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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여행일 : ‘19. 5. 29(수) - 6.5(수)
세부 일정 : 소피아→릴라→소피아(1)→플로브디프→벨리코 투르노보(1)→이바노보→부카레스트(1)→시나이아→브란→브라쇼브(1)→루피아→시비우→시기쇼아라(1)→투르다→클루지나포카
여행 여섯째 날 : 클루지 나포카(Cluj-Napoca)
특징 : 루마니아의 북서부 소메슈강과 미크강 유역의 분지(盆地)에 위치한 클루지 주의 주도(州都)로 지명은 '폐쇄된 장소'라는 뜻이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스키타이, 다키아 등 고대 민족이 살았던 땅으로 로마 시대에는 ’나포카‘라는 이름으로 다키아 지방의 주도가 되었다. 도시의 또 다른 축인 클루지(Cluj)는 중세 때 ’쿨루스‘라는 이름으로 1173년의 문서에 기록된다. 15세기 초에는 클루지(1213년에 세워진 작은 요새인 카스트룸클루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로 알려졌으며, 독일명인 클라우젠부르크(Klausenburg)와 헝가리명인 콜로지바르(Kolozsvár)로도 불렸다. 1405년에 자유도시로 선포되었고, 16세기에는 트란실바니아 자치공국이 되면서, 쿨루지(Cluj)는 그 수도가 되었다. 1920년 트란실바니아 공국과 함께 루마니아에 합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이웃한 나포카(Napoca)와 합쳐지면서 클루지나포카(Cluj-Napoca)가 됐다. 루마니아 제2의 도시이자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문화중심지로 14세기에 건립된 고딕 건축물인 미하일 교회 등 유적이 많다.
▼ 클루지나포카의 투어는 ‘연방광장 (Union Square, Piata Unirii)’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의 메인 광장이라서 주요 볼거리가 대부분 이곳에 몰려있다고 보면 된다. 옛 이름은 '자유광장(Piata Liberatii)'이었단다. 참고로 ‘Union Square’은 ‘통일광장’으로도 번역되는데 루마니아 대도시마다 거의 하나씩 갖고 있는 광장의 대표적 이름이다.
▼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로마 가톨릭교회인 ’성 미카엘 성당(Cathedral of Saint Michael)‘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린 ’성 야곱 예배당‘의 자리에 지은(1350-1487) 건축물로 웅장한 외관에 하늘로 치솟을 것 같은 상승감을 한껏 강조한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뒤쪽에 80m 높이로 우뚝 솟은 탑은 1836년부터 1862년 사이에 세워졌는데 위에 있는 십자가는 높이만 해도 4m에 이른단다. 1390년에 제작된 제단과 벽화가 볼만하다는 성당의 안은 들어가 보지 못했다. 보수공사 때문인지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 어느 탐방 기사에서 ‘이왕에 성 미카엘 교회를 찾았다면 올라가 보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던 교회의 첨탑도 올라가보지 못했다. 그렇게나 길더라던 줄은 보이지 않았지만 공사 중이라며 출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란실바니아에서 가장 높은 탑답게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물론이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클루지나포카의 경관을 볼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성당 앞에는 말을 탄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 클루지나포카 출신의 헝가리 왕 ’마테이 코르빈(Matei Corvin)‘이란다. 1440년 이곳에서 태어나 1458년부터 1490년까지 헝가리를 다스렸으며, 재위 중 고향 마을의 발전을 위해 경제적인 특권 부여 등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조각가 ’파드루스즈 져노스(Fadrusz János)‘의 작품인데 1902년 트란실바니아 지역이 헝가리 지배하에 있을 때 세워졌단다.
▼ 성당의 옆에는 트란실바니아 바로크양식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국립미술관(National Museum of Art Cluj-Napoca)‘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독일건축가 ’Johann Eberhard Blaumann‘이 설계를 맡아 1774~1785년에 지어진 ’반피궁(Banffy Palace)‘을 개조해 1951년부터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단다. 첫 번째 소유주가 트란실바니아의 총독인 헝가리 공작 ’기요이 반피(György Bánffy)‘라고 해서 ’반피 궁‘으로도 불린단다. 주어진 시간이 부족해 내부관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에 내부 풍경은 다른 이의 글로 대신해본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루마니아 미술가, 조각가들의 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니콜라에 토니차(Nicolae Tonitza), 이온 투쿨레스쿠(Ion Tuculescu), 게오르게 페트라스쿠(Gheorghe Petrascu) 같은 루마니아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고가구, 무기류, 수공업자들이 사용하던 도구, 성상, 페르시아 양탄자 등의 유물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 광장은 ’트란실바니아 국제 영화제(Transylvania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IFF)‘의 준비로 분주했다. 비영리 영화단체인 ’루마니아 필름 프로모션(Romanian Film Promotion)‘이 처음 기획한 국제영화제로, 2002년 클루지나포카(Cluj-Napoca)에서 제1회 영화제가 시작되어 곧 루마니아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영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흡혈귀를 소재로 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감독의 영화 ‘노스페라투(Nosferatu)’ 속 드라큘라 캐릭터인 ‘오를로크 백작(Count Orlok)’을 영화제의 마스코트로 사용하는데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4회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 진행요원 대기실로 보이는 곳에서는 음료도 팔고 있었다. 덕분에 ‘우르소스(Ursus)’라는 현지 생맥주로 목을 축이며 가이드를 기다릴 수 있었다. 우루소스는 라틴어로 곰을 뜻하는데 루마니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란다.
