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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1일 월요일 청천 대조사 열반제
저녁 식당에 갈 때 랑정이 친구 방주영군이 업어주었다.
오늘은 일어나서 어제처럼 또 샤워를 하였다.
어제는 물이 차가웠으나 오늘은 더운물이 나와서 개운하게 샤워를 한후 오징어 덮밥을 시켜 주어서 먹었으며 11시반경에 전시장에 나가니 아버지께서는
썅용 그룹에 작품 3점을 기증하러 가신다고 성천시인과 가신 후에 우리를 황숙자시인 진탁 이렇게 있다가 2시경 아버지 도착 중식을 설렁탕시켜서 함께 먹은 후 아버지는 맥이 빠진 모양이다.
그런데 강원도에 살고 있다는 진철스님 이란 법명을 가진 분이 55,6세정도 되는분이 일금 3십만원 찬조하시고 진탁이가 한 오십만원 도울테니 낼수 있도록 해 보자고 약속 한후에 말없이 가셨다.
그리고 랑정이 교우들이 쌍쌍이 함께 와서 얘기하다 저물어서 식당으로 간다하여 나는 먼저 나왔다.
소피를 본후 랑정이 후배 방주영군이 업고 간다면서 날 업어주었다.
아버지가 부탁하시여 식당에 가서 저녁이 끝나고 소주 두 잔을 한후
최명숙씨 한태 불경테이프 두 개를 부탁 한후 포항에 갈 볼일이 있는데 갔다 오는 길에 들인다고 하였다.
이렇게 식사 끝나고 모두 빠져 나간 후에 성천시인이 여관까지 업어다 주고 작별인사를 한후
아버지 23일 날 모두 각자 집으로 내려가도록 준비하라고 한다.
24일날 작품을 집으로 가지고 갈려면 일찍부터 포장해야하고 우리한태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하신다.
오늘 일찍 충호가 교도소로 간다하여 돈 만원을 여비에 보태 쓰라고 준 후
아버지 작품 깨뜨리지 말고 나도 한점 주세요? 하였더니 기분이 상한 모양이시다.
그렇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우리를 어떻게 한번 크게 해볼 생각이였다고 아주 잘 되리라 믿어떤 일이란다.
5월22일 화요일 청천. kbs 방송작가 방귀희선생님
휠체타고 서울 광화문 중앙박물관을 돌았다.
불교방송 오진수 아나운서 취재를 해갔다.
오늘은 8시반경에 기침을 하여 세수만 하고 모두 먼저 나간후 어제 세탁비 받으로 와서 삼천오백원 준 후에 조반 시킨 것이 와서 먹고 일기 정리를 하고 있다니 랑정군이 마침 왔다.
아버지가 아저씨 빨리 나오라고 해요.
방송국에 취재하러 나온다 하니까요 하여 서둘러 나갔다.
11반경 나갔다니 최명숙씨 황숙자씨 와 있었다.
조금 있다니까 불교방송 이승원 아나운서 19일 취재 20일 방송 된 테이프 가지고 왔다.
오진수 아나운서 취재 왔으며 불교신문사에서 편집부장 최모모 여부장이 카메라 기자와 함께 다녀가고 또 KBS 방귀희 방송작가도 다녀 간후 명함 한 장을 얻었다.
그리고 안태원이와 함께 서울시 구경을 나갔다.
중앙박물관 광화문 앞 세종문화회관을 돌아서 신한은행 등 한국일보 동덕미술관을 지나 두루 휠체를 태워서 밀고 다녔다.
중식은 순두부를 시켜서 먹은 후에 놀러 경복궁 등 구경갔다 오라고 만원을 주었다.
안태원이 한태 전화 했더니 미술관에 찾아왔다.
허경선 황숙자 최명숙 젊은 신인들 앞에서 간다고 오늘 갈까요 하니 취소하란다.
24일날 인천까지 갔다가 가라고 그렇게 약속 하라고 한다.
기분상한 것을 억지로 참고 하는 일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
진실로 우리들을 위하여 보살행을 하는지 알고 싶다.
6시 반경 여관에 들와서 옷을 벗고 일기를 정리 하다가 김진탁이 먼저 들어와서 심경을 토론하여 서로 오해가 풀린 다음 선생님 들어오신다.
