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단풍으로 활활 태우는 저 열정이 대단하다. 막상 산속에 들어가 보면 가뭄에 메말라서 밖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 사람 성공했다고 떠들썩하기에 살짝 들춰보니 말 못 하는 그만의 사정으로 아직도 고민을 안고 있다. 겉모습과 달리 저마다 가슴에 묻은 아픔이 멈추지 못하고 이따금 들먹거리고 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로 으스스해진다. 시장경기마저 바닥에 추락하니 민심이 무너지는 소리가 하늘로 치솟는다. 너에 대한 신뢰감도 나에 대한 자신감도 상실하고 있다. 훈훈해야 할 가슴에 제대로 되는 일은 없고 열 받아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이런 마음의 온도는 얼마나 될까. 뜬금없이 추억의 불씨가 살아난다. 한순간 한 소절이 은연중 메모라도 된 듯 생생하다. 기억의 불씨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걸러지고 다듬어져 선택된 알갱이이지 싶다. 좁은 공간에 보존하고 관리하면서 더는 줄이거나 압축할 수 없는 마지막 암호나 기호와도 같다. 그냥 지나치거나 잊어버려도 그만일 텐데 이처럼 챙기고 간직해서 고맙고 기억할 수 있게 해줘 반가운 일이다. 불쑥 떠오르는 얼굴 하나에서 그토록 생생한 모습에 낭랑하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먼 이야기일 뿐이다. 지워졌지 싶었는데 아직 못 잊었나 보다. 가까스로 추슬러 다시 가슴에 묻는다. 그대도 문득 내가 떠오르는가. 제법 쌀쌀하다. 바람까지 불어 떨어지는 체감온도에 앞뒤 없이 몰려드는 잡념으로 헤아림마저 비틀거린다. 가늠하기 쉽지 않은 마음에 본말이 뒤바뀌도록 혼란스러운 것 같은 충동에 중심을 잃고 흔들흔들 줏대마저 표류한다. 긴급한 일로 전화를 하는데 어인 일인가 받지를 않는다. 설령 받는다고 해도 제대로 통화가 되지 않으면 헛일이다. 별별 짓궂은 상상이다. 막상 바쁜 것은 나지 그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너와 나와 그리고 우리가 마음과 마음이 통하지 못하여 엉뚱한 억측과 엇박자와 뒤통수 맞는 배신감도 생겨난다. 우선 소통해야 그런 것들을 깨끗이 지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