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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섬&산 100ㅣ5월의 섬 관매도] 와락 안겨오는 3만 평 유채꽃 화원의 감동!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주민욱 기자
월간산 기사 입력일 : 2020.05.15.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진도 남쪽의 매력적인 유채꽃 섬
순간 눈을 의심했다. 영화 같은 풍경이 눈앞에 있다.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이 노란색 바다를 이루었다. 섬 안쪽 은밀한 골목을 돌아들자, 느닷없이 봄의 클라이맥스가 단도직입적으로 심장을 푹 찔렀다. 아무도 없는 3만 평 유채꽃 세상이 가슴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고흐가 사랑했던,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노란 물결에 파묻힌다. 유채꽃 향기에 정신이 아찔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광기는 본적 없다. 덕지덕지 남은 욕심 다 버리고 이 섬에서 잊혀지고 싶다.
아름다움도 죄가 되는 시국이다. 우리 땅 곳곳에서 갈아엎은 유채꽃밭과 목이 잘린 수선화, 폐쇄된 벚꽃길을 보며 실감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관광객이 올 여지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절정의 봄날과 거리두기’도 포함하고 있다. 꽃향기 속에 무언가 슬픔에 가까운 기류가 떠다니는 것만 같다.
조심스럽게 진도항(팽목항)을 찾았다. 방파제에 늘어선 노란 깃발만이 큰 소리를 내며 펄럭였고 나머지는 고요했다. 짧게 묵념을 하고, 농협 철부선에 몸을 실었다. 함박눈이 세상을 어루만지며 착지하듯 부드럽게 배가 닿았다. 1시간 20분 만에 닿은 섬은 기대 이상이었다. 수면을 박차고 비상하는 것처럼 해안선이 뻗어 있었다. 순수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백조 같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4.3㎢ 넓이의 아기자기한 섬은, 제주로 가는 새가 입에 먹이를 물고 잠깐 쉬어간다는 뜻으로 ‘볼매도’라고 불리다가 한자로 지명을 표기하면서 관매도觀梅島가 되었다. 더불어 제주도로 귀양 가던 선비가 섬을 붉게 물들인 매화를 보고 관매도라 이름 지었다는 설도 있다.
관매도에는 관광 명소가 여럿 있는데, 첫 손가락 꼽는 비경이 관매해변이다. 경쾌한 리듬으로 파도와 바람이 춤을 추는, 외로움으로 붐비는 1㎞의 해변. 제 아무리 무뚝뚝한 사내라 해도 해변을 걷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멋진 해변에 아무도 없으니 누구라도 해변을 걷게 만든다. 게다가 모래 입자가 작고 일정해 바닷물에 젖으면 차량이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굳어져, 발빠짐 없이 쾌적하게 걸을 수 있다고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직원이자 이곳 토박이인 고병언 주임이 알려준다.
2명씩 보초 정해 지켜낸 방풍림
두 번째 감동은 방풍림이다. 100년 넘는 세월을 버틴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아하게 숲을 이뤘다.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전한다. 땔감으로 불을 지피던 시절, 태풍처럼 강한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선 방풍림이 꼭 필요했다. 매일 2명씩 보초를 정해 나무를 베지 못하게 숲을 지켰고,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도 균등하게 나눠 가졌다고 한다. 몰래 땅에 떨어진 가지를 주워 가는 집은 나무 배급에서 제외할 정도로 엄격했다. 원래 ‘이곳 처녀는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래바람이 심했던 섬이었으나, 조선시대인 1600년경 강릉 함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면서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섬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숲 속에 야영장이 있다. 해변과 숲, 적당한 고요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텐트 등 야영장비를 두고 간식과 물만 챙겨 산으로 향한다. 마을 골목으로 접어들자 풍채 좋은 후박나무 부부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성황당 나무가 섬을 훼손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 같다.
좁은 골목을 나오자 눈앞에 유채꽃 세상이 펼쳐진다. 길 끝까지 노랑이 뻗어 있고, 정적만이 감돈다. 유채꽃밭을 지나자 도시의 덧없는 것들과 작별하고 마음이 한결 순수해진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샛배에서 블랙야크 직원인 김정배·정회욱·최재우씨와 BAC 크루 정소영씨와 함께 산행을 시작한다.
