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 시온에서는 여인들이 짓밟히고, 유다 성읍들에서는 처녀들이 짓밟힙니다.
5:12 지도자들은 매달려서 죽고, 장로들은 천대를 받습니다.
5:13 젊은이들은 맷돌을 돌리며, 아이들은 나뭇짐을 지고 비틀거립니다.
5:14 노인들은 마을 회관을 떠나고, 젊은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5:15 우리의 마음에서 즐거움이 사라지고, 춤이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
5:16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으니, 슬프게도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5:17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의 가슴이 아프고,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5:18 시온 산이 거칠어져서, 여우들만 득실거립니다.
5:19 주 하나님, 영원히 다스려 주십시오. 주님의 보좌는 세세토록 있습니다.
5:20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우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으시며,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오래 버려 두십니까?
5:21 주님, 우리를 주님께로 돌이켜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셔서, 옛날과 같게 하여 주십시오.
5:22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습니까? 우리에게서 진노를 풀지 않으시렵니까?"
◈ 주해
1.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대한 소망마저 끊어진 절망에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며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움을 통하여, 주님을 나의 기업으로 삼고 주님의 구원을 기다린다.
1) 그러나 하나님이 백성들을 살필 때까지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2) 하나님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시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죄를 책망하신다.
- 예수님도 바리새인을 책망할 때, 자기만이 아니라 남도 지옥가게 한다고 책망하셨다.
2. 5장에서 예레미야는 언약백성이 바벨론에 의해 당한 재난을 고백한 후에,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면서 애가는 끝난다(19-22절).
1) 굶주린 백성들이 먹거리를 얻으려면, 적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어야 했다.
2) 예레미야는 언약 백성의 멍에가 너무 무겁고 기진하나 쉬지 못한다며 주의 긍휼을 구한다.
3. 여인들이 시온에서, 처녀들이 성읍에서 수치(강간)를 당했고 지도자들은 손을 묶여 매달리고 장로들의 얼굴은 멸시를 당한다.
1) 젊은이들은 맷돌을 견뎌내야 하고 아이들은 나뭇짐을 지고 비틀거리고, 장로들은 성문에 앉아서 어른 노릇을 못하고 젊은이들은 춤추고 노래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아뢴다.
4. 그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졌다.
5:15 우리의 마음에서 즐거움이 사라지고, 춤이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
5:16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으니, 슬프게도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1) 예레미야는 한참 동안 우리의 비참함, 슬픔, 통곡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2) 그러나 하나님 탓, 바벨론 탓, 심지어 백성 탓을 하지 않는다.
- 백성과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심판의 이유를 안다고 한다.
5.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더 영향을 받는다.
1) 예레미야의 감정에 대한 표현은 극한적이다.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슬프지만 이 재난의 이유가 “우리의 죄 때문”임을 인정한다.
2) 나의 죄 때문에 마음이 피곤하고, 눈들이 어두워졌음을 인정한다.
5:17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의 가슴이 아프고,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6. 예레미야는 슬픔 중에도 바른 믿음의 고백으로 애가를 마친다.
5:19 주 하나님, 영원히 다스려 주십시오. 주님의 보좌는 세세토록 있습니다.
1) 지금의 상황이 어떠하던, 지금의 느낌과 감정이 어떠하던,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주님의 보좌는 세세토록 있다.
2) 그리고는 우리가 처한 처지, 우리의 느낌을 그대로 아뢴다.
5:20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우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으시며,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오래 버려 두십니까?
3) 이는 예레미야가 믿는 바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 백성들의 느낌과 정서다.
- 만약 이것이 그가 믿는 바요 진리라면 이후의 기도를 하지 않는다.
7. 예레미야는 진짜 하고 싶은 기도,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마지막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5:21 주님, 우리를 주님께로 돌이켜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셔서, 옛날과 같게 하여 주십시오.
1) 이전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주님께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선포했다.
3:40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보고, 우리 모두 주님께로 돌아가자.
3:41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손을 들어서 기도하자.
2) 선지자들의 공통된 메시지이며, 이는 옳은 말씀이고, 우리는 주께 돌아가야 한다.
8. 그런데 예레미야가 백성과 연합되어 고난 받는 자의 자리에 있으니, 우리는 너무 연약하고, 하나님께 스스로 돌아갈 힘과 믿음조차 없음을 보게 된다.
1) 물론 주님의 주권적인 통치와 주권적인 사랑을 의지한 고백이다.
