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45]“동해 건너 대화땅은 우리 조상 꿈자리”
솔직히 나는 야구를 모른다. 야구뿐만 아니라 각종 구기종목은 할 줄도 모르고, 관람할 줄도 모른다. 90년대초 한 친구의 간곡한 권유로 배드민턴을 레슨도 한번 받지 않고 20년을 친 것은 내 인생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왕년(1970-80년대)에 고교야구가 나라를 들썩들썩하게 했고, 80년대 프로야구가 히트를 친 적도 있었지만, 나로선 늘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야구장을 가본 것도 손으로 헬 정도.
야구하면 우스운 해프닝이 몇 장면 떠오른다. 결혼직후 잠실1단지 살 때이다. 당시 60대 후반의 장인어른(지금 생각해도 완전 노인이었으니 우리 나이와 비교하면 천양지차)이 야구광이어서 잠실야구장에 갔다. 장인은 소리를 지르며 열광하는데, 나는 멀뚱멀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동열이 무엇이란 말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풍경. 또한 이승엽이 맹활약하던 때, 두 아들과 야구장을 간 적이 있다. 기자 빽으로 좋은 자리에서 이승엽이 연습하는 것을 보고 애들은 열광했으나, 나는 오로지 치어리더의 몸짓과 몸매에만 눈을 뒀으니, 오죽하면 큰아들이 내 눈을 손으로 막았을까? 대학때도 기억이 있다. 당시 ‘빨간모자’로 불리던 김동엽이 성대 감독. 버스를 대절하여 동대문운동장 응원간 것만 어렴풋이 생각날뿐.
아무튼, 그제 인사동에서 후배와 점심을 먹는데, 이 친구가 난리가 났다. 왜냐니까? 한국계 일본고등학교(교토국제고)가 일본 고시엔(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내일이면 결승전을 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꿈의 무대’에서 정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며 흥분을 하는데, 나는 어떤 흥미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대화 도중에 고시엔에서 이긴 팀은 반드시 그 학교 교가校歌를 부르고, NHK는 고시엔 경기 모두를 생중계한다며, 그 학교 교가를 소개해줘 귀를 쫑긋 했다. 교토국제고가 우승할 때마다 일본 전역에 교가가 한국어자막을 달고 생중계되고, 내일 우승을 하면 또 한번 교가가 울려퍼진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 어쩌면 그런 일이? 이게 빅뉴스, 그레이트 뉴스가 아니고 무엇이랴? 교가의 노랫말을 듣자, 나도 조금은 흥분했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일본의 옛이름) 땅은/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아침 저녁 몸과 덕 닦은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1절)”
1절도 멋있지만, 4절의 노랫말도 기가 막힌다.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大韓의 자손/새로운 희망길을 나아갈 때에/불꽃같이 타는 마음 이국 땅에서/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 되자"(작사 변낙하, 작곡 김경찬, 이사장 이융남, 교장 백승환)
와와- 멋지다, 장하다. 우째 이런 일이 다? 선수들이 모두 ‘대한의 아들’이 아니면 또 어떤가? 일본해가 아니고 동해, 야마도땅은 거룩한 조상들의 꿈자리라는 것이 아닌가? 어제 드디어 결승에서(무승부 끝 10회 연장) 정상을 차지했다는 속보를 듣고 나도 흥분할 수밖에 없엇다. 준결승전에서는 역전을 했다고 하고, 어찌 가슴이 뜨거우지지 않겠는가? 아이고, 이렇게 ‘씨-언-한’일이 흔한 일인가? 중요한 것은 우승보다도 우리말로 교가가 일본 전역에 생중계된 것이 명백한 팩트라는 것. 최근 우리 정부의 광복절 기념사나 공영방송의 친일적 ‘패륜’행태를 보고난 직후여서 더했을까? ‘깨소금 맛’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싶다. 기시다 등 일본 우익들의 반응은 어떨까도 궁금했다. 눈 뻔히 뜨고 ‘야마도 땅이 한국조상의 꿈자리’라는 자막을 듣고 있어야 하니, 어찌‘미치고 폴짝 뛸 일’이 아니겠는가? 분에 못이겨 할복割腹하는 또라이들은 없을까?
그 학교 이야기 들으니, 가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전교생이 160명. 2003년 일본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 재학생의 90%는 일본인이지만, 민단이 운영하며 한일 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데, 이사장과 교장만은 한국인이며 한국어 수업을 한다. 정규규격 야구장의 절만 크기인 반쪽 운동장에서 연습하고, 공조차 부족해 실밥이 터지면 테이프로 칭칭 감아 공이 찌그러질 때까지 쓴다던가. 낡은 에어컨도 고장나 선풍기로 더위를 식혔다는 그들이 너무 기특하다. 분명코 그 어떤 것도 말리지 못한 그들만의 ‘스피리트SPIRIT’가 있지 않으면 설명이 안될 사건이다. <공포의 외인부대> 만화와 영화가 오버랩되었다. 1999년 창단한 이래 2021년에는 4강에 올랐다. 고시엔甲子園(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은 경기장이 1924년 갑자년에 준공됐다해 붙여진 이름, 일본 전국 3441개팀이 지역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오른 팀이 49개. 토너먼트로 진행되는데, 정상을 차지한다는 것을 ‘기적의 위업’이라 한다. 본선 탈락팀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내의 흙을 담아가는게 전통처럼 돼있는데, 내년에 우승을 하여 그 흙을 제자리로 갖다 놓겠다는 의지라고 한다.
고맙다. 교도국제고여! 국제고 학생들이여! 더욱 앞으로 나아가라! 답답하고 우울하여 돌아버릴 지경인 작금의 한일 양국의 상황에서 모처럼 감로수, 폭포수같은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다니? 누가 나를 쇼비니즘, 맹목적 애국자로 욕할 것인가? 부디, 내년의 고시엔도 여지없이 휩쓸어버리기를. 우승, 그 한 단어로 일본 열도를 꼼짝못하게 휘어잡기를, 그리하여 성질 못된 일본인들의 할복이 이어지기를, 이 신새벽, 스포츠 문외한이 빌고 또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