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세월은 쏜살같이 흐릅니다.
오늘은 교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을 나들이를 갑니다.
생의 끝자락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기를 원하는 마음들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려 했던 시도를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죄송하고, 사람 앞에 부끄럽고 민망할 뿐입니다.
오염된 영혼을 십자가 보혈로 덮어 주시어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갈라디아서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오늘도 깊은 진리의 바다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본문 주해)
11절 : 바울의 편지들은 (당시에 흔히 그러하듯이) 바울이 구술하고 바울의 제자가 받아쓰게 하였다. 받아쓰게 하고 다시 읽어보게 하고서 끝에 자신의 편지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친필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마지막 단락(6:11~18)은 바울이 직접 기록한 후기이다.
친필(큰 글자)로 된 후기는 서신에 신빙성을 부여하고, 서신을 요약하고, 서신을 끝낸 후에 발신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덧붙이는 역할을 하였다.
12~13절 : 거짓 교사들이 할례를 행하려고 하는 것은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육체의 모양을 낸다는 것은 자신들의 전한 결과를 숫자로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할례를 몇 사람이 받게 하였는지를 가지고 얼마나 많이 전도하였는지를 자랑하는 것이다.
또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한다는 이유로 동족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았지만, 이들은 할례를 전함으로 동족 유대인들에게서 받는 박해를 면하고자 한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유대교로부터 박해받고 심지어 파문당했을 것이다.
사실 이들은 스스로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도 않으면서도 할례는 주장하였다.
14절 :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새번역)
이는 참된 성도의 정체성을 말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볼 때 세상은 죽은 세상이고, 세상이 볼 때 성도는 죽은 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라면 악착같이 썩어질 세상의 것들을 세상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거두려고 하는 시도를 그친다.
육체의 자랑은 곧 세상의 가치관이며 세상에 속한 자랑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에게 일어난 구원은 세상에 속한 모든 자랑을 폐한다.
15~16절 :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 지음 받음이 중요하다.
성도는 새로 지음 받은 존재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새로운 존재가 된다.(고후5:17)
할례와 무할례를 따지는 유대교 신앙은 세상 종교에 속한다. 그러나 위로부터 태어나는 생명을 주는 기독교는 세상 종교를 초월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 종교에 속한 할례와 무관하며, 그것들에 대하여 십자가에 죽은 자이다.
바울은 할례와 무할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존재로 사는 자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을 기원한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바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택함을 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17~18절 :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새번역)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함으로 엄청난 환난과 고난을 당하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처가 없는 곳이 없을 것이다. 돌에 맞아서 죽은 자와 같이 되어서 내다 버려지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바울의 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흔적(스티그마)들이 새겨진 것이다.
그런데 이 흔적은 단순히 육체에 새겨진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의 마음에 예수님의 종으로서의 낙인이 찍혔음을 말한다.
또한 다시는 거짓 교사들에게 현혹되어서 복음을 의심치 말고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묵상)
주님의 십자가는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을 구별하게 한다.
나에게는 그랬다.
나는 30여 년을 십자가와 무관하게 지냈다.
그래도 교회 안에서 열심 있는 자로 인정을 받았고, 또 스스로도 믿음이 있는 체했다.
생각해 보면, 다 했는데 오직 십자가는 붙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복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복음은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은 팽개치고 엉뚱한 일에만 열심을 냈던 것이다.
어쩌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십자가에 대한 불길한 예감(?)에 있었기에 미리 선을 긋고, 다른 것은 다 해도 골치 아픈 십자가와는 거리를 두고자 했던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주님께서 내게 찾아와 주셔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매일을 말씀으로 살게 하시니, 나는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죄를 주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정결케 하여 주심을 알게 되었다. 나는 주님의 보혈로 인해 새로 지음 받은 존재,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되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여전히 과거와 동일하게 교회 중심의 사역을 하면서 열심을 낸다.
그러니 겉모습은 비슷하다. 하지만 속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였으나, 지금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었다.(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쳐질지 모르지만, 주님은 아시는 일이다.)
그것은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함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매일의 말씀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은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니, 그것은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인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나의 구원에만 소중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내 삶의 전 영역에서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다. 나를 휘몰아가는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툭하면 올라오는 자기의와 자기주장의지도 십자가가 아니면 처리할 수가 없다.
이제 십자가만이 나의 보배가 되었다.
여러 가지 사역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지금은 안다.
그래서 그런 마음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살아가니 ‘모든 것, 주님이 하셨습니다!’ 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숱한 고난과 어려움으로 인해 자신에게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나는 주님으로 인해 그런 박해를 받은 적이 없다.
고작해야 만나는 사람에게 늘 예수님 이야기를 하려 하니 사람들이 약간 꺼려하는 느낌을 받는 정도이다. 그래서 때때로 씁쓸한 마음이 드는 정도이다.
그러니 몸에는 흔적이 없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깊이 새겨진 것이 있으니 바로 주님의 십자가이다.
그것은 나 스스로가 새긴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 마음에 심어주신 것이다.
전에는 고통으로 알고 있었기에 멀리 하던 십자가였지만, 이제는 나를 살리고 정결케 하는 십자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십자가임을 알게 되었기에 내게는 보배 중의 보배가 된 것이다.
성령께서 이렇게 십자가를 밝히 보게 하시니, 그제야 종교 생활을 그치고 신앙 생활을 하게 된다.
(묵상 기도)
주님,
저는 세상의 때를 여전히 많이 묻히고 다닙니다.
그래서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가 될까 두렵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주님 앞에 정직하게 선 자가 됨으로 사람 앞에 당당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된 자, 새 마음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행하지 않길 기도합니다.
이 기도가 응답받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