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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基督敎)/위키백과
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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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基督敎, 영어: Christianity) 또는 그리스도교, 크리스트교는 신약성경과 구약성경(타나크)을 경전으로 삼고 예수를 그리스도[1][2] 따라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각 교파 그리고 개혁교회와 16세기 종교개혁 운동 이후, 발생한 개신교
기독교는 유대교비교종교학[주해 1]에서는 학술적으로 이슬람교까지 포함한 세 종교를 아브라함계 종교[3] 한편 기독교 신학은 종파에 따라서 비교종교학의 학술적 견해와 달리 이슬람교가톨릭교회의 경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이슬람교가 "그들은 살아 계시고 영원하시며 자비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유일신을 흠숭한다"고 확인을 하여 이슬람교의 유일신과 기독교의 유일신이 동일하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으며[4]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5] 그러나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측에서는 동일성을 부정하며,[6] 하승무 목사를 필두로 한 한국정통장로교회[7]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시작된 야훼 숭배는 다른 이교도들의 다곤, 바알 등 숭배를 제치고 근동과 지중해유대교의 역사적 배경 위에 1세기 경 예수
초기 기독교는 로마 제국 등의 탄압을 받았지만, 300년에 아르메니아의 국교가 되고,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해 로마 제국에게 합법적 종교로 승인을 받은 이후 380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11세기에는 이 연합체에서 로마교회가 분리되어 현재의 서방교회, 로마가톨릭교회로 발전되었고,[8] 16세기 이후부터는 서방교회 내에서 개신교회
'기독교'의 '기독'(基督)은 그리스어 "그리스도"(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의 중국어북경어청나라 때에 '기'가 '지'로 전반적으로 구개음화하는 변화가 있었는데, 만주족司馬遼太郎)의 주장[9])이 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라고도 한다. 그리스도는 구세주, 즉 '기름부음 받은 자'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의 메시아를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라틴어
'기독교'(Christianity)라는 말은 한국에서 개신교(Protestant)만을 일컫는 말로 오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기독교'는 주요 분파인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개혁교회, 여러 개신교등을 포함해 유일신 야훼를 믿고 예수를 그리스도
초기 기독교는 예수가 팔레스타인지역에서 활동하였다는 때와 그의 죽음 이후[주해 2] 사도들이 교회베드로, 바울[10]는 주장이 있는 반면,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지역마다 많은 회중이 형성되었고,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성경의 가르침과 예수의 새로운 가르침을 따를 것을 교훈하였으며 배교자 혹은 부도덕한 신자에 대해서는 경고하거나 제명해야 됨을 각 회중들에 권고하고 편지한 내용 그리고 교리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회 연로자들의 회의가 소집된 일, 또한 요한에 의해 기록된 계시록에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교리 일치 여부와 역사, 행위들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 이미 기원 1세기에 매우 체계화된 조직과 교리가 형성되었으며 완성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초기 기독교는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었다.
사도들이 회중을 이끌었던 시기의 교회를 초대교회[11]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12]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 헬레나는 기독교 신자였으며[13],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비우스 다리 전투 전날 꾼 꿈의 지시대로 병사의 방패에 카이 로(
316년 콘스탄티누스 1세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단성설을 주장하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니케아 신경[15]
380년 2월 27일 테오도시우스 1세는 테살로니카 칙령을 선포하고 기독교를 로마 제국[16]
325년에 열린 제1차 니케아 공의회부터 787년에 열린 제2차 니케아 공의회까지의 첫 일곱 공의회주교[17]
