔 안보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 통화로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요구했다. 미국은 일단 선제타격만 빼고 군사-원유-금융의 ‘3중 봉쇄’작전을 쓰기로 방향을 정했다. 틸러슨 미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한 해상 봉쇄를 위해 유엔 참전 16개국 회의를 소집했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 러시아가 포함되어있는 안보리 대신 참전 16개국 회의를 소집한 것은 해상봉쇄작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긴급 소집된 유엔 안보리에서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모든 유엔 회원국은 북한과의 외교 및 교역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투표권 등을 제한하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독재자가 우리를 전쟁으로 더 가깝게 이끌었다. 전쟁이 난다면 북한 정권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보리 제재 강화로 북한 공황상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은 2017년 연말까지 계속되었다. 중국으로서도 더 이상 개별 플레이를 할 수 없게 되어 원유공급의 부분적 중단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12월 4∼8일 실시된 한미 연합 공군훈련은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3종과 B-1B 전략폭격기 등 총 260여 대가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김정은은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가로 인정하면 협상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공표했지만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이를 묵살하고 전투태세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미국이 언제 군사행동에 나설지 일촉즉발상태가 지속되었다. 이달 중순이 되자 중국군 난징(南京)군구 부사령원 출신 왕훙광(王洪光) 예비역 중장은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전쟁 동원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의 긴장은 그 만큼 고조된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12월 29일, 김정은이 참수작전이 두려워 미군의 정찰위성에 포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주로 새벽에 외부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벤츠 600을 타지 않고 간부들에게 선물한 일본제 렉서스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무역도 중국이 본격적으로 경제제재에 동참한 탓으로 급감했다. 중국은 11월 북한산 철광석, 석탄, 납 등의 수입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북한의 대중 수출액은 전년도의 같은 기간보다 61.8% 급감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원유는 공급했지만 안보리의 규제범위 보다 더 강한 독자제재에 나서 휘발유 등 석유제품 수출을 중단했다.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10월과 11월의 휘발유 가솔린 디젤유 항공유(제트유) 연료유 등 공식수출액은 0이었다. ‘화성-15형’ 발사를 계기로 12월 22일 채택된 새 안보리 결의 2397호가 새해부터 집행될 경우에는 북한의 대중국 수출액은 10분의 1로 급감할 것이 예상되었다. <끝> (2018년 8월 5일 게시)
이슈&포커스 제목[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2) 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김정은의 화려한 데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은이 휘황찬란한 국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첫 무대였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 김정일 간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지 11년만의 일이다. 정상회담 후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3개항의 합의사항을 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 주요내용은 ① 남북공동연락소의 설치 등 남북관계의 개선, ② 확성기 방송 중단과 서해평화수역 설치 등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완화, 그리고 ③ 2018년 연내의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 추진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적극 협력한다는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최초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 중립지대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걸어오고 있다. 사진 청와대 김정은은 시진핑의 초청을 받고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전 두 차례 중국을 방문한 다음에는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다. 김정은의 태도는 당당해 지고 시진핑과 사전에 합의한 대로 북핵문제의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해결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역사적인 미북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내세운 북핵의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해체) 원칙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 대신 간단하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 라는 용어로 표현되었다. 