산은 산이다. 200m대 산이라 얕보았다간 속옷까지 젖은 땀으로 후회하게 된다. 급경사가 이어져도 힘들지 않은 건, 선물처럼 툭툭 터지는 경치 덕분이다. 얼마 안 가 맛집 같은 달콤한 봉우리다. 바다도 시원하지만, 지나온 유채꽃 벌판이 고흐의 작품마냥 아리따운 색감으로 마음을 잡아끈다.
지도에는 돈대산이라 적혀 있지만 정상 표지석은 돈두산이다. 지금은 폐교된 관매초등학교 교가에도 ‘돈두산’으로 나오지만 잘못 알려졌다고 한다. 게다가 인근 하조도에 돈대산이 있어 이름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기대 없이 나선 하산길, 감미로운 해넘이가 마음을 무너뜨린다. 하늘다리로 이어진 기묘한 지능선의 굴곡과 영혼의 길인 양, 수면 위로 빛나는 신비로운 햇살. 바위 벼랑 끝에 한동안 서서 풍경을 받아들이노라면, 묵은 불평불만이 조금씩 소멸되어 증발하곤 한다.
돌담이 있는 언덕 우실에서 다시 비범한 관매도의 굴곡에 놀란다. 우실의 돌담은 바람의 길을 바꾸기 위함이다. 언덕 아래로 몰아치는 바람의 방향을 비틀어 마을을 보호하는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관매해변 야영장으로 돌아가 텐트를 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전기도 없고 가져온 음식도 변변치 않지만, 볼수록 매력적인 볼매도의 밤이 지난다.
하늘장사 전설 깃든 옥황상제의 공, 꽁돌
관매도 전설로 하루를 연다. 어제 산행을 마친 우실에서 관매도 3경 꽁돌을 거쳐 5경 하늘다리로 간다. 우실에서 해안선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자 만화에나 나올 법한 돌이 있다. 지름 3~4m 정도 되는 축구공 같은 돌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거인의 손바닥 자국이 패여 있다. 억지스러울 법도 한데, 정말 거인의 손바닥 자국처럼 선명해 놀랍다. 이 돌에서 관매도 전설이 시작된다.
꽁돌은 원래 옥황상제가 애지중지 여기며 가지고 놀던 공이었으나, 옥황상제의 딸들이 가지고 놀다 지상에 떨어진 것. 옥황상제가 하늘장사를 시켜 공을 가져오게 했는데, 왼손으로 공을 들고 가던 중 이곳 선녀들의 거문고 소리에 취해 주저앉게 되었다고 한다.
옥황상제는 다시 아들들을 보내 가져오게 했으나 역시 거문고 소리에 취해 선녀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눌러앉게 되었다. 진노한 옥황상제는 벌을 내렸다. 하늘장사는 꽁돌 앞의 돌무덤에 가두고, 아들들은 관매도 앞 형제섬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꽁돌 옆에는 독특한 무덤처럼 생긴 작은 돌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고도를 높인다. 해안선 언저리의 사면을 따라 길이 나있다. 가는 길목에 ‘하늘다리 태풍 피해 복구공사 중 출입통제’ 현수막이 걸려 있다. 관광객의 지적으로 현수막을 걸어 놓았지만, 출입 시 벌금을 매기거나 제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늘다리 일부가 녹슬어 보수 공사가 예정되어 있으나, 아치 연결 부위라 통행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
바닷가 산에서 자라는 구실잣밤나무숲 터널을 지나 고도를 꾸준히 높이자 막강한 고도감의 벼랑이다. 능선이 뚝 끊어지고 아래에 좁은 바닷길이 생긴 것. 다리에서 돌을 던지면 수면에 닿는 시간이 13초. 이토록 아슬아슬한 절벽 사이에 고사목을 놓아 사람들이 지나다녔다고 한다. 장작을 구하려고 위험을 감수했던 것. 실제로 40년 전 장작을 구해 돌아가던 주민이 추락해 숨졌다고 한다. 마을에서 이렇게 먼 곳까지 땔감을 구하러 올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으니, 고된 섬살이의 애환이 담긴 곳이라 할 수 있다. 다리 바닥에 투명 유리가 있어 아찔한 절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선녀들이 날개를 벗고 쉬었다는 전설이 있는 하늘다리 쉼터에서 일행을 기다린다. 봄 그늘 아래 눈을 지그시 감고 있자, 문득 다가와 곁에 앉는 파도소리, 구실잣밤나무 타고 오르는 바람소리, 봄꽃 흔들리는 소리. 가만히 다가와 번잡한 마음을 어루만진다. 원래 곁에 있었으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잃어버린 것과의 조우. 잃어버린 내 속의 나 자신이 슬그머니 옆에 와서 앉는다.
