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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 【敎體】
[英 The body, or corpus of doctrine ; the whole teaching]
석존 일대(一代) 교법의 체(體).
경체(經體)라고도 한다.
불타가 설한 칠십오법(七十五法) · 백법(百法) 중에서 어느 것을 체(體)로 삼을 것인가를 정하는 것.
여기서는 소리를 체로 할 것인지, 명(名) · 구(句)를 체로 할 것인지와 그 밖에도 체(體)로 할 것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각기 다르다.
자은(慈恩, 632-682)은 사중(四重)의 교체를, 청량(淸凉, 758-839)은 10중의 교체를, 현수(賢首, 643-712)는 사문의 교체를 말하고 있다.
교판【敎判】
[英 The various divisions of teaching or doctrine]
교상판석(敎相判釋) · 교시(敎時) · 교판(敎判)이라고 한다.
주로 중국 · 한국 · 일본에서 여러 경론(經論)에 설해진 교설(敎說)을 교상(敎相 ; 內容)과 교시(敎時; 설해진 때)의 측면에서 체계화한 것이다.
인도에서 성립한 대소승의 경전이 성립 순서에 관계없이 전해졌기 때문에 다시 분류, 재편성할 필요에서 생겼다.
[중국의 교판사상]
(1) 가장 오래된 교판론은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門下)의 도생 (道生, 355-434)의 선정법륜(善淨法輪) · 방편법륜(方便法輪) · 진실법륜 (眞實法輪; 『法華經』) · 무여법륜(無餘法輪; 『涅槃經』)의 4종법륜설 이다[妙法蓮華經疏)].
지의(智顗, 538-597)가 설한 『법화현의(法華玄義)』10권에는 지의 이 전의 남삼북칠(南三北七; 江南三師와 北方七師)의 교판의 싣고 있다.
그런데 남북(南北) 양조(兩朝)에서 돈(頓) · 점(漸) · 부정(不定)이라는 3 종 교상(敎相)은 공통이다.
남조(南朝)의 삼사(三師)는 『화엄경』을 돈교, 『승만경』 · 『금광명경』등을 부정교(不定敎)라 하고, 점교의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1. 호구산(虎丘山)의 급사(岌師)는 유상(有相) · 무상(無相) · 상주(常住)의 삼 시교(三時敎),
2. 종애(宗愛) · 승민(僧旻)은 무상(無相)과 상주(常住) 사이에 동귀교(同歸敎)를 더하여 사시교(四時敎),
3. 승유(僧柔) · 혜차(慧次) · 혜관(慧觀)은 동귀교(同歸敎)의 앞에 포폄억양교(褒貶抑揚敎)를 더하여 오시교(五時敎)를 설하였다.
혜관(慧觀)의 오시교판(五時敎判)은 중국불교사상(史上) 교판론(敎判論)의 효시로서 널리 유행되고, 후세에 영향을 끼쳤다.
(2) 천태교학의 기초를 구축한 지의(智顗, 538-597)는 오시팔교(五時八敎)의 교판을 설했는데, 천태의 6조 담연(湛然, 711-782)은 이것을 완전히 확립시켰다.
오시(五時)라고 하는 것은 석존의 모든 설법[경전]을 내용에 따라 다섯 시기, 즉 오시(五時)로 분류한 것이다.
성도 직후, 『화엄경』이 설해진 화엄시(華嚴時; 21일), 다음은 『아함경』이 설해진 아함시 (阿含時; 12년), 대승경전인 『유마경』이나 『승만경』이 설해진 방등시(方等時; 8년), 『반야경』이 설해진 반야시(般若時; 21년), 완전한 가르침으로서의 『법화경』과 『열반경』이 설해진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 8년)가 5시(時)이다.
팔교(八敎)라고 하는 것은 가르침으로 이끄는 설법의 형식으로서의 화의사교(化儀四敎)와 사람들의 성질 · 능력에 응해서 설해진 가르침의 내용 으로서의 화법사교(化法四敎)가 있다.
