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문장>(1937)-
해설
[개관정리]
◆ 성격 : 서경적, 묘사적, 시각적, 유미적, 역동적
◆ 표현 : 시선의 이동에 의한 시상 전개
(들길→마을→들→바람→햇빛→보리→꾀꼬리→산봉우리)
섬세한 시어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 제시
남도 지방의 토속어에서 느껴지는 향토적 색채
맑은 서정성과 색채의 대조
사물의 의인화(자연을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노래)
역동적 이미지를 통해 봄의 생동감을 강조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붉은 꽃이 핀 마을길과 푸른 들길의 모습을 동적으로 표현함(오월의 생동감 강조)
마을길과 들길의 선명한 색채 대비
*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 보리가 막 패기 시작하는 모습을, 시골 처녀의 속살로 의인화하여
봄의 건강함을 매혹적이고 관능적으로 표현함.
*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 꾀꼬리는 푸른 들판, 수양버들과 색채의 대조를 이루며 암수가 늘 짝을 이루고
다니기에 다정한 연인에 비유된다.
*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 산봉우리야,
→ 고운 물감으로 채색한 산봉우리는 곱게 단장하고 교태를 부리는 새색시의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당장이라도 사랑하는 이를 찾아 떠날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음
* 오늘 밤 넌 어디로 가 버리련?
→ 화자의 감정이 표출된 부분으로, 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밤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숨어 있음.
◆ 주제 ⇒ 오월에 느끼는 봄의 생동감(오월의 아름다운 자연)
[시상의 흐름(짜임)]
◆ 1 ∼ 2행 : 봄이 가득한 마을과 들길의 정경(들길과 마을 길의 대비)
◆ 3 ∼ 5행 : 바람부는 모습과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의 모습(바람 부는 오월의 들판)
◆ 6 ∼11행 : 꾀꼬리의 정겨운 모습과 산봉우리의 자태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의 시적 자아는 오월의 들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 봄 들판을 자아는 여러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 받아들인다. 그가 인식하는 들판은 밝고 생기가 넘친다. 봄날의 온갖 자연 현상이 주는 생명감이 시 전편에 넘쳐 흐른다. 불과 11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가 이처럼 활기로 가득찬 분위기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이 역동적인 심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날로 푸르러 가는 보리밭 위로 햇살이 가득하다. 햇살 환한 들판 위로 바람이 불어간다. 그 바람의 손길을 느끼기라도 하듯 보리가 가볍게 흔들린다. 바람에 보리가 흔들리는 것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데도 이 시에서는 신비감과 매혹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막 패어나는 보리의 모습을 그는 성숙한 여인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넘실대는 바람과 햇살 속에서 시적 자아가 발견한 관능적인 아름다움은 꾀꼬리로 이어진다. 오월의 대지가 시적 자아에게 전해주는 생명의약동감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소재가 꾀꼬리다. 푸른 보리밭과 투명한 햇살을 배경으로 다정하게 날고 있는 꾀꼬리의 움직임 속에서 시적 자아는 허리통이 환기시켜 주는 관능미와 약동하는 생명의식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김영랑의 주된 장기인 음악성을 통한 시 구성법이 아니라, 회화성을 강조한 시풍이 이채롭다. 그렇다고 시문학파 고유의 음악성에의 경도, 섬세하고 뛰어난 언어의 조탁 등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유독 보기 드물 게 회화적 이미지가 앞서 구사되고 있다는 말이다. 붉음과 푸름의 대비를 통해 5월의 한낮에 느끼는 생명의 약동감을 감각적으로 잘 마무르고 있다.
[작가소개]
김영랑 : 김윤식 시인
출생 : 1903. 1. 16. 전라남도 강진
사망 : 1950. 9. 29.
수상 : 2008년 금관문화훈장
경력 : 1949 공보처 출판국장
강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단장
시문학 동인
작품 : 도서, 기타
[정의]
일제강점기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독을 차고」 등을
저술한 시인.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김윤식(金允植). 영랑은 아호인데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전라남도 강진 출신. 아버지 김종호(金鍾湖)와
어머니 김경무(金敬武)의 5남매 중 장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하였으나 1년반 만에 부인과 사별하였다.
그뒤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난 다음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이 때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洪思容)·안석주(安碩柱)·박종화(朴鍾和) 등의 선배와 정지용(鄭芝溶)·
이태준(李泰俊) 등
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李承萬)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 데
직접·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하였다.
이무렵 독립투사 박렬(朴烈), 시인 박용철(朴龍喆)과도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향리에
머물면서 1925년에는 개성출신 김귀련(金貴蓮)과 재혼하였다.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하기도 하였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있는
삶을 영위하다가, 9·28수복 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시작활동은 박용철·정지용·이하윤(異河潤) 등과 시문학동인을 결성하여 1930년 3월에
창간된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칠수(四行小曲七首)」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후 『문학』·『여성』·『문장』·『조광(朝光)』·『인문평론(人文評論)』·『백민(白民)』·
『조선일보』 등에 80여편의 시와 역시(譯詩) 및 수필·평문(評文) 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전기와 후기로 크게 구분된다. 초기시는 1935년 박용철에 의하여
발간된 『영랑시집』 초판의 수록시편들이 해당되는데, 여기서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인생태도에 있어서의 역정(逆情)·회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 비애의식은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져 정감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요컨대,
그의 초기시는 같은 시문학동인인 정지용 시의 감각적 기교와 더불어 그 시대
한국 순수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940년을 전후하여 민족항일기 말기에 발표된 「거문고」·「독(毒)을 차고」·
「망각(忘却)」·「묘비명(墓碑銘)」 등 일련의 후기시에서는 그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의 의식이 나타나 있다.
광복 이후에 발표된 「바다로 가자」·「천리를 올라온다」 등에서는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의욕을 보여주고 있는데, 민족항일기에서의 제한된 공간의식과
강박관념에서 나온 자학적 충동인 회의와 죽음의식을 떨쳐버리고,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의욕으로 충만된 것이 광복 후의 시편들에 나타난 주제의식이다.
주요저서로는 『영랑시집』 외에, 1949년 자선(自選)으로 중앙문화사에서 간행된
『영랑시선』이 있고, 1981년 문학세계사에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묘지는 서울 망우리에 있고, 시비는 광주광역시
광주공원에 박용철의 시비와 함께 있으며, 고향 강진에도 세워졌다.
[참고문헌]
『모란이 피기까지는』(김학동 편, 문학세계사, 1981)
『전형기의 한국문예비평』(김용직, 열화당, 1979)
『한국현대시인연구』(김학동, 민음사, 1977)
『한국현대문학사탐방』(김용성, 국민서관, 1973)
「조밀한 서정의 탄주: 김영랑론」(정한모, 『문학춘추』, 1964.2.)
「시와 감상: 영랑과 그의 시」(정지용, 『여성』, 1938.9·10.)
[네이버 지식백과] 김영랑 [金永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첫댓글 농촌의 한가로운 풍경을 보네요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월의 마지막날 잘 마무리 하시고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