뭍으로 가는 길. 관매도의 아름다웠던 시간이 노란 봄 이야기를 은밀히 속삭이는 것 같다.
섬 가이드
남도 끝의 진도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20분을 가야 닿는다. 당일치기로 왔다 간다면 제대로 둘러볼 시간도 없이 피로만 가중시킬 수 있다. 관매해변의 부드러운 밤과 돈두산의 시원한 경치, 꽁돌의 신기함과 하늘다리의 아찔함을 체험하는 건, 관매도를 구경하는 최소한의 방식이다. 섬이 작아 차량을 들여오지 않아도 큰 어려움은 없다.
당일치기일 경우 선착장에서 바로 산행을 시작해 돈두산 정상을 거쳐 샛배에서 유채꽃밭과 후박나무를 거쳐 관매해변을 둘러보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것이 효율적이다. 선착장에서 돈두산 정상을 지나 임도를 만나는 셋배까지 4㎞, 여기서 관매해변을 거쳐 선착장까지 1.6㎞이다. 선착장에서 관호마을과 우실을 거쳐 하늘다리까지 2.5㎞이며,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야 한다. BAC 인증지점은 돈두산 정상 표지석이다.
교통(지역번호 061)
진도(팽목)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3월부터 10월 말까지 하절기는 1일 4회(08:40, 09:50, 12:10, 15:00) 운항하며 1시간 20분 걸린다. 관매도에서 진도항 배편은 1일 4회(10:00, 13:30, 14:20, 17:00) 운항하며 조도 창유항을 경유한다. 신분증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새섬두레호, 조도고속훼리호, 한림훼리호가 운항하며 선박에 따라 요금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성인 편도 요금 1만1,000~1만3,000원.
차량 편도 요금 3만5,000~3만8,000원.
“볼수록 매력 있는 볼매도(관매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고병언 주임
관매도 토박이자 국립공원 직원인 고병언 주임은 “매일 봐서 뭐가 예쁜지 잘 몰라요”라면서 “그래도 볼수록 매력 있는 볼매도(관매도)”라며 은근히 자랑한다. 관매도를 찾은 사람이 꼭 봐야 할 것으로 관매해변과 송림, 돈두산, 유채꽃길, 꽁돌, 하늘다리, 다리여 등을 꼽는다. 아름다운 명소가 넘쳐나며, 제대로 보려면 2박3일은 묵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의 부친은 20년 전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시신도 찾지 못했다. 친구 아버지 등 마을사람 여럿이 너울성 파도에 휩쓸리는 등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담담한 목소리로 “별다를 것 없는 바다를 업으로 사는 사람의 일상”이라 말한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인 만큼 공원 관리도 쉽지 않다. 하늘다리의 데크 쉼터를 3개월 동안 직원 3명이 손수 공사했다. 섬 내 등산로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태풍이 칠 때도 하늘다리에 와서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던 고병언 주임은 “코로나19 끝나면 많이들 오시라”고 웃으며 말한다.
맛집(지역번호 061)
관매해변 야영장에서 가장 가까운 솔밭민박식당(544-9807)은 현지에서 키운 쑥, 톳, 미역, 달래, 대파, 생선으로 조리한 백반(8,000원)이 별미다. 야영장은 여름 시즌을 제외하면 무료로 운영되므로 섬 내 식당에서 최소한 한 끼는 이용하는 것이 외지인의 매너다. 편의점이나 슈퍼는 없으며 선착장에 마을에서 운영하는 특산품 판매장이 있다.
