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오염된 영혼을 십자가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이 되어 주의 말씀을 받아 먹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본문 주해)
1절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새번역)
그리스도께서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해 주셨는가?
그것은 율법과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것을 따르던 것에서부터, 여러 가지 종교 규정으로부터, 사회적 압제와 종교적 문화적 차별로부터, 또 육체와 그 정열과 욕망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것이다.
한 마디로 세상으로부터 자유케 하신 것이다.
2~4절 :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만 구원을 얻는데, 여기에 할례를 행하여야 한다고 하는 자들이 교회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듣고 할례를 받는다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는 새 언약을 버리고 옛 언약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느 인간도 지킬 수 없는 옛 언약으로 들어가는 것은 저주 아래 들어가는 것이 된다.
그것은 모든 율법을 완성하시고 또 모든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를 행한다고 하는 것은 다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하여 들어가는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되는 것이다.
5~6절 : 종에서 벗어나 아들이 된 자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다루어 가시는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게 하신다.
사람이 자기를 단장하여 가져갈 의가 있다면 자기 자랑하기 위하여 기다리겠지만,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아는 사람은 완전한 의의 소망이 오시기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할례를 받았다.’ 또는 ‘나는 할례를 받지 않고 바로 믿었다.’ 하는 것들이 다 소용이 없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다.
이는 종으로 일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오직 성령의 열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지만 사람이 금할 수도 없는 것이다.
7~9절 :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 복음을 순종하며 잘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만’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기들의 가치와 교리와 주의와 주장을 받아들여야 온전한 구원이 된다고 말하는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 거짓 교사들의 꾐은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았고, 사람들로 자기들을 따르게 하기 위한 이기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가르침은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듯 그들의 주장은 교회를 무너뜨릴 만큼 파괴력이 큰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서 누룩을 두 가지로 비유한다. 하나는 천국을 설명할 때에 누룩으로 비유하고(마13:33), 그 외의 누룩은 잘못된 교훈과 교리를 누룩으로 말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마16:6, 막8:15, 눅12:1) 하셨다.
10절 :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을 따라 다른 생각을 품지 않을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한다.
이 확신은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들의 열심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이므로 가능한 것이다. ‘주 안에서’는 그런 다른 복음을 들고 오는 자들이 있다고 하여도, 오히려 복음 안에 있는 자를 견고하게 할 것이다.
그와 함께 성도들을 교란시키는 자들은 누구든지 심판받을 것을 확신한다.
11~12절 : 바울이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전했다면 박해받을 이유가 없었다. 바울은 할례를 전하지 않고 십자가를 전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박해받았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요구하고 십자가를 걸림돌로 생각하여 배척하였던 것이다.
복음을 제대로 전하면 반드시 걸림돌이 되는 십자가를 직면하게 된다.
사실 구원 받는 자들도 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야 한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십자가의 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한 메시아, 내가 원한 복음, 내가 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무너져 내리는 그 자리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할례를 주장하여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박탈한다면 차라리 거세하라고 하며 그들을 비난한다.
“할례를 가지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의 그 지체를 잘라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12절, 새번역)
(나의 묵상)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 마음이 흔들리는 갈라디아 교인이지만, 바울 사도는 그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다.(10절)
그 확신은 바울이나 갈라디아 교인들의 열심 때문에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확신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 주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결국 진리 위에 든든히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18:9)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온갖 종교적 규정을 잘 지켜내는 것이 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망각하고 종교적 행위에 몰두하는 자는 자기 의를 세워 하나님의 의를 거스르는 자가 된다.
이러한 행위는 자기 공로와 자기 자랑으로 가는 길이요,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와는 정반대의 길이니, 이런 자들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이 아니다.
주 안에 있다는 것은 복음 안에 있다는 것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가 행하신 구원의 사건-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 보이심-이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의 비참함을 보고, 이 복음을 듣고 또 들으며 아버지 집에 거하는 생명을 누리는 자가 주 안에 있는 자요, 참 자유자이며 참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내게 다른 복음이 올지라도 나는 더더욱 굳건하게 진리 위에 서게 될 것이다.
매일의 말씀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나를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심으로 굳건하게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과거에 걸림돌이 되어 얼른 눈앞에서, 마음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던 십자가가 이제는 자나 깨나 마음에 품는 보배가 되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묵상 기도)
주님,
갈라디아 교인들의 흔들림에 안절부절못하다가도
오늘 주님 안에서 확신하는 바울을 보며 기뻐합니다.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 미련하고 부족한 것도 우여곡절 끝에 주님 안에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거름을 주시고 북을 돋워주십니다.
하지만 저는 참으로 더디 자라는 존재입니다.
째깍 알아듣지도 못하고 수없는 시행착오 속에 살아갑니다.
그럴지라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한없이 기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다만,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뒤로 물러나지 않도록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