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因緣
<제11편 살붙이들>
②각아비자식들-42
그녀는 남자를 놓칠세라 손을 꼭 잡고, 몸을 한껏 남자에게 기댄 채로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남자는 아까 고정민이 얼핏 흘리듯이 강단에 선다는 이야기와, 최 사장이 아버지란 거쯤 되살리자, 머릿속에서 상상의 그림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차가 털털대며 달리자, 그녀는 남자의 가슴팍으로 스스럼없이 윗몸을 한껏 부리어놓고 있었다.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태평한 여자만 같이 보이었다.
남자는 손을 어디에 둘 곳이 없어지자, 한 손은 그녀의 이마에 얹고, 또 한 손은 그녀의 오른손을 쥐고 있었다. 살결의 곱기가 어느 순간 녹아내릴 거만 같아서 되레 애처롭고, 마치 어묵처럼 야들야들하였다.
차는 산속을 뚫고, 연신 높고 낮은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으나, 차츰 고산지대로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그런데 막바지 산꼭대기를 향하여 부릉부릉 가쁜 숨소리를 내면서 배기가스가 대량 내뿜는지 구수한 기름타는 냄새가 코끝으로 취각을 건드리었다.
차가 높은 고갯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던 거였다. 중원에서 고산지대로 기어오르는 중이라고, 남자는 믿어지었다.
이러한 산악지대를 미지의 여인과 한 덩이가 되어 달리자니, 괜스레 누구인가 그리워지는 순간 눈을 내리깔고, 코앞에 안긴 그녀를 내리어다보자, 오뚝한 코에 작은 호수 같은 눈망울이 마주치는 거였다.
그녀는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반짝이면서 입때껏 그의 얼굴을 올리어다보고, 있었나 보았다.
그녀는 남자의 턱밑과 두 개의 콧구멍과 눈자위, 그리고 이마위로 넌출거리는 억센 남자의 머리카락들을 올리어다보고, 있었을 거였다. 그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아마도 그의 턱밑에 푸릇푸릇 번진 남자의 수염을 보고, 그 미증유의 남자를 더욱 깊이 꿰뚫어 알리라고, 그 나름의 표정을 읽고, 있었을 거였다.
더위도 이제는 아침저녁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데, 마지막 여름 꽃이 시들기 전에 기우로 만난 나비이었다. 청순한 꽃이 시들어갈 즈음 찾아든 나비. 해마다 무심코 방학을 흘려보내고 나면, 한 해가 덧없이 지나가고는 하였다.
그리하여 이십대 중반에 다다랐으나, 올해를 어물쩍 지나치면, 후반으로 치달아 정녕 삼십 줄로 들어서는 이름 그대로 노처녀가 될 거였다.
그러면, 세월은 어느덧 일 년이라는 수많은 날들을 또 물살처럼 떠나보내지 않겠는가. 여자는 남자로부터 씨를 받아 자신의 분신을 세상에 태놓는 일을 하여야하였다.
그것도 인간으로 태어나 유일한 본능의 가치를 내어놓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되뇌던 인륜대사라고 하는 번거로움을 자신의 방식대로 돌리어놓는 거였다. 그 거추장스러운 혼례는 굳이 꼽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목적에 이르지 못할 바가 아니었던 거였다.
‘아버지, 저는 오다가다 길에서 만난 집시의 남자와 아기 낳고, 살려 해요.’
‘너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이야. 오다가다...? 별난 취미군!’
아버지는 그녀의 말에 토를 달았을지라도, 추호도 탓하지는 아니하였다. 그것은 어차피 딸이 경주최씨 가문의 대를 이어갈 수 없다는 자포자기일 거였다. 굳이 생각대로 하라고 내맡긴 적은 없더라도, 아버지는 그렇듯, 묵인하였다고 할 수 있었다.
차가 또 한바탕 부릉거리면서 거센 엔진소리를 토악질하고 있었다.
“여보! 여기가 양안치고개란 곳이에요. 이 고개만 넘으면, 원주로 들어가요.”
“높은 고개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넌지시 차창 밖으로 눈을 주더니만, 남자에게 외치는 거였다. 남자는 아까부터 높은 고개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 높다랗게 치달은 산비탈로 띄엄띄엄 너와지붕으로 덮인 납작궁이 외딴집들이 있고, 그 집마다 누렁이 소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었던 거였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남자의 품에 아무렇게나 데 굴리었는데, 남자는 연신 그녀의 귀밑머리와 귀뿌리로 손을 보내어 무심코 어루만지고 있었다. 조금만 세게 쥐어도, 터질 듯이 신비로움과 부드러움이 간직된 연한 살결이었다.
좀 뒤, 그녀가 남자에게 맡기어놓은 윗몸을 일으키면서 밖을 내다보는 거였다. 남자는 그녀를 보고서야, 단구동에 거의 다다른 거라고 짐작하였다.
“여보, 내려요.”
차가 속력을 늦추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잡고 있던 남자의 손을 이끌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어보자니, 바로 앞에 부대가 있었다. 부대정문에 위병소가 있고, 초병이 총을 메고 서 있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느 민간의 공장으로 오인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두부공장’
부대정문 기둥에는 커다란 글씨로 씌어있는 나무간판이 걸리었는데, 남자는 그걸 스치어보면서 그녀의 손에 이끌리어 찻길을 건너고 있었다.
첫댓글 잠시 우여곡절이있었지만 아우가 복무 중인 부대까지 가긴 갔습니다~
마침 최성희 집과 일치하니 그네에게는 잘 된 거지요.
첫 정에 바로 떨어지기 싫은데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도 편하게 되었네요. 대학 강사인가 교수인가,
모르지만 또 방학 때라 출강도 안 나갈 테니 하룻밤
자고 가게 될는지도 모르겠네요. 인연은 맺어보아도
골치 아프고 그저 욕구불만은 있더라도, 일부일처가
가장 좋은 인연으로 생각해야지요. 그런데 천복에겐
그런 의지조차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바람에
어찌할 바 모릅니다. 안타까운 운명의 사슬입니다. ㅎ