아름다워 더 슬픈 그 섬… ‘숨어버린 絶景’ 진도 관매도
문화일보 기사 게재 일자 : 2016년 10월 05일(水)
관매도(진도)= 글·사진 박경일 기자
처음 그 섬 이름은 ‘볼뫼’였다고 했습니다. ‘산을 보다’, 혹은 ‘산에서 보다’라는 뜻이었겠지요. 그게 ‘볼매(乶梅)’로, 다시 ‘관매(觀梅)’로 바뀌었습니다. 보아야 할 것이 산(山)이 아니라 난데없는 매화(梅)가 돼 버린 셈입니다. 글말은 이렇게 변했지만, 입말의 이름은 여전히 볼뫼입니다. 전남 진도군 진도항에서 관매도로 향하는 여객선 조도 페리호에서 만난 허리 굽은 노인에게 ‘어디 사시냐’고 물었더니 ‘볼뫼’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섬 이름이 제멋대로 바뀌고 말았지만, 섬을 빛나게 하는 건 오래전의 이름대로 여전히 돈대산입니다. 섬 한복판의 해발 215m 돈대산의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능선에서 펼쳐지는 바다와 섬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돈대산의 동쪽 자락 아래 관매마을에는 크기가 가늠되지 않는 거대한 다랑밭 가득 메밀꽃이 펼쳐져 있고, 돈대산 아래 서쪽에는 단정한 돌담을 둘러친 평화로 출렁이는 관호마을이 있습니다. 섬에는 부드러운 물살이 끊임없이 드나들며 만들어낸 매혹적인 백사장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아름드리 곰솔이 가득해 그윽한 숲이 있었습니다. 타박타박 섬을 걷는 내내 펼쳐지는 경관에 반해서 누구든 손목을 붙잡고 끌어 데려오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관매도에서 보아야 할 것은, 그러나 이런 풍경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돈대산 정상에서는 동거차도 앞바다, 그러니까 세월호를 삼켜버린 비극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노랑나비들이 팔락거리며 날아다니는 관호마을의 숲길에서 순한 것들의 환생을 떠올렸던 것도, 다랑밭마다 피어난 메밀꽃 앞에서 마른 눈물을 넉가래로 다듬어 모아둔 소금 결정을 생각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촉촉하게 내리는 가을비 속 관매도를 다녀오는 길에서 끈질기게 신발에 달라붙던 진흙과도 같은 질문 하나. 치유되지 않는 이 눈물겨운 비극이, 눈물과 절망을 넘어서 맑게 씻겨지는 날은 과연 올까요.
# 육지와 멀어진 섬, 관매도로 가는 길
하루 두 번. 진도의 섬 관매도로 들어가는 배는 진도항에서 떴다. 진도항은 팽목항의 새 이름이다. 진도읍에서 임회면을 지나 진도항에 이르는 18번 국도에 걸린 도로 이정표에는 아직 남아있지만, 차량용 내비게이터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지도에도 이제 ‘팽목항’은 없다. 세월호의 비극을 지워버리기 위한 것이라고 짐작했다면 오해다. 세월호 사고 1년 전부터 팽목항은 항구 매립작업을 거쳐 진즉 진도항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던 것이다.
팽목항이란 이름은 사라졌어도 진도항에서 세월호의 비극을 비켜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도항에서 배를 기다리던 이들은 너나없이 컨테이너 박스의 세월호 분향소에 들렀다. 분향소에 들른 승객들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하릴없이 항구 앞의 등대에서 먼 바다를 오래 내다봤다.
세월호 사고로 육지와 까마득하게 멀어진 곳이 팽목항, 아니 이제 진도항에서 여객선이 뜨는 조도와 관매도다. 조도야 인구 3000여 명이 넘는 덩치 큰 섬이니 사정이 덜했지만, 노인들만 사는 데다 논밭도 손바닥만 하고 고기잡이마저 신통치 않아 육지와의 교류로 살아온 인구 200명 남짓의 작은 섬 관매도에는 직격탄이었다. 섬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뚝 끊겼고, 섬에서 캐낸 톳이며 모자반은 아무도 사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비극 앞에서 그들이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관매도는 육지와 멀어졌다. 관매도는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빼어난 경관과 풍경을 품고 있었지만, 그 섬을 만나려면 이제 비극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그동안은 비극의 관문을 지나서 태연하게 경관을 말하고, 음식 맛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2년 5개월이 지났고, 이제야 관매도로 간다.
# 적막한 섬에서 지도 없이 길을 찾다
관매도는 진도항에서 24㎞ 떨어져 있다. 육지의 거리로 환산하면 멀지 않은 거리지만, 섬의 거리는 배 시간으로 재는 법. 관매도는 상조도와 하조도를 잇는 조도대교 아래 협만을 지나 남해 먼바다로 접어들어 1시간 30분 만에 당도하는 먼 섬이다. 관매도로 가는 뱃길은 다도해의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는 바다를 지난다. 조도와 관매도 일대의 바다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란 이름값을 넉넉히 하고도 남는다. 촉촉한 가을비가 흩뿌리는 배 위에서 본 다도해의 바다는 수묵화 속의 풍경이었다.
