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은 강원도 태백정선 지역을 둘러보고 그저께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2월 버킷리스트의 일환으로 시작한 전국도보여행은 점점 깊이를 더하는 느낌이다.
첫 달 동해여행은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에 경외감을 새삼 느꼈고, 지난달 남해여행은 문학 종교 등 정신세계에 탐닉했다면, 이번 여행에선 지나온 우리 삶의 역사 현장에 감동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나쳤던 것들이 한꺼번에 내게 달려드는 것 같았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태백산의 영기,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인 검룡소와 황지연못도 중요하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곳은 의외로 탄광생활의 애환이 어린 흔적들이었다. 지금은 많은 탄광들이 폐광되어 다소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지질구조와 화석을 전시한 고생대자연사박물관과 석탄박물관을 비롯하여 한때 국가 에너지 산업을 이끌었던 철암탄광역사촌의 보존 현장을 보면서 지난 날의 우리 삶이 오버랩되어 뭉클한 감회에 젖어 들었다.
연탄으로 몸을 녹이고 밥을 지어 먹었던 옛 시절, 살기 위하여 이 곳 광산촌에 들어와 깜깜한 지하 막장에서 석탄과 사투하며 가족과 나라를 지탱했던 그들의 모습을 되새기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자화상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가난한 나라에서 사실상 우리나라 에너지의 유일한 젖줄이었던 태백, 삼척, 정선 등 강원도 탄광에서 온갖 악조건을 견뎌낸 이들 역군들의 새카만 얼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련한 기억이었다.
광부들에게는 나름의 터부시 되는 것이 있는데, 흉몽을 꾸든지 까마귀가 울든지 하면 출근을 삼가하며, 도시락의 밥도 4주걱은 담지 않는다고 한다. 반드시 홍색이나 청색 보자기로 싼 도시락을 들고 집을 나서는 아빠에게 '오늘도 무사히' 다녀오시라고 기도하는 가족들의 간절함은 무엇보다도 절실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의 19공탄과 연탄아궁이를 보면서 그와 함께했던 지난 날을 생각하며 그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고마움과 경의를 표한다.
장성, 황지, 통리, 도계, 고사리, 사북, 고한, 예미, 함백 등 구부러진 철길을 따라 생긴 탄광촌들을 둘러 보면서 연탄에 얽힌 숱한 추억들이 새삼 새록새록 떠오른다. 연탄난로, 연탄가스, 연탄재, 연탄집게 등등... 그 때, 산도 물도 집도 그리고 사람도 온통 검은 색이었을 시절이었지만, 삶의 의지만은 북적거렸을 이 거리에 지금은 어딘지 모를 공허감이 맴도는 것 같다. 그래도 한때 우리나라의 산업과 가정을 지탱했던 에너지의 메카였음을 생각해 볼 때, 그 당시의 그들에게도 1849년 캘리포니아 금광을 찾아 몰려들었던 '포티나이너스' 의 애환이 연상된다.
이런저런 상념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열차 차창에 비친 푸르른 나무로 가득찬 산들은 세월의 무게를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 미멕시코 전쟁이 끝난 후인 1849년 무렵, 금맥을 찾아 미국 서부로 몰려 들었던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며 영양실조와 각종 사고 분쟁 등으로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금을 캐다가 힘들 때면 간간히 주저앉아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던 한 포티나이너스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
그 골드러시 당시의 이들을 역사는 포티 나이너스(forty- niners)라 불렀다.
https://youtu.be/x2Xui-fE_Mk?si=pCS-G4Z_SRlMZKuk
(금년 4월 여행명상록입니다)
첫댓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월의 여행 단상을 글로 옮겼는데,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제 송구영신의 시간이네요. 새해에도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