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1일 묵상 본문 : 갈라디아서 6장 11절 - 18절 - 세상의 길을 거부하고 복음을 통한 고난에 동참하여 주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10월도 다 지나고 하루를 남겨둔 마지막 날을 시작합니다.
변함없는 주의 은혜는 늘 새로운 날을 허락해 주시고 믿음의 삶을 이어갈 기회를 주십니다.
주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를 원하지만 육신의 욕망은 늘 허무한 것을 좇아 살게 합니다.
주의 지혜를 얻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살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고 영과 육의 강건함을 얻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지체들의 삶도 기억해 주시고 주를 더욱 사랑하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바울은 자신이 편지를 기록하며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집중하도록 권면한다.
이는 당시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에서 벗어나 율법주의로 향하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하고 복음에서 벗어난 길에서 돌이키기를 소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육체의 모양을 내려한다는 표현은 율법주의자들이 형식적이고 외면적인 겉치레에 중심을 두고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게 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할례를 받는 것에만 중심을 둔 신앙생활은 복음을 통해 주어지는 고난과 박해를 피하려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임을 선언한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 중 유대교 과격분자들의 핍박이 강했고 이를 두려워했음을 보여준다.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이 그들 스스로는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려고 열심을 내지하는 자들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갈라디아 성도들이 할례를 받게 함으로써 육신의 표징을 자랑거리로 삼도록 만들고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벗어나게 하려는 방법을 제시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자신의 유일한 자랑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세상과 자신의 관계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선언하고 있다.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바울은 할례를 받든지 안 받든지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선언하고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 즉 새롭게 거듭난 성도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선포한다.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여기에서 규례는 복음을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교회의 성도들을 의미한다. 바울은 교회 가운데 평강과 긍휼이 주어지는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17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은 더 이상 율법주의에 현혹되어 쉽게 흔들리는 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자신은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경험한 사람임을 선포한다. 이는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려고 율법주의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고 기꺼이 고난 가운데 동참하는 성도로 살아갈 것을 권면했던 것이다.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르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나의 묵상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자신이 전한 메시지에 집중하여 바른 길에 서도록 도전한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복음을 통해 바른 신앙을 세우는 것이며 결코 율법을 지켜서 바른 신앙을 세울 수 없음을 선포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율법주의자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주장은 복음을 배반하는 것임을 선포하면서 그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했다.
또한 할례를 받으면 유대인들과 과격분자들의 핍박과 박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피하려는 것으로 성도가 취할 태도가 아님을 선포한다.
성도는 고난을 피해가는 자가 아니라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향해서도 고난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제시했었다.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4~29)
바울은 교회를 향한 자신의 열심은 고난을 가져오는 일이지만 그것이 교회를 세우는 능력이 됨을 선포하면서 이방인들의 교회도 동일하게 이 능력에 동참하는 자가 되기를 권면했었다.
이러한 바울의 권면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며 성도가 취할 삶의 태도이다.
이것을 모르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목적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다.
배가 움직이는 것은 느껴지겠지만 어디에 도착할지 알 수 없으며 동력이 떨어지면 배가 멈추고 결국 요동치는 비바람과 파도에 침몰하는 배가 될 뿐인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이 강조한 할례와 율법은 그것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할례와 율법을 주신 의미는 그것을 지키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할례와 율법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 있다.
또한 그 언약을 지킬 능력이 없는 자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할례와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생명의 복음을 전하며 고난도 기꺼이 수용하는 자로 살게 된 것이다.
바울은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가치는 결코 함께 소유할 수 없음을 선포했다.
그래서 복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미련하고 꺼리는 것이지만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임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가치를 따라 살 것을 제시한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18~24)
오늘도 주의 복음은 육신을 따르려고 하는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도록 이끄신다.
이러한 방향성의 싸움은 늘 지속되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이어짐을 고백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하시고 온전한 주의 백성으로 세우실 것을 믿는다.
그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복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누리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사는 목적을 다시 복음에 두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복음을 따라 사는 것을 어리석은 삶이라고 규정하고 기피하며 멀리합니다.
박해를 피하고 세상의 가치를 누리며 사는 것이 힘이요 능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세상의 핍박과 고난을 가치 있는 것이며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을 강조하며 그 길을 따라 가도록 선포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살게 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복음에 동참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임을 알고 그 복음에 연합되어 살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오늘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바른 복음을 드러내는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하여 주시고 힘을 주시며 주를 따라가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