조도의 창유항에 손님 일부를 내려주고 배는 더 먼 바다로 향했다. 모도와 대마도를 지나자 멀리 동거차도와 그 뒤로 서거차도가 펼쳐졌다. 두 섬 사이의 해역에 거대한 배 두 척과 크레인이 우뚝 서 있다. 침몰한 세월호를 인양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세월호 사고가 실존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갑판에 서 있던 이들은 모두 그쪽을 향해 섰다. 마치 묵념이라도 하듯…. 그건 바로 관매도로 가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섬의 선착장은 여객선이 들고날 때마다 북적거리게 마련. 그러나 관매도 항구는 조용했다. 배로 싣고 들어온 것도, 싣고 나가는 것도 거의 없었다. 섬에서는 이렇다 하게 나는 것도 없고, 무얼 사들일만 한 경제도 없으니 그랬다. 항구에 딱 하나밖에 없는 구멍가게도, 톳을 넣은 짜장면을 낸다는 중국집도 다 문을 닫아걸었다.
승객을 내려놓고 배가 떠나가자 선착장과 마을에는 길을 물을 사람마저 없었다. 하지만 묻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섬의 빼어난 경관이 발길을 저절로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 파도소리를 끼고 이어지는 짙은 솔숲
관매도는 두 개의 마을로 이뤄져 있다. 관매 선착장을 중심으로 동쪽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곳이 관매마을이고, 서쪽의 자그마한 포구를 거느리고 있는 게 관호마을이다. 관매마을은 그 마을보다 더 작은 장산편마을을 거느리고 있었다.
섬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관매마을 쪽의 관매 해수욕장이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았다 해도 배에서 내리면 십중팔구 선착장에서 가까운 그곳부터 찾아가게 된다. 해수욕장에는 부드러운 파도가 연신 밀려드는 고운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달랑게가 먹이활동을 하면서 남겨둔 동글동글한 모래 구슬이 해변에 가득했다. 섬에서 가장 평화로운 모습이 거기 있었다.
곱고 단단한 모래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건 모래톱 뒤편의 곰솔 숲이었다. 초지 위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뤄 자랐다. 숲 사이로 오솔길이 놓여 있었는데, 숲의 규모가 어찌나 크던지 거미줄같이 이어진 숲길을 따라 걷다가 몇 번이나 길을 잃을 정도였다. 곰솔이 뿜어내는 기운으로 숲길은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바다와 솔숲의 경계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다. 한쪽에선 부드럽게 해변을 핥는 파도소리를, 다른 한쪽에선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를 끼고 걷는 기분이라니….
내친 김에 솔 숲길에서 관매도의 명소로 꼽히는 방아섬까지 가는 트레킹 코스를 이어붙여 걸었다. 방아섬은 관매도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작은 섬. 섬 정상에는 마치 버섯 형상의 바위가 서 있다. 방아섬으로 이어지는 길은 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 길의 주인은 방아섬이 아니라 ‘길’ 그 자체다. 두 뼘 남짓의 흙길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덩굴식물이 휘감은 난대림의 숲을 지나기도 하고, 어둑한 대숲을 관통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보석 같은 길. 이 길에 오르면 누구든 몸이 저절로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 고단한 생계의 밭에 일군 메밀꽃 물결
방아섬 트레킹 코스를 되돌아나와 관매마을 끄트머리의 장산편마을 쪽으로 이어진 길로 들어섰다. 숲을 벗어나자마자 탄성이 절로 터졌다. 마을 주변에 가득 피어난 메밀꽃의 거대한 물결 때문이었다. 관매마을과 장산편마을 사이에는 오목한 지형을 따라 너른 들이 펼쳐져 있는데, 거기에 심어진 메밀이 일제히 꽃을 틔워 올렸다. 계단식 다랑밭에도 층층이 메밀꽃으로 가득했다. ‘장관’이란 수식어는 바로 이런 곳에다 붙이는 것이겠다.
관매도에서는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관매마을 쪽 평지에서는 논농사를 짓고, 장산편마을 구릉의 다랑밭에는 고구마를 심어 거뒀다. 지금은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어 폐교된 관매초교의 학생 수가 400여 명을 헤아릴 때 얘기였다. 바다를 곁에 두고 있지만, 고기잡이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섬 사람들은 다랑밭을 일궈 거둔 고구마로 생계를 이었다고 했다.
