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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0일(수)
* 시작 기도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주님...
세상에는 각종 그릇이 다양합니다.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 그 가치도 다를 뿐 아니라 모양도 너무 다양해서 여러 분야에서 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치가 높고 뛰어나도 깨끗하지 못하면 사용할 수가 없지요.
하여 자기를 깨끗하게 한 그릇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깨끗함은 나의 행동이나 나의 의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함임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나는 나를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여차하면 나의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이 시간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인정하시는 깨끗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질그릇이어도 좋습니다.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정결하고 깨끗한 그릇으로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갈 6:1-10
제목 :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 나의 묵상
육체가 하는 일들은 분명하다.
음행, 더러움, 음란, 우상섬기기, 마술, 미움, 다툼, 질투, 화내기, 이기심, 편가르기, 분열, 시기, 술취함, 흥청거리는 잔치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오래 참음, 자비, 착함, 성실, 온유, 절제인데 이런 것들을 금지할 어떠한 율법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자기 육체를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새 생명을 얻었기에 이제는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허영심에 들뜨거나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한 싸움을 걸거나 서로 질투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어떤 사람이 범죄한 것이 드러날 때 온유한 마음으로 이를 바로 잡아준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시험 받을지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으로 살핀다.
이렇게 서로의 짐을 서로 지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 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줄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면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가 자기의 일을 진정 어린 마음으로 주의 깊게 살펴서 자신에게 이루어진 일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거기에 자긍심을 가지되 결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을 자랑하지 말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자기의 짐을 또한 각자 져야 한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눌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으시거나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기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다.
육체를 따라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따라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이다.
선을 행하되 포기하지 말 것인데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때가 되어 반드시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기회가 닿은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정에 할 것이다.
여기서 믿음의 가정이란 당시 교회 공동체를 이룬 가정교회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모두가 연약하다.
자기 자신은 대단한 것처럼 여길지 모르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약한 부분도 있고 강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약하다고 하여 낙심하지 말 것이며 강하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약해서 넘어질지라도 그것을 후벼 파서 그 연약함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그런 연약함으로 인하여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서로가 해야 할 일이 곧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일이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물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첫째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온 율법과 선지자들이 말한 내용이다(마 22:35-40).
이 사랑은 곧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창세전 사랑의 관계성 속에서 나온 법이다.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얻어 말씀으로 태어나셨다(요 5:26).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과 함께 언약을 맺으셨는데 우리가 사람을 만들어 그들에게 영생을 주기로 약속하셨다(딛 1:2).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이는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셨고 또한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하셨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이라 한다.
생명을 준다는 것은 곧 자기의 것을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주는 것이며 하위권위의 그 무엇도 자기의 권위를 이용하여 착취하거나 빼앗는 것이 아니다.
하위권위도 상위권위에게 굴종이나 맹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 권위에 복종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창세전에만 복종하신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도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복종하셨다.
(요 6:38-40)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좇아 행하셨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아버지의 뜻과 명령은 오직 아들을 보고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영생이다.
이와 같은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착취와 강요나 굴종이나 맹종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일 때 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율법사에게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의 법이다.
사랑이 없이도 한두 번은 사랑하는 것처럼 선한 모습을 보일 수는 있다.
아니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지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 곧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에서 나온 사랑이 아닌 사랑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자기 義의 사랑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서로의 짐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성 속에 서 사랑으로 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자기 자신을 항상 살펴서 자신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를 깨달아 알고 그 은혜를 자긍심으로 가지는 것이 자신의 짐을 지는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으시거나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7절, 개역한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런데 믿는 자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업신여기거나 만홀히 여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성경의 인물들 중에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그러했고, 사울 왕이 그러했으며, 아합 왕이 그러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내 안에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만홀히 여기는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곧 업신여기는 것이요 업신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것이며 또한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믿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나 자신을 속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며 그 결과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은 곧 육체를 따라 심는 것이기에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다.
육체의 일은 분명한데 그것은 곧 갈라디아서 5:19-21절에 열거된 것들이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돌아본다.
나는 과연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모시면서 그리스도로 믿었는가?
나는 진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업신여기거나 만홀히 여기지 않았는가?
내 안에는 육체의 생각을 따라 행한 일이 너무나 많다.
너무 많아서 셀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나의 옛 사람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고 하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아담 안에 있는 본성인 옛 사람으로 행했던 자임을 고백한다.
이와 같이 비참하고 추하여 참담함을 금할 수도 없는 일들이 부지기수다.
악한 것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다(살전 5:22).
또한 악한 생각이 우리 안에 파고 들어올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악한 생각을 묵상하지 말고 그것은 악한 것이기에 대적하여 싸워야 한다.
싸우는 것은 곧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말한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영적 싸움이다.
나는 이런 현저한 육체의 일과 같은 악한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기는커녕 오히려 묵상하고 즐겼던 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 다시 예수를 힘입어 일어난다.
그리고 파레시아로 담대하게 존재이신 말씀 앞에 나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품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이 내가 거할 지성소이며 아버지의 품속이다.
그곳이 하나님 나라이며 내가 넘어질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때를 보기 때문이다.
선한 일이란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힘입어 다시 아버지 품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 안에서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 곧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힘입어 오직 주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선한 일임을 깨닫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날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면 자빠져 일어설 수도 없고 날마다 넘어져 낙심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어 오늘도 나의 모습은 비참하고 처참하기만 합니다.
그런 나의 모습 속에 선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달으며 나는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나로서는 안 되오니 오직 성령께서 나를 이끌어 주의 것 삼으소서.
사람들이 보기에 선한 일이 아니라 오직 창세전 사랑의 언약에 근거하여 서로의 짐을 지는 사랑을 행하므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가 주의 날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