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유석재 기자’의 지식사기극을 말려야 한다.
-백낙청교수에 기용된 “백낙청홍보용 야바위”가 우익을 대변한다고?-
무엇이라? ‘신용하’ ‘안병직’교수가 우익? 인명진 김용갑 공격 사건의 일만배 이상 초과하는 ‘조선일보’발 우익 능멸하기 사건이다.
신용하교수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좌익’이다. 왜냐하면, ‘통일국호’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이 아닌 별개의 명칭을 공론학술지에 밝혀 적은 바 있다. 비록, 독도 문제에 있어서 우익의 기호를 맞춘다 하더라도, 결정변수로서의 이념 잣대로서 ‘좌익’이다.
안병직교수는 줄곧 의심을 받아왔다. 특히, 안병직 교수의 학술논거는 별개로 ‘처세술’의 정치성에 있어서 ‘저런 방식이 우익의 처세인가?’하는 분노를 여러번 만들었다.
http://book.daum.net/bookdetail/book.do?bookid=KOR9788984310780
안병직교수의 ‘개발론’도 창작과 비평계의 ‘착취론’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착취-개발론’논쟁을 설명하자면 1997년 무렵의 창작과 비평지에는 일제가 우리를 착취했나 일제가 우리에게 개발을 시켜주었나의 문제를 섰다. 안병직 중철촌 등의 인사가 ‘개발론’을 선택하여, [창작과 비평] 독자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을 취했다. 일제가 우리에게 ‘개발’도 ‘착취’도 시켜주었다만, 단 하나를 택하라면 물론 ‘착취’다. 이것은 ‘평범한 한국인’으로서의 양심의 기본이다. 안병직교수가 조갑제기자의 신뢰를 독차지 했기 때문에, 우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안병직’이란 이름 석자가 대학가에 퍼지게 된 배경이 백낙청파벌 홍보용 야바위 수준이었음을 기억하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안병직교수와 신용하교수는 창작과 비평의 ‘강만길’ ‘백낙청교수’가 품어주던 지식인이었다. [창작과 비평]에 기고하여 오랫동안 등재될 수 있는 능력은, ‘불순분자 이단 우익’의 모든 조건을 완비했다고 본다. 그 잡지가 좌익 한 패밀리 아니라면 쉽게 실어주는 잡지인가? 즉, 독립신문과 데안토 논객이 ‘대한민국만세’하면 실어주는 잡지인가? 뻔하다. 전대협 한총련 코드대로 나아가되 보다 고급취미로 나아가서 대중을 기만하기 좋은 글만 실어준다. ‘안티조선’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자들을 불순하게 바라보는 방법이 가능하다면, 우익도 [창작과 비평]에 기고하거나 [창작과 비평]을 홍보하는 자를 불순분자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창작과 비평의 지식 배급 방법은 부정기 간행물 [창작과 비평 1987]에서의 ‘사회구성체논쟁’에 기인한다. 즉, 사회구성체 논쟁은 각을 세워 비판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순수한 학술논쟁’을 연상시키지만 실제는 ‘왔어, 왔어, 왔어요, 돈 놓고 돈놓고 돈 먹기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하는 차원에서, 가짜로 돈을 잃어주는 허수아비가 있는 것이다.
즉,
*. <<백낙청 표 야바위>>
백낙청 (주인장)----> 딸 사람 : 최장집, 신용하
잃을 사람 : 안병직
*. [창작과 비평] 독자 기준 : 우익은 모르나
신용하는 창비의 책임자 수준.
기실, 안병직의 비판 공격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백낙청 홍보하기 야바위였다. 즉, 한국인의 평범한 정체성을 어긋나서 ‘일제가 우리를 어엿비 여기사 개발’을 선택하는 과거의 진부한 [창작과 비평] 민족주의를 높이기 위한 홍보술의 선택의 재탕이었다.
요약하면
(1) 신용하, 안병직------------> 백낙청, 최장집 비판 처럼 유석재기자가 사기쳤지만,
(2) 신용하교수는 백낙청 패밀 리가 분명히 맞고(창작과 비평 목차의 편집위원진에 장기간 이름을 등재했다), 안병직은 백낙청 패밀리에서 ‘바보 캐릭터’를 맡으면서 존재해왔던 수준이 맞다. 이에 대해 불복하면, [창작과 비평]의 ‘착취-개발’논쟁을 재론하며 철저하게 그 논쟁이, ‘진부한 창작과 비평 민족주의’를 갱생케 하기 위한 ‘야바위 작전’에 다름 없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조선일보표 우익]을 믿느니 ‘똥개 새끼’를 믿겠다. 함석헌 자식인 백낙청교수를 [조선일보]에 끌어넣고 ‘분단체제론’이란 이름을 걸게 하여, 조선일보는 함석헌 반체제 반역분자 따까리로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의 확약 의식 아닌가?
힌트 하나 주겠다.
강준만 흉내내려면 30대의 젊은 우익의 공신력 갖춘 대학교수가 가격해야 맞다. 강준만의 처음은 미국 유학 갔다온 파릇파릇한 대학교수이미지였다. 조선일보와 교류가 잦은 ‘조순형’의원이 남프라이즈 등에 ‘이명박 비판’을 실었다고 해보자. 입장을 바꿔 놓고 보자는 말이다.
조선일보와 교류가 잦은 김대중계 정치인이 조선일보가 적극 배팅하는 정치인을 깠다고 해보자. 그러면, 독자의 생각은 뻔한 거 아닌가?
(1) 조선일보에 기용되어
(2) 그렇지 않은 것처럼
(3) 조선일보가 배팅하는 정치인을
(4) 공격하는 척 오두방정 떨면서 적극 홍보하라?
이 딴 잔머리를 쓴다고 본다.
안병직, 신용하는 장구한 세월 동안 백낙청과 입맞췄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창작과 비평]이 한 때 1만부 팔리는 잡지였으면, 이 사실을 아는 자가 많다. 그러나, 60대 저학력 우익-조선일보 주고객-이 모른다고 사기치나?
우익에게 ‘싱싱한 물건’을 다오. 농약 써서 싱싱한 ‘뉴라이트 신지호’같은 사람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