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46]주말, 즐거운 점심과 아름다운 저녁
# 즐거운 점심(24일): 어제 새벽, 졸지에 친구 3명의 호를 지어 바쳤다. 두어 달 전, 10여년 전에 지어준 호를 애용하는 친구가 또다른 친구의 작호를 부탁한 ‘숙제’를 해치운 김에, 최근 곧잘 어울린 두 친구의 호도 짓게 돼 기뻤다. 아침 8시, 9시 세 친구가 연달아 자기에게 딱 맞는 호를 지어줘 고맙다고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한 김에 농담으로 “그럼 오늘 작호를 기념하는 점심을 하면 어떨까?”했더니 불감청고소원이라 했다. 이번 작호의 특징은, 두 친구에게 같은 호(비록 한자어와 순우리말로 다르긴 하지만)를 지어준 것. 이런 경우, 판을 더 크게 벌이는 게 나의 장기(?). 같은 호를 받은 친구와 같이 ‘작호 턱’을 하면 좋겠다고 하니 싫어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인근에 사는 둘다 잘 아는 동창친구(소천素泉 형관우)와 ‘대한민국 엉겅퀴박사’(이 친구는 동창은 아니다) 포함해 다섯 명이 금방 '점심 황금멤버'로 급조됐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Ⅲ-44]모처럼 지은 친구 3명의 호(온계, 갈뫼, 추산) - Daum 카페
장수 산서면소재지 <산마을>이라는 맛집에서 1만원짜리 산채비빔밥을 한번 드셔보시라. 막걸리 몇 잔이 꿀꺽꿀꺽 잘도 들어간다. 점심은 추산秋山형이, 식후 커피는 갈뫼형이 내기로 교통정리. 남원 주천 육모정 앞 <사과꽃 향기>의 쌍화탕도 맛보시라. 마담의 넉넉한 성품은 마즙에 포도까지 후식으로 나오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하하. 친구들의 호를 지어준 덕분에 모처럼 다섯 친구가 격의없는 얘기를 두어 시간 나누며, 아주 ‘즐거운 점심’과 값 나가는 쌍화차를 마셨으니, 행복한 토요일이다. 호에 걸맞게 갈뫼형은 위아래 멋드러진 모시옷을 입고 나타나셨다. 세탁할 곳이 거의 없다한다. 우리 옷인데, 그것 참!
# 아름다운 만찬(25일): 일요일 오전 10시, 논두렁 풀약을 하고, 큰아들 짐(1년간 맡겨놓음) 이사로 텅빈 사랑채를 본격 청소하고 있는데, 엉겅퀴박사 친구의 전화다. 용건인즉슨, 옥정호 근처에 <양대박장군운암승전비>가 있다는 말을 임실에서 60년도 넘게 살면서 몰랐는데, 나의 글을 읽다 알았다며 안내해줄 수 있냐는 것이다. 당근.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군은 호남지역을 점령하려 애썼는데, 그 첫 번째 전투가 운암에서 벌어졌다. 양 장군은 차남을 비롯한 의병 1000여명으로 왜군 1만병을 물리쳤다. 두 번째 전투는 완주 근처의 이치(웅치)전투. 두 전투의 승리로 호남은 왜군의 침략을 당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해상에서 호남을 넘보지 못하게 한 구국의 영웅 충무공도 있었고, 진주대첩의 남원 출신 황진장군도 있었다.
아무튼 정조임금은 명신 윤행임에게 양대박장군을 기리는 비문을 쓰게 했다. 승전비에는 그 비문이 고스란히 새겨 있었다. 비문의 국역을 재야 한문학자인 최종춘(작고)과 이형남 선생이 했는데, 독학자습한 한문실력으로도 직역이 아니고 현대문같이 의역을 잘 해놓으셔, 읽으면(아무도 읽지 않겠지만) 양장군의 충성심(시호 충장공)과 승전의 위업을 잘 알 수 있다. 맛집에서 참게장정식으로 점심을 하던 중, 내일 오전에 수송예정인 오수개 기념비를 트럭에 실어놓았다는 전화다. 이왕 실었으면 오늘 하면 좋겠다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6W 포클레인을 긴급 수배, 5시 오수반려누리센터에서 미리 준비된 자리에 앉히는 것은 진짜 역사役事이고 기념비적인 역사歷史였다. 5톤이 넘은 기념비 머리부분과 받침대를 내리는 것은 그 자체가 장관이었다.
임실군민은 1천년 전(1022년 추정)에 주인을 구하고 대신 죽은 의견(충견)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 다시 1천년 후(2024년)인 오늘(정확히는 8월 29일 오후 제막), 그 자리에 현대판 오수개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다. 1천년 전 비 전면엔 글자 하나 없이 개형상을 양각으로 남겼지만, 1천년 후 기념비에는 ‘오수개 UN FAO 등재기념비’란 글자 아래에 30여년만에 각고의 노력 끝에 복원한 오수개의 전신全身을 양각으로 새긴 것이다. 멋진 일이다. 오수개의 혀를 내민 입과 귀 그리고 공작새 깃털같은 꼬리, 어떤 조각기술로 이리도 세밀하게 새긴 것일까? 틀림없이 이 비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와 함께 다시 1천년을 이어지리라. “오수개, 1천년만의 부활復活” 신문 큰제목으로 “딱”이지 않는가. 예수님도 사흘만에 부활했다지만, 여기 오수개는 1천년만에 부활한 것이 맞지 않은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가시밭길을 걸어온 ‘일등공신’ 친구는 또 얼마나 감개무량할 것인가.
이제 며칠 후면 가려진 기념비가 세상에 처음 드러나는 제막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이 고장 출신의 시각장애인 송경태 박사 부부가 절친과 함께 저녁을 사겠다고 전주에서 내려왔다. 송박사는 보통 유명인이 아닌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결정적인 장애를 딛고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등, 세계 4대 극지대 마라톤을 완주한 철각鐵脚이다. 훌륭하다. 오수개 복원에 30여년을 바친 친구를 비롯하여 포클레인 재능기부를 한 친구, 건립추진위 위원장, 오수개연구소 부회장 등 8명이 400살도 더 되는 노거수 은행나무 옆 식당에서 ‘아름다운 저녁’을 하게 된 이 사연도 아름답지 않은가.
어제 임실군청사 전면에 대형 현수막이 붙었다. 이제껏 이렇게 큰 현수막이 걸린 적이 없었다며 월요일 출근하는 군청 직원이나 임실군민들이 깜짝 놀랄 것이라고 이구동성 한마디씩 하며,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자축 엉겅퀴막걸리를 들이켰다. 오수개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우리 모두 <2030 세계반려동물산업엑스포>가 오수에서 개최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자. 충분히 가능한 일, 오수의 미래가 달린 일에 눈을 감거나 눈을 돌리면 절대로 안될 일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