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때에 교회 본당에서 통회 자복의 울분을 가지고 여러 번 기도하는 중에 시끄럽다고 밤마다 교회 본당서 기도하는 권사님들의 항의를 받았습니다(잘잘못 이전에.... 그래서 산기도를 찾아다니기도 했거든요. 삼각산부터~~금식 기도원까지).
한 분 교육 전도사로 은퇴하신 분이 저에게 권고를 하셨습니다. 본인이 은혜를 많이 받으셨다고 주의 몸 된 교회에 충성을 하고 선포되는 말씀은 임의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고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하는 신앙생활에 본을 보여 주시려고 저의 안타까운 모습에 한마디 해 주고 싶었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는 그분을 유념하면서 지켜 봤었고 말 없이 조용하신 분으로만 생각하면서 좋게 보게 되었는데.....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에 입장에서 그 시대 때 담임 목사부터(나중에는 성추행으로 쫓겨남) 국내 설교자들 현재까지 좀 들어봤을까요?
그 당시는 잘 안 들렸던 설교 내용들 기억이 생소하게 살아나는데요. 유머러스하게 하는 분들 인기인들 같이 꼭 지성 인으로 유명 소설가 철학자 성공한 위인들의 문장을 인용하고 예화는 빠지지 않게 연결시켜 정해진 패턴으로 끝맺음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같이 하나님 음성 듣는 것보다는 어떤 글쓰기 장기 자랑처럼 짜인 설교들이 아니었나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그 때나 지금이나 잘 하시는 분들은 분명 있습니다)~
설교가 성경 문맥과 전후 사정이 구약이면 구약에서 다루어지는 내용 하나님의 뜻을 찾는 내용들은 그 시대 때 문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믿음의 조상인데 어떤 내용으로 접목시키는 분은 야곱의 형 에서는 버려진 에돔으로 싸움을 하는 자 일뿐인데 확대 해석해서 같은 믿음의 자손으로 보더군요(오늘날에 이란, 이라크 지역을)!! 야곱을 선택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12 지파와 각 지파에 구원받기로 작정된 충만한 수를 (이방인 까지로 그곳에 속할 수도 있겠지만) 채우기까지 이 땅의 활동이 주어지고 (계7:3-4) 누구든 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 구약 약속의 대구원 계획의 내용으로 볼 때, 이란과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이스마엘 후손이므로 구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날 때부터 복중에서 싸움을 하게 되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다고(창25:23) 분명 하나님께서 두 민족으로 정해진 이치인데도 이상하게 해석하면, 언제나 헷갈리는 사람들은 그 교회 출신들이고 그 교회와 그 설교를 분별 없이 듣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사만 받는 것에 분해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죽었고 가인은 그 죄악으로 저주를 받는 것이 딱 구분이 되거든요)
신앙의 틀이 성경의 흐름을 꿰뚫어서 통찰하지 못하면 우리들은 어떤 식으로 성경을 보던 마지막에는 예수님 십자가 구원으로만 짜 맞추어 보면 된다는 식이 되어 버리는데 결론은 잘못되지는 않지만 마지막까지 가는 중에 우왕좌왕 혼란스러운 믿음 생활로 잘못 해석하고 마지막을 외치지만 엉뚱한 해석 방법의 대입으로 늘 실수를 범벅하고 만해 했다면 또 되풀이 되는 실수가 나타나고 범벅이 되어도 고쳐서 설교자가 헤아리지 못하면 항상 그런 오류 투성이는 연약한 인간이라고 설교 자는 변명을 할 것인가?
이렇게 하는 설교들은 유튜브 쎔네일 화제가 되는 내용들로 클릭 수가 좀 되는데요. 사람들은 쇼킹한 내용에 스스로 찾아서 성장 위주보다는 흥미꺼리로 보니깐 이런 미끼에 낚여 버리게 됩니다. 사실 들어보면 별것 아닌데 애매하고 헷갈리고 분별이 없으면 하나님의 구원 약속만 허접하게 만들어지게 되기도 합니다.
설교자가 그런 식으로 성경을 보면서 해석을 하고 지도자의 길을 가는데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도 보통 국제 정치 정세와 국내 정치 정세를 보면서 성경을 살펴 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우리는데요. 먼저 설교자는 성경에 능통하는 능력으로 나를 만들어지지 않고는 언제나 주먹구구식으로 짜 맞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해석은 엉뚱해지고 결론만 예수님의 십자가로 아멘 하게 되겠지요!!
저도 잘 하지는 못했습니다. 번영의 신앙과 기복 신비주의 때론 시한부 종말론 이단이 아닌가 하는 갈등들을 한번 쯤은 다 가졌었고 지금까지 오면서 느낌점이라면 말씀은 집중적으로 보는 중에 해답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믿는자 들에 은혜를 주시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 됩니다.
출애굽기 33:19 KRV [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https://bible.com/bible/88/exo.33.19.KR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