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산 기도원서 작정하고 숙식할 때 집회 참석하다가 신비주의 목사라며(투시, 예언) 돈 밝히는 삯꾼 목사에게 300만 원 헌금하고(그때 저는 간절했어요. 그리고 뒤늦게 알았지만 제가 멍청했습니다. 왜냐면 감정으로 뭘 받으려니 되냐고요? 그러니 저런 삯꾼이 설쳐 되는 거죠) 되찾아서 본교회에 헌금을 하기도 했습니다(스물넷 청년 때 일).
개척교회 섬길 때 일 >>교회 성전 문칸방서 모기향을 피워서 자는 숙식하는 교인이 불을 내서 벽지가 그을린 사건으로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었지만 벽지 도배 비용을 약 350만 원 되는 금액을 내주고 그 교회서 나와 버렸습니다(사십 대 중반 일인데 개척교회를 섬겨 보고 싶어서 가봤는데....)
페이스북을 하는 중에 한 여성 목사는 남편도 목사로 어렵게 사는 산골 교회서 생계 수단은 막노동판에서 일을 해주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잘 안되고 그분의 글 자체는 딱한 사정에 쪼들리는 삶에 빚 청산을 해야 하는데 건강까지 안 따라 주고 또박또박 카드 결제 일은 다가오고 금전적인 어려운 삶의 모습들 뿐이어서 저의 맘도 참다못하여 50만 원을 보내 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삶이 순탄치가 않아서인지 이 분은 너무 막말에 사람들과 관계 회복을 못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그분이 새로이 계정을 하던 중에 사라졌습니다. 저도 모르는 일이죠).
참 별의별 교회들이 많습니다. 저의 삶도 한정되게 먹고사는 기준의 최소한에 써야 할 돈 외에는 어디서 나올 수 있는 금액은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있다면 노임을 가지고 사라진 인간들이 스스로 알아서 갔다 주지 않는 한 하늘 아래서 쏟아 날 구멍은 없습니다.
성도들이 사월세에 전세에 빚에 전전하는 경우들도 많다고 보거든요!! 신축빌라 하나 겨우 장만해서 사는 입장에 저는 최소한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데요. 우리 주님은 거처할 집 하나도 없었고 머물 곳이 없었던(마 8:20)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창조자요. 주인이신 분과 비교를 해 봐도 저는 주님 앞에서 사치라고 하고 싶습니다(이건 저의 자존심 문제지만, 많이 가져 보려고 애쓰다 요 정도에서 머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돈만 악착같이 벌려면 뭐를 해도 많이 벌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런데 내 영혼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돈만 좇아서 가는 분들은 곧 죽더구먼요. 그리고 세상 것 다 가지려고 모았던 것 하나도 가져 가지 못하고 한 줌에 흙이 되는 것을 안다면~
위에 분들이 하나같이 목회자라 하지만 목사가 아니라고 숨겨서 살았더라면 더 좋았겠다 하고 싶고 떴떴하다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같이 말씀으로 똑바로 못섰다는 것입니다. 예, 저도 마찬가지고 아이러니한 모습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에 사람들 각자에게는 베푸시는 삶의 여정들이 있습니다.
시골 산골 목회는 아무나 못합니다. 그 귀하신 분께 하나님이 책임지게 하시는 영혼을 관리하시는 프로그램을 주셨습니다. 신자들 마음 상태에 따라서 그 산골의 영성이 필요한 수준을 가르칩니다. 대도시 대형 목회를 한다면 부피가 다르기에 하나님의 귀한 복음의 소식 아주 귀한 엑기스를 가장 바람직하게 가르치는 능력으로 탁월하게 시대를 분별하고 통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가 사치와 대우를 받고 교회 운영에 권한을 가지고 있어 보이고 가지는 것도 생각을 달리해야 할 줄을 알게 되는 게 저만 그럴까요? 아무튼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 일 것입니다. 사람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고 가져 보면 더 가지고 싶어서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모든 것을 겪어 보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는 일체의 비결을 알 때까지는(빌4:11-12) 믿음의 신자 된 일꾼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아야 할 줄을 믿습니다.
기도만 하고 영성을 추구하는 곳에는 분명 균형 있게 지도를 못합니다. 시대를 앞서 가지 못하고 구분을 못해서 영성에만 매달리기도 하거든요. 그러한 곳은 그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어쨌든 기독신자들이 말씀보다 초월해서 앞서가는 신앙생활은 없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실수하고 어리석게 해왔던 신앙생활이 있다면 퍼포먼스에 불과한 것이요. 시대를 앞서가기 위해서는 신앙생활도 꾸준하게 노력하면서 저의 어리석은 경험을 토대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영성의 기본은 말씀 사모로 다독을 하면서 생각에 그려 넣는 것이 압권이 되어야지 이상한 신비주의 잘못 가는 영성에는 빠지지 않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