▼ 연방광장은 클루지나포카 관광의 ‘랜드 마크’일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에 있어서도 중심이라고 한다. 중세 때 시장이 들어서있던 광장 주변은 지금도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다. 때문에 광장을 둘러싼 거리엔 자동차들로 넘쳐나고 광장도 휴식을 취하려는 시민들로 늘 붐빈다. 도시가 커서인지 집시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루마니아는 집시 비율이 10%로 유럽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얼굴로는 구별이 잘 안 가는 집시도 있지만 단속을 해야 하는 경찰들은 족집게처럼 잘도 골라낸단다.
▼ 연방광장을 다 둘러봤다면 이젠 다른 눈요깃감을 찾아봐야 한다. 이곳 클루지나포카에서 두 번째로 꼽히는 관광지는 ‘아브람 이안쿠 광장(Piața Avram Iancu)’이다. 루마니아 정교회의 대성당과 국립 오페라하우스, 정의의 궁전 등 예쁘게 지어진 건축물들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 ‘아브람 이안쿠 광장’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다.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광장을 빠져나오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탑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사각의 기둥 두 개를 길게 세우고 그 꼭대기에다 종을 매달은 모양새이다. 하단에는 ‘1894-1994’라는 년도 표시와 함께 15명의 이름을 나열해 놓았다. 맨 아래에 ‘in memoriam’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걸 보면 위에 적힌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탑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한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두 관광지를 연결하는 도로는 인도와 차도의 폭이 거의 비슷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는 증거일 것이다.
▼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서인지 ’트란실바니아 국제 영화제(TIFF)‘를 위해 만들어놓은 시설들도 여럿 보였다. 통로 모양의 목제 부스(booth)를 새로 만들고 영화제 관련 사진들을 게시해 놓았다. 알만한 내용이라도 있을까 해서 기웃거려 봤지만 우리나라 영화에 대한 소개는 없었다.
▼ 가는 도중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예쁘장한 건물을 만났다. ‘Cluj-Napoca’라는 지명의 위에 자치시라는 뜻의 ‘municipiul’이 적힌 걸로 보아 시청이 아닐까 싶다. 어느 도시든 시청 건물은 그 도시를 대표한다. 때문에 청사의 대부분은 외모가 빼어난 편이다. 이곳 클루지나포카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 산뜻한 색상의 정교회도 만날 수 있었다. 지도에는 ‘biserica schimbarea la fata’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거리에는 ‘율리우 호쑤(Iuliu Hossu : 1885-1970)’의 동상도 보인다. 공산당의 박해로 순교한 로마 가톨릭 추기경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얼마 전 ‘복자’ 품위에 오른 인물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들의 회심을 위해, 값을 치르고 용서를 선사하기 위해, 이 고통의 어둠 속으로 우리를 보내셨습니다.’라는 그의 말이 당시 루마니아 국민들을 지탱케 해주었다니 거리의 한켠을 차지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 10분 조금 못되게 걸었을까 아름답기 짝이 없는 건축물 하나가 여행객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오스트리아 건축가인 페르디난트 펠너(Ferdinand Feller)와 헤르만 헬머(Hermann Helmer)의 설계로 건설된 ’클루지나포카 국립오페라하우스(Cluj-Napoca Romanian Opera)‘이다. 건설 당시에는 클루지나포카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헝가리 국립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곳이 루마니아 영토로 편입된 후 재단장하여 1919년 12월 1일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루시안 블라가(Lucian Blaga)‘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 1904~1906년에 지어진 건물은 아치형 출입구 3개가 나란히 있고, 양쪽으로 그리 높지 않은 탑이 솟아 있어 정갈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준다.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이 결합된 형태라고 한다. 예쁜 외관에 걸맞게 주변 풍경도 쉬어 가기 좋을 만큼 예뻤다. 겸사겸사해서 공연도 한 편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맞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하긴 그런 호사는 자유여행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 오페라하우스의 맞은편은 ‘아브람 이안쿠 광장(Piața Avram Iancu)’이다. 이곳 트란실바니아가 루마니아의 영토로 편입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혁명가 ‘아브람 이안쿠(Avram Iancu : 1824–1872)’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라고 보면 되겠다.