초기 일곱 번의 공의회 과정을 통해 가톨릭주의가 만들어짐에 따라 이들과는 다른 신학을 가져 이단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가 이단으로 배척된 이후에도, 칼케돈 공의회가 예수의 양성설을 공인하자 단성설을 주창한 콥트 교회, 아비시니아 교회, 야고보 교회, 아르메니아 교회는 가톨릭주의와 결별하여 독자적인 교단을 형성하였고, 689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종교회의에서 네스토리우스파가 이단으로 배척되자 아시리아 동방교회당나라[18]
중세 초기 서유럽과 북유럽, 그리고 동유럽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기원후 423년 성 파트리치오가 아일랜드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하였다고 하며[19], 5세기 후반에는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북부 등의 서유럽 지역에 있었던 프랑크 왕국은 메로빙거 왕조의 시조인 클로비스 1세가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20], 잉글랜드에는 600년 경 켈트족의 기독교 전파에 영향을 받아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598년 아우구스티누스를 초대 켄터베리 대주교[21]
820년대에서 830년대 초, 브레멘과 함부르크의 대주교였던 안스가르의 선교 사업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바이킹[22]
동유럽의 슬라브족동방정교회의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는 제1차 불가리아 제국과 모라비아 왕국동로마 제국 미카엘 3세슬라브어키릴 문자[23]
로마제국의 천도로 콘스탄티노폴리스[24] 하지만 서로마제국 지역의 왕권 강화와 7세기 이후 동로마제국에 대한 이슬람의 침략, 로마지역 교회의 독립적 활동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 중심의 연합체와 로마교회[25] 동서 로마 지역의 교회 대립 이후, 십자군 전쟁[26] 이는 로마제국 연합교회의 4지역교회와 로마지역교회의 완전한 단절을 낳은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2002년 1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27]
16세기에 들어 로마가톨릭교회가 신봉되던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개혁교회와 여러 개신교들이 세워지는 16세기 종교개혁로마가톨릭교회와 서로 분리되어 초대교회의 신앙전통에 따라 각 지역과 교회마다 달리했지만, 로마가톨릭 성직자들의 부정 부패에 대한 지식인대사[주해 3] 특히 당시 가장 큰 논란을 부른 것은 대사 문제이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죄는 고해성사로 용서가 되고, 다만 잠벌을 보속을 통하여 갚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 보속을 면제해주는 것을 대사라고 하는데, 현대에는 주로 기도나 선행 등을 보속으로 한다. 그러나 당시 독일 지방에 선포되었던 대사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지은 죄를 회개하고 다시 죄짓지 않기로 마음먹은 뒤 사제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둘째, 적어도 지정된 일곱 개 성당을 순례하여야 하며, 순례할 때마다 우리 죄를 대신 속죄하여 주신 주 예수의 오상(양손,양발,옆구리)을 기념하고 공경하는 뜻으로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다섯 번씩 열심으로 바치거나 또는 "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0)을 바쳐야 한다.
셋째, 성 베드로 성당 건축비로 응분의 헌금을 바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다 같이 갈 수 있도록 열려 있으므로, 돈이 없는 사람들은 헌금 대신 기도와 대재로 대사를 받을 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세번째 조건이다. 가난한 자는 헌금을 대신할 수단이 있다고 명시를 하였고, 교황 역시도 "헌납자는 각자의 형편에 따라 헌납해야한다."라고 언급했으나 대사를 악용하여 부를 축적하는 성직자가 등장하고 곳곳에서 대사 전문 판매원이 출현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28] 이로인해 발생한 가톨릭교회에 대한 비판은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1534년,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헨리 8세는 수장령(Acts of Supremacy)을 반포하여 “잉글랜드 국왕만이 잉글랜드 교회[29] 헨리 8세의 수장령은 같은 해 잉글랜드 교회 내의 주교에 대한 임명권이 국왕에게 있다고 선포한 주교서임법과 함께 로마 가톨릭과의 단절을 공식화 한 것이었다.[30]
마르틴 루터[31] 평소 그는 다섯 솔라[32] 루터는 95개조 반박문[33]
루터와는 별개로 프랑스 피카르디 출신의 신학자이자 라틴어 교사였던 장 칼뱅[34] 1536년 3월 칼뱅은 《기독교 강요[35] 칼뱅은 이 책에서 이중예정설과 같은 칼뱅주의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종파들은 격렬한 갈등을 겪었고, 결국 위그노 전쟁[37], 30년 전쟁[38]과 같은 종교 전쟁을 치렀다.
