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활동을 통해 얻는 기쁨 중 하나는 바로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 ’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생계 터전을 지키려는 노점상, 저소득층 아이들을 돌보며 공교육의 빈 자리를 채우는 공부방 선생님, 전문적인 학위를 갖진 않았지만 토종 물고기를 연구하는 연구자, 그리고 장애 어린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향해 뛰는 엄마들...
세상 구석구석에서 묵묵히 자기 몫을 해 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통해 삶의 조건을 바꾸는 운동의 다양함을 알게 된다. 활동에서 보여주는 묵묵함과 치열함은 언제나 감동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도 새삼스레 확인한다.
요즘 장애인 영화 ‘말아톤’이 극장가 화제다. 설날 연휴 기간에 아이와 함께 ‘말아톤’을 관람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배워가고 있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자연스런 공존을 늦지 않게 안내해 주고 싶었다.
장애인과의 인연은 의회에서부터다. 2년 전쯤 작은 체구의 여성 장애인 한분이 의원사무실을 찾아왔다. 주숙자 소장은 장애인 관련 의정활동을 부탁했다. 팜프렛도 주고 비디오 테잎도 놓고 간다. 공부하라는 완곡한 표현임을 안다. 공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장애인’과 어떻게 소통해야하는 지 모르는 것이다. 조심스럽고 어렵기만 했다. 그러나 자주 부대끼다 보니 어느덧 해답이 찾아졌다. 의외로 간단하다. 편안하게, 비장애인과 똑같이.
주숙자 소장과의 만남은 곧 모임이 되었다. 함께 하는 사람들도 다양해졌다. 일도 더불어서 늘어난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문제, 장애인 학습권과 관련한 통합 학급 보조교사 배치문제, 장애인 예산 확보 등등. 지금은 중증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조례를 준비중이다.
주숙자 소장은 늘 바쁘다. 그리고 씩씩하다. 일주일에 한번 휠체어 장애인등 중증 장애인과 함께 선전물을 들고 시민 홍보에 나서고 있다. 한달에 한번은 장애인 버스 타기 행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중증장애인과 함께 공공기관등의 장애인 편의시설 조사도 나간다. 장애자립생활을 준비하는 중증장애인들의 임시 거처를 둘러보고 유료 도우미와 생필품을 조달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하지만 주숙자 소장을 가장 어렵게 하는 일은 행정의 지원을 끌어내는 일인 듯 하다. 지난번 정기 모임 때 일이다. 함께 참석한 장애인 복지 담당 사무관에게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을 설명하다 말고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벌써 6년째, 수 없이 바뀌는 공무원을 상대로 설득과 호소를 반복해 왔는데... 높디높은 행정의 벽 앞에서 분노한 것이다.
말주변도 별로 없고 뛰어난 재주도 갖지 못했다. 지역에서 장애인 전체를 대표하는 지위도 갖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치열함은 매번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휠체어에 벨트를 매어 앉혀 놓아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들을 닦달하며 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운동을 해야 한다던 지독한 여자였다. 보건복지부로, 국회로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서울을 오르내리던 씩씩한 싸움꾼이었다. 그런 그녀가 목이 메어 눈물을 보이고 만다. 주숙자 소장의 눈물은 장애인의 현실이고 대한민국의 알량한 복지정책이다.
그녀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힘이 되었으면 한다. 그녀의 삶이 나를 포함한 비장애인에게는 선생이고, 장애인들에게 용기이고 희망이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