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일시 : 9월 29일(화) 오전 11시
▪︎만남장소 : 9호선 노들역 2번 출구 안
# 노량진역에서 9호선 노들역행 환승시 주의사항
- 반드시 중앙보훈병원 방면 완행을 타세요.
- 절대 급행 타지 말것. 노들역에서 안 서요!
▪︎걷기코스
- 약 5km, 100% 평지
- 노들역 -> 노들나루공원 -> 한강대교남단 -> 노들섬 일주 -> 한강대교북단 -> 백빈건널목 -> 땡땡거리 -> 아이파크몰/용산역
▪︎ 뒤풀이 : 최가네숯불구이
▪︎ 준비물
- 명찰, 찬조금 천원
- 맛난 간식, 생수, 과일, 성인음료, 안주...
- 간이의자, 돗자리, 양산, 썬캡, 비상약....
▪︎ 준수사항
- 약속시간 10분 전 도착하기
- 늦을 때는 미리 연락하기
- 자연 훼손하지 않기
- 무단 이탈하지 않기
- 신입 참석회원 친절하게 대하기
- 배려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기
- 대장 의견 따르기
▪︎가이드
- 트레킹 코스와 시간은 가이드의 판단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 가이드는 트레킹 안내만 할 뿐 안전은 각자 개인 책임이며, 참석시 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 대장 춘수 010 6620 7858
- 총무 쩡이야
화강석 위에는 ‘한강방어선 전투 전사자 명비’라는 글씨가 선명했고, 아래에는 전투의 개요와 경과가 새겨져 있다. 좌우로는 빼곡하게 계급과 이름이 적혀 있다. 육군 혼성 1, 2, 3, 7사단, 수도사단, 김포지구 사령부 소속 국군과 경찰의 이름이다. 총 953명. 이름 하나하나가 피와 땀의 무게를 지닌,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값지고 고마운 이름이다.
한강방어선전투 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서울이 함락된 직후 절박한 상황에서 치러진 전투였다. 방어전은 결국 실패했지만, 국군은 북한군의 도하를 6일간 늦췄다. 그 지연 덕분에 미군이 참전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국군 재편성과 한미연합작전도 가능해졌다. 결과적으로는 ‘패배 속의 승리’였고, 이 승리는 바로 저 이름 없는 이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조선시대부터 용산 맞은편 한강 나루터 주변을 백로가 자주 놀던 징검돌이 있는 곳이라 하여 '노들나루(노량진)'라 불렀고, 이 지역 지명이 섬까지 이어졌습니다. 원래는 용산구 이촌동 쪽에 붙어 있던 넓은 모래밭(백사장)이었으나, 1917년 일제강점기 한강 인도교(현 한강대교)를 건설하면서 모래 언덕에 석축을 쌓아 인공섬으로 만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중지도(中之島)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으나, 1995년 일본식 지명 청산 및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원래 우리말 이름인 노들섬을 되찾았습니다.
노들섬은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중지도로 불리며 한강 중심에서 백사장과 스케이트장으로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도심 속 강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60~70년대 한강 개발 계획 이후 몇 차례 대규모 개발 계획안들이 무산되며 노들섬은 가깝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잊혀진 섬이 되었습니다. 2012년 한강에서 휴식과 만남의 공간으로 사람들을 이어주던 문화 공간으로 복원하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2019년 9월 노들섬은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스카이스위트는 한강대교 상부에 있던 직녀카페를 리모델링해 선보이는 숙박 공간이다. 에어비앤비와 함께 기획하고 제작해 탄생하게 된 이 공간은 서울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숙박공간이다.
스카이 스위트는 144.13㎡규모(약44평)로 침실·거실·욕실,간이 주방 등으로 구성되며 최대 4명까지 입실할 수 있다. 침실 남서쪽에 큰 통창을 설치해 노들섬에서 여의도까지 이어지는 한강의 매력적인 전경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것이 포인트다. 거실은 한강변의 풍광에 영감을 받아 다채로운 색감을 활용한 디자인을 담아냈고 천장은 유리로 마감해 도시 야경과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도록 했다.
1950.12.31~1951. 1. 4 중공군의 공세로 다시 서울을 포기하고 피난길에 오른 서울시민들이 한강 도하 시 이용했던 부교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1951년 1월 3일 미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의 서울 철수 명령에 따라 한강 이북의 모든 국군과 유엔군은 1월 4일 오전까지 한강에 임시로 설치된 부교를 통해 철수를 완료했다
1950년 12월 하순부터 이미 피난령이 내려져 서울시민 대부분이 한강 이남으로 철수했는데, 이는 전쟁 초기 피난 가지 못하고 잔류하였다가 이후에 온갖 시달림을 받았던 경험 때문이었다. 이곳은 '1ㆍ4후퇴' 당시 서울시민들의 피난 상황을 보여주는 장소 중 하나이다
당시 촬영된 항공사진. 한강철교(좌측)과
이미 파괴된 인도교(우측)
한강인도교 폭파사건은 6.25 전쟁 당시인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대한민국 국군이 한강인도교를 폭파한 사건이다. 사망자 수치는 미 군사고문단 장교가 군인, 경찰, 민간인 등을 포함하여 500~800명으로 추정한 기록이 존재하며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진 사망자 수치는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 77명이다.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폭파 이후 북한군 전차가 28일 오전 8시경에 용산 삼각지에 진입했으며 주력부대는 이날 11시 30분에 진입하였으므로 국군 주력부대와 서울 시민들이 강남으로 철수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기 폭파로 인명 살상은 물론 병력과 물자 수송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비판이 대두되었다.
