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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브라함이다
창 17: 1-8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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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만 해도 날씨가 쌀쌀했지만 이제는 완연히 봄이 된 느낌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 동안 봄을 알리는 비가 내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맘때쯤 비가 내리고 나면 교회 맞은편에 있는 산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비가 온다는 소식도 없이 그냥 무심코 왔다가 가는 것 같지만 때로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금 내리는 비도 있지만 비가 내리고 나면 그 흔적이 반드시 남습니다.
그것은 앞동산의 소나무들이 생기를 되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비가 한 번 내리고 나면 그 빛은 조금씩 조금씩 더 파랗게 살아나게 됩니다.
단지 소나무만이 아닙니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비가 몇 번 더 내리고 나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산은 서서히 파랗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름까지 가는 것이지요.
우리들 세상사도 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요즘에는 더욱 절실합니다.
마치 비가 한 번 내리고 나면 그만큼 생명이 풍성하게 되듯... 점점 더 어둡게만 느껴지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 되살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물론 오늘 우리가 겪는 위기가 어느 한 사람의 능력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고, 구조적인 것이기에 선뜻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향해서 마치 봄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봄비처럼 그렇게 요란하고 대단하지는 않게 아주 조용하고 작은 분량의 사랑이라도 서로를 향해서 베풀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사느라고 위축되고 죽어 있던 우리의 마음을 살아나게 하고 인생의 봄이 오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서로를 향해서 여름에 내리는 사납고 무서운 비가 아니라 마치 봄비처럼 그렇게 작은 사랑이라도 베풀어 주고 나누려고 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욱이 우리들은 지금 <사순절>의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순절>을 가리켜서 ‘하늘에 구멍이 뚫린 시간’이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하늘의 은혜가 우리들에게 충만하게 임하는 기간이라는 것이지요.
<사순절>의 우리의 모든 묵상과 행동의 주제가 되는 주님의 십자가만 해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어떤 느낌을 가지시는지요?
누가 뭐래도 십자가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사랑하는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시고.우리를 대신해서 죽기까지 하신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생각해보면 <사순절>이라는 기간은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그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 소중한 은총의 순간을 허망하게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벌써 두 번째 주간에 접어들었습니다.
늘 말씀을 가까이 대하려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을 좀 더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기에 힘쓸 것은 권합니다. 이웃을 돌아보고 이웃들에게 봄비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힘쓰십시오.
따뜻한 사랑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쏟아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살게 할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우리의 내면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치 자연의 생명들이 봄비를 한 번 맞을 때마다 생명이 다시 살아나게 되듯... 사순절의 기간에 봄비처럼 내리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서 다시금 새롭게 일어서는 우리의 믿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다시 찾아오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먼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이야기가 아브라함이 나이 아흔 하고도 아홉 살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100살에서 1년이 모자라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6장을 보면 앞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팔십 육세 때에 되어진 일인 것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6장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 이었더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86세부터 99세가 되기까지 지난 한 13년 동안 물론 그 보다 더 오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 13년 동안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는 이렇다 할 일이 없었던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사이에 무엇인가 대단한 일이 있었다면 성서의 기자가 그런 일들을 그냥 넘기지는 않았을 텐데... 창세기 16장과 17장 사이에는 적어도 13년 이상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하여 침묵하시고 이렇다 할 행동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사이가 소원해 진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창세가 12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 나이 75세가 되었을 때에 그를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길을 떠난 것이 75세가 되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제인지 그 때는 나와 있지 않지만 15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85세가 되기 이전에 그를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답답해하는 아브라함을 달래고 그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히 하려고 했던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 자신이 데려온 몸종을 상속자로 삼으려 하는 아브라함에게 오직 그를 통해서 나오는 아들이 진정한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시며 그 증거로 아브라함이 진설해놓은 제물 가운데 임하셔서 그것을 불로 태우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에 그를 다시 찾으셨으니 아브라함이 순례의 길을 떠난 후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침묵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오랜 시간 동안 침묵하고 있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은 자꾸만 지나가고 하나님은 약속하신 아들을 주시지 않고 하나님의 침묵이 거듭되면 될수록 그에게는 그것은 참으로 참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이 날 그냥 버리신 것은 아닌가? 혹시 하나님이 날 포기하신 것은 아닌가?’ 아브라함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그가 자기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하갈이라는 하녀를 통해서 자식을 낳으려고 한 것도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초조함에서 비롯된 일이었다고.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얻은 일은 아브라함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스마엘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자책감이 더욱 심해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좀 더 참고 기다려 볼 것을... 하나님이 단단히 화가 나신게 아닐까? 내가 섣부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브라함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 속에서 보낸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가 99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길고 지루한 숨 막히듯 답답하던 침묵을 먼저 깨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아흔 아홉 살이 되었을 때에 그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그를 찾아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와 나 사이에 언약을 맺으러 왔다... 이 언약은 너뿐 아니라 너의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참 무뚝뚝하고 아브라함의 아픈 마음을 잘 달래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일 제가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말을 시작했을 텐데요...
