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랑탕 히말라야, 순례자의 길
Walking in the air(꿈속의 칼라빠따)서문
2002년 10월,
희박한 공기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저는 히말라야, 칼라빠타(5545미터)를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무엇을 얻고자함도 아니었고 무엇을 버리고자함도 없는 무상의, 무념의 상태에서,
오히려 이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를 끊임없이 되뇌이며, 뭔가의 의미를 스스로 찾으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며,
가기 전에 동료들 비전하며, 급조한 사진들, 메모들을 정상에 두고 와야지 하는 등등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며,
아니, 만들며 산을 향했습니다.
지나서 생각하니 여러 가지 핑계로 내 마음을 달래는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나 싶어 마음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제가 히말라야로 떠난 지 48시간 후,
9년 동안 저를 친구처럼, 동생처럼, 동료로서, 때로는 어머니처럼 저를 도와주시고 돌보아 주신 김 XX 원장님께서
제가 없는 사이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산부인과의사로서,
친구들의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정 많은 인간으로서,
불쌍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누구도 그냥 보내지 않고
그토록 적극적으로 도울려고 애쓰던,
정말로 선하고 선한, 그래서 손해 보더라도 결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던,
하느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참인간,
김 XX원장님의 영전에, 가신 길동무 못해준 못난, 후배 이 글을 바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고통이 없는 천국에서 이제는 평화가 온전히 그대의 것이니......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 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 멘.
2002년.11월 2일 두손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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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이 지나, 2010년 5월이 깨어 나는 날,
4월 30일 새벽 1시 30분 광주 고속버스터미널 ,
아주 오래 된 친구들(전남의대 OB산악회)이 모여 들고 있었다.
나와 크리스티나,
조석필 대장 내외 ( 조 석필, 그는 우리나라에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을 세우며,
고산병에 대해 전문가이신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배님이시다)
정국이 형 내외,
최 찬 선배( 전남의대병리학교수이시며, 사진반 선배님이다)내외,
이 민철 교수님(전남의대 병리학교수, 뇌과학의 석학이시다), 조 재식선배님(베스트 이비인후과 원장님).과 처남님 ,
이 문기형 (망막의 전문가 , 안과 의사이자, 사진전문가)내외,
그리고, 우리의 살아 숨 쉬는 사전, 김 주호 선배님 내외,
영원한 돌싱남, 허 정필원장, 홍 운기 마누라와 아들, 현석이(초등학교 4학년, 개구쟁이),
창진이 마누라이자 산악회후배, 수정^^아와 셋째 딸 우리의 자랑,
정은이...(정은이는 6학년이고,설사 병이 나서 자존심이 약간 상했지만,
말 타고 랑탕 벨리까지 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녀임을 증명함. 특기는 마술을 잘 함.)
2002년 이후,
8년 만에 히말라야 트렉킹을 위해,
전에 같이 간 동료 그리고 새로운 동료들이 다 모였다.
2000년 10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랙킹,
2002년 에베레스트 베이스켐프, 칼라파타(5545미터) 트렉킹 이후
세 번째의 네팔행이이었다.
지난 일요일(4월 25일),
이미 광주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춘, 구루지예프 무브먼트(신성무) 후의 계획된 일이었지만,
내게는 의미 있는 삶에의 무브먼트중의 한 사건(WORK)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6시 30분,
주위에 이런저런 부산함이 오더니 인천공항이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작년 10월 이후,
9킬로 가벼워진 몸과 무브먼트로 깨어 난 영혼으로, 비행기에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긴 채,
카트만두로 향했다.
99%가 아닌 100%를 맡긴다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세상에서 가장 큰 만두를 행향해서 출발 !!!
요요마야,
자거라,
시간이 지나고,
별이 이동한 자리 뒤에 다시 태양이 오르고
너의 길을 밝힐 것이니...
첫댓글 최원장님 감칠 맛나는 랑탕소식을 계속 올려 주세요, 건강하게 귀국하여 축하드림니다
글 솜씨 일품 이시네요 다음편이 기대 됩니다
keep going~~^^
아직 2편 없네요 기다리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