한편, 16세기 이후 19세기까지 침례교, 퀘이커, 감리교
소련 치하에서 억압을 받았던 러시아 정교회는 페레스트로이카[40]
19세기 동안 미국[42] 이들은 초교파적 부흥운동을 바탕으로 한국[43][주해 4]
20세기에 들어 기존의 신학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는 자유주의 신학[44], 해방 신학[45], 기독교 근본주의[46] 등의 신학들이 영향력을 키웠다.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는 초기에 '야소교'(耶蘇敎), 곧 예수교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당시 청 제국에 와 있던 로마가톨릭교회의 가장 큰 국제 수도회 조직 가운데 하나인 예수회[48]
한반도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파된 시기는 천주교가 당시 조선에 전파되었던 시기(1784년임진왜란 때에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들이 예수회의 전교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설과[주해 5], 경교가 신라[주해 6]
한국의 천주교는 이승훈이 북경에서 천주교회 세례성직자의 선교활동 없이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사례는 조선
1885년 개신교회인 감리교회와 장로교회 선교사가 선교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에 걸쳐 침례교, 구세군, 성공회, 정교회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분파를 거듭함에 따라 전세계에 2만 개 이상의 교파가 있으며, 한국에서도 대표적 교단으로 로마가톨릭교회, 개혁교회와 함께 장로교, 감리교메시아의 유일 속죄 사상이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는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함께 선한 행위를 통한 구원관을 주장한다.
다른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요한 복음서 1장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선언을 통해 예수를 "말씀"(로고스)으로 표현하였는데, 이 시기 그리스 철학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서 예수
신약성경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바오로서신서(로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갈라티아서)와 제2 바울서신(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에베소서, 티토서) 역시 예수를 주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라는 그리스도론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로마 가톨릭교회 신학자 존 도미니크 크로산과 성공회 신학자인 마커스 보그는 바울의 그리스도론을 로마제국 신학 즉, 로마제국의 황제를 주님, 그리스도, 사람이 되신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로 우상화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정치 사상과 질서를 옹호하는 다분히 현실순응적인 신학
즉,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복종해야 할 분은 예수이지, 로마제국
장로교 신학자 김회권도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하느님의 아들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지만, 부활
바오로가 보기에 예수의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은 갈릴래아[49] 이러한 기독교의 저항적인 교의는 당연히 기독교가 반국가적인 종교로 인식되어 로마제국의 탄압을 받게 하였다.[50]
초기 기독교의 분파중에서는 인간 예수가 하느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에비온주의처럼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따라서 요한복음서 역시 부정하는) 종파도 있었으나, 절대적으로 소수에 속했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고 나서부터는 이단
이들 영지주의 및 가현설주의자들은 육체는 악하다는 이분법을 갖고 있었으므로 예수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셨음을 부정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라고 단죄했으며, 복음서 저자 루가는 루가의 복음서
초대교회 이후의 신앙고백들(Creeds)인 칼케돈 신경, 니케아 신경, 사도신경
삼위일체여호와), 성자(예수), 성령 이 세 위격의 밀접한 연관성은 신약성서의 여러 부분에 표현되어 있다고 보며, 마태복음서마가복음서
'삼위'라는 표현은 초대 교회 시절부터 자주 사용되어 왔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마태복음서신학자요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
삼위일체론은 두 가지의 이론으로 제시되어 있다. 첫째로는 성부, 성자, 성령이 한 하나님이며 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인데 과거에는 대부분의 종파에서 하나님은 형체나 지체가 없다고 믿는 이 이론을 믿어 왔다. 둘째로는 성부, 성자, 성령은 개별적인 존재이나 성부에 성자와 성령이 소속되어 있다는 종속주의적 삼위일체론이 있다. 이 두 이론 가운데 명확하게 통일한 바는 없다.
“믿음”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πιστις (pi'stis)에서 유래한다. 이는 신약성경Septuagint(그리스 구약)[53]
개혁교회구원[54] 개혁가들은 인간의 정의를 의미하는 선한 노력과 신앙을 구분했다.[55] 이 구원의 믿음에 대한 신앙의 이해는 개신교의 전통으로 남게 되었다. 구원의 믿음은 보통 예수를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 속죄
좀더 일상적인 면에서, 신앙(믿음)은 대개 신의 약속을 믿는 것과, 그의 충실함을 신뢰하고, 그리고 그의 신성에 의지하는 것을 충성스럽게 실천하는 것이다. 반면, 많은 개신론자들은 진정한 믿음은 단지 머리로만 믿거나, 노골적인 안티노미아니즘최후의 심판Sola fide)
최근 12년동안, 학자들은 신약 저자들의 사회적 문맥에서 pi'stis(신앙/믿음)에대해 연구해 왔다. pi'stis(신앙/믿음)에대해 고대 그리스의 매뉴스크립에서나, 신약에대해 연구해온 몇몇의 학자들은 ‘faithfulness(충실함)’이 많은 예에서 가장 흡족한 해석이라 판단한다.[56][57]이 최근 연구는 신약의 믿음과 예수를 믿는 것이 믿음(belief), 신뢰(trust )나 의지(reliance)의 측면에서보다는 충실함과(faithfulness), 충성스러움(loyalty) 그리고 그와 그의 가르침에 헌신(commitment)하는 것이라는 논쟁을 촉발한다.[58] 믿음/신앙(faith)에관한 이해는 속죄이론의 도덕적 영향과 통합된다.