‘아브라함아 참 오랜만이다. 지난 시간 동안.. 그래 13년이라고 하면 정말 짧지 않은 시간인데... 어쨌든 내가 너를 그냥 광야에 내팽개쳐 둔 것은 느낌이 되었구나... 참 미안하게 되었어...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너를 결코 잊어 본 적이 없었어. 나는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었단다...’ 마치 우리가 프로>에서 보듯. 엄마가 오래 전에 사느라고 힘들어서 포기했던 딸을 다시 만나면 말하듯. 그런 말로 아브라함을 위로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잘 느끼지 못했어도 아브라함은 충분히 하나님의 마음을 일고 알았을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날 버리신 것은 아니었구나... 하나님이 날 잊으셨다든지...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 와서 그를 부르실 때 아브라함은 이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을 때... 우리가 만나게 되는 하나님은 한 번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른 사람들을 하나님은 결코 버린다든지 포기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 가운데 이러한 믿음과 확신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즘 우리는 매일 새벽기도회 시간마다 시편의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어제는 13편의 말씀을 읽었는데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인이 견딜 수 없는 것... 그것은 자신을 향해서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자기를 돌아보시던 하나님이 이제는 그 얼굴을 자기로부터 거두시고 외면하고 계시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것은 어느 정도 참고 견딜 수가 있지만 “하나님의 외면.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부재.” 이러한 현상을 그로서는 도저히 참고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바로 이것이 지난 13년 여 동안 아브라함이 가진 고민이었습니다.
“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든지... 몸이 건강하지 못하다든지... 극복하기 힘든 위기가 찾아왔다든지..?. 이런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고민입니다.
하나님의 침묵 가운데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로 견디기가 힘든 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민도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요?
물론 경제적인 위기... 우리의 삶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 이러한 살아가는 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위축시키기도 하고...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욱더 근본적인 것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주변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나의 사정을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의심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는 세상 적인 어려움이나 고통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뭐가 걱정할 일이 있을까요?
문제는 우리가 혹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신 것은 아닌가? 이렇게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시편의 기자들이 고백하는 것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삶이 뿌리째로 흔들리는 혼돈을 겪을 수밖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인간적인 수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 하는 부끄러움과 허물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시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참된 가치와 품위를 상실해버린 때에라도 혹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소금은 소금이지만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된 때에라도 여전히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 이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 이것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희의 근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시면서 자신을 소개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른바 ‘엘 샤다이’라고 하는 독특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시는 것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때나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지는 않으십니다. 창 15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때에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창15:1)이라고 드러내신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지켜주시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자기를 드러내시는 것이지요.
특별히 이것은 다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나이를 의식하신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브람의 구십 구 세 때에...’ 성경은 이렇게 아브라함의 나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흔 아홉이라는 나이... 이것이 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들 중에 이렇게 오래 사신 분들은 없지만 만일 우리가 이 나이까지 살아 있다면. 그 때에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이것은 너무 늦은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에 99세의 나이하는 것은 도저히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라는 것은 서로가 대립되고 갈등을 일으킬만한 대목입니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겠지요.
