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미학, <라디오 스타>
홍 상우
필자는 최근 프랑스의 영화학자인 자크 오몽의 [영화 속의 얼굴]의 한국어 번역판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서 읽었다. 이 책은 영화 분석을 위한 아주 유용한 방법을 제공해주는 저서인데,
여기서 저자는"영화는 독자적인 표현성을 지니는 얼굴의 재현을 통제하면서부터, 얼굴을 의미작용과 의사소통의
도구이자 매개물로 사용하면서부터(중략),하나의 예술이 되었다"(자크 오몽.<영화 속의 얼굴>서울:마음산책.2006.PP.34-35)라고
언급하고 있다. 얼굴의 가시적인 표현력을 어떤 다른 예술보다도 탁월하게 실현시킨 것이 영화이며, 이것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영화 <라디오 스타>는 이러한 '얼굴의 미학'의 개념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안성기와 박중훈의 얼굴은 오랜 세월을 버티어 온 배우라는 현실의 얼굴과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영화 속의 얼굴이
묘하게 결합되어 관객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 두 배우는 몸짓이 아닌 주로 얼굴로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부터 '최고(의 가수)를 연상시키는 88년 가수왕 '최곤'의 얼굴에는 냉소와 짜증이 묻어있다.
하지만 영월에서의 방송 100일을 기념하는 공개방송부터 그의 얼굴은 밝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빗속에서 매니저 박민수를 다시 만나는 영화의 마지막 쇼트에서 최곤은 해맑게 웃는다.
이 영화에서 얼굴 표현으로 인한 관객의 감동이 절정에 이르는 장면은 다방 여종업원 김양이 방송에 출연해서
엄마에게 자신의 가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이다.
이 때 얼굴 묘사는 두 가지 수준에서 진행된다. 즉 스튜디오 안에 있는 김양의 얼굴
(이 때 이 배우가 자기 고백하는 얼굴은 그녀의 구구절절한 대사보다 더욱 절실하게 관객의 정서를 자극한다),
최곤의 얼굴, 피디 및 기타 방송 관계자들의 얼굴과, 중간 중간 삽입되어서 보여지는 영월 주민들의 일상적 얼굴이다.
반면에 순대국 집 주인 아들이 아버지를 찾고, 그 후 최곤 자신이 매니저 박민수를 찾는 방송을 할 때,
얼굴 묘사는 두 주연배우에게 집중된다. 배우 박중훈의 호소하는 얼굴은 물론,
버스 안에서 김밥을 먹으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방송을 듣고 있는 안성기의 얼굴 표현은 압권이다.
그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으면서 최곤에 대한 자신의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은 스스로'얼굴'을 소재로 대화한다.
최곤은 박민수에게 "내 '얼굴'팔고 돈 꾸었잖아"라고 소리치고, 박민수는 "그래,내 '얼굴'너 때문에 다 구겨졌다"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밴드 '이스트 리버'는 공연 직전 서로에게 " 넌 '얼굴'이 안 돼". 성형 수술해도 안 돼"라고 말한다.
역시 '얼굴'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은 최곤의 선글라스이다.
최곤은 가수왕으로서의 자기존재를 나타내려 할 때 선글라스를 쓴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부 가수왕 상을 받으러 무대로 나갈 때,
카페 사장을 구타한 후 택시 안에서, 영월 방송국에 처음 들어설 때, 영월 순대 집에 처음 들어갈 때, 그는 선글라스를 쓰지만,
가수왕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과시할 필요가 없을 때, 즉, 박민수가 떠난 후 순대집에 다시 들러 혼자 술을 마실 때.
서울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할 때, 그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는다.
그가 가죽 잠바를 입을 때와 입지 않을 때도 같은 맥락이다.
이 영화의 탁월한 표현력으로 미루어 볼 때 이준익 감독은 영화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물론 , 정말 유감스럽게도, 이 당연한 말이 모든 감독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족.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신중현의'미인'을 비롯한 한국 록 역사의 빛나는 명곡들을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단 한 곡만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