저녁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후 이용당한 느낌을 주며 모든 사회인식이 나쁘다고 설명하고 자정이 되어 잠을 잤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 마하살 관세음보살
오늘은 랑정 랑부 진탁 4명이 잤다.
5월23일 수요일 청천. 문예회관 대극장 관람
금일은 기침 전 의부 랑승만께서 어제 밤에 저가 폐부 가슴을 아프게 찌른 말로 잠을 못 이루었다고 한다. 따지고 물으시었다.
진실로 정도로 행하면 마음이 아플 수도 없다.
샤워 한후 조반을 한후 윗옷을 어떻게 벗겨야만 입을텐데 마침 최명숙씨가 왔다.
진탁이 원고정리를 하려고 가방을 가지러 왔다.
옷을 내려 입는데 도와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앞으로 글 쓰는데 대하여 많은 도움을 주기를 명숙씨 한태 바라며 서로에 의견을 토론하고 만원을 내 정표로 교통비에 보태라고 안 받으려 하는 것을 주고 곳 뒤따라 나갔다.
동서식품 이사가 와서 작품 한점을 사 가지고 가신후 19일 불교방송 나간 것을 녹음을 하였다.
명숙씨가 문예회관 대극장 4천의 착한여자 관람권을 두장 주면서 누구하고 함께 가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 어떻게 할까요 하니 마음으로는 싫으나 어쩔 수 없이 갔다 와 하시는 느낌 이였다.
중식이 끝나고 부름에 전화 부탁하니 오후 6시까지 오라고 하니 교통이 막혀 연결이 잘 될지 모르겠다하여 안태원이 한태 전화하니까 형수가 받았다.
인사하고 태원이 한태 얘기하니 나오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하면서 7시쯤 다시 전화 달라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고 기다리며 있다니 이원섭 교수 불교학자인대 축사를 하여 주신분이 왔다.
개막식날 작품 한점 팔린 것을 십만원씩 봉투에 수표를 넣어 드린 모양이다.
돈 만원 넣었나 생각하고 안 받으면 옆에 두분이 안 받으실까봐 받았더니 집에 가서 본즉 십만원짜리 수표이므로 그냥 돌려 드리려고 왔다며 명분없이 받아서 안 된다며 반환하신다.
정말 양심적인 말씀이다. 많은 감동을 받았다.
무상 비구니스님 두분이 상도동 칠보사에서 왔다고 했다.
아름다운 선생님 팬이 너무 여러 명이 찾아왔다.
더러 인사도 하고 이희선 선화 양은 네 여자친구 기숙이와 꼭 닮아서 기숙이가 찾아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저녁때 5시50분경 부름에 전화에서 자봉한분이 나왔다.
인사 하고 아버지 시집한권을 싸인해 주면서 잘 부탁한다 하여 기분이 좋았다.
책값 뿌리에서 권당 천원씩 원가로 해주고 팜프렛도 250원씩 뚝 반으로 줄여서 백26만원만 달라고 했다.
모두가 고마운 분들이다.
휠체타고 나가서 택시를 잡으니까 금방 세워 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날 가볍게 들어서 택시에 태우고 휠체는 트렁크에 넣어 문예회관에 도착하니까 천원이 나왔다.
올라 갈 때도 태워 가지고 올라 간후 태원이 한태 전화하니 태원이도 날 도우로 또 미술관으로 나왔다고 했다. 천명이상 모인 극장 안에 모두 20대 대학생 들 뿐인 것 같다.
멋진 곳에서 생소한 구경을 했다.
이해는 잘 못 했지만 한번쯤 본 것을 오래 기억에 남기며 모든 분들게 감사드리며 9시반경 끝나고 돌아올 때 팜프렛 천원주고 한권 사가지고 여관까지 택시 타지 않고 그래도 휠체를 밀고 얘기하며 밤 야경을 구경했다.
저녁을 시켜 먹은 후 아줌마께서 마침 손님이 없어 직접 구워주신다.
1인분 삽겹살 술 안주 하려고 아버지 드리려고 추가로 더하여 싸주는 것을 가지고 오다가 포도주를 천원주고 한병 샀다. 들와서 드렸더니 좋아 하셨다.