화의사교(化儀四敎)라고 하는 것은 곧 불(佛)의 자내증(自內証)을 가르치 는 돈교(頓敎), 내용이 얕은 것으로부터 점차 깊은 것으로 나아가는 가 르침인 점교(漸敎), 상호 알려지지 않은 그대로 각각에 맞게 설해진 비밀교(秘密敎), 설한 가르침은 일정하지 않지만 듣는 자의 능력에 따라서 체득되는 부정교(不定敎)이다.
화법사교(化法四敎) 가운데 소승인 삼장교(三藏敎)는 장교(藏敎)라 하고, 성문 · 연각· 보살의 삼승(三乘)인 소승교(小乘敎), 방등(方等) · 반야(般若) · 법화열반(法華涅槃)인 대승교(大乘敎)에 공통인 것을 통교(通敎)라 하고, 성문 · 연각과 다른 대승의 보살 독자의 것을 별교(別敎)라고 하는 데, 완전한 『법화경』은 원교(圓敎)라고 한다.
(3) 이것에 대해서 삼론종(三論宗)의 대성자(大成者) 길장(吉藏, 549-623)은 이장삼전법륜(二藏三轉法輪)의 교판의 세웠으며, 법상종(法相宗)의 대성자 규기(窺基, 632-682)는 삼교팔종(三敎八宗)의 교판을 세웠다.
이에 비해서 화엄종의 제2조 지엄(智儼, 602-668)이나 제3조 법장(法藏, 643-712)은 보다 치밀한 오교십종(五敎十宗)이라는 교판을 세웠다.
법장은 지엄이 세운 소승 초(初) · 숙(熟; 終) · 돈(頓) · 원교(圓敎)의 5교 교판을 정비하고, 법상종의 팔종(八宗) 교판을 계승하여, ‘5교 10종’ 의 교판을 확립하였다.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따르면, 5교(敎)란,
1. 소승교,
2. 대승시교(大乘始敎; 法相 · 三論宗),
3. 대승종교(大乘終敎; 『대승기신론』 등),
4. 대승돈교(大乘頓敎; 禪宗),
5. 대승원교(大乘圓敎; 『화엄경』) 를 말한다.
10종(宗)은
1. 법아구유종(法我具有宗; 객관적인 사물인 法도 주관인 我도 모두 實有; 人天乘, 犢子部),
2. 법유아무종(法有我無宗; 法은 三世에 걸쳐서 實有이지만, 我는 無, 說一切有部),
3. 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 현재의 객관사물만이 實有, 과거와 미래의 사물에는 실체가 없다고 함. 大乘部),
4. 현통가실종(現通假實宗; 사물은 과거와 미래에 있어 실체가 없다. 현재에도 오온은 실유이지만, 십이처 · 십팔계는 실유가 아니다. 說假部 · 『成實論』),
5. 속망진실종(俗妄眞實宗; 세속의 경우는 假 · 虛妄이며, 出世間의 佛敎만이 眞實. 說出世部),
6. 제법구명종(諸法俱名宗; 일체의 존재는 임시로 이름 붙인 것. 一說部),
7. 일체개공종(一切皆空宗; 일체의 제법은 모두 本來空, 大乘始敎),
8. 진덕불공종(眞德不空宗;일체의 법은 진리 그것으로 드러난다. 大乘終敎),
9. 상상구절종(相想俱絶宗; 말 · 想念을 떠난 진실의 경지를 나타낸다. 頓敎),
10. 원명구덕종(圓明俱德宗; 究極 · 眞實한 圓敎의 입장. 大乘의 別敎一乘) 등을 말한다.
(4) 영향이 지대했던 교판에는 중국 정토종의 도작(道綽, 562-645)이 석존의 가르침을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의 2문으로 나눈 것이 있다.
도작은 자력의 행(行)에 힘쓰고, 이 세상에서 깨달음을 열어 가는 것을 지향하는 성자의 길을 성도문(聖道門), 아미타의 본원(本願)을 믿고서 염불하여 정토(淨土)에 태어나 내세에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범부의 도(道)를 정토문이라 칭하고, 지금의 말법시대는 정토문에 의한 깨달음이 용이하다고 하였다.