문 대통령은 미북정상회담을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가 전쟁과 적대시대에서 벗어나 평화와 공동번영의 시대로 나아가는 아주 역사적인 위업”이라고 찬양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과의 교섭기간 중에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한다고 밝힌 다음 난데없이 “지금은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주한미군을 본국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말해 한국국민들에게 새로운 안보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대북 유화정책 우려하는 미국 학계와 의회 그러나 미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전사자 유해송환이 북한과의 비핵화협상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본다. 동아일보가 지난 7월말 조사한 미국의 동북아문제 전문가 7명은 북한의 본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는 한 종전선언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표명했다. 1994년 제네바 협상에 참여했던 대화파 북한 전문가인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대북특사도 “유해 송환으로 분위기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인 움직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북-미 간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지더라도 국제기구를 통해 모든 핵시설을 감독하면서 폐기하는 절차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미북 회담의 짤막한 공동성명은 비핵화를 향한 불안하고 포괄적인 약속이었는데, 이를 구체화하려는 폼페이오 장관의 노력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무시하며 싱가포르 합의정신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해 송환 조치와 남북이산가족 상봉 추진 등에 대해 “낮은 곳에 달린 과일을 따는 것과 같은 것으로, 과거 평양이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써왔던 지연전술”이라고 평가했다. 클링너는 또한 “북한이 비핵화 조치와 함께 한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도 축소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핵확산 금지 정책을 총괄했던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정책 조정관도 “종전선언을 하기에 앞서 북한은 이에 대한 상호 조치로 ‘추가적인 핵무기와 미사일 생산을 멈추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종전선언에 참여한다면 본질적인 비핵화 절차의 조건들에 대한 협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선언이 종이조각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18년 8월 8일 게시)
이슈&포커스 제목[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3) 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종전선언의 유래 종전선언(Declaration of the End of War)은 국제법 용어가 아닌 정치적 용어여서 엄격한 정의가 없다. 대체로 전쟁을 종료시켜 상호 적대 관계를 해소하기를 원하는 교전 당사국 간의 공동선언을 말한다. 전쟁종료 선언을 뜻한다는 점에서, 전쟁상태인 ‘정전’이나 ‘휴전’과는 다른 개념이다. 또한 전후 뒤처리 선언이 아닌 점에서 평화조약과도 다르다. 종전선언의 예는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에 체결된 캠프데이비드협정이 있다. 이는 그해 9월 5일부터 17일까지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메릴랜드 주에 있는 대통령전용별장 캠프데이비드로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 총리를 초청해 마라톤 정상회담을 개최한 결과 도출된 역사적인 협정이다. 이 협정의 정식조인은 17일 백악관에서 이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평화조약이 1979년 3월 26일 조인되고,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반도가 1982년 4월까지 이집트로의 반환이 완료되어 양국 간의 평화가 회복되었다. 또 다른 종전선언의 예는 금년 7월 9일 동북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인접국인 에리트레아 사이에 체결된 '전쟁상태의 종식' 선언이다. 이 선언으로 그 동안 18년간 계속되었던 양국간의 국경분쟁이 끝났다. 두 나라는 지난 2000년, 2년간의 국경분쟁을 끝내는 화평협약을 맺었으나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그 동안 '전쟁도 평화도 아닌 긴장상태'가 지속되어오다가 이번에 다시 종전선언에 합의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2006년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 한다. 이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1단계 조치로 '종전선언'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 때 평화조약과 명확히 구별하지 않은 채 종전선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의 언급에 주목한 노무현 대통령은 이듬해 9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정색을 하고 이를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노 대통령은 약 1개월 후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한국에서 종전선언 아이디어는 노무현정부 당시 국정원의 구상이라는 것이다. 이 때 국정원은 북핵문제 해결방안으로 핵문제 해결조치 진행→평화체제 구축 협의 진행→북·미 간 대타협 구도→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루어진 4단계방안을 마련했는데 종전선언 아이디어는 여기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국정원은 2006년 청와대 안보실에 북핵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 포함된 상징적 행사인 종전선언을 따로 분리해냈다는 것이다. 때문에 종전선언은 ‘노무현 국정원’이 저작권을 가진 셈이라는 것이다(송호근, “발굴 단독-문 평화체제 노무현 국정원 구상대로 실현 중”, 신동아 2018년 7월호, p. 76). 2007년 노무현-김정일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합의 여하간, 노 대통령은 2007년 10월 초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문제를 제의해 결실을 보았다. 