-요한복음
-히브리서
-요한복음 6장 28~29절: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하시니”
믿음은 신의 은총에 의해 행하여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주장 된다. 이것은 지적인 행동으로, 신의 은총에 의해 감동받아 의지를 갖게 된, 신성한 진실을 담은 움직임이다. (세인트토마스 II-II, Q. iv, a. 2). 그리고 빛의 신앙은, 초자연적으로 수여 받은 이해의 선물이고, 신의 은혜로 생기는 이 의지는, 그 이름이 암시하듯, 마찬가지로 초자연적인 것이며 전적으로 대가 없이 받는 선물일 뿐이다. 이 선물은 공부나, 인간의 노력으로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 다만 “구하라 그리하면 받을것이다.” 선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고취되어 우러나오는 것”이듯 믿음 또한 하나의 신학적 선
이에 기독교에서 믿음이 또한 성 삼위일체
•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은 사실이다.
o 하나님은 신비로운 성삼위일체를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이 신비로운 현상은 사실이다.
로마 가톨릭은 주로 믿음이 이성에 근거하여 본질적으로 논리가 분명하다는 전제하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주요전제를 허용한다. 다음의 전제 또한 받아들여지는데, 이것은 특정 교회가 성명하는 공의회의 무류성에 대한 믿음을 기본으로 하고, 또한 바티칸 공의회가 “성령의 내부적 도움 외에도, 신은 외부적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그를 검증하는 것을 기뻐한다. 즉 어떤 신성한 사실들, 특히 기적과 예언들, 이러한 것들이 확연히 신의 전능함과 무한한 지식을 나타내며, 그것들이 대부분 신의 예언을 증명하고 또한 전체적으로 적합하다” 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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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신앙 또는 믿음(faith)이란 단에대한 정의에 관해서는 논란이 되곤한다. 계통적 서술에 의하면 히브리서[51] 대부분의 기독교 이론들이 역사적으로 이 성경적 서술을 따라왔다. 다른 아브라함계 종교
기독교가 다른 아브라함계종교와 구분되는것은 예수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것과 그가 고난과 부활신약성서성령[52]
정확한 “믿음”이란 단어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기독교 교파
동방정교회에서 믿음은 지적, 또는 정신적 활동이다. 믿음은 지성이나 감성의-순수 지성의 인식작용, 또는 순수 이성의 사색적 경험이다. 여기서 믿음이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진실이란 의미로, 하느님에게 받은 선물이라 정의된다.
삼위일체의 신으로서 신의 본질 또는 존재는 이례적인 것이다. 동방정교에서 이 구성요소의 존재는 믿음 또는 직관에 의해 파악된다. 한편, 신의 에너지를 통해 우리가 그에게 다가가기는 하나, 그의 본질에는 다가갈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59]
성공회 신자인 C. S. 루이스 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60]
그는 후에 여러 단락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믿음, 여기서 내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는, 변화하는 감정에도 불구하고 한번 받아들인 것을 지켜나가는 것이다.”[60]
믿음의 본질은 진실에 손을 드는 것이고, 우리가 지지하는 어떤 밝혀진 진실도 궁극적으로 하나님 진실성을 기반으로 한다. 역사적인 믿음은 단순한 역사적인 사실을 고려한 특정한 성명들을 이해하고 찬성하는 것이다. 최근 믿음은 진실을 보게 되어 종교적으로 공감하여 영향을 받거나 보통 성령의 작용에 의해 내면에서 깨어나는 마음의 상태이다.(예-플렉스
기독교의 교파 분류는 크게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개혁교회 및 개신교개신교 교파는 세계 2만여 개의 분파가 있으며, 대한민국[출처 필요] 주요 교단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뉜다.
