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先)평화 후(後)안보냐? 선안보 후평화냐?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전쟁 종식(혹은 휴전)을 놓고 대립한 핵심은 평화와 안보의 선후 문제다. 선평화 후안보를 주장해온 트럼프 미 행정부는 1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고위급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팔을 비틀다시피해서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이날 고위급(장관급) 회담에서 한달간 임시 휴전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3년 넘게 이어진 전쟁의 종식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미-우크라 장관급 회담/사진출처:영상 캡처
안드레이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제안한 30일간의 일시적인 휴전을 즉각 수락할 준비가 됐으며, 휴전은 당사자들의 상호 합의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 러시아도 이를 수락하고 동시에 이행할 것이다. 미국은 정보 공유 중단을 즉시 해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재개할 것이다."
양국은 이날 9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담을 끝낸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도 같은 내용이 실렸다.
성명은 또 "양국은 협상팀을 꾸려 우크라이나에 장기적인 안보를 제공할 협의를 즉각 시작하기로 했다"며 "미국은 러시아와 이런 구체적 제안을 논의하기로 약속했으며,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파트너(동맹국)들이 '평화 프로세스'에 참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날 합의는 러시아 측의 동의가 필요한데, 미국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를 모스크바로 보내 미-우크라 휴전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위트코프 특사의 모스크바행(行)은 일찍감치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제다 미-우크라 회담 참석자들. 왼쪽부터 왈츠 보좌관 루비오 장관 예르마크 실장 시비가 장관 우메로프 장관/사진출처: 텔레그램@ermaka2022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회동 후 "우크라이나 평화와 관련해 공은 이제 러시아 쪽으로 넘어갔다"며 "우크라이나가 긍정적 조치를 했으니 러시아가 이에 화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회담에는 미국 측에서 루비오 국무장관과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과 시비가 외무장관, 우메로프 국방장관이 참석했다.
회담은 현지 시간(한국과 6시간 차이)으로 정오(12시)에 시작돼 3시간 회담하고 1시간의 휴식한 뒤 다시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휴식 시간에는 양국 대표단이 각각 본국에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협의 혹은 결론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가 기존의 노선(선안보 후평화 원칙과 공중및해상의 부분 휴전안)을 포기하고 미국측 제안에 응한 대가는 군사 정보의 공유 중단 조치 해제다. 성명은 "미국은 정보 공유 중단을 즉시 해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 지원 중단 조치 해제는 이번 합의에서 빠진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우크라이나군에게 무엇보다 화급한 것은 미국의 위성 정찰및 감시 자료 등 군사 정보였다. 미국의 정보 공유가 중단된 최근 며칠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과 쿠르스크주(州) 반격 작전에 시달리면서 미국의 주요 군사 정보가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크코프 중동특사/사진출처:영상 캡처
미국은 제다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선평화 후안보 노선을 달성할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루비오 장관은 제다로 향하는 길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안한 공중및 해상 부분 휴전안이 유망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위트코프 특사는 최근 이번 회담에서 '무기한 휴전'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기한 휴전'과 공중및 해상의 부분 휴전 사이에서 한달간 휴전→이후 당사자 합의에 따라 연장이라는 절충안이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왈츠 보좌관은 회담 후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종식시킬지에 대한 실질적인 세부 사항에 대해 논의했다"며 "며칠 내로 러시아 측과도 대화할 예정이고, 루비오 장관이 조만간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과 만날 것"이라며 향후 일정도 공개했다. 논의된 전쟁 종식 세부 방안을 위트코프 특사를 통해 러시아 측에, 루비오 장관을 통해 G7국가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미국은 회담 전부터 나토(NATO) 측으로부터 선평화 후안보에 대한 지지를 얻어낸 것으로 분석된다.
마르크 뤼터 나토(NATO)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보다 먼저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선평화 후안보 주장을 지지했다고 스페인 일간지 엘 문도가 11일 보도했다. 뤼터 총장은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 덕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와 (평화) 협상을 시작하는 '진정한 돌파구'가 마련됐다"고도 했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동 결과가 알려진 뒤 30일 일시 휴전안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이 제안을 환영하며,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