김정일은 처음에는 이 문제를 우선 부시 대통령과 토의해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정상회담 결과를 정리한 10·4 선언 4항에서 “(양측은)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3개국 또는 4개국 정상들이 한반도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약간 논란이 있었지만 북한이 그 전해, 즉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10·4 선언에서 ‘종전’을 미국 또는 미중 2개국과 함께 선언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10·4 선언이 북핵문제를 6자회담에 떠넘긴 사실이다. 즉 10·4 선언은 6자회담의 9·19공동선언과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한반도평화체제를 북핵문제와 전혀 연동시키지 않았다. 2007년 10월 2일 낮 평양시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사실 노 대통령은 이 무렵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정신이 쏠려 북핵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그는 평양방문 직전인 2007년 9월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평양 가서 핵 논의하라는 것은 김정일과 싸우고 오라는 얘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평양방문 때 김정일과 핵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국민과 언론, 그리고 야당의 요청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정략적인 의미로 평가한다” “시빗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라는 등 해괴한 논리로 김정일과의 북핵문제 논의를 기피했다. 그러면서도 노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평화협정이어야 한다는 이상할 정도의 강력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북측이 핵개발을 계속하는 한 평화협정을 백번 맺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자명한 이치를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즉, 노무현·김정일 간의 종전선언 합의는 그로부터 2개월 후 실시된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집권당인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정동영의 낙선으로 사실상 백지화가 되고 말았지만 이번 문재인·김정은 간의 종전선언은 이와는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북한은 이를 비핵화 추진을 거부하는 빌미로 삼으면서 문재인정부가 자주성이 없다는 식으로 압박하고 있다. 북측 요구로 8월 13일 열리는 판문점 남북고위급회담도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을 논의하면서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 등과 관련해 대남압력을 높이려는 의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종전선언 문제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때나마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듯이 보여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1일 백악관에서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대남 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았을 때였다. 김영철과의 면담에 만족한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의 개최를 공식화한 다음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종전선언문제 논의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소식이 서울에 전해지자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3국의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언제든지 싱가포르로 날아가기 위해 대기상태에 들어갔다는 보도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이미 중국으로부터 모종의 지원 약속을 받고 입장이 강화된 김정은의 양보 없는 행보로 인해 미북 핵협상은 기대만큼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가 종전선언에 냉담한 이유는 북 측 비핵화조치의 지지부진한 진전 속도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의 반대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지난 8월 2일, 주한대사로 부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진 해리 해리스 대사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종전선언은 한번 선언하면 (새로)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속내를 털어놓은 다음 “종전선언을 하려면 비핵화를 위한 (북측의) 상당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에 의하면 북한이 핵시설 리스트를 제출하는 성의를 보이면 종전선언 문제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조치를 취하는 데는 미국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현재로서는 북한이 응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미국 측이 종전선언에 대해 미온적으로 나오고 있는 데는 자국 여론의 악화도 큰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북한산 석탄이 비밀리에 한국으로 유입된 사실이 탄로 나고 한국정부가 개성공단 재개 등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유화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에 대한 미국 조야의 불만과 불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예가 미국 하원의 핵무기비확산 무역소위원회의 움직임이다. 