관매마을 전직 이장이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쯤 관매도의 초등학생들이 자매결연을 맺은 연세대의 초청으로 서울견학을 갔더란다. 이른바 ‘낙도 어린이 초청’ 행사였다. 서울에 도착한 첫날, 한 대기업이 아이들에게 양식 식사를 제공했는데, 섬 아이들이 음식이 낯설어 그걸 먹지 않더란다. 모두 수저를 놓고 있는데 억지로 손을 댄 아이들도 배탈이 나고 말았다. 궁리 끝에 교장 선생님이 고구마를 박은 보리밥을 지어와서 겨우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다랑밭은 묵고 버려졌다.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고 남은 이들도 농사 일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든 탓이었다. 묵은 밭에다 섬 주민들이 4년 전부터 봄이면 유채를, 가을이면 메밀을 심었다. 수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경관만을 위한 농사였다.
해마다 메밀밭은 늘었다. 지난해까지는 평지에만 메밀을 심었는데, 올해는 다랑밭까지 메밀꽃밭으로 가꿨다. 그 결과 올해 섬 안에 가장 화려한 꽃밭이 가꿔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보러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관매도에 출렁이는 메밀꽃은 지금 보아줄 사람 없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 관매도 최고의 경관을 보다… 돈대산
솔숲과 메밀꽃 이야기를 앞세우다 보니 뒤로 미뤄지고 말았지만, 관매도 최고의 경관은 섬 한복판에 솟은 돈대산을 오르고 내리는 길에서 만날 수 있다. ‘볼뫼’라는 섬의 본래 이름이 품고 있는 ‘뫼(山)’가 곧 바로 돈대산이다. 돈대산의 능선은 관매마을과 관호마을을 잇는다. 돈대산이 섬 한가운데 있으니 관매마을에서도, 관호마을에서도, 또 선착장에서도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무릇 풍경을 보는 데도 순서가 있는 법. 돈대산의 높이가 찍어내는 선명한 그림 두 장은 순서대로 보아야 한다. 인적 드문 관매마을 쪽에서 돈대산으로 오르기를 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매마을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메밀꽃밭을 각도를 바꿔가며 줌아웃으로 내려다 볼 수 있고, 산정을 넘어서면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관호마을 쪽의 해안선을 극적인 장면전환처럼 만날 수 있다. 관매마을에서 돈대산을 오르는 길에서는 마을의 메밀밭과 그 너머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물러나서 고도를 높여 보는 메밀밭 전경의 느낌은 아래서 볼 때와는 아주 다르다. 푸른 바다를 두르고 있는 메밀꽃 핀 다랑밭은 조각보와도 같다.
이런 경관이 지루해질 때쯤 돈대산 정상에 닿게 되는데,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이내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관호마을 쪽의 해안선이 눈에 들어오는데, 섬의 한 자락이 수직의 직벽을 이뤄 먼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모습이 압권이다. 산 이쪽과 저쪽의 풍경이 도무지 하나의 섬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관이 아주 다르다. 해안의 바닷바람을 막는 돌담인 우실 안쪽에는 관호마을이 있다. 관호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지붕은 주황색이고 벽은 흰색인데, 이 모습을 돈대산 자락에서 내려다볼 때 더 이국적이다.
돈대산에서 해안으로 내려서면 거센 해풍으로 초록의 풀들이 빗은 머리처럼 누워있는 능선을 만난다. 거기서 해안을 치는 거친 파도를 내려다보면 어디 이국 어디쯤의 해안에 와있는 듯하다.
해안을 끼고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 옥황상제의 공깃돌이라는 ‘꽁돌’을 거쳐 롤케이크를 칼로 잘라낸 것 같은 지형에 놓아둔 ‘하늘다리’까지 트레킹을 다녀와도 좋겠고, 투박한 돌담을 두른 관호마을의 골목을 느긋하게 둘러봐도 좋겠다.
관매도에서는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해도 훌륭한 경관을 만날 수 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안내는 필요치 않다. 관매도에서 아쉬웠던 것은 단 하나. 매혹적인 풍경을 품고 있는 이 섬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뿐이었다.
관매도(진도)= 글·사진 박경일 기자
관매도 돈대산 산행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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