[한국의 교판]
한국의 원효(元曉, 617-686)는 부처님의 삼승교(三乘敎; 四諦 · 緣起 등의 經) · 삼승통교(三乘通敎; 『반야경』· 『해심밀경』등) · 일승분교(一乘分敎; 『범망경』등) · 일승만교(一乘滿敎; 『화엄경』등)의 교로 나누고 있다.
[일본의 교판]
일본에서는 진언종의 초조인 구카이(空海; 744-835)가 현밀(顯密)의 2교교판과 십주심(十住心)의 교판을 밝히는 한편, 진언밀교의 타종(他宗)에 대한 우위(優位)를 설하였다.
『비밀만다라십주심론(秘密曼茶羅十住心論)』에서는
1. 이생저양심(異生羝羊心; 다만 본능적 욕망대로 생활하며 羝羊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사람의 마음),
2. 우동지재심(愚童持齋心; 어떤 사람이라도 무엇인가의 동기에서 반드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자각을 일으킨다는 것),
3. 영동무외심(嬰童無畏心; 불교 이외의 인도 종교, 중국의 道敎나 神仙思想 등),
4. 유온무아심(唯蘊無我心; 佛敎의 初門인 聲聞乘의 경지),
5. 발업인종심(拔業因種心; 緣覺乘의 境地),
6. 타연대승심(他緣大乘心; 특히 대승초문의 唯識法相宗),
7. 각심불생심(覺心不生心; 三論宗),
8. 일도무위심(一道無爲心; 天台宗),
9. 극무자성심(極無自性心; 華嚴宗),
10. 비밀장엄심(秘密莊嚴心; 眞言宗)이라는 십주심(十住心)을 설하였다.
이 중 1. - 9. 가 현교(顯敎), 10.은 밀교(密敎)인데, 밀교를 가장 높은 가르침으로 위치시키고 있다.
천태종에서는 안연(安然 , 841-?)이 장교(藏敎) · 통교(통교) · 별교(別敎) · 원교(圓敎) · 밀교(密敎)의 5교판을 세웠다.
가마쿠라(鎌倉) 신불교(新佛敎)에서는 친란(親鸞, 1173-1262)이 자력난행도(自力難行道)를 수(竪), 타력이행도(他力易行道)를 횡(橫)으로, 수출(竪出; 唯識 · 三論 등), 수초(竪超; 禪 · 眞言 · 法華 · 華嚴 등), 횡출(橫出; 淨土眞宗 이외의 淨土敎), 횡초(橫超 ; 淨土眞宗)라는 이쌍사종(李雙四宗)의 교판을 세웠다.
또한 일련(日蓮)은 교(敎; 가르침의 깊이) · 기(機; 수용자의 機根) · 시(時; 時代) · 국(國; 國土) · 서(序; 불법이 유포되는 순서)라는 오의(五儀; 五綱)의 교판을 세웠다.
고려불교【高麗佛敎】
신라 5백년간의 불교를 불교 향상시대의 불교라고 할 때, 그 전성기의 불교가 침체해졌을 때 신라의 선법(禪法)이 전래되어 선종(禪宗)이 흥기하였다.
하지만 세상인심을 완전히 구제하지 못하고 있을 즈음에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불력(佛力)에 의하여 대업을 완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교를 국가창건의 대도(大道)이며 국민광제(國民廣濟)의 대교(大敎)로서 숭신(崇信)하게 되었다.
태조가 불교를 숭신하게 된 것은 도선(道詵)의 영향으로, 여기서 연원된 것이 진호국가(鎭護國家)와 비보산천(裨補山川)의 신불사상(信佛思想)이다.
이것이 고려불교의 한 특색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 진호국가와 비보산천의 신불사상은 불교로 하여금 기복(祈福)과 양재(禳災)의 경향으로 흐르게 하여 고려시대의 불교를 저속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태조는 훈요십조(訓要十條)를 후대의 왕(王)들에게 유훈 하였으므로, 태조의 신불호교정신은 그 뒤의 역대 왕에게도 이어졌다.
