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첫홀 ‘쿼드러플 보기’서 마지막은 ‘20세 챔피언’
PGA ‘윈덤’서 데뷔 첫승 김주형
역대 2번째 어리고 한국인은 최연소… 4오버로 출발해 우승은 사상 처음
4R 전반 9홀서 이글 등 8타 줄이고… 출전자 중 가장 정교한 퍼팅도 한몫
갓 2세 때 한국 떠난 ‘골프 유목민’… KPGA 최연소 우승 등 숱한 기록
《김주형(20·사진)이 8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새 역사를 썼다. 2000년 이후 출생 선수로는 처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한국 선수 최연소 우승 기록과 함께 평소 자신의 우상이라고 말했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7)보다도 이른 나이에 PGA 정상에 올랐다. 김주형은 “정말 오래 기다린 우승인데 이렇게 갑자기 올 줄 몰랐다. 새 기록까지 세워 의미가 더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스무살 김주형, 우상 우즈보다 PGA 첫 우승 빨랐다
2020년 8월 자신의 우상인 타이거 우즈(오른쪽)를 만나 기념사진을 찍은 김주형. 사진 출처 김주형 인스타그램
김주형(CJ대한통운)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이자 한국 선수 최연소 우승을 했다. 김주형은 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 세지필드CC(파70)에서 끝난 윈덤 챔피언십에서 최종 합계 20언더파 260타로 정상에 올랐다. 투어 첫 우승이다. 2002년 6월 21일생인 김주형은 20세 1개월 17일의 나이로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투어 역대 두 번째로 어린 우승자가 됐다. 2013년 조던 스피스(29·미국)가 당시 19세 11개월 17일의 나이로 존디어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김주형의 우승 기록은 평소 자신의 우상이라고 말했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7)보다 빠른 나이다. 1996년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투어 첫 우승을 할 당시 우즈는 20세 9개월 6일이었다.
김주형이 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 세지필드CC(파70)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윈덤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18번홀(파4)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파 퍼팅에 성공한 뒤 주먹을 움켜쥐며 기뻐하고 있다. 투어 정회원 자격과 플레이오프 1, 2차전 출전권을 얻은 김주형은 “(페덱스컵 상위 30위까지 출전하는)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 나가는 것이 꿈이다”며 선전을 다짐했다. 그린즈버러=AP 뉴시스
김주형은 김시우(27)가 갖고 있던 한국 선수 최연소 우승 기록도 새로 썼다. 김시우는 21세 1개월 25일이던 2016년 윈덤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2000년 이후 출생 선수의 PGA투어 우승은 김주형이 처음이다. PGA투어는 김주형의 우승 소식을 전하면서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가 도착했다”고 알렸다.
8일 대회 최종 4라운드 18번홀(파4)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3m 파 퍼팅을 성공시킨 김주형은 오른손을 움켜쥐며 ‘해냈다’란 표정을 지었다. 홀에서 공을 빼낸 뒤 모자를 벗었다. 까맣게 탄 얼굴과 달리 평소 모자에 가려진 하얀 이마가 눈에 띄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뙤약볕에서 훈련했는지 보여주는 훈장과 같았다. PGA투어 첫 승을 따낸 김주형은 “지금까지 우승도 몇 번 해봤지만 이렇게 감정이 세게 온 것은 처음이다. 아직까지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두 살 때 한국을 떠난 뒤 각국을 돌며 골프를 배워온 ‘골프 유목민’ 김주형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국내 아마추어 대회를 뛰다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쳐 프로에 데뷔하는 일반적인 코스를 거치지 않았다.
2002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주형은 2년 뒤 티칭 프로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을 떠났다. 6세 때 호주에서 골프클럽을 처음 잡았다. 5년 뒤에는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 호주, 필리핀, 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지내 영어, 필리핀 타갈로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김주형은 2018년 6월 프로로 데뷔해 그해 아시안투어 2부 투어에서 뛰었다. 이듬해 1부투어로 올라가 11월 파나소닉오픈에서 투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우승(17세 4개월 27일)을 하며 이름을 알렸다. ‘기록 제조기’의 시작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국내로 발길을 돌렸다. 2020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군산CC오픈에서 우승하며 프로 최연소 우승(18세 21일), 입회 후 최단기간 우승(3개월 17일) 기록을 썼다.
이번 윈덤 챔피언십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PGA투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챔피언이 됐다. 투어 15번째 출전 만의 우승이다. 한국 선수로는 9번째 우승자다. 우승 상금으로 131만4000달러(약 17억1000만 원)를 받았다. 김주형은 1라운드 1번홀(파4)에서 쿼드러플 보기(4오버파)를 했다. PGA투어에 따르면 홀별 데이터를 추적한 1983년 이래 대회 첫 홀에서 쿼드러플 보기 이상의 저조한 기록을 내고도 우승한 선수는 김주형이 처음이다. 김주형은 “쿼드러플 보기를 했지만 예선은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최선만 다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꼽은 우승의 원동력은 퍼팅. 김주형은 이번 대회 4라운드 동안 참가 선수 중 가장 높은 퍼팅 이득 타수(12.546타)를 기록했다. 퍼팅으로만 다른 선수보다 12타 넘게 이득을 봤다는 의미다. 특히 4라운드 전반 9개 홀에서만 이글 1개, 버디 6개로 8타를 줄였다.
김주형은 이번 우승으로 투어 정회원 자격에 2년간의 시드도 확보했다. 이번 대회는 특별 임시회원으로 출전했다. 페덱스컵 랭킹 34위 자격으로 11일부터 시작되는 플레이오프 1차전 페덱스 세인트주드 챔피언십과 2차전 BMW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랭킹을 30위 이내로 올리면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 무대까지 밟는다. 김주형은 최종 목표에 대해 “아직 전체적으로 부족하고 가야 할 길이 멀어 최종 목표는 다음에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임성재(24)는 김주형에게 5타 뒤진 최종 합계 15언더파 265타로 재미교포 존 허(32)와 공동 2위를 했다. PGA투어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과 준우승을 모두 차지한 건 처음이다. 김주형은 “(임)성재 형은 내 롤모델이다. 형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 좋은 말을 많이 해준다”며 “경기가 끝나고 안아주면서 축하도 해줬는데 밥을 한번 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임성재는 이날 세계 랭킹 20위, 김주형은 21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