너무 기분파이시며 활달하시다.
오다가 전화박스에 들어가서 집에 전화를 했더니 제수씨 받았으며 별일 없다고 하였다.
내일 모래 25일날 집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구인사 21일 날은 못 간다고 했으며 과원에 약을 쳤다고 한다.
이렇게 오늘은 예상외 최명숙씨 배려로 구경을 잘 하고 많은 연고 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어제 밤에 코를 골았다 하셨다.
내가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감사한 하루를 끝마치고 최명숙 김진탁 시화를 한점씩 묶어주고 나는 난초 시조시인님 작품 한점을 주신다고 약속 하신다.
참으로 저희들을 모아서 이렇게 한다는 명목하에 작품을 기증받아 이렇게 하고 남은 작품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하니 기쁘고 오래도록 기념이 될 것 같다.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지장보살 마하살
5월24일 우천 목요일.
서울에서 8일째 전시회폐장 하는 날.
한없는 감사에 기도 드리는 마음으로 오늘 전시장에 나갔다.
조반은 내가 시킨 후에 먹은 후 돈은 몽땅 선생님이 그동안 방값 식대 등을 지불하셨다.
난에게 시조시인 작품을 저를 주신다 했는데 녹차 집에서 2십만원에 사갔다고 하시며 저에게 줄 기념작품은 어떤 것을 주어야 할지 생각해 본 후에 줄게 하셨는데 중식을 먹은 후에 전시장에는 오늘 김충호 막내 동생 김충선양이 27세가 와서 사무를 보고 있다.
큰스님 조동종 종정 큰스님과 오늘 두 번째 악수를 하였다.
큰스님께서 작은 글씨 해설을 해 주셨다.
왼쪽 것은 다음에 적어 보내주면 해설해 주겠다고 하셨다.
정말 이번에 와서 여러 훌륭하신 분들을 만나 뵐수 있어서 감사하고 이렇게 훌륭한 불심이란 대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내가 죽은 후에라도 가보로 삼을 정도로 불상을 모시듯 걸어놓고 염불하겠다고 마음먹고 진탁이는 3시쯤 동생들이 데리러 와서 내 작품을 여관에 같다 놓고 갔다.
선생님은 인천에 다시 가서 월미도 바닷가 구경도 한후 회포를 풀고 가라고 하였으나 이층이라 다니기 불편하여 자본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사양하고 오늘은 혼자 여관에서 묵게 되었다.
아쉬운 작별을 하니 눈물이 나온다.
얼굴을 껴안아 주시며 힘내라고 용기 잃지 말라고 약속은 꼭 지키겠으며 유월중순쯤에 꼭 찾아온다고 하셨다.
모두 함께 작품을 싣고 8시반경 돌아갔다.
나는 혼자 샤워를 하고 맥주 한병을 하고 진탁이 전화가 왔다.
선생님도 10시반경 도착하였다고 전화가 왔다.
오늘은 기쁨과 함께 헤어지는 아쉬움이 남았다.
부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후라도 인연 있는 분들과 연결이 되기를 빌면서 기도했다.
관세음보살
5월25일 청천 금요일 서울에서 집에 도착한 날.
6시반경 기침해서 샤워를 하고 누웠다니 랑시인께서 전화가 왔다.
8시10분 어제 밤 비디오를 시청하다가 2시 넘어 잤더니 잠이 부족했으나 조반을 시킨 후에 짐을 정리 하다니 조반이 배달되어서 먹고 또 선생님 전화 3번째 왔다.
진탁이도 전화를 하여 잘 가라고 했다.
옷을 모두 입고 있다니 최명숙씨가 왔다.
대화를 하고 있다니까 부름에 전화 김기준씨가 또 왔다.
불심액자를 먼저 터미널에 같다 놓고 오도록 해야 한다고 택시에 넣어서 올수 있으나 명숙씨와 대화를 좀더 나누고 싶어서 그렇게 하도록 하고 얘기하다보니 11시 반이 거의 다 되어간다.
24분 명숙씨 서둘러 학교로 뛰어가고 우리 두사람 짐을 챙겨 나와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오니 3600원이 나왔다.