이 소위원회의 테드 포(공화당) 위원장은 최근 대북추가제재법안을 하원에서 준비 중이라면서 북한산 석탄 밀반입사건에 연루된 한국 기업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지부진한 북한의 비핵화 추진태도와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국무부 대변인실 담당자도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북한정권을 계속 지원하는 주체에 대해서는 일방적 조치를 취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무성의한 비핵화 추진속도에 대해 미국의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대사는 “북한은 국제사회가 여전히 비핵화를 기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그들이 기다리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기다리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래저래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 양 측으로부터,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중국으로부터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압력에 점점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끝> 2018년 8월 10일 게재) 이슈&포커스 제목[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4) 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6·25전쟁에 얽힌 특수한 역사적 사실들 종전선언 채택문제는 현재 미국의 반대로 답보상태에 있지만 6·25전쟁은 다른 전쟁에서는 볼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6·25전쟁의 교전당사자가 국제법상 4개의 서로 성격이 다른 주체들, 즉 남북한 두 나라와 유엔군, 그리고 중국의 ‘인민지원군’이라는 사실이다. 6·25전쟁은 발발단계에서부터 유엔에서 특이하게 받아들여졌다. 유엔이 미국 정부로부터 북한군의 남침을 통고받은 것은 6월 24일 밤 11시 30분경(한국시간 25일 낮 12시 30분경)이었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노르웨이 출신의 트리그브 할브란 리는 미국 국무부의 유엔담당차관보 존 히커슨으로부터 북한군의 남침 소식과 아울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소집 요구를 전화로 통보받고는 “하느님 맙소사, 이건 유엔에 대한 전쟁이야!”라고 외쳤다는 미 국무부의 기록이 있다. 유엔 안보리는 이튿날(25일) 오후 2시경(한국시간 26일 새벽 3시경) 긴급 소집되어 4시간 동안의 토의 끝에 제82호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북한의 남침을 ‘평화파괴행위’라고 규정하고 북한군의 38선 이북으로의 즉각적인 철수를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결의안은 찬성 9표 대 반대 0표로 채택되었다. 유고슬로비아만 기권했다. 당시 유엔에는 대만(중화민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었는데 소련은 대만 대신 중공의 유엔대표권 인정을 요구하면서 안보리 출석을 보이콧하던 시기여서 이날도 계속 출석을 하지 않아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이다, 북한정권이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고 남침을 계속하자 안보리는 다시 27일 오후 2시(한국시간 28일 오전 3시) 새로운 결의안 제83호를 채택했다. 그 내용은 유엔회원국들이 군사력으로 북한군을 즉각 격퇴할 것과 이를 위한 즉각적인 지원을 회원국들에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 결의는 유엔 창설 이후 집단안보제도를 실행에 옮긴 최초의 케이스였다. 이에 따라 유엔회원국들의 군사적 지원이 시작되었다. 트루먼 대통령, “유엔군은 강도와 싸우는 경찰활동” 1950년 10월 15일 태평양의 웨이크도에서 만난 맥아더(왼쪽) 장군과 트루먼 대통령.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29일 동경의 미국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보리의 한국지원결정을 ‘유엔의 경찰활동(Police Action under the United Nations)’이라고 규정하면서 “(그것은) 강도들의 기습(Bunch of Bandits)을 격퇴시키는 것을 도우기 위해 취해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같은 입장은 미군의 한반도파견에 관한 트루먼행정부의 공식입장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은 선전포고권이 행정부에 있지 않고 상원에 있다. 트루먼은 유엔의 활동에 협조하는 외교정책의 하나로 파병문제를 처리함으로써 상원의 정식 선전포고를 기다리지 않고 미군을 해외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트루먼은 30일에는 맥아더가 건의한 지상군 2개 사단 파견도 승인해 북한군의 남침 5일 만에 미국은 전면적인 참전에 나서게 된 것이다. 맥아더는 곧 유엔군최고사령관에 임명되어 참전 16개국 군대를 총지휘했다. 트리그브 리 유엔사무총장은 7월 14일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을 통해 유엔기를 맥아더에게 전달하고, 3일후에는 알프레드 카친 유엔 사무차장을 한국에 보내 월튼 워커 미8군사령관에게 유엔기를 전달했다. 경찰과 도둑이 같이 휴전협정에 서명한 역사의 아이러니 6·25전쟁은 그 해 10월 중국의 개입에 따라 전쟁 양상이 크게 변했다. 유엔총회는 1951년 2월 1일자 제489(Ⅴ)호 결의로써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한국으로부터 중공군의 무조건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중공은 이를 거부함으로써 전쟁은 확대되고 장기화했다. 결국 3년 1개월간의 격전 끝에 쌍방 전투원만 도합 320여만 명에 이르는 많은 사상자들 내고 휴전에 합의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은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총사령관과 김일성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그리고 중국 인민지원군사령원 펑더화이 3인간에 조인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조인을 거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정권을 대한민국의 영토인 북한지역을 불법 점령하고 있는 불법단체로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무력에 의한 북진통일을 정부의 기본정책으로 삼고 있었다. 