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진(金淑鎭)
한국화 화가 소호(小湖) 김숙진(金淑鎭 1951∼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부문 한국화심사위원 역임) 화백은 아름다운 사계(四季)의 자연 풍경을 주로 화폭에 담아온 작가다.
김 작가는 한 줄기 건조하고 단순한 지형에 불과한 옛길을 한국화의 소재로 승화시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능선따라가는길', 하얀눈이 쌓인 '산길'을 비롯, 유채꽃 핀 제주도 해안 길을 주제로 삼은 '제주의 봄' 등 그의 다수 작품에서는 긴 세월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다듬어놓은 산길이나 옛길이 담겨있다. '제주의 봄'은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수록될 예정이다.
푸르른 녹차밭의 '보성의 봄', 능선의 멋스러움이 돋보이는 '천년의 흔적', 붉은 단풍으로 물든 '장군봉의 단풍' 등 아름다운 자연 풍광들이 가득 담겨 있는 그의 작품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치유와 안식을 제공한다.
'만삭의 추경', '농가의 뒤뜰', '잊혀진 세월' 등 한지에 채색기법으로 사실적이고 탁월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극사실화 작품도 김 작가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만추의 고개 숙인 조밭의 풍경을 담은 '만삭의 추경'은 현대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정겨운 시골풍경의 '잊혀진 세월'은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수상작이다.
[김숙진 화백은]
채색화의 대가 석당(石堂) 우희춘 화백 문하에서 미술수업을 시작해 20여년간 붓을 놓지 않았던 김숙진 화백은 대한민국 미술대전 구상부문 한국화, 현충 미술대전 한국화, 한국 새늘 두방지 미술공모전,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대한민국 남농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협, 종로미협 자문위원, 현대여성미술협회 부회장, 신맥회 이사, 현대한국화협회, 창석회, 전업미술가협회 출판홍보 부위원장, 현대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 작가는 개인전 3회, 현대 한국화협회전, 미술과 비평 초대전, 한국 미협 K-art광화문전, 한·일 회화 교류전, 한·중 현대회화의 조망전, 한국전업미협여성 작가전 및 국내외 초대·그룹전을 다수 진행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과 두 차례 입선,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자연주의 신봉자 김숙진(金叔鎭)
사실적인 너무나 사실적인
그래서 自然보다 더 眞實한
김숙진(金叔鎭)은 서울에서 1931년 출생, 1956년 홍익대학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58년 국전(國展)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한 후 1959∼61년까지 3년 연속 특선을 한 다음 1962년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1963년 홍익대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는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다 1967년 홍익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김숙진은 그의 작품 ‘소녀상’에서 보듯, 미술의 표현에 있어서 사실이라는 것은 자연형태를 그대로 긍정(肯定)하여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고, 추상(抽象)이라는 것은 대상의 순수한 본질을 찾아서 자연형태를 부인하고 기하학적인 표현을 하는 것으로 여겼다. 사실이라는 것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문자 그대로 사실이고 또 하나는 구상이다. 구상과 사실의 차이는 그것들이 둘 다 자연형태를 긍정하는 데는 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으나, 구상은 약간의 주관적인 해석을 부여하는 것이 특색이다.
어쨌든 간에 사실과 구상은 대상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고, 대상이 되고 있는 물체의 분위기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어느 의미에서는 대상이 되고 있는 물체의 재확인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실제의 객관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예술적 태도이다. 이 경우, 필요한 것은 그와 같은 마음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능력, 즉 기술이다. 따라서 모든 예술은 형식과 내용이 아울러 갖추어지는 것이지만, 사실적인 예술에 있어서는 기술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화가 김숙진은 학창시절부터 ‘소녀상’ ‘백합’ 등의 작품이 말해주듯 사실주의 화가인데, 변함이 없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사실의 길을 걸어왔다.
그가 화가로서 성장할 무렵, 우리 화단에는 새로운 회화사조가 물밀듯이 들어와서 앵포르멜 아트 오브 아트, 그리고 온갖 새로운 미술이 범람하였지만 그는 고집스럽게도 정밀 묘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놓은 듯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길을 외롭게 걸어왔다. 왜냐하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고, 그 자연을 만든 것은 조물주이기에 누가 감히 조물주의 작품 이상의 것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최고의 미술은 자연형태를 그대로 본받은 자연주의라는 것이다. 그러한 신념 밑에서 그는 자연의 오묘한 비밀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그렇게 관찰한 것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신념 때문에 그는 그가 제작한 사실적인 작품은 어느 의미에서는 대상이 된 자연보다도 더욱더 진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연은 대량 생산의 과정에서 약간의 결점이 있지만 그 자연을 고쳐서 다시 만든 사실적 작품은 대상이 된 자연보다 더욱 진실한 것이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소녀상’에서도 잘 나타나 있으며, ‘백합’에서는 보통 사실적인 화가가 시도하는 것보다 더 딱딱한 처리로 나타난다. 어두운 배경 처리라든가 뚜렷한 백합의 표정 같은 것은 리얼리티를 넘어서서 오히려 요기(妖氣)띤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나부’(裸婦)는 여체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은 몸의 비례와 그 살붙임에 있다. 따라서 휴식(休息)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 포즈는 여체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송두리째 나타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세밀히 다루어진 살색이 리얼리티를 이룩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여 그의 사실적인 수법은 투명한 효과에 도달하고 대상의 외관을 모방할 뿐더러 대상의 내부에까지 스며드는 철저한 것이 되었다. 사실,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상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화가 김숙진은 이와 같은 사실적 창조관으로 1969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국전 초대작가, 국전 심사위원, 1975년 한국현대미술 100인 초대전 출품, 1977년 세종대학교 교수, 1980년 국전 운영위원, 대한미술협회 이사, 상명여자사범대학 대학원 강사를 역임하는 등 화려한 화력과 관록을 펼쳐보였다.
글 : 고운석 주필
김숙진, 정물, 1977, 캔버스에 유화 물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