“아무리 하나님이 전능하셔도 그렇지... 이제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나 되었는데... 더욱이 아들을 낳는 일이라면... 그것은 이미 불가능해지고 말았는데... 하나님의 전능하심조차도 그 빛을 잃기에 충분하게 아브라함은 늙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적인 판단이나 능력으로는 이미 늦어버렸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기에.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설득력이 있고... 우리에게 무엇인가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맞아... 하나님이시라면... 오늘 이렇게 자신을 특별히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아직도 아브라함에게는 희망이 있는 거야...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라는 것도 그다지 큰 문제가 될 수 없는 거야...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지... 만일 그것이 아브라함 그 자신이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택도 없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무엇인가 가능할 수도 있어!’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라... 이렇게 시작할 때만해도 이미 희망은 없었습니다.
‘다 틀렸군... 너무 늦어버렸어.. 찾아오시려면 좀 더 일찍 오시지 않고...’ 그런 분위기였는데...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엄숙한 어조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여기서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체념이 기대감으로 바뀌고 포기가 새로운 일의 성취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3년 이상의 긴 침묵의 끝에 아브라함을 찾으신 하나님이 한 번 선택한 사람을 결코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시라면... 이렇게 99세가 된 그를 찾아오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은 항상 우리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능력으로는 이 모든 것이 끝장난 것처럼 보입니다.
나의 힘으로는 도무지 할 수가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키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이제 모든 것이 끝장 난 것과 같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려 하시는데... 그 언약은 ‘그의 후손이 심히 번성하게 될 것이며 세상의 왕들과 나라들이 그를 통해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놀라운 일이라는 말씀이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제까지 불려왔던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되기를 희망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람과 아브라함... 그 이름이 가진 뜻은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를 안는다는 것이 이 대목을 해설하는 사람들의 견해입니다.
아브람이라는 말은 ‘내 아버지는 존귀하시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에는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름이 가진 뜻의 차이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면서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민족의 아버지다운 새로움을 기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제부터 너는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이라는 옛 이름은 좀 부끄러운 이름입니다.
특별히 그 이름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보다는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하게 자기의 힘으로 성취하려했던 불신앙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비해서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은 이제 그가 99세에 자기를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한 후의 그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람을 상징한다면... 아브라함은 이제 이런 모든 갈등을 넘어 선 사람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결코 자기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또한 비록 이제 자기에게는 모든 희망과 가능성이 다 사라져버렸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나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고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믿음을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찾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믿음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라면서 믿었으므로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백 세가 되어서,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사라의 태가 또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을 알면서도,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신 바를 능히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롬4:18-21) 이러한 바울의 표현을 빌자면... 아브라함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세상을 살았던 믿음의 사람의 표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너는 아브라함이다...” 이렇게 그를 새롭게 부르시는 장면은 우리들에게도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가 더 이상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되었을 때에 그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너는 아브라함이다... 이제부터 너는 아브라함으로서 믿음을 가지고 아브라함답게 세상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껏 우리들의 살아왔던 삶의 여정은 아브라함이 되기 이전의 아브람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너무나 쉽게 흔들렸습니다.
우리는 참고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기 보다는 이 시대의 흐름과 풍조를 따라잡는 이에 더 많은 열정과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이 힘들고 어렵다보니 우리들에게는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의식마저도 가물가물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아브라함이다...’ - ‘너는 이제부터 아브라함다와야 한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우리에게서 사라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희망이 가물가물해지고 자기의 능력에 대한 실망이 점점 더 심하게 우리를 흔들어 놓는 때라고 하더라도 99세의 아브라함을 통해서 열왕이 나오게 하시고 많음 민족이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씀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결코 흔들리거나 퇴색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약하고 힘이 없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나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희망 속에 기다리는 오늘의 아브라함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