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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와 소금이 주는 교훈
열왕기하 2:19-22
1.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말라
요즘 우리는 코로나 한 가지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경제는 물론이고 생각의 차이 때문에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서로 말다툼하고, 욕하고, 서로 의심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인간관계에 회복이 쉽지 않은 균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들이 어디 있겠는가요? 다 소중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건강과 함께 정말 잃어 버리는 안되는 소중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것을 잃는 것은 길어봤자 100년 내외지만, 하나님을 잃는 것은 영원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도 이것으로 인한 관계(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등) 파괴가 사실은 더 위험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코로나 이후에 큰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는 지혜를 주시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도무지 안개가 걷히지 않을 것 같지만, 반드시 태양은 떠오르고 안개는 걷히듯이 머지않아 코로나도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렵고 민심이 흉흉해도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십니다.
2. 여리고의 죽은 물
예루살렘에서 유다광야를 지나 요단강 쪽으로 내려가면 여리고(Jericho)가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그 옛날 여호수아 시대에 무너졌던 여리고 유적지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지역을 ‘델 에스 술탄(Tell es Sultan, 술탄의 언덕)’이라고 부른다. 이곳 한편에 ‘엘리사의 샘(Elissa Spring Fountain)’이 있습니다. 이곳의 물은 본래 먹을 수 없는 좋지 않은 물이었는데, 지금부터 약 2800여 년 전에 엘리사에 의해서 좋은 물로 변했다. 오늘 설교의 본문이 바로 그 기적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구약 시대를 대표하는 능력의 선지자 하면 생각나는 사람,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 모세와 함께 나타났던 구약의 대표적인 능력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엘리야입니다. 오늘 본문은 선지자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한 엘리사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중심도성인 여리고에 있을 때에 일어난 기적을 다룬 본문입니다. 소문이 퍼졌습니다.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엘리야에게 있던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사에게로 이어졌다는 소식이 여리고 전역에 퍼졌습니다. 소문을 들은 여리고 성읍 사람들은 그들의 내면의 고민과 현실의 문제를 엘리사를 찾아와 고백합니다. 주의 깊게 볼 사건은 여리고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를 향하여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 여리고는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여기서 토산은 히브리어로 ‘하 에레츠’인데, 그 땅에서 생산되는 모든 산물, 그 땅의 열매, 그 땅의 동식물, 그 땅의 자녀들을 총칭하는 말합니다. 그래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말은 물이 나빠서 농산물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이 좋지 못해서 짐승들이 새끼를 가져도 생산되지 못하며, 물이 좋지 않아서 그 땅에 사는 여성들이 임신을 해도 아이를 유산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니 지역의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산물이 수확기가 되었는데 물이 좋지 않아서 열매가 맺기도 전에 떨어지고, 소와 우양이 새끼를 생산하지 못하니 농업, 축산업 등으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고대시대의 경제가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떠나가고 아이들이 출산되지 않으니 연세드신 노인들만 여리고 성읍에 넘쳐났습니다. 여리고 도성은 경제도 어렵고, 젊은 세대와 자녀들이 없는 정말로 소망의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잿빛 하늘과 같았습니다.
3.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19절을 보면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문제 해결을 청하기 위해 와서 도움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엘리사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선지자였습니다. 저 유명한 엘리야 선지자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직후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 선지자를 후계자로 삼았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사람들이 잘 몰랐던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달려 나온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평상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엘리사가 그 이야기를 듣고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오라 했습니다. 그리고 물이 나는 오아시스 샘으로 갔습니다. 그 샘에 가지고 간 소금을 뿌렸습니다. 그 물이 고쳐졌습니다. 이제 물이 좋아져서 농사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시가 크게 번창하게 됐습니다. 오늘까지도 그 때 그 샘이 남아있는데 샘의 이름을 “엘리사의 샘”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4. 엘리사의 대안
이때 엘리사는 여리고 도성이 겪고 있는 지역의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온 성읍 주민들에게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 대안은 오늘 본문 20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다함께 20절을 읽겠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라” 1) 여리고 성에 살던 지역주민이 엘리사를 찾아왔다는 것은, 엘리사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말도 되지만 여리고 도성의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리고 사람들이 엘리사를 찾아왔다는 것은 하나님께 항복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께 삶의 문제를 들고 나와 엎드리며 구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사 그 중심을 보시고 좋은 것을 허락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2) 엘리사를 찾아와 그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선지자에게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3) 엘리사 선지자가 그 땅에 경제적인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씀 합니까?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라” 이 말씀을 보면, 엘리사는 소금을 물에 던지면서(뿌리면서) 명령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렇게 했을까요? 흔히 말하는 민간요법이나 율법적인 신념 때문일까요? 그것은 분명히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엘리사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물을 고치는 순서를 잘 보라(20-21절). 소금을 뿌리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 중에 어느 것이 순서상 먼저인가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엘리사는 단지 말씀대로 소금을 뿌리고 선포한 것뿐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금이 아니라, 소금을 뿌리게 하시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자칫 소금이나 소금을 뿌린 행위 만에 집중하면 미신적이거나 율법적인 신앙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소금물 뿌렸다가 큰 곤경에 빠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남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코로나를 예방하기 위해 교인들의 입에 소금물을 뿌린 것이 그것입니다. 왜 하필 소금물을 입 속에 뿌렸을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는 아닌 것 습니다. 언론에서는 인터넷상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들(인포데믹스, infodemics) 특히 삼류 유투버들의 얄팍한 말에 속아서 그런 것 같다고 분석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미신적인 일에 지금도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더욱 우리들은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온갖 잘못된 정보나 추측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자칫하면 어둠의 영의 전략에 속는다. 참된 믿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주셨던 말씀을 이 시간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믿으면서 다 같이 읽자.