다리를 끊은 사람은 최창식 육군 대령이다. 직책은 육군본부 공병감이었다. 폭파를 지시한 사람은 따로 있다.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석 달이 지난 뒤 군은 이 사건의 책임을 물었다. 1950년 9월 21일. 군법회의는 최창식에게 적전비행죄로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같은 날 집행했다. 그 일주일 뒤가 9월 28일이다. 서울을 되찾기 직전이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부인 옥정애가 재심을 청구했다. 1964년 11월 재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판단의 요지는 이렇게 정리된다. 폭파는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고 그 명령 자체의 판단과 시점에 문제가 있었으며 집행자 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릴 사안이 아니었다. 사형 집행부터 무죄 판결까지 14년이 걸렸다. 명령을 내린 채병덕은 1950년 7월 하동 전투에서 이미 전사한 뒤였다.
조선 시대 백씨 성을 가진 빈(왕의 후궁)이 이 부근에 살면서 궁을 오갈 때 이 길로 행차했다고 하여 '백빈건널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땡땡땡" 소리를 내며 차단기가 내려오는 풍경 때문에 대중에게는 '땡땡거리'라는 정겨운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요 촬영지입니다.
연복사 오층목탑은 1394년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중창되었다. 그리고 탑의 중창을 기념하는 연복사탑중창비(演福寺塔重創碑)를 세웠다. 비문에는 불탑의 건립내력과 태조 이성계의 공덕을 담았다. 중창 불사는 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주도했다.
그런데 개성에 있어야 할 연복사탑중창비가 2012년 서울 용산 철도회관 마당에서 김석중이라는 시민에 의해 발견됐다. 김석중 씨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유물을 인터넷 문화재동호인 까페에 올려 공지했고, 고증을 마친 서울시는 2013년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발견은 행운이었지만 권근이 짓고 성석린의 글씨로 새겼다는 비신은 불행히도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은 비신 받침인 귀부와, 오각형의 제액을 여러 마리의 용이 휘감고 있는 형상의 이수만 남아 있다. 비신이 언제 없어졌는지, 그리고 이 석물이 왜 서울 용산의 철도구락부 구역으로 옮겨진 것인지에 대한 기록이나 증언은 전혀 없다. 그저 곤도 사고로와 같은 일본인이 개성에서 이것을 실어 어디론가 가지고 가려다 용산역에 내려놓은 것으로만 추측될 뿐이다.
1955년 육군본부에서 주한미군의 장교클럽을 벤치마킹하여 육군회관을 건립하였지만 장교들 대상이 아닌 병사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존재하지 않았다. 1960년대 전방 부대들의 장병들이 휴가를 나와 용산역을 경유하여 고향으로 내려가야했기에 용산역에서 장시간 대기해야했는데 이를 보게 된 박정희 대통령이 "장병들이 잠시 쉬었다가 갈 수 있는 시설을 건립하라" 지시했고 대통령 하사금으로 1억 2천만원(당시 금액)을 들여 1966년 3월부터 69년 8월까지 지상 5층에서 지하 1층, 그리고 대지 1006평, 건평 1225평 규모로 건립하였다. 그리고 해당 시설의 명칭을 '용사의 집'으로 정했다.
현재는 2023년 나인트리 프리미어 로카우스 호텔로 재건축되어 없어졌다.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스파(찜질방).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다가 2021년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으로 '잠정 휴업'에 들어갔다. 현재 패스트푸드점과 한정식 레스토랑이 건물 1층 공간 전체를 점유한 상태라 찜질방 공간으로 향하는 통로가 사실상 막혀 있다.
아이파크몰 용산점은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복합 쇼핑 공간이다. 용산역 민자 역사 내에 위치해있으며, 2004년 '스페이스9'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으며, 2006년 리모델링을 한 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지하 3층과 지상 9층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더 센터'와 '테이스트파크', '패션파크', '리빙파크' 총 4개 구역으로 구성됐다.
1900년 7월 8일 11.5㎡(3.5평)의 작은 목조건물로 시작한 용산역은 경의선의 시발역이 되면서 1906년 11월 서양식 역사로 다시 지어진다. 1932년까지 지어진 이 역사는 당시 일본인들이 덕수궁 석조전 등과 함께 조선의 4대 건축물로 꼽았을 정도로 크고 매력적인 목조건물이었다.
1972년 철도화물운송이 시작되면서 각종 화물과 소화물이 서울 시내로 들어오는 철도물류터미널의 역할을 하였으며, 2004년 KTX 개통에 이어 2012년부터 ITX-청춘의 시·종착역으로 역할하고 있다. 2004년 10월 민자역사로 새롭게 태어난 용산역은 쇼핑과 문화 활동의 중심지로 상업, 레저기능이 복합된 도심 속의 도시, 그 자체가 되었다.
별마당님~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아차차!!~
댓글 달았는줄!
저도 갑니다~^^
라밴다2운영위원님 ~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참가자 명단
01 춘수
02 쩡이야
03 나나소울
04 나은이
05 정제이
06 언덕저편1
07 럭키맨
08 수키
09 재호할미꽃
10 더샵
11 영영이
12 신발
13 놀토
14 송지학
15 토토투투
16 아우라
17 낭만조아
18 재경
19 포시즌
20 쵸코렛
21 남동이
22 애란
23 초상비
24 별마당
25 라밴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