차표를 끊은 후 제수씨 선물을 화장품 사철용을 2만원 주고 사가지고 서둘러 준비하여 출발 중부고속을 타고 내려오면서 대화를 하다보니 시간이 잘 갔다.
문경세재를 넘어 오기 직전에 휴게소 내려 소피를 보고 김밥 도시락을 기준씨가 서울역 앞에서 사가지고 준비해 둔 것을 먹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 명숙씨 주소 전화번호도 가르켜주고 내 주소 되로 부름에 전화에서 격월간 배부하는 회보도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족은 아버지 외항선 타고 동생들 대학 한명 다니고 고등학교 그리고 성남에서 돈 벌이 한명 한다고 했다. 그런저런 얘기를 하고 안동에 도착 4시간이 걸렸다. 빨리 온 편이다.
택시를 물으니까 2만원 임동으로 돌아야 한다고 했다.
정홍이 명수 전화번호를 가르켜주고 아무나 있는 데로 나오라고 전화했더니 40분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기준씨 내일 올라갈 차표를 사가지고 마침 도착하여 날 태워 주고 불심액자도 싣고 출발했다.
우유를 한통 사주었다. 형호 기사 서비스였다.
6시 반쯤 도착하여 액자를 걸고 아버지께 포도주 한병 사온 것을 드린 후에 인천에 전화를 하였다.
무사히 도착했다고 제수씨 경운기 몰고 과원에 갔다가 도착 일찍 왔네요? 하였다.
화장품 선물을 사 왔더니 돈 드는데 왜 사왔냐고 한다.
사철용 아무 때나 발라도 되는 것으로 사왔다.
처음으로 내가 직접 선물을 사가지고 전했다.
석식이 끝나고 아버지께서 백부 오셔서 인감 좀 떼 달라고 하여 장기자금 2백만원 5년 거치 5년 분활 상환하는 것을 보증 섰다 한다.
작년에 안된다 한다고 네 한태 와서 하신말씀 벌써 잊어 버렸나?
왜 내가 없을 때 와서 빌려갔나 분노가 치밀었다.
큰집 종형 도장하고 두 개로 했다고 한다.
왜 다시는 빌리지 않겠다고 말해놓고 왜 내가 없을 때 빌려갔냐?
제수씨 친정 고추 묘종 부탁하여 남은 것 뽑아다주고 돈은 얼마 줬는지 모르지만 내가 없을 때 기회를 노려 아버지와 제수씨를 꼬여서 도장을 빌려갔다.
하늘이 두쪽 나도 내가 있었으면 빌려주지 않았다.
오늘은 피곤하여 일기를 쓰다 잠이 와서 11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5월26일 토요일 청천. 가게 청소 정리
7시 기침하여 조반 먹고 세수하고 책을 읽다가 밖에 나가 가게 정리하고 청소해 놓고 마루를 쓸고 닦은 후에 방도 닦았다.
잔디네 팜프렛 반년만에 온 것을 장애인 복지신문을 읽다가 법무교화신문을 읽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중식을 한후 최명숙씨 한태 무사히 귀가 하고 이번에 참석해서 따뜻하게 보살펴 준 것에 감동하였다 하고 법무교회 신보에 기사가 주간보에 나왔을 터니 수고스럽지만 사가지고 보내 줄 수 없을까요 하니 네 네 알았습니다. 하고 채혜주 병원 입원 한 것을 어느 병원 인지 알아보려고 선생님께 전화하여 문하니 모른다 하더란다.
채혜주 시집에 전화가 나와 있어 다 알고 있으면서 선생님 속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명숙씨 그렇게 유도신문 한후 알고 있는 데로 전화 해본다 하니까 해보지 말라 하더란다.
진실한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서 사실이 밝혀질까봐. 사실이 불안초조 하여 괴롭도다.
김실이 한태 전화 매부도 함께 통화 한후에 서울 갔다 온 얘기를 하고 책을 읽다가 휴식을 취하고 석식을 먹고 티비 시청하고 아우 연금 찾은 것 21000원을 주었다.
