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누가복음 15:1-10】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 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말씀 나눔】
사람의 가치를 값으로 매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은 존대받고,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무시를 당합니다. 그 사람 안에 자리하고 있는 영혼의 성숙함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힘 있는 사람 주변에는 사람이 들끓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관계의 동심원에서 벗어나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평가되어 버려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평가한 그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한 사람이 가진 영혼의 무게가 다른 사람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세리들은 죄인으로 정죄합니다. 그들이 로마의 부역자로 로마 제국의 힘을 등에 업고, 세금을 과도하게 거두어 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정죄하는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가까이 와서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영접하고 부정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되찾은 비유,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는 비유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에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비유로 먼저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립니다. 아마도 이 양은 목초지에서 자유롭게 뿔을 뜯다가 바위틈에 걸렸을 수도 있고, 움푹 파인 땅에서 풀을 뜯다가 뒤집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발버둥 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목자가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목자는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양을 울타리 안으로 넣으며 숫자를 확인하다가 확인했을 수도 있습니다. 양을 잃어버린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부르며 찾아다닙니다. 양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때문에, 목자의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울음소리를 내길 바라며 이곳저곳을 찾아다닙니다.
양의 무리에서 이탈한 양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혹시라도 구덩이에 빠져서 뒤집어져 있기라도 한다면 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기력을 다하고 먹은 목초가 소화되면서 배에 가스가 가득하고, 혈액순환이 안 되어서 근육이 마비되는 지경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위험을 잘 아는 목자가 양을 애타게 찾아다니다가 그 양을 찾으면, 그 양의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조치한 다음에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웃을 불러 모으고 잃어버린 양을 찾은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본문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아마도 음식을 차리고 같이 먹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은 비유에 이어서 잃어버린 양을 ‘죄인’에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으로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문맥의 흐름을 볼 때, 종교지도자들이 혐오하는 세리와 죄인들이 바로 잃어버린 양입니다. 목자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목자의 품으로 돌아온 양과 같이 죄인들과 세리는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반면에 종교 지도자들은 어떤가요?
예수님은 누가복음 5:32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의인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애초에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 즉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은 자신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빗대어 하신 말씀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다시 찾기 위해 마음을 쓰시지만,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잃어버린 양에 대한 애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동체에서 낙오한 사람들의 영혼은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을 닮은 성도들은 공동체 밖에 낙오된, 잃어버린 영혼을 쉽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비유는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인은 1데나리온의 가치가 있는 고대 로마 은전인 드라크마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여인은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고 하니 노동자 열흘분의 임금에 해당되는 금액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 여인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등불을 켜고, 집을 샅샅이 뒤지고 빗자리로 구석구석 쓸면서 찾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적은 돈일지 모르지만, 이 여인에게 한 드라크마는 매우 소중하고, 큰돈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단출한 살림에 집기도 얼마 없지만, 혹시라도 가구 아래로 굴러들어 갔을까? 싶어 등을 비추며 빗자루로 쓸어내면서, 집 안 구석구석 빠짐없이 뒤져서 마침내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습니다. 이 여인은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아마도 다시 찾은 드라크마를 보다 더 큰 비용을 들여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이 두 비유에서 강조하시는 것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기쁨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다시 찾는 기쁨은 가격으로 매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 구원하여 제자로 세울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다시 찾은 기쁨을 함께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세상이 주지 못하는 큰 기쁨을 잃어버린 영혼을 다시 찾음으로 누리는 저와 여러분의 하루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1.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결심한 결단과 실천 사항은 무엇이었습니까?
2. 어제 결단한 실천 사항을 생활 속에서 적용한 결과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3.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말씀하십니까?
4. 오늘 본문은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5. 오늘 본문은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6.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기도문 적기 & 실천 사항 적기
【추천 찬송가】
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은혜의 찬양】
사람을 살리는 노래: https://youtu.be/15MJy_efRi0?si=svAdegX0NIW2p_3T
【새벽예배영상】
https://youtube.com/live/vKshdK7QV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