따라서 이승만은 유엔군의 38선 돌파작전으로 모처럼 찾아온 통일의 기회를 박탈하는 휴전협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트루먼이 말한 ‘경찰’과 ‘강도’가 한 자리에서, 그리고 피해당사국인 대한민국은 빠진 채 휴전협정을 조인하는 희한한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이 같은 아이러니는 이듬해 4월 26일부터 6월 1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의 구 국제연맹 건물 회의장에서 재연되었다. 6·25전쟁 관련 19개국의 외상들이 참석한 제네바정치회의가 열린 것이다. 참석국은 유엔군 측에서 남아프리카 연방을 제외한 15개 참전국과 대한민국, 그리고 공산 측에서는 소련·중국·북한 등 3개국이다. 한국정부는 당초에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회담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내세워 참석에 응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한국 스스로가 거부한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줄 우려가 있다는 미국 측의 강력한 권고를 받아들여 방침을 바꾸기로 했다. 제네바정치회의는 한국의 평화적인 통일방안-즉 한반도 통일을 위한 선거 범위, 국제 감독, 외국군 철수, 유엔 권위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토의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양측의 현격한 입장차이로 회의는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6·25전쟁 직후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도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이 회의의 결렬로 한반도는 휴전체제가 그대로 유지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문제는 1990년대에 이르러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계기로 다시 국제문제로 등장했다. 이번에는 남북한과 미중의 4자회담, 그리고 나중에는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를 더한 6자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북핵 폐기 문제와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체제구축문제도 논의되면서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4자회담과 6자회담 역시 약 20년간 시간만 낭비한 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성공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북한의 김정은은 작년 11월 ‘화성-15형’ ICBM 시험발사로 일단 핵 보유라는 소원을 성취했으나 즉각 안보리의 전면적인 경제제재에 직면해 새로운 체제 위기에 빠졌다. 이 때 구세군처럼 나타난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었으나 현재 판세는 묘하게 뒤바뀌어 이제는 문 대통령이 도리어 미북 양측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샌드위치 처지가 되고 말았다. 8·15경축사를 통해 대담한 승부수를 보인 문 대통령 그 동안 미북 양측으로부터 압력을 받으면서도 나름대로 신중한 행보를 보인 문 대통령은 8·15경축사를 계기로 적극적인 태도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전까지 그가 견지해온 ‘한반도운전석론’이 ‘한반도주인론’으로 격상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한반도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다음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9월 평양방문 계획을 밝히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한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 경제지원을 결정하려던 종래의 방침을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북한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역전술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그는 그야 말로 ‘담대하게’ 남북한 철도 및 도로 연결과 북한 측 철도 및 도로의 현대화 프로젝트, 그리고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철도공동체 설립구상을 발표했다. 그는 또한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한다는 계획도 아울러 발표했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김정은 1차 판문점 회담에서 합의한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사용할 전력 공급선 개통은 지난 14일 이루어졌다. 문제는 미국 측의 반응이다. 트럼프 행정부 뿐 아니라 미국 학계와 언론의 반응이 냉담하다. 미 국무부 헤더 나워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평화체제 보다 한반도 비핵화이다”라고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구상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소리방송(VOA)은 “남북한 철도협력은 북한에 대한 유엔제재에 의해 엄격히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북한의 성의 있는 비핵화조치가 선행되어야만 경제협력 또는 종전선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미국정부 방침을 보도했다. 영국의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문 대통령이 발표한 남북철도협력계획을 소개하면서 “남북경협 계획이 미국을 분노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드디어 미국 측은 남북연락사무소 개소조차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문 대통령의 북한비핵화 정책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북한 비핵화는 모든 남북 현안에 우선해야 할 것이며 대한민국은 유엔 제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측이 남측의 호의에 감동해 핵을 포기하리라고 보는 안이한 인식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의 멘토인 김대중과 노무현의 잘못된 북한정세 판단을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연재 끝> (2018년 8월 20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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