큰집에 전화를 하여 백부 인감 내 가지고 얼마나 돈 경감 서환 하는데 쓴 줄 알고 계시냐니까 2백만원이라고 하더란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5월27일 일요일 청천
4종제 오경을 만났다.
전일과 같은 일과의 오늘은 티비 뒤에 있는 향로를 꺼내서 향을 사르기 위하여 모두 쓸어내고 닦았다.
제수씨 물건하고 떡도 하고 한다고 안동 나가시고 목란동인지 사랑하는 마음하나 만으로 를 읽었다.
감동 깊게 읽었다.
중식을 아버지 차려 오시어 먹은후 오후 졸음이 와서 누웠다니까 제수씨 벌써왔다.
얼음을 사오시어 나누어 주었다.
4시쯤 사종제 오경 윤미 아빠가 강습 받으로 경주에 왔다가 휴가를 받아 오늘밤에 아지매 기일이여서 모두 왔다고 하였다.
내 얼굴이 좋아지고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니 반갑다고 서루 악수를 한후 아버지께 큰절로 인사 한후 맥주 두병하고 안주 7백원 어치를 선례한태 시켜 가져오라 한후 서울에 다녀온 얘기를 하고 팜프렛과 시집을 보여 준 후에 전화번호를 서로 적은 후에 얘기를 더 나누고 싶으나 아지매 전화가 왔다.
얼른 가지고 반시간 정도 머물렀다 간후 서로를 위하여 맥주잔 브라보를 하고 마지막 잔을 비웠다.
저녁때 경을 듣고 랑선생과 만나게 된 과정을 다녀와서 소감을 쓰려고 초안을 하고 있다.
내가 후기에 이번 바라밀 전시회를 보고 느낀 점을 쓸까 한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5월28일 월요일 청천
단오날 외사촌 병진이 마지막 휴가 나와서 다녀갔다.
오늘이 단오날인데 겨울이여 유형의 겨울 이여를 독서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니 백부 오셨다.
벌써왔냐 하시며 소주 한병 아부지 따 가지고 잡수신다.
나는 책만 보고 있다니까 소주 니도 한잔 할래 하는 것 되써요 잡수시라 했다.
내가 없을 때 아부지 인감을 띠 가지고 농가부채 경감 서환 하는데 써 다고 말하지 아니한다.
먼저 나도 모른척하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가신 후 병탁조부 타계 하셨다고 하였다.
어제 태구 왔다 간후 길수 엄마도 다녀가신 후 오늘 중식은 아부지 차려 잡수시고 저녁때 외사촌이 마지막 휴가를 나와서 다녀가려고 왔다.
약술 한잔 하다니 박세환씨댁께서 들어오셔서 얘기하며 한잔하시고 가셨다.
외사촌이 와서 곡차 한잔하고 있다니까 김성천씨가 와 있어 함께 한잔 하고 있다 하셨다.
성천씨와 전화로 인사하고 나중에 또 연락 준다 하고 끊었다.
저녁 꿀꿀이 한근 사와서 야외 휴대용 가스렌지와 보온겸용 밥통을 사가지고 해 먹었다.
얘기 외사촌하고 나누다가 곳 바로 취침
손 의원에 피부에 대하여 전화하니까 본인이 못 오면 확실한 설명과 함께 선생님과 직접 통화하고 오면 된다고 하였다.
관세음보살 관세음 보살 관세음 보살
5월29일 화요일 청천.
불광 책이 왔다. 외사촌은 오후 차로 갔다.
금일은 6시 기상하여 세수를 한후에 장날 아침 미원슈퍼에서 음료수 두 상자를 같다 놓고 간다.
조반을 한후 집배원이 불광과 부고 병탁 조부 타계하신 것이 왔다.
아부지 기성이 신발 사 달라고 지갑을 빼서 달아나니까 따라가서 사 신겨 가지도 왔다.
장날인데 장꾼은 별로 없고 오늘 국교 6학년이 수학여행을 서울 어린이 대공원 수족관으로 갔다 온다고 가는구나.
얼굴에 열이나고 무엇이 났다 없어지고 업어지고 또 생기고 제수씨 얼굴이 왜 그래요?
병원 가 봐요 하신다.