최후의 왕인 공양왕에 이르기까지 신불(信佛)치 않은 왕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태조 당시부터 기복양재 진호국가라는 특색을 가지게 된 신불사상은, 한편으로는 《고려대장경》과 같은 거대한 민족문화 사업을 이룩해 놓았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복양재의 속신적(俗信的) 저속성이 시대정신의 선도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여, 가끔 요승(妖僧)이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불법을 흐리게 하는 사례가 있었다.
고려시대의 불교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이전에는 계율종 · 법상종 · 열반종 · 법성종 · 원융종 · 선적종의 6종파(宗派)[5敎宗과 禪寂宗]가 학종(學宗)으로 존재했는데, 대각국사 이후에서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는 남산계율종(南山戒律宗) · 자은법상종(慈恩法相宗) · 중도종(中道宗) · 화엄원융종(華嚴圓融宗) · 시흥종(始興宗)의 5교종(敎宗)과 조계선적종(曹溪禪寂宗), 그리고 천태종(天台宗)을 합쳐서 7종파로 되었다.
6종시대(六宗時代)는 5교(敎) 9산(山)으로 통칭하였고, 7종(宗)시대는 5교(敎) 양종(兩宗)이라 통칭하였다.
6종(宗) 또는 7종(宗)의 고려 전 시대를 통하여 9산선문(九山禪門)에서는 많은 선장(禪匠)을 배출하여 크게 번성하였다.
특히 나말(羅末) 여초(麗初)는 선종의 전성기라고 할 만하다.
선문(禪門)에 드러난 몇 사람을 살펴보면, 태조 때에 수미산파의 개조인 이엄(利嚴, 870-936)은 조동선(曹洞禪)을 전래하여 왕신(王臣)의 귀의를 얻어서 현풍(玄風)을 크게 떨치며 홍법도생(弘法度生)에 노력하다가 태조 19년에 67세로 입적하였다.
이엄(利嚴)과 동시대에 경보(慶甫, 869-948)가 입당(入唐)하여 무주소산(撫州疏山)에 있는 동산(洞山)의 법제자인 광인(匡仁)에게 참학하여 심인(心印)을 얻어 조동선의 정통을 전래하였다.
또 긍양(兢讓, 878-956)이 석상(石霜)의 뒤를 이은 도연(道緣)에게 나아가서 선법(禪法)을 전래하여 희양산(曦陽山)에서 선문을 열고 조도(祖道)를 홍선(弘宣)하였다.
현휘(玄暉, 897-941)는 성주산조사(聖住山祖師) 무염(無染)의 법사(法嗣))인 심광(深光)에게 배우고 중국에 가서 구봉산하(九峰山下)의 도건(道虔)에게서 심요(心要)를 얻었는데, 귀국 후에는 구산문 중의 성주산 계통의 종풍을 선양하였다.
서당지장(西堂智藏)의 증손(曾孫) 제자인 윤다(允多, 864-945)는 동리산(棟裡山)에서 그의 선풍(禪風)을 진작하였다.
충담(忠湛, 869-940)은 장순선사(長純禪師)에게 출가하였는데, 뒤에 무주(武州) 영선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법상(法相)과 율(律)을 배우고, 다시 입당(入唐) 구법하여 천우년중(天佑年中)에 귀국하여 태조로부터 왕사(王師)의 예우를 받았다.
진공(眞空, 855-935)은 일찍이 출가하여 삼장교의(三藏敎義)를 연찬(硏鑽)하였는데,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 가서 도의국사(道義國師)의 영탑(靈塔)을 참배하고 감모(感慕)하여 무사자오(無師自悟)한 뒤, 법화(法化)를 펴다가 소단산사(小但山寺)에서 태조 20년에 입적하였다.