▼ 광장의 중앙에는 분수를 배치했다. 그 중앙은 물론 ‘아브람 이안쿠’ 몫이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헝가리가 트란실바니아 지방을 계속해서 합병시키려는데 맞서 혁명전쟁을 일으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루마니아의 민족적 권리를 구체적으로 인정받게 한 최초의 협정을 이끌어 낸 인물이라고 한다. 2016년에는 루마니아 의회와 ‘클라우스 요하니스 (Klaus Iohannis)’ 대통령에 의해 ‘국가영웅’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국가에서 인정한 영웅이니 전국 방방곳곳에 이런 동상이 세워졌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 광장은 1933년에 개관했다는 ‘루마니아 정교회 대성당(Catedrala Adormirea Maicii Domnului)’이 완성시킨다. 이스탄불의 소피아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메인 돔(main dome)’을 루마니아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띤 4개의 타워로 둘러쌓고, 대리석으로 조각된 18개의 기둥이 돔을 받치고 있는데 루마니아 르네상스양식과 비잔틴양식이 혼합된 루마니아 정교회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이란다. 1933년에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 성당의 내부는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어수선한 풍경이었다.
▼ 성당 앞에는 정교회의 신부로 보이는 동상도 세워져 있었다.
▼ 광장에는 프랑스에서나 볼 법한 건축물도 보인다. 어느 권세가의 저택이었을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정의의 궁전(palace of justice)’이란다. 1898-1902년에 건축가 귈라 바그너(Gyula Wagner)의 지휘 아래 지어졌으며 현재는 대법원 청사로 사용되고 있단다.
▼ 광장에는 풍물시장(風物市場)이 열리고 있었다. 기념품은 물론이고 의류 등의 공산품, 거기다 지역 토산품과 중고품까지 숫제 만물(萬物)이 다 모였다. 거기다 사람들도 인산인해다. 맞다. 우리네 시골 장터도 이런 모습이었다. 이젠 사라져버린, 그래서 사진으로나 보게 되는 풍경이지만 말이다.
▼ 장터를 둘러보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현지인이 다가와 ‘Korean’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North’와 ‘South’ 가운데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온다. ‘ROK’임을 분명히 했더니 대뜸 ‘김정은’에 대한 욕설부터 내뱉는 게 아닌가. 중화학 기술자인 자신이 북한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북한의 살림살이가 괜찮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김일성에 대한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리곤 김정일과 김정은이 핵개발을 하면서 나라를 빈곤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며 분통을 터트린다. 자신이 도와주었던 나라의 비참한 현실이 못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같이 동조를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지만 낯선 나라에서 만난 익숙한 풍경이었다.
▼ 연방광장으로 돌아오는 길, 거리는 온통 중세풍의 건물들로 가득하다. 층수는 높지 않지만 굵직굵직 한 것이 과연 루마니아 제2의 도시답다. 하긴 인구도 30만이 넘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 참! 카메라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루크 오일(LUK OIL)’라는 브랜드를 내건 주요소도 보였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석유회사라는데 이번 여행 중에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회장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정치에 뜻을 두고 푸틴 대통령에 대항하다가 오히려 푸틴의 재벌 길들이기에 호되게 당한바 있다. 반 푸틴 행보를 하다가 탈세 혐의로 구속 수감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석방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앞으로도 반 푸틴 행보를 이어갈지는 모르겠다.
▼ 연합광장으로 돌아오는 길, 투어가 끝났다는 여유로움 때문인지 아까는 보지 못했던 주변 풍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하나는 두 아이가 짐승의 젖을 물고 있는 조형물이었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Romulus and Remus)‘ 형제를 상징하고 있다는데, 로마에서나 볼 법한 조형물이 왜 이곳에 세워져 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 루마니아 국민들은 자신들이 로마인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조형물이 이탈리아에서 선물로 준 5개의 카피본 가운데 하나라니 그들의 우호관계를 증명하는 셈치고 이곳에 놓아두었는지도 모르겠다.
▼ 자투리 시간은 먹거리들을 기웃거려봤다. 화장실도 사용할 겸해서 찾아간 곳은 아이스크림 전문점 ‘Moritz’,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동구(東歐) 쪽에 여러 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데,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단다. 대표적 길거리 간식이라는 ‘랑고쉬(Langos)’는 눈요기만 했다. 밀가루 반죽을 펄펄 끓는 기름에 넣어 튀겨 낸 다음, 그 위에 잘게 썬 치즈를 얹는 것인데 구미가 당기지 않아서이다. 집사람의 또 다른 선택은 구운 옥수수였다. 삶은 옥수수에 버터를 두르고 소금으로 간을 했는데 입을 대자마자 못 먹겠다며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 그동안 먹어오던 옥수수 가운데 가장 맛이 없단다.
▼ 이스탄불로 되돌아올 때는 ‘클루지나포카 국제공항(Cluj-Napoca International Airport)’에서 터키항공을 탔다. 1933년에 첫 국제노선을 띄운 공항인데 정식 명칭은 ‘아브람 이안쿠 국제공항(Aeroportul Internațional Avram Iancu Cluj)’이다. 위에서 거론했던 ‘아브람 이안쿠’의 이름에서 따왔단다. 하지만 국제공항치고는 그 규모가 무척 작았다.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 숫자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소요되는 시간만은 짧지가 않았다. 수화물 체크인 등 제반 절차가 우리나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느릿느릿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친절도 또한 우리나라에 견줄 수 없었다. 하긴 고객서비스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 공항들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특히 2004년 GT Tested Awards가 시작된 이래, 11년 연속 세계 공항서비스평가 1위를 차지한바 있는 인천국제공항에 견주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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