겨울이여 유형의 겨울이여를 어제부터 오늘까지 모두 읽었다.
정말 너무 처절하게 비하 하면서 쓰신 시집 이였다.
반쪽 육신이 성하고 아들이 두 명이나 있으며 연립주택이라도 있는데 더 낮은 곳에 사람을 생각하면 그렇게 글을 쓸수없을 텐데 너무 화려한 생활을 하시다가 부인 집나가고 병들고 10년 투병 기간이 정말 유형의 겨울이라 생각된 모양이다.
나도 무엇인가 책을 낼 계획을 세웠으니 써 모아 봐야 할 텐데 생각도 나지 않아 무엇을 소재로 쓸까 책도 좀 더 읽어야하고 아직 부족함이 많아 글을 쓸 수가 없다.
일년 이상 넉넉히 두고 생각하며 오후 외사촌이 대구로 간후 제수씨 쓰레기 갔다 버리고 왔다.
지장보살 마하살 지장보살 마하살 지장보살 마하살 지장보살 마하살
5월30일 수요일 우천 .
아우 병호 조부 문상 다녀 온날
금일은 날씨가 흐린데 제수씨 과원에 가시고 천상병 시집 두권 천상병은 천상시인이다 와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산문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좀 읽다가 책을 읽으면 실증이 잘 나는데 오늘은 시집을 두 권 이상 읽은 셈이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진솔한 이야기 서정시이며 이번에 천상병 시인을 직접 만나서 대화도하고 본인을 이해 할 수 있으므로 사모님도 뵙고 하여 시집을 읽으면서 구구절절 느낌을 많이 받았다.
동생을 만나고 가려고 재종매부 병일이 아빠도 오전에 와서 인사를 하고 갔으며 오후 병일조모도 들려 가셨는데 서울 20일 날 이질 결혼에 오셨다가 평창동 아줌마한태 금화오빠를 만난 얘기를 들었다고 하셨다.
낮 비가 소나기를 한줄기 따르고 지나간 뒤 아우 문상을 다녀 올수 있느냐 문하니 갔다 온다하여 부의금을 만원 넣어 보냈더니 5시경 갔다가 6시경 왔다.
제수씨도 오시고 금방 들어오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내가 글을 쓸 제목을 생각나는 데로 적어봤다.
소재는 많았다. 이 소재를 가지고 얼마나 좋은 글을 쓰느냐가 문제다.
성심상회 아줌마 오셔서 돈을 5만원 임시 빌리로 왔으나 못 빌려 드리고 21일날 배호진씨 봉고 6만원에 구인사 다녀오셨다고 한다.
내가 간 것 보다 더 반가웠다.
책을 읽다가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어제이어 뜸과 수지침을 놓았다.
숨이 약간씩 쉬기 거북한 것 갔기도 하고 가끔 길이 들이쉬고 하는 것이 습관이 된다.
지장보살 마하살 지장보살 마하살
5월31일 목요일 우천.
편지 3통 쓰고 나운영 김정희 외숙...
기상을 하니 비가 내리고 있다.
8시반경 종형수 아버지 도장을 빌리로 오셨다.
빌려드리고 조반이 끝나고 오늘은 나운영군과 김정희와 외숙한테 편지를 각각 3장씩 3통을 쓴후에
천상병 산문집을 읽으면서 중식이 끝나고 오후 독서 하다니
선례 부름에 전화에서 온 팜프렛과 복지신문을 갔다주어 모두 흩어보고 계속 책을 읽었다.
큰집 형수한태 박호숙 어른이 어제 타계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오후 무실어른 전화가 왔다.
부고를 하다보니 우리집에 빠졌다며 뒤우로라도 하게지만은 우선 전화로 알리니 그리 알라.
해동사 구인사 분회 신도생활를 함께 수십년동안 해온 정으로 알려야 한다고 의논하고
전화로 이렇게 알린다고 하였다.
저녁때 경주식당 아저씨 이제 살아봐야 한십년 이제 죽을날 받아 논 것 갔다며 인생무상을 얘기하신다.
저녁을 먹고 (세상에 태어난 인연) 이란 제목을 붙이고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우리들이 태어난 이야기를 쓰다가 일기를 정리하고 취침한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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