각 교파들은 크고 작은 교리상의 차이점들을 보이는데, 그 정도가 심하여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열되기 이전의 신앙고백들인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경
각 교파 사이의 신자들의 실질적인 영성 및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찬례성찬례
The World Christian Encyclopedia에 따르면, 세계의 기독교 신자의 교파별 비율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출처 필요] 아래의 설문 작성시 응답자들이 여러 항목을 선택할 수 있었기에 총 합이 %100를 넘는다.
대한민국에서 기독교는 크게 보면 가장 큰 두 집단으로 나뉘는데, 2005년 기준으로 860만 명의 개신교와 510만 명의 로마 가톨릭교회
서양에서는 기독교와 교육의 밀접한 관계가 존재하였다.
신적 존재에 대한 단순한 믿음으로 전개되어오던 기독교의 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의 발전과 함께 그 진실성의 여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18세기 즈음하여 기독교의 교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추정이론인 진화론
과학적인 가치는 그 믿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객관적/보편적 기준이 존재하여 철저한 검증 단계를 거친 것들만이 살아 남게 된다. 이에 반해 기독교로 대표되는 종교적인 가치는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믿음에 대해서는 객관성과학이 이러한 기준에서 바라본 기독교는 탐탁치못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과학과 종교, 특히 기독교에 있어서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창조에 관한 학설 창조설창조설과 진화론
다만, 창조설이 과학적인 사실로써 진화론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독교 전체가 아니라 특히 미국에 많이 존재하는 일부 창조론자들의 것이다. 창조설이 정규 교육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들 외에는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 개신교를 막론하고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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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비판을 받은 창조론은 성경에 적혀있는 말 그대로는 도저히 과학적인 반박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에 창조론자들은 성경을 재해석하여 말들 속에 숨어있는 숨겨진 원리들을 찾아나가게 되었고 그로써 단순히 수천년전 지구가 생겼다라고 하는 것에대한 나름인 근거들을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이에 관한 7가지 해석법이다. 물론 이 역시 엄밀히는 과학과 별개의 영역에 속하며 종교적으로도 제각기 논란이 있다.
1) 간격설(Gap theory)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지질시대 의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고 보는 관점. 제일 먼저 만들어진 빛에 의해 성숙된 지구가 만들어지고, 그 후에 피조물들이 창조되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2) 날-시대 설(day-age theory)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창조주간 의 하루하루를 24시간으로 보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오랜 세월을 포함하는 지질학적 시대로 본다.
3) 골격 설(frame work hypothesis) 성경이 언제나 창조를 구속 의 중심적 사실- 예수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취급하고 있으므로, 창 세기 1장을 창조과정에 대한 선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구원 사역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주장.
4) 유신론적 진화설(theistic evolution)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모든 생물을 창조했다는 이론이 다. 즉,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섭리사역(진화)에 의해 조종되는 동시에 섭리사역의 일부분이라는 주장.
5) 진행론적 창조설(progressive creation) 생물체가 오랜 지질학적 시간에 걸쳐 진화되는 동안 진화과정으로는 완성시킬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이 그때마다 중재하여 창조한다는 내용.
6) 성숙한 창조물의 출현설 (Appearance of age theory) 하나님은 몇 천년전에 지구를 만들었으나, 지구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성숙한 지구의 형태로 만드셨다는 이론. 창조론이 사실이라 가정한다면 만들어진 지구는 절대 빅뱅이전의 무(無)의 상태가 아니었을 것인데 어떤 원리에 의해 만들어져있는 과학적인 모델에 따르는 이미 성숙되어있는 지구의 형태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7) 성경적 창조설(biblical creation) 앞서 제시된 이론들과는 달리 창세기 1장의 창조를 해석함에 있어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임은 물론 그것이 일어난 기간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구약의 창세기가 현대과학과 상치하는 부분이 많아 과학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증서가 신학적으로 과연 그런 효력을 지니는지 의심스러워 그들은 비텐베르크 대학으로 달려가서 교수에게 증서의 가치를 감정해달라고 부탁했다. 교수는 그 가치의 입증을 거부했는데, 그 교수가 바로 루터였다. 그 다음날 그는 슐로스 교회의 문에 대자보를 써붙였다. 거기에는 그가 입증을 거부하는 이유가 95가지나 적혀 있었다.), 잉글랜드의 핸리 8세가 수장령을 선포한 것은 스페인 왕가 출신의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한 것이었다.(문화사교재연구회, 《동서양문화사》, 학문사, 1998년, ISBN 89-467-8113-0,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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