2)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먼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먼저 우리를 찾아 오셔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그래서 먼저 주께 간구한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1) 그러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다”며 우리의 순종을 고백한다.
2) 시내산 언약은 “선 순종 후 경험”이 기본이다. 이미 베푼 은혜로 인하여 순종하면 제사장 나라가 된다. 이것이 언약 백성이 마땅히 행할 바다.
3) 그러나 예레미야는 우리의 처지, 우리의 믿음, 우리의 영적 건강 상태가 매우 허약함을 알기에 햇불 언약대로 “먼저 주께로 돌이키는 은혜를 베푸시면, 순종함으로 돌아가겠다”는 기도를 드린다.
4) 예레미야가 이 기도를 했다면,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도 이 기도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이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10. 먼저 주께서 우리를 돌이켜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히며 애가를 마친다.
5:22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습니까? 우리에게서 진노를 풀지 않으시렵니까?"
1) 이는 반어법이다. 주님은 우리를 아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진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먼저 주께서 우리를 돌이켜 달라”고 기도하며 애가를 마친다.
2) 나의 연약함이 한없고, 나의 힘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십자가 사랑을 의지하여 “주께서 우리를 돌이키시면, 우리가 주께 돌아가겠습니다”라고 기도해야 한다.
◈ 나의 묵상
예레미야가 계시하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 주님은 한심한 백성들을 정죄하는 자리에 있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우리”라고 하신다. 그리고 순종하여 생명을 누리라는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만을 선포하지 않으신다. 물론,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순종함으로 언약적 복을 누리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자들, 심지어 그렇게 할 수 없는 자들의 눈높이까지 내려오신다. 그리고 그 결정체로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습니다”라는 기도로 나타났다.
“우리 자신을 스스로 조사하여 여호와께 돌아가자”고 했던 예레미야가 한발 더 물러나 주께서 먼저 우리를 돌이켜 달라고 기도한다.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해 주신다. “용호야, 너 자신을 돌이켜 살펴보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자”라고 하시던 주님이 그러지 못하는 나를 아시고는 “아버지 용호를 아버지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면 용호가 아버지께로 돌이킬 것입니다”라고 기도해 주시는 것 같다.
예레미야는 심판의 선지자니까, 눈을 크게 부릎뜨고 독기 어린 눈빛으로 칼 같은 말씀을 선언할 것 같다. 그런데, 예레미야처럼 따뜻하고, 정이 많고, 부드럽고, 공감하고, 체휼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왜 예레미야는 나를 정죄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까지 내려와 내 입장에서 하나님께 기도해 준다. 그 높은 선지자가, 그 믿음의 사람이, 나의 연약함을 알고, 그곳에 함께 머물러 준다.
성육신 하신 주님, 죄가 되신 주님, 거절 당하신 주님, 주리신 주님도 그렇게 해 주셨다. 십자가 위에서조차 “아버지 용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용호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그 사랑이 나를 용서했고, 그 사랑이 나에게 생명을 주었고, 그 사랑이 나의 주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주님은 그런 사랑으로 나와 함께하신다. 그리고 나도 그 때처럼 기도한다. “먼저 찾아와 주신 그 은혜”로 다시 먼저 돌이키시고, 다시 먼저 다가와 주시고, 다시 먼저 은혜 주시기를 기도한다. 이렇게 무리한 요청을 드릴 수 있는 주님이시다. 주께서 돌이키시면 주께로 돌아가겠습니다.
◈ 묵상 기도
예레미야가 계시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눈물과 통곡으로 소원을 아뢰며, 예루살렘을 위해 울며, 나의 허물과 죄에 연합되시며, 나와 함께 시험을 당하신 주님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나와 함께하신다. 가장 무서운 심판과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따스한 사랑과 긍휼이 나를 향한다. 돌아가자고 해도 돌아가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 주신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시는 성령님이 계시다. 세상 소망이 다 사라져도 주의 사랑은 끝이 없다. 먼저 찾아오셨던 그 사랑, 먼저 베푸신 그 사랑을 다시 구한다. 기쁨이 그치고 슬픔이 되어도 주의 인자와 긍휼은 무궁하며, 주의 성실하심은 크시다. 예레미야와 함께 애가를 부르기를, 예레미야와 함께 아침마다 새로운 인자와 긍휼을 보기를, 예레미야와 함께 주 앞에 머물기 원한다. 주님, 주님의 일을 수년 내에 행하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영의 생각을 따라 주 품안에 거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