5. 성경에서 소금이라 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민수기 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여호와 하나님 언약공동체 문화권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금을 가져오라는 말은 실제 소금을 가져오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소금을 가져오면서 소금을 찾으면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기울어졌을 때, 그래서 고통을 느끼게 될 때, 가장 먼저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 소금을 어디에 담아 오라고 하는가? 새 그릇에 담아 오라 합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 ‘그릇’으로 표현된 히브리 원어는 “첼로히트” 단어인데, 이 단어의 뜻은 침투하다, 돌진하다,입니다. 즉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은혜가 돌진하여 만들어지게 된 그릇을 말합니다. 새 그릇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만들어지는 그릇입니다. 마가복음2장 22절의 말씀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으라 했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막2:22) 새 포도주는 하나님의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유대인의 땅에 갇히지 않고 온 세계와 열방까지 퍼져나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성령께서 역사하여서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만들어지고 넓혀진 그릇입니다. 우리교회 믿음의 교우들은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풍성한 은혜의 그릇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담은 것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 교회 교우님들은 소금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는 성령의 그릇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6. 하나님은 일하시면 그 때부터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여리고 성읍 주민들이 가져온 새 그릇에 담아온 소금을 모아 그 땅을 황폐하게 하는 물의 근원으로 나아갑니다. 고통의 문제는 반드시 고통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고통의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 선지자는 성읍의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그의 지시대로 가지고 온 소금을 모아, 지역 속에 죽음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그 땅에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물의 근원으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문제의 근원에 소금을 던집니다. 그리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21절) 하나님의 말씀이 문제의 근원에 선포될 때, 죽음의 문제는 해결되고, 경제적 빈곤의 문제가 해결 된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선지자 엘리사의 말씀의 선포 이후, 그 물은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 여리고 땅에서 나는 대추야자 열매는 얼마나 달고 맛있는 지역의 유명한 상품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유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은 영원토록 지속되며 영속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고통의 문제, 삶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받기 위해 소금을 상징하는 말씀을 담는 새 그릇을 준비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새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까? 새 그릇에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우시길 축원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복음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물이 고쳐졌습니다. 말씀이 고쳤으니 오늘 말씀중에서 돋보이는 말씀이 또 있습니다. 결정적인 말씀입니다. 1) 말씀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되신 분이십니다. “빛아! 있으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생겼습니다. “해 달 별아! 있으라.” 해달별이 생겼습니다. 말씀은 창조입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못 할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2) 말씀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이 고쳤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나쁜 물을 좋은 물로 고쳤습니다.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엘리사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소금을 물 가운데 던지고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물이 고쳐졌습니다. 3) 말씀에 풍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성결함이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있습니다. 엘리사는 나쁜 물의 근원을 말씀으로 고쳤습니다. 말씀으로 풍요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이 곳에 그런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오늘 말씀중에 눈에 들어오는 말씀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하나님이 한번 고쳐놓으신 것은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완벽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고쳐서 오늘까지 이르게 하시는 완벽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꼭 붙잡고 나쁜 것을 좋게 고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7. 사람이라는 새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9절 후반 절에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 에레츠”를 뜻하는 토산은 그 땅 자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의인화되어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땅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단순히 흙의 토질이 좋지 못하다, 그 땅의 수질이 좋지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땅 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좋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떠나 살 때, 죄를 범하게 될 때, 그 죄로 인하여 그 땅은 저주를 받게 되며 그 땅의 곡식과 열매는 떨어지게 되며 그 땅의 경제는 바닥을 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금을 뜻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담을 수 있는 새 그릇은 바로 성령이 감동하셔서 온유하고 부드럽게 만드시는 그 사람, 그 사람의 중심, 그 사람의 내면이 바로 새 그릇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침투하심으로 변화된, ‘찰라흐’, ‘첼로히트’ 하나님의 그릇인 줄로 믿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새 그릇입니다” 이 일에 모든 성도들은 전심전력으로 함께 하여 말씀과 기도와 복음사역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놀랍고도 신비한 회복과 하늘의 복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속에 고통의 문제가 있습니까? 중국고사 성어 가운데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가 바뀌어 복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또 인패위공(因敗爲功)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이 되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여리고에는 이런 전화위복의 역사 인패위공의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치료를 어떻게 받습니까?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 없는 자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죄를 청산해 주셨으므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면 사망으로 가득한 마음이 용서 받고 생명으로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사망이 떠나가고 영생으로 충만하면 육체의 장막집이 무너지더라도 예 비된 영원한 집,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둘째 사망을 두려워하 지 않을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는 추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죽을 몸이 영생의 몸으로 변화되어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곳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이 치료받아야 합니다. 마음의 치료는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혀 물과 피 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집니다. 여리고 같은 이 세상에 소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던져 넣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입으로 시인하고 의지할 때 예수님의 보혈이 나의 샘 근원을 고쳐 주시고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보혈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때 변화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여리고 성의 샘의 근원을 고치고 난 다음에 열매를 맺고 짐승들은 새끼를 낳고 사람들은 자녀를 건강히 낳아서 길렀다고 말했습니다. 이와같은 축복이 오늘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마음에 보혈과 성령을 의지하는 여러분에게 넘쳐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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