교종(敎宗)을 보면 신라 말부터 갑자기 성하기 시작한 선(禪)의 영향으로 여러 교종(敎宗)이 그 빛을 감춘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화엄교학만은 여전히 그 세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신라 말 후삼국 때에 고려 태조와 후백제의 견훤의 복전(福田)이었던 해인사의 희랑(希郞; 왕건의 복전)과 관혜(觀惠; 견훤의 복전)에 의하여 화엄은 북악(北岳)과 남악파(南岳派)로 갈라졌는데, 그 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탄문(坦文, 900-975) · 균여(均如, 923-973) · 결응(決凝, 964-1053) · 악진(樂眞, 1050-1114) · 징엄(澄嚴, 1090-1141) · 종린(宗璘, 1124-1175) · 지칭(指稱, 1113-1192) · 천희(千熙, 1307-1382) 등과 같은 화엄학 대가를 많이 배출하였다.
이렇게 화엄교학은 고려시대를 통하여 선종(禪宗) 교종(敎宗)을 막론하고 많이 연구되고 중시되었다.
고려의 법상종(法相宗)은 그 계통을 잘 알 수 없으나 정현(鼎賢, 972-1054) · 해린(海麟, 984-1067) · 소현(韶顯, 1038-1096) · 혜영(惠永, 1228-1294) · 미수(彌授, 1240-1327) · 해원(海員, 1262-1340) 등의 학장(學匠)이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 밖에 법성종(法性宗) · 남산계율종(南山戒律宗) · 열반종(涅槃宗) · 시흥종(始興宗) 등은 종명(宗名)만 보일 뿐, 그 활동상은 거의 알 수 없다.
양종(兩宗)으로서 천태종과 조계종을 보면, 천태종은 중국에서 창종된 것으로 교종(敎宗)의 하나였으나, 고려에서는 대각국사가 숙종 2년[1097]에 세워진 국청사(國淸寺)의 주지가 되어 천태교관(天台敎觀)을 개강(開講)한 뒤부터 개립(開立)을 본 이래 선종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대각(大覺) 이후로 교웅(敎雄, 1076-1142) · 덕소(德素, 1119-1174) · 요세(了世 , 1163-1245) · 천인(天因, 1205-1248) 등 많은 고덕(高德)이 배출되어 교관(敎觀)을 상승(相承)하고 종풍을 떨쳤다.
조계종은 신라 말에 전래되기 시작했던 중국 선종의 남종선(南宗禪)이 고려 초에 구산문파(九山門派)를 형성하여 선적종(禪寂宗)으로 통칭되어 왔던 것이다.
조계종이란 명칭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조계종지(曹溪宗旨)가 성립된 것은 지눌(知訥, 1158-1210) 부터였다.
그는 화엄(華嚴) · 천태(天台) · 선학(禪學) 등을 정혜겸수(定慧兼修)로서 포괄하고, 그 위에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제창하고, 조계산 수선사(修禪寺)를 창설하고 종풍을 수립했다.
그 뒤 지겸(志謙) · 승형(承逈) · 혜심(慧諶) · 혼원(混元) · 천영(天英) · 일연(一然) · 혼구(混丘) · 충지(沖止) · 만항(灣港) · 복구(復丘) 등의 선장(禪匠)이 나왔지만, 고려 말에 이르러 승단이 부패하고 승려가 타락하자 배불론이 나타났다.
지눌에 의한 조계종으로 내면적 통일은 되었지만 구산문파가 열립(列立)하여 자파(自派)만 옹호함을 능사(能事)로 삼으니, 그때 보우(普愚, 1301-1382)가 구산선문의 병폐를 우려하고 피아(彼我)의 우열을 없애기 위하여 조계종이란 이름으로 9산(山)을 통합하려고 했고, 그 취지를 공민왕에게 헌언(獻言)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하여 지눌에 의하여 한국 특유의 종지가 확립되어 내면적 통일을 보았고, 공민왕 5년 보우(普愚)에 의하여 외면적으로 통일된 조계종이 이루어졌다.
콘사이스 판 불교사전(민족사:김승동 편저)에서 모셔왔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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