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징징거리는 사람은
정작 타인의 울음은 듣지 못한다.
자신의 내부가 너무 시끄러우면
타인의 목소리가 묻히기 때문이다.
이때 상대의 말을 듣기 위해
필요한 건 적당한 양의 침묵이다.
대화에서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상대가
나의 어떤 말을 ‘기억’하느냐 이다.
말없이 친구의 말을 그저 듣기만 했을 뿐인데
대화가 끝날 무렵 친구에게,
“오늘 조언 고마워. 정말 도움이 됐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저 친구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가 울 때
손을 잡은 게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이런 대화에서 침묵은 제3의 청자聽者다.
하지만, 자신의 얘기를 하느라
상대의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전환 반응’이라고 부르는데
모든 대화를 ‘나’로 전환시켜
자신의 얘기만 하는 것이다.
가령 “요즘 몸이 좀 안 좋아”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도 안 좋은데!”라고 말하는 식이다.
끊임없이 상대의 이야기를 자신의 스토리로
바꿔 버리는 이런 식의 대화는 우리를 지치게 한다.
좋은 대화는 “어디가 안 좋아?”라고 물으며
상대의 마음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는 것이다.
정신과 문턱이 높을 때,
유독 사람들이 점집을 많이 찾던 이유 역시
꼭 그럴 듯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점쟁이야말로 내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위로를 받는다.
그러니 대화 중 잘못된 정보가 있다고 해도
중간에 끼어들지 말고 끝까지 들어야 한다.
헤밍웨이도 말했다.
“말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몇 년이면 충분하지만, 침묵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평생이 걸린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덜해야 한다.
특히 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보다
일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한다.
내게 어떤 선택 권한이 있을 때,
나만 말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행간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단어보다 쉼표를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말보다 표정을 읽으려는 사람이다.
“말하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학자 엄기호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엄기호에 의하면, “말하는 것을 듣는 건
수비만 하는 것”이라며
“고통은 침묵으로 표현될 때가 많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가장 잘하는 대화는 듣기를 잘하는 사람이라 했다.
게다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듣는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그득해진다.
(…)
속이 든든해 지고 싶으면 말을 참아야 한다.”
(시인 박연준)
사람도 많이 만나지 말아야 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건 정적 없이
쏟아지는 수다가 아니라, 매우 적은
글자로 완성한 몇 개의 문장이다.
작가처럼, 나도 아늑하고 고요한 일상을 꿈꾼다.
안온(安穩, 조용하고 편안함)한 삶은 충만한 삶에 가깝다.
김소연 시인의 말처럼, “심심함이 윤기 나는
고독이 되어 갈 